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남매를 파키스탄으로 돌려보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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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만남매를 파키스탄으로 돌려보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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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무인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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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주 탐사 주제는 ‘ethnic relations’와 ‘사회주의적 가치의 재발견/부활’ 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에서 현재 진행 중인 다문화/인종화 현상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한국의 다문화/인종화 현상에 대한 이런 나의 관심 결과들은 7편에 걸쳐 연재된 이전 포스트‘한국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담론들’시리즈에서 밝힌 바 있다. 사실 이 글은 2015년경에 쓴 것으로 블로그를 만들면서 원문의 내용을 조금 업데이트해서 다시 옮긴 것인데 이 시리즈에 담긴 나의 관점과 이해는 2021년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뉴질랜드 교민은 한국의 다문화/인종화(multi-ethnicization) 현상에 대해 어쩌면 한국 내 학자들 그리고 시민단체보다 더 객관적이고 생산적인 의견을 제기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장점은 ‘역지사지’이다. 많은 마오리 학자들 그리고 지도자들이 현 뉴질랜드 사회에서 마오리를 덮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 - 예를 들어, 타 에스닉 그룹보다 월등히 높은 범죄율 그리고 재소율 -에 대해 이 문제의 해결책은 ‘마오리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파케하 같은 외부 시각에 기반을 둔 대처는 왜 그들이 그런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가에 대한 이해가 파케하식의 합리주의적 결론 혹은 기껏해야 온정주의의 끝자락에 머물 수밖에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같은 맥락에서 파케하라는 백인 그룹이 양적 다수이자 모든 면 - 경제, 정치, 문화 등 - 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뉴질랜드에 사는 소수민족 이민자로서 한국교민은 한국의 이민자(불법을 포함해서)와 외국인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에 대해 비록 바다 건너편에 있지만 ‘역지사지 경험’이 없는 관료들로 구성된 한국 정부의 출입국사무소는 물론‘온정주의적 친이민자 시민단체’보다 문제의 핵심에 더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법무부 산하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뉴질랜드 이민성(Immigration NZ)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일 민족에 가까운 직원 구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들은 당연히 한국에 사는 소수 이민자들의 입장이 되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국에 아주 가끔이지만 갈 때마다 안 좋게 느끼는 것은 공항 출입국 직원들의 고압적인 자세다. 그들의 고압적 자세는 유감스럽지만, 똥개도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시쳇말이 연상되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갑질 행태로 내게 보인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모르는 채 외국 방문자 혹은 이민자를 마치 잠재적 혐의자 취급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는 현재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다문화/인종화 현상을 대하는 한국 관료 집단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들 한국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우월적 지위와 시각으로 이민자 혹은 외국인 - 뉴질랜드에서는 최소한 형식적으로나마 고객(customer)으로 신자유의적 시대사조에 맞추어 호칭하지만, 한국은 뭐라 호칭하는지 모르겠다 - 을 내려다보듯 대한다고 한다면 한국의 친이민자 시민단체 등은 이들 공무원보다 훨씬 ‘따뜻하고 선한’ 한국인들로 이민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하지만 이전 포스트에서 썼지만, 이들의 스탠스에 대한 평가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일단 이들 조직의 재정적 후원 상당 부분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나온다는 점은 이들이 한국 정부가 지향하는 다문화정책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뿐만 아니라 이들 조직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 모두가 아니라면 - 사회 집단에서 소수가 되어본 경험이 없이 ‘머리로’ 배웠던 그리고 ‘가슴에서’ 느껴지는 ‘보편적 인권에 기초한 온정주의’로 무장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뉴질랜드 한국 이민자들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해 볼 수 있는 유형의 그룹 - 대부분 파케하 - 들이다. 이들은 결코 ‘나쁜’ 사람들은 아니지만 또, 결코 나와 모든 것을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형식이지만 이들 역시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당사자들이 의식하든 못하든 이민자나 외국인을 ‘내려다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만남매 스토리 


본론으로 돌아가자. 다큐비디오에 나오는 ‘노만’은 2000년, 돈을 벌러 한국에 온 파키스탄 부모를 따라서 4살 때 한국에 온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6년 파키스탄으로 출국할 때까지 한국에서 16년을 보낸 사람이다. 2012년에 비자 연장이 안된 부모는 먼저 파키스탄으로 출국한 후 주변의 탄원으로 그나마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마칠 수 있었지만 이후 체류를 한국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 2016년 본인 말마따나 한국에서 자신이 쌓아 놓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언어도 문화도 종교도 다 생소한 부모의 나라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파키스탄에 돌아간 이후 그곳에서 생활하는 그의 모습을 2019년 다큐에서 생생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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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다큐비디오에서 2009년의 노만이 나오는 부분은 6:52~9:10과 10:09~11:11이며 2019년의 노만이 나오는 부분은 17:12~21:53이다. 가장 가슴 아픈 말은 한국에서 태어난 여동생들과의 대화( 20:10 부터)에서 나온다. 


“그냥 미성년자라고 해서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었잖아.  

한국에서 살고 싶은지 파키스탄에서 살고 싶은지를 물어 본 사람이 없잖아. 

난 정말 한국은 좋지만 그게 화가 나. 서운하고….. 

너도 아까 말했잖아. 나 한국 사람이라고. 

한번이라도 물어봐 줬으면 어땠을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난달 뉴질랜드와 호주 간 외교적 신경전을 불러일으킨 한 사건을 연상할 수 있다. 소말리아 출신 난민 부모 밑에서 오클랜드 Mt. Roskill에서 1995년에 태어난 Suhayra Aden으로 알려진 이 여성은 6살 되던 해 호주 멜버른으로 이민을 하고 이후 호주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다. 그녀는 19살 되던 2014년에 당시 시리아의  Islamic State(IS)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스웨덴 남자와 결혼하여 3자녀(그 중 한 명은 폐렴으로 죽었다)를 가지게 된다. 그녀를 IS의 테러리스트로 간주한 호주 정부는 2020년 뉴질랜드와 호주 이중 국적의 그녀와 그녀의 자녀로부터 호주 국적을 박탈한다. 이에 따라 2021년 터키 입국 시도에서 그녀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한 터키 정부는 그녀를 뉴질랜드로 추방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비공식적으로 뉴질랜드 정부도 그녀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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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hayra Aden과 그녀의 자녀


이 사건에 등장한 소말리아 부모 밑에서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뉴질랜드와 호주 이중국적의 엄마와 스웨덴 국적의 아버지 사이에서 지금은 없어진 시리아 영토 내 Islamic State에서 태어난 Suhayra Aden의 두 자녀와 위 다큐비디오의 노만과 그 여동생들은 물론 다른 상황이다. 일단 Suhayra Aden의 자녀는 2021년 현재 6살 미만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들에게 있어 IS에 대한 추억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 자녀에게 선택권을 준다 하더라도 그 아이들이 IS를 선택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성장하여 호주와 뉴질랜드 양국 중 살 곳을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할 수도 있었을 텐데 호주 정부는 국익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이 기회를 이 아이들로부터 박탈한 것이다.


반면 노만과 그 여동생들은 출생 혹은 유년기 시절부터 인격 형성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기를 통째로 한국에서 보냈기에 그들 부모의 고향은 그들에게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그런 곳은 아니다. 노만의 여동생은 자신을 한국인으로 여긴다고 오빠에게 얘기한 장면이 다큐에서 나온다. 한국에서 성장하면서 분명 차별의 경험을 했을 노만의 여동생이지만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한국 정부는 국익을 이유로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그들을 쫓아낸 것이다.


다큐비디오에 올라온 댓글을 대략 살펴보았다. 대다수 의견은 노만남매에게 동정적이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유년기부터 성장했고 본인들 자신도 한국인이라고 생각할 만큼 한국사회에 ‘동화’ 되다시피 잘 적응한 이런 아이들은 한국에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이에 반해 소수이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이유로 이들을 봐주다가는 한국이 불법체류자 - 특히 무슬림 - 의 천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 여전히 발견된다.


이전 포스트 ‘매매혼을 위한 변명’에서 나는 최근까지  한국의 도시 빈민 그리고 농촌 남성과 상대적 저개발 국가의 여성 간 국제결혼을 속물적 매매혼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커플들의 나이 차가 부녀지간에 해당할 수 있는 정도라도 그들이 그런 걸 감수해야 자신의 행복을 ‘개척’ 할 수 있다는 결론적 신념들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사례로 든 여성들은 베트남에서 온 황티쿡과 캄보디아에서 온 스롱 피아비였다. 이 둘 다 한국인 남편과 현격하게 나이 차가 났지만, 이들은 현재(2019년) 행복해 보이는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데 만약 이들이 현재 한국 남편과의 결혼이 없었다면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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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2위 당구선수 스롱 피아비가 지금 캄보디아에 있었다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다큐비디오 19:35에 나오는 노만 여동생의 말은 위 내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준다. 


“그냥 (엄마가) 한국에 (나를) 버리고 오면 내가 뭐라도 해서 살았어. 

내가 죽지는 않았을 거야. 

살기 위해서 뭐라도 했을 거였는데 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아예 여기(파키스탄) 살 수 있다는 거…

계속 계속 살아야 되는 것… 그거 생각해본 적이 없어. 

난 계속 한국 갈 수 있다고만 생각했어”


아직 10대이고 따라서 그녀 앞에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나 솔직히 그녀에게는 한국이 더욱 많은 기회의 장소라는 생각이다. 스테레오타입이지만 히잡을 둘러싸고 촬영에 응한 그녀의 모습에서 한국에 있었으면 ‘뭐라도 해서라도’ 자기 인생을 개척하려고 애썼을 수 있었던 그녀였을 텐데 파키스탄이란 이슬람 사회가 그녀에게 ‘뭐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과연 제공해줄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녀 역시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이슬람 사회의 전형적 무슬림 여성처럼 뭐라도 한번 자신의 의지대로 해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지 않을까 상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한국에 있었어도 잘된다는 보장이 없지만, 그들에게 한국은 ‘미우나 고우나’ 고향같이 익숙한 터전이자 그들이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이 공간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다.   


이전 포스트에서 뉴질랜드 이민정책이 많은 경우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실행이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뉴질랜드 정부가 Biculturalism이라는 국시와 Multiculturalism이란 현실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개별 케이스도 많은 경우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처리된다. 특히 인도주의적 차원의 이민 허용은 그렇다. 이민법은 자국민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원칙 위에서 제정되기 때문에 많은 이민 희망자들이 이 이민법에 근거해서는 뉴질랜드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난민도 망명에도 해당하지 않지만 돌아갈 곳이 없어 보이는데 열심히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저런 사람이 뉴질랜드에 필요하지 누가 필요하겠느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에 머물게 하고 싶은 유형의 사람이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정식 이민신청 절차를 통해서는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하지만, 꼭 뉴질랜드에 체류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탄원서를 제출한다. 탄원서의 서명인에 저명인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교회 목사부터 지역구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포함하여 탄원서를 제출할 경우 이민부 장관의 재량권으로 체류를 허가받기도 한다.


위 노만남매가 한국에 살수 있도록 허락하는데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로서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인도주의적 결정은 좀 더 적극적이고 ‘당사자 입장에서 과연 어떤 결정이 최선일까’를 고려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한다. 그 후 그들에게 체류자격을 주었을 때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차후 고려하는 것이 순서다. 국가 간 이민은 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가들의 니드가 가장 큰 동인이지만 움직이는 것은 싼 ‘노동력(labour)’이 아니라 ‘인간(human)’ 이다. 내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민 민족주의도 결국 지향점은 세계시민이다. 자본가가 필요로 하지 않는 유형의 인도주의적 이민자에게도 적극적인 관심과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적용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자아실현을 할 기회와 공간을 제공해줘야 하는 것이 어쩌면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에 사는 국민 그리고 그들의 정부가 갖추어야 할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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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부모의 출국 - 이라기보다는 추방이란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 이후 노만이 혼자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불확실한 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2014년의 노만의 모습의 아래 다큐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블로그 ‘사회, 역사, 인간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발췌


■ 김무인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사회 초년생활을 한 후 뉴질랜드로 이민 왔다. 새계화의 조류 속에서 다인종 다문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에 관심이 많고 더불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팽개쳐진 사회적 가치의 부활을 위해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탐구 할 요량으로 글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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