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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7년 봄 27세의 청년 시인이 장편 서사시‘한라산’을 한 잡지에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공주의와 역사적 무지를 강타한 이 충격적 시편은 당시까지 사회적 금기였던 제주 4·3의 참담한 비극을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라산’은 비통한 현대사에 대한 뜨거운 분노와 격정을 담은 그야말로 불화살 같은 시편이었다. 그 시가 시인의 운명 그 자체였다. 청년 시인은 도피 끝에 결국 그해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1988년 가을에 석방된 그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념적 낙인과 세상의 편견에 노출된 고난의 운명을 감수했다. 진보적 문인조차 시인과 거리를 두는 막막하고 고립된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불과 몇 년 전에는 골목길 백색테러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다.
이 기구한 운명의 시인은 올해로 갑년을 넘기며 어언 22년 만에 새로운 시집을 펴냈다. 최근 ‘악의 평범성’을 펴낸 이산하 시인 얘기다. 설 연휴 동안 그의 새로운 시집과 작년 가을에 출간된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읽으며 보냈다. 시편마다 문장마다 올올이 박혀 있는 시인의 선연한 상처, 깊고 쓸쓸한 환멸, 사회의 그늘을 응시하는 투철한 시선, 분노와 회한이 어우러진 시어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가슴 저미는 시집이다.
시인은 “가을 단풍처럼 질 것을 알면서도/거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저항과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숙명을 묘사한다. 그 길은 시인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던 도정(道程)이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과 모순을 응시하는 단단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시집을 읽다 보면 시인의 시선이 단지 좁은 정치와 이념의 세계에 유폐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인의 말’에서 이산하 시인은 “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적었다. 대신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상처’다. ‘한라산’ 이후 전개된 그의 인생 여정은 상처와 함께한 시간이었을 테다. 감옥행, 세상의 편견, 고문의 악몽….
시인은 “이 세상은 어느 곳이나 인디언의 구슬 같은 상처가 있다”며 “상처 있는 것이 상처 없는 것보다/오히려 더 아름답다는 믿음”을 피력한다. 시인은 노래한다. “꽃이 나무의 상처라면/열매는 그 상처가 아문 생의 유일한 빈틈이다”(‘빈틈’) 나는 시인 이산하만큼 한국 사회의 이념적·역사적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해 스스로 사회적 상처가 된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에는 시인 자신의 상처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상흔이 켜켜이 배어 있다. 시인은 운동권의 변절과 출세, 비정규직 차별, 촛불의 한계 등 이 시대의 중대한 사안을 응시하고 감옥에서 만난 사형수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을 보듬는다.
또한 시인은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였으며 “가난하고 소박한 생을 최고의 삶으로 꿈” 꿨다는 너무나 역설적인 사실을 일깨운다. 더불어 세월호 희생자 등 우리 사회 약자와 소수자를 극단적 언어로 조롱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통렬한 각성을 통해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창안한 ‘악의 평범성’ 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환기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다. 점점 ‘내 생각이 존중받지 못한다’거나 ‘내가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상처가 보편적인 정념이 돼 가고 있다. 어떤 시집은 때로 어떤 소설이나 영화 이상으로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움직인다. 그건 단지 일시적 위안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정념과 그 사회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무도 시집을 안 읽는 시대, 상처에 대한 내성이 많이 떨어진 이 시대에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 어떤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뜨거운 시집을 권하고 싶다.
- 출처 <서울신문>
■ 권 성우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