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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초기에 1박 2일 예정으로 로토루아 여행을 갔었다. 숙소가 인근의 농장 모텔이었다.
친구의 가족여행에 초대를 받아 동행을 했던 참이라 나는 혼자서 방을 써야 했다. 내가 묵을 방은 복도 뒤쪽에 있었다.
문을 열자 작은 방이 침침해서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벽의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니 아담해서 그런대로 아늑했다.
맞은편 벽면에 높직히 자그마한 창문이 나 있었다. 문 주변을 따라 무언가로 넓게 테두리가 만들어져 있는게 특이했다. 아마 작은 창문을 시각적으로 크게 보이려고 만든 것 같았다. 아이디어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마른 나무등걸을 구부려 자연스레 얽어 만든 것이었다. 재미있고 제법 운치도 있었다.
볼수록 예술적인 감각이 느껴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서리 한켠에 방금 날아 온듯한 큼직한 나비 한마리가 사쁜 앉아 있었다. 나는 깜작 놀라서 은연 중 한발짝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아! 저 나비는 . . . 그 어느날의 호랑나비가 아닌가.?
나도 모르게 신음같은 소리가 가늘게 떨려 나왔다. 오싹 소름이 돋으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반가웠다.
그 밤 잊고 살았던 남편을 오랫만에 꿈 속에서 만났다. 알 수 없는 이상한 옷을 걸쳤는데 시종처럼 내 뒤를 계속 따라다녔다.
계절 좋은 어느 일요일 이었다.
딸 내외를 앞세우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들이 가듯 집을 나섰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니 산야가 온통 푸르렀다. 윤끼 흐르는 여린 잎사귀들이 다투어 초록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눈이 시원했다. 게운찮은 기분도 잠시 가벼워지는 듯 했다. 그러나 무거운 가슴은 좀체 달라지지가 않았다.
평소같았으면 신랑곁에서 많이 쫑알대던 딸아이도 조용했다.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차가 정차 하기에 둘러보니 어느덧 언니네 집 앞이었다. 형부와 언니가 벌써 문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듯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눈빛만으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언니는 제법 무거워 보이는 보에 싼 짐을 차에 실었다. 돌돌말은 돗자리와 큼직한 라디오를 형부가 트렁크에 넣었다.
문득 라디오의 용도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묻지않았다.
일행이 다섯사람이 되었다. 차 안에선 여전히 말들이 없었다.
“날씨가 좋구먼 . . . .”
형부가 무거운 침묵이 답답한듯 한 말씀 했다. 누구라도 답을 했으면 좋으련만 . . . 그 분은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헛기침을 두어번 했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남쪽 ‘ㅇㅇ시’에 있는 ‘납골당’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앞서 걸어 들어가는 사위가 든든했다. 우리 모녀는 그의 뒤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맘속으로 언니가 함께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지만 왠 일인지 두 분은 그대로 차에 남았다. 그 분들이 영 다른 사람들처럼 서먹했다.
잠시 후 사무절차가 끝났는지 관리인이 일어나 우리를 안내했다.
주변 분위기가 너무 적적해서 을씨년 스러웠다. 조여드는듯한 긴장감으로 손끝이 싸늘해져 갔다.
무덤덤하게 앞섰던 남자가 창고같은 허름한 건물앞에서 열쇠 꾸러미를 뒤졌다. 그 짧은 순간 나는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
‘철커덕’ 소리와 함께 곧바로 커다랗게 입을 벌리듯 문 이 열렸다. 음산한 공기가 흘러나와 뺨을 스쳤다.
“들어가 직접 찾으시요”라는 말 한마디 던지고 그는 등을 돌려 바쁜 걸음으로 저만치 가고 있었다.
지금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납골당이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차라리 유골함 보관 창고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았다.
정신이 아찔했다. 현기증이 나서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무심히 걸어가는 남자가 야속 하기만 했다.
주춤거리며 망서리는 나를 제끼고 사위가 성큼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퍼뜩 정신을 가다듬었다. 당연히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얼른 그의 앞으로 다가서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는 산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었다. 죽은 자 들만이 존재하는 특별한 곳이었다.
뿌우옇게 안개 서린듯한 답답한 공기에 숨이 막힐것 같았다. 이미 끝난인생, 한 줌의 재로 흔적을 남겨본들 무슨 소용이람, 죽음의 마지막 찌꺼기일 뿐인 것을 . . . 정적속에 묻혀있는 그들속에서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두려움에 등골이 서늘해 졌다.
철제앵글로 만든 선반들이 겹겹이 많이도 서 있었다. 여러층의 선반위로 빈틈 없이 하얀 단지들이 놓여 있었다. 마치 이천 도자기 전시장에 온듯한 착각을 하기에 딱 좋았다. 뽀얗게 먼지가 내려덮인 누군지도 모를 사진들, 하나같이 저승사자로 보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 곳.
거의 남의 정신으로 그 안을 휘젓고 다녔다. 위패보다는 그래도 사진을 보고 찾는게 빠를 것 같았다.
그는 중심부 맨 꼭대기 층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생겼는지 구석에 놓여있는 사다리를 한달음에 들고와서 타고 올랐다. 신들린 사람처럼 순식간에 단지를 끌어안고 내려왔다.
훌훌히 다 던져버리고 한줌 잿가루로 남은 그 단지가 사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손으로 먼지를 쓸어내리며 딸애가 조심스럽게 받아 안았다. 아이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우리는 다시 차를 달렸다. 서울 교외를 벗어난 양주 땅 낮은 산자락.
그 산은 형부네 선산이었다. 양지바른 언덕에 그 분의 조상들이 묻혀 잠들고 있었다.
형부가 자신의 아버님 묘지 옆에 자리를 깔았다. 언니가 보따리를 풀어 간단한 제사상을 차렸다. 언제 그런걸 다 준비하셨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손님같기만 했다. 언제나 그렇듯 두 분의 정성이 고마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딸 내외가 나란히 서서 절을 했다. 생전에 뵌적 없는 장인에게 처음겸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사위였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목탁소리와 불경소리가 조용한 산자락을 뒤덮었다. 형부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사위가 단지를 들고 산자락 아래로 앞장섰다. 정성스럽게 잘 모시라고 당부하시는 형부, 영혼도 육신도 이미 떠나고 없는 한줌의 잿가루가 도대체 뭐길래. . . .
아이들 손끝에서 바람타고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않는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우리곁을 떠난지가 이미 삼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잘 아물어가던 상처에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모양이었을까?. 한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 하더니 모든 생각이 정지되어 버렸다.
길게 드리운 나무그늘 밑에 털썩 주저앉아 넋을 잃은 채 그렇게 늘어져 있었다.
스르르 눈이 감기더니 몸이 천길 나락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숨가쁘게 소리치는 목탁 불경소리가 아득하게 들리는 듯 끊어지고... 비몽사몽 무엇을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맸을까?
불현듯 정신을 차렸을 때 였다. 어디서 날아온 나비인가. 줄무늬가 화려한 호랑나비 한마리가 내 발끝에 앉아서 연신 날개짓을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날아갈 줄을 모른다. 갑자기 몽롱했던 정신이 확 깨었다.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아! 그가 나비가 된게야.. 남편 나비) 방금 어디선가 어렴풋이 보았던 저 호랑나비.... 꿈 속에서 였다.
갑자기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삼팔 따라지로, 고향산천 부모동기 그리며 평생을 마음 아픈 사람이었다.
특별하게 추억 할만한 일생도 살아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간 사람이었다.
내게 마지막 남긴 말,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용서받고 그렇게 떠난 사람이었다.
자유분방 했던 사람이 그동안 단지속에 갇히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는 영혼따라 북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이제 사상이념 따위 아무도 따질사람 없는 세상, 훨훨 날아가서 그리던 부모동기 영혼이라도 함께 하기를 빌었다.
그가 나비가 되었음을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지킴이로 내 가까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여기까지 따라 왔는지 내가 그를 찾아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비를 보면 그를 만난듯 그냥 고맙고 반갑다.
지금 내 창틀에 매달린 나비 한마리가 오늘도 나를 지켜주고 있다. 남편 나비가 . . .
현실은 다소 빈한해도 인격만큼은 높혀 부티나게 살자던 그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