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지난 10월 21일, 뉴질랜드 해럴드지에 관심을 끄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Kelly Alexandra Roe’라는 여성에 대한 기사였는데요. 그녀는 기사가 나기 하루전인 20일 ‘오타고 대학교 의과대학’을 법정에 고소했습니다. 고소사유는 자신이 네 차례에 걸쳐서 입학을 거절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읽으신 것 맞습니다. ‘의과대학 진학에 네 번이나 실패했다’가 아니라 ‘네 번이나 거절당했다’라는 것이 그녀의 표현이었습니다. 제가 이과출신이라서 이런 섬세한 부분에 잘 익숙치가 않습니다만, 그래도 ‘실패했다’라는 표현이 사건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의미라 한다면 ‘거절당했다’ 하는 표현은 모든 문제가 상대편에서 기인되었다는 의미라는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은 안 계실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보면 그녀가 어떠한 부적절한 행정절차나 편견, 차별의 희생양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법원의 발표에 따르면 그녀가 의대에서 거부당한 것은 적법한 절차에 의한 결정이었고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은 그녀 자신에게 있었다고 합니다. 하등 문제의 소지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뉴질랜드엔 각 대학마다 성인을 위한 특별한 입학전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0세가 넘은 국민이 그 간의 학력이나 경력, 경험등을 바탕으로 입학을 신청하는 전형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진학가능학과에는 분명한 제한이 있고 의과대학 또한 제한된 전공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첨예한 전공분야에 나이가 좀 많다는 이유로 손쉽게 진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의과대학 또한 20세 이상의 국민들에게 입학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Roe씨는 2012년 최초로 오타고 대학교 의대진학을 위한 면접에 응시했지만 꼴찌에서 두번째의 점수를 기록하며 낙제했습니다. 실망이 매우 클법도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낙방이후에 어떠한 준비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2017년과 2018년, 두번이나 더 입학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 두번의 시도도 성공적이지는 못했네요. 그리고 2020년 그녀가 네번째로 입학신청을 하려 했을때 오타고 대학교는 입학신청서를 발부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난 세번의 지원과정에서 학교측과 어느정도 마찰을 빚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지원을 허락하지 않은 대학교의 행태가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질타하며 소송을 건 것입니다.
Dunedin의 고등법원에 출두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동안의 재정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나 담당자의 해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전에 거절당했던 과정에 입학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소송의 목적은 미래의 다른 학생들에게 이러한 입학시도가 합법인지 아닌지에 대해 법원에서 일종의 선언을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라고 말이지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사례를 시험대위에 올려놓겠다는,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이 엿보이는 인터뷰입니다만 그 동안의 정황을 조사한 법원의 의견은 사뭇 달랐습니다.
우선 법원은 그녀가 ‘20세 이상 국민에 대한 교육과 훈련 법령’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음을 지적했습니다. 전국민의 피교육권을 위한 법령을 자신의 처지와 구미에 맞게 변형하여 적용하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말해 법률과 제도를 넘어서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믿어 왔다는 이야기이지요. 송사를 담당했던 Forrie Miller 대법관은 한발 더 나아가 ‘그녀는 공익적 중요성을 지닌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호소하고 있다’며 그녀의 잘못된 아전인수격 주장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아전인수는 오타고대학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2월엔 두 차례에 걸친 의대 불합격과 관련하여 오클랜드 대학교의 의과대학과 법정공방을 벌였고 - 결국 패소해서 $18,000의 과징금이 부과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와이카토대학, 뉴질랜드 부총장 협의회, 오클랜드 지역 보건 협의회등과도 송사를 벌여왔다고 합니다. 사건을 담당한 판사님께서는 현재 이 사안에 대한 판결을 유보중이라고 하는데요. 특별히 고려해야 할 만한 사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또 다시 이런일을 벌이지 않도록 자중시킬 방안을 찾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어떻게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그렇게도 의대에 진학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측은하기도 합니다. 분명히 잘못된 법률해석의 바탕위에 미치도록 이기적인 가치관을 덧씌워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친 민폐사건이건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서 저 정도로 강한 집념, 아니 집착이면 뭔 일을 해도 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수가 없군요.
세상의 수 많은 일들 가운데 ‘의대진학’이라는 딱 한가지를 골라서 그 일을 성사시키지 위해 근 10년을 매진해 온 열정 자체는.. 쉽게 폄하하기 어렵겠다 싶습니다. 다만 그 강한 집념과 의욕을 활활 태워 공부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지울수가 없습니다. 지난 10년간 송사가 아닌 공부를 했더다면.. 무리한 법정공방으로 과징금을 납부하는 대신 실력있는 선생님을 찾아 수업료를 납부했더라면.. 그러면 일의 결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비범치 못한 범인이었다 할지라도 지금쯤 흰 가운을 입은 예비의사가 되어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국어사전에서 ‘집념’의 뜻을 찾아보니 ‘한 가지 일에 매달려 온 마음을 쏟음’ 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 두가지 일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사안에 대해, 마음을 잘 분할하여 그 중 최대치를 할당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전체를 한 조각도 남김없이 쏟아붓는 행위가 바로 집념의 의미입니다. 무너진 하늘 아래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고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입속에서 살아날 방도를 찾아내는 마음자세가 바로 집념입니다. 최고의 무술인이 되기 위해 사람을 넘어서서 황소와 힘 겨루기를 했던 최배달 선생님의 마음이 집념이었고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고문했던 왕에게 12척 판옥선의 출정을 보고했던 이순신 장군님의 마음이 집념이었습니다.
집념이란 이렇듯 스스로의 인생과 모든 이들의 인생을 더불어 살리는 마음가짐입니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말처럼 목적하는 바를 현실의 사건으로 이루어내는 역사의 첫 단계가 바로 집념이고 어떠한 난관도 뚫고 나아가게 하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강력한 동기가 바로 집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집념은 마음의 자세일 뿐입니다. 엉뚱한 집념으로 민폐를 끼쳤던 Roe씨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실력이 없는 집념은 아무런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집일 뿐입니다. 모든 마음을 한 가지 일에 쏟아붓겠다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그 마음을 실어내어 구체화 할 실력이 없다면.. 집념은 한낮 허풍이나 고집으로 치부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무너진 하늘 아래서 솟아날 구멍을 찾으려면 사방팔방 발 디딜곳을 찾아 움직일 날쌘 걸음이 필요하고, 호랑이 입속에서 살아날 방도를 찾으려면 기회가 왔을때 몸을 빼낼수 있는 최소한의 근력이 필요합니다.
세계 최고의 무도인을 향한 집념에 불타올랐던 최배달 선생님은 자연석을 격파하기 위해 주먹을 쇠처럼 단련했고,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장계를 띄웠던 이순신장군님은 울돌목의 해류를 연구하며 지혜로 버텨낸 전투실력을 키우셨습니다. 결국 집념이라는 마음자세가 현실적인 성취로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행동’이라는 실천적 행위가 필요하고, 이 ‘행동’이 적절한 방법에 따라 반복될 때 우리는 ‘실력’을 가지게 됩니다. 집념을 바탕으로 행동을 하게 되고 행동이 되풀이 되어 실력이 자라난다는 논리의 흐름은 스스로의 인생과 모든 이들의 인생을 더욱 살만하게 개선하는 삶의 왕도라 부를만 하겠습니다.
이제 NCEA External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COVID감염자수 때문에 시행여부조차 불투명했던 시험이 이제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IB시험과 캠브리지 시험은 지금 한창 진행중이니 두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시험기간의 아이들은 애가 탑니다. 우수한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최고점수에 대한 갈급함이 있고 부족한 아이들 또한 그 나름대로 ‘생존’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다. 시험이라는 제도가 실패하는 학생들에게는 고난의 확정이고 성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소망의 실현이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으니 각자 나름의 성공을 목표하며 애쓰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올 해는 예년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학생들이 성적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작년만 하더라도 시험 한달 전이면 최소한 요약본 참고서를 구매해서 외우기라도 한다던지 아니면 풀어보지 않을지라고 양심상 기출문제는 인쇄해서 들고 다닌다던지 했었는데 올해 학생들 중에는 그런 열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지 않은듯 합니다. 두 달을 넘기는 Lockdown으로 진이 빠지기도 했을 것이고 또 동시에 정신적으로 게을러지기도 했을테니 어느정도 이해할 법도 합니다만, 힘겨운 도전보다는 손쉬운 포기를 선택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먹먹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이 어떻게든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해서 성적을 올려보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집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동의 기폭제이고 실력의 시발점인 집념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에만 매달리기에는 인터넷에 재미난 놀이감들이 너무도 많고, 온 마음을 다 쏟아 매진하기에는 이미 흩뿌려 놓은 마음을 추스려 모으기가 너무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External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학교 연말시험 성적으로 대체할거라는 루머까지 나도는 통에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증기로 휘발된 듯 그 형체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한 ‘마음실종’, ‘의지실종’의 사태에 가장 황망한것은 바로 학생들 자신입니다. 무언가를 옹골차게 다잡아야 할것 같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고 무언가를 계획해서 차근차근 실천해야 할 것 같은데 그 실천의 대상이 모호합니다. 누구나 말하는 대로 기출문제를 풀어본다고는 하지만 최근 몇년치를 풀어보고 나니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그 헷갈리는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더 공부를 하려고 작정하니 학교 온라인 수업으로도 해결하지 못했던 부분을 혼자 공부해서 이해 할 수 있을까 싶어 아예 포기하는게 나을듯 합니다.
‘성취’, ‘노력’이 들어갈 자리에 ‘포기’, ‘대충’이 또아리를 틀고나니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게임본능, SNS 본능이 또 다시 물꼬를 트고, 한동안 멀리하던 ‘즐거움’에 심취하다보니 어느새 시험은 한달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불안해진 마음에 서둘러 문제지를 꺼내 들지만 여전히 흰 종이위의 검은 글씨는 알수없는 외계어일 뿐이고 이렇게 ‘학습불능’의 악순환은 계속 돌고 돌아 시험준비는 점점 요원해집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더욱 괴롭습니다. 어느정도 체면을 세워 줄 시험결과와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한 실천의 부재 사이에서 억지로 억지로 굼뜨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올해의 우리 아이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집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 코 앞에 닥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그 한가지 일을 위해 쏟아부어야 할 마음 조차 사라진 아이들에게 ‘집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 일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행동이나 실력, 성취 등등도 거의 금기어 수준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집념을 이야기 합니다.
집념의 필연적 계승인 실력이 결여되는 바람에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입히기는 하였으나, 10년의 시간동안 오로지 ‘의대진학’이라는 한가지 일에 온 마음을 쏟아 부었던 Roe씨의 펄펄 끓어오르는 집념을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잘못된 행동과 가치관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녀의 대체불가능한 집념과 열정만큼은 높이 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누군가의 적절한 지도만 있었더라면 의대진학의 꿈을 벌써 이루고도 남았을 그녀의 집착과도 같은 그 집념을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소망하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타인의 질책이나 금전적 손실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의 외골수와 같은 집념을 조금이라도 닮을수 있다면.. Covid-19을 통해 들어선 ‘격리’와 ‘자택수업’의 시대를 살아가게 될 우리 아이들이 여전히 꿈을 꾸고 여전히 꿈을 이루며 자신과 타인의 삶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시험까지 30일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학생들마다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겠습니다만 혹여라도 남은 시간이 촉박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학생이 있다면 우선 마음을 모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아무런 성취를 기대할 수 없다며 결과를 넘겨짚지 말고 성공의 가장 첫단계인 ‘집념’에 온 신경을 끌어 모을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만약 그럴수만 있다면 자연히 실천이 뒤 따를 것이고 한 톨의 실천이 야기하는, 작지만 달콤한 성공을 맛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