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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棗)는 설, 추석 등 명절 차례상과 조상님 제사를 모실 때 빠짐없이 올라가는 상차림 중 하나다. 또한 대추는 수천년 동안 한방(韓方)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노화(老化)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신비로운 생약(生藥) 또는 식품으로 취급되어 왔다. ‘대추를 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대추차’를 즐겨 마신다.
대추(red date, jujube)는 그 색이 붉다 하여 홍조(紅棗)라고 부르기도 하며, 찬 이슬을 맞고 건조한 것이라야 양질의 대추가 된다. 과육(果肉)에는 당분이 많이 들어 있으며, 점액질ㆍ능금산ㆍ주석산 등도 들어 있다. 한방에서는 이뇨(利尿)ㆍ강장(强壯)ㆍ완화제(緩和劑)의 약재로 널리 쓰인다. 대추씨는 거칠게 빻아 볶으면 차로 마실 수 있다.
대추는 관혼상제(冠婚喪祭) 때의 음식마련에는 필수적이다. 제상이나 잔칫상에 대추를 그대로 놓거나 조란ㆍ대추초 등의 과정류로 만들어 놓는다. 또한 대추는 떡이나 음식의 고명으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특히 대추는 열매가 많이 열리므로 많은 자손을 상징하여 혼인식 날 새 며느리의 첫 절을 받을 때 시어머니는 폐백상(幣帛床)에서 대추를 집어 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져주는 풍속이 있다.
설 차례상은 술과 떡국, 과일을 기본으로 하며, 지역마다 올라가는 음식의 종류와 방식에 다소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좌포우혜(左脯右醯) 등에 따른다. 차례상은 일반적으로 음식을 5열로 차린다. 5열에는 대추, 밤, 배, 감, 사과, 한과(韓菓) 등이 올라간다.
‘조율이시(棗栗梨枾)’란 제사상에 놓는 과일의 기본 4가지(대추ㆍ밤ㆍ배ㆍ감)를 말한다. 대추(棗)는 씨가 하나이므로 임금(王)을, 밤(栗)은 한 송이에 3톨이 들어있으므로 영의정ㆍ좌의정ㆍ우의정의 3정승(政丞)을, 배(梨)는 씨가 6개 있어서 6조판서(六曹判書, 이조ㆍ호조ㆍ예조ㆍ병조ㆍ형조ㆍ공조 판서)를, 감(枾)은 씨가 8개 있으므로 조선 8도(朝鮮八道) 관찰사(觀察使)를 각각 상징한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중국산 냉동대추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낮은 관세로 수입된 중국산 냉동(冷凍)대추가 국내에서 해동(解凍)과 건조과정을 거친 뒤 건(乾)대추로 대량 유통되고 있다. ‘냉동대추’ 수입이 가속화하면 국내 고추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준 제2의 ‘냉동고추’ 사태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관세청(關稅廳)에 따르면 중국산 냉동대추는 2018년 20.4t, 2019년 63.4t, 그리고 2020년에는 무려 653.1t이나 수입됐다.
중국산 냉동대추 수입이 급증한 주요인은 韓ㆍ中자유무역협정(FTA) 협정세율이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신선대추와 건대추엔 611.5% 또는 1kg당 5800원의 고율 관세가 부과되지만, 냉동대추는 관세가 30%에 불과하다. 이에 지난해 중국산 신선한 생(生)대추 수입량은 0.1t에 불과했다. 또한 예전에는 중국산 냉동대추를 해동해 건조하면 상품성이 떨어져 국내에서 외면을 받았는데, 요즘은 냉동대추의 품질이 좋아 건조해도 상품성이 충분하다고 한다.
신선농산물 건조기술이 향상된 국내에서 건조된 중국산 냉동대추는 서울 경동시장, 중부시장, 가락시장, 온라인 쇼핑몰 등을 통해 중국산 건(乾)대추로 국산 건대추의 절반 값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 건조기술의 향상으로 냉동대추는 건조 이후에도 맛과 당도(糖度) 등이 좋고 국산 대추와 외형적 차이가 거의 없어 소비자들이 오인하기 십상이라고 한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서 건조된 중국산 냉동대추가 외관상 국산 건대추와 거의 구별이 되지 않아 원산지(原産地)가 한국산으로 둔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산 대추는 브랜드도 없는 10kg들이 포장상자에 담겨 유통되는 데다 상자 옆면에 부착된 원산지표시 스티커만 제거하면 전문가도 중국산 냉동대추와 국산 대추를 육안(肉眼)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에 중국산 냉동대추가 국내에서 건조돼 유통된다는 사실을 일반 소비자들이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기본세율 30%가 적용되는 중국산 냉동대추의 수입 가격은 관세와 운송비를 포함해 10kg당 2만원 정도이지만, 냉동대추를 말린 중국산 건대추 가격은 10kg 기준 6만-7만원이므로 수입업체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 한편 국산 대추는 특품(特品)이 16만-18만원이며, 지난해 긴 장마와 일조량 부족, 태풍 피해 등으로 국내 대추 생산량이 전년보다 20% 이상 급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추 생산량은 2019년 대비 23% 감소한 7200t으로 잦은 비와 태풍 등의 여파로 2006년 이후 14년 만에 최저 생산량을 기록했다. 대추 생산량은 2014년 1만423t을 정점으로 지속 하락해 최근엔 1만t 안팎에 불과하다. 대추 생산면적도 1997년 6393ha에서 2015년 2745ha로, 생산 농가도 2010년 7278가구에서 2019년 6587가구로 줄었다.
중국산 냉동대추는 2002-2007년에도 상당량이 수입됐으나 국내에서 상품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이후 10년 가까이 수입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건조된 중국산 냉동대추가 국내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으며 수입업자들이 수입량을 크게 늘리는 추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냉동고추’의 교훈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지 않고 ‘냉동대추’에 대한 韓ㆍ中 FTA 협상을 소홀히 했다고 비판한다.
대추는 주로 제수(祭需)용과 약제(藥劑) 및 건강식품(健康食品)용으로 소비되므로 추가적인 수요 요인이 없는 가운데 수입물량이 급증하면 국산과 중국산의 가격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가격 경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농가의 몫이 되므로 관계당국은 다각적인 수급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추 주산지(主産地)는 경북의 경산, 군위, 청도와 충북의 보은 등이다.
이번 중국산 ‘냉동대추’ 사태는 16년 전 ‘냉동고추’ 사태와 판박이다. 냉동고추도 냉동대추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건조ㆍ유통돼 사회문제가 됐다. 2005년 중국산 냉동고추 사태 때도 관세청의 통관지침 마련에 큰 역할을 농협(農協)고추전국협의회가 했다. 협의회는 중국산 냉동고추의 불법유통 감시, 신고센터 운영, 대국민 호소문, 관세청에 건의문 전달 등을 통하여 ‘품목분류 기준’에 내동고추를 포함시켰다.
현재 대추는 전국 단위의 생산자단체나 협회 등이 없다. 이는 대추농가는 다른 작목과 달리 그동안 특별한 위기의식 없이 흘러온 경향이 있어 농가들이 뭉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번 중국산 냉동대추 위기상황에서는 농가들의 단합된 힘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으므로 대추농가들이 전국 협의체를 구성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가을이면 울긋불긋한 단풍과 잘 익은 각종 열매들이 우리의 오감(五感)을 즐겁게 한다. 대추나무는 갈매나무과(Rhamnaceae)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喬木)이며, 원산지는 유럽 남부 또는 아시아 서부라고 한다. 한국ㆍ중국ㆍ일본ㆍ남유럽 등에 분포되어 있다. 나무 높이는 5m가량이며, 잎은 달걀 모양이며 6월에 황록색의 꽃이 피며 꽃 하나에 반드시 열매가 맺힌다. 구형 또는 타원형의 열매는 9월에 적색으로 익는데 단단한 씨가 들어 있다.
대추나무 줄기에는 가시가 있고 한 마디에 2-3개의 작은 가지가 다발로 나는데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한다”는 말이 그래서 생겨난 듯하다. “대추씨 같다”는 말은 키는 작으나 성격이 야무지고 단단하여 빈틈없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로 쓰인다. 대추는 붉은색으로 임금의 용포(龍袍)를 상징하며, 씨가 한 개 들어있어 임금(王)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추는 열매를 수확하는 가을의 짧은 시기에는 생과(生果)로 아삭아삭한 식감을 맛볼 수 있지만, 대개 말린 대추를 식품과 한약재로 두루 활용한다. 말린 건(乾)대추는 저장성이 좋으며, 건조 과정에서 영양소가 더욱 풍부해진다. 대추씨는 거칠게 빻아 볶으면 커피와 비슷한 향미를 내어 차로 마실 수 있다. 한약에서는 대추를 완화ㆍ강장제로 사용한다. 잘 익은 대추를 쪄서 말렸다가 달여 먹으면 몸의 열을 내리고, 기침도 멎게 한다.
건(乾)대추(Jujube, dried) 가식부 100g(per 100g edible portion)에 함유되어 있는 일반 영양소는 다음과 같다. 에너지 289kcal/ 수분 17.2g/ 단백질 5.0g/ 지질 2.0g/ 회분 2.1g/ 탄수화물 73.7g/ 섬유소 2.7g/ 칼슘 18mg/ 인 116mg/ 철 1.8mg/ 나트륨 8mg/ 칼륨 952mg/ 비타민A 1RE/ 비타민B1 0.13mg/ 비타민B2 0.06mg/ 나이아신 1.1mg/ 비타민C 8mg.
중국은 기원전부터 대추나무를 재배한 기록이 있으며, 서기 1세기 초에 나온 본경(本經)에는 대추의 약용(藥用)에 관한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과목(果木)의 하나로 권장한 기록이 있다. 고려 명종 18년(1188년)에 대추나무 재식(栽植, planting)을 권장한 기록이 있다. 목적은 대추를 약으로 또는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며, 대추나무 목재는 치밀하여 인쇄용 판재(板材)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옛 문헌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대추는 심복(心腹)의 사기(邪氣)를 다스리고 속을 평안하게 하며, 비기(裨氣)를 기르고 위기(胃氣)를 평화하며 허약을 보하고 백약(百藥)을 화(和)한다.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장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명의별록(名醫別錄)에는 “대추는 속을 보하고 기운을 늘리며 의지를 굳게 하고 힘을 강하며 번민을 없앤다. 오래 먹으면 주리지 않으며 신선(神仙)하다.”고 했다.
대추는 비타민, 폴리페놀, 아미노산, 유기산, 지방산, 스테롤, 알칼로이드, 사포닌, 세로토닌, 폴라보노이드 등 다양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약리작용도 다양하며, 풍부한 폴리페놀(polyphenol)을 함유해 항산화 효과도 우수하다. 또한 간(肝)보호작용, 항알레르기작용, 근수축력 증강작용을 하며, 빈혈증, 결핵, 기관지염, 신경쇠약, 조직손상 치료 등에 유효하다고 알려져 있다. 대추 발효물이 미백과 주름살에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 논문도 있다.
대추를 달여 먹으면 부부(夫婦) 화합이 되는 묘약(妙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즉, 가을에서 겨울에 이르면 공기가 건조하게 되어 목이 마르기 쉽고, 감기에도 잘 걸리고 기침도 나기 쉽다. 그런 때에 달인 대추즙을 마시면 목을 잘 적셔주고 천식, 빈혈, 입술 트는 것 등에 유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