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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뉴질랜드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공통적으로 느꼈던 감정은 늘 푸른 들판 풍경이었을 것이다. 1970년대 초에 유행했던 남 진의 노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를 떠 올렸다. 전국의 산과 들이 초록의 카펫을 깔은 듯 정교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의 품속을 그리며 뉴질랜드에서 행복을 가꾸리라 다짐했던 기억을 되살린다.
어떤 교민은 뉴질랜드의 초록에 반해서 이민을 왔는데 몇 년 동안 초록을 관리하느라 진을 뺏더니 이제는 초록의 ‘초’ 소리만 들어도 뱃살이 뒤틀린다고 했다. 그 후 그 교민은 호주로 재 이민을 갔다.
다른 어떤 이는 쿠메우 지역에 정원이 잘 정비된 저택이 맘에 들어 이민 정착을 시도했다. 정원은 금잔디로 곱게 덥혀 있어 신흥 귀족 같은 여생을 보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막상 이사해서 살다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풀은 어찌도 빨리 잘 자라는지 이발은 못해도 제 때 잔디는 깎아 주어야 되는 일이 반복 되었다. 또한 나무도 잘 자라 수시로 트리밍(Trimming)을 해 주어야 되고 원하지도 않은 잡초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했다. 멋진 정원을 감상하며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자 이사 왔으나 오히려 정원의 노예가 되어 심난한 상태가 되었다. 어느 날 한국에서 방문한 아들이 이 집에서 오래 살다간 아버님 건강이 악화될 지경이라 걱정이 된다고 하여 집을 옮겼다고 한다.
또 다른 어떤 교민은 잔디밭 하나 만큼은 완벽하게 관리 해보겠노라고 다짐하고 매일 잔디밭에 매달렸다. 잡초를 하나하나 발라내기 시작했고 하루해가 모자라 저녁에도 전기 불을 켜 놓고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한쪽 면을 다하고 나면 다른 한쪽 면에서 잡초가 다시 출몰하고 다시 저쪽 면에서, 다시 저쪽…… 결국 자기 자신이 아파 들어 누었다는 얘기이다.
잡초는 인간 생활의 악(惡)인가? 잡초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똑 같이 조물주의 섭리대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주어진 대지에서 자기의 능력대로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것일 뿐이다. 오직 인간만이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서 잡초를 배척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농경 생활을 하면서 작물을 경작하기 시작했고 작물의 수확에 방해가 되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수 천 년 동안 잡초와의 싸움을 계속해 온 것이다. DDT나 BHC가 발명된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잡초는 일일이 뽑아내야 했으며 넓은 경작지를 관리해야 했던 농민들의 피어린 고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인간의 먹 거리가 되는 작물은 재배하기가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원하지도 않는 잡초는 억척같이 잘 자라고 뿌리도 깊게 뻗으며 잡초가 세력을 형성하면 작물은 죽어버리고 만다. 구 상 시인은 “옛 부터 일러 오기를 하늘이 녹(祿)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싹트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부르짖으면서 길섶이나 밭두렁이나 산비탈에 어느 누구의 신세도 안 빌고 자연으로 싹 터서 자연의 구실을 하다가 자연히 스러지는 우리들의 本命! 그대 시인이란 것들마저 함부로 잡초라 부르고 소외(疎外)하는가!”라고 읊었다.
잡초는 인간에 의해 구분된 식물 집단이며, 과거에 잡초였다가 나중에 숨은 가치를 인정받아 농작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쑥 밭에 자라난 삼(蔘)은 잡초로 취급당하고 삼밭에 자라난 쑥은 잡초로 역시 취급된다. 뉴질랜드에서 잡초로 취급되는 쑥, 머위, 들깨, 미나리 등도 한국에선 중요한 약초 식품이다. 바람을 타고 온 씨앗이 세상에 멀리 퍼져 창문틀이나 시멘트 틈 어디가 됐던 뿌리를 내리고 생존하는 민들레도 약초로 성분이 입증되면서 작물이 되어가고 있다. 어떤 이는 야심차게 민들레 농장을 개척했으나 그렇게 억척스러운 생명력을 자랑하던 민들레도 막상 작물로 가꾸려고 하다가 실패했다고 한다.
작물이 아닌 잡초이다 보니 이름도 없이 생존하기 마련이며 종류도 수도 없이 많다. 예로부터 그냥 불리어져 왔을 뿐이다. ‘바랭이, 피, 쇠비름, 명아주, 뚝새풀, 냉이, 민들레, 질경이, 갈대, 쑥, 애기수영, 올방개, 가래, 억새방동사니, 너도방동사니, 매자기, 올챙이고랭이, 망초, 토끼풀, 비름, 물달개비, 가막사리’ 등이다.
잡초는 뿌리를 깊이 내리기 때문에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영양 염류를 퍼 올리는 역할을 하며 땅을 섬유화시켜서 표토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에 잡초가 아주 없어도 안 된다. 기후가 건조한 미국 텍사스의 한 과수원에서는 잡초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나머지 주변의 잡초를 아예 씨를 말려버렸더니 극심한 토양침식과 모래 바람으로 농사를 망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는 과수 사이에 잡초를 키워둔다고 한다. 방목을 하는 목초지에선 잡초가 소의 배설물을 분해해 토양이 더 기름지도록 도와주며 질긴 생명력 덕분에 어떻게든 자라서 토양의 건조를 지연시켜 황폐화를 막아준다.
작년 초부터 나타나 인류를 괴롭혔던 코로나 19가 몇 달이 지나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위기를 조성하더니 2년이 되어가는 지금 까지도 물러나지를 않고 있다. 각 나라에서는 어차피 생존을 위협 받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와 함께 가자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어차피 코로나 박멸이 쉽지 않으니 어느 정도 코로나 사태를 인정하고 인간들의 생활도 정상을 회복하자는 방편이다. 잡초도 어차피 박멸은 되지도 않을뿐더러 같은 생명체로서 인간에게 유용한 면도 있으니 적절히 구획을 지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