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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UCOL Whanganui에서 디자인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유쾌한 도깨비’ 프로젝트를 연말 전시회에 출품하게 되었다.
‘유쾌한 도깨비’ 프로젝트는 우리 가족의 공동작품이다. 화가인 언니와 수필가인 나와 디자이너인 큰애의 손길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오래 전에 언니가 그려 놓은 도깨비 그림들을 보고 반해버린 나는 그림이야기책을 내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는 스토리 쓰는 작업을 시작했다. 스토리 쓰는 작업을 하던 중 심장 박동기를 다는 수술을 해야 했고, 여러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쳐서 스토리는 완성이 되었다.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서, 작품을 제대로 살리면서 편집을 하느라 컴퓨터 작업할 일이 많았지만, 큰애 역시 나처럼 도깨비 그림에 흠뻑 빠져서 재미있게 작업을 한 거 같다.
어느 날, 큰 애는 나에게 재미있는 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책으로 석사 논문을 쓰고 싶은데, 언니와 나의 허락을 요청했다. 우리야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이던가?
AR (증강 현실)앱을 접목해서 살아 움직이는 도깨비들을 체험하고, VR(가상현실) 속으로 들어 가서 도깨비들의 세계에 초대도 받을 수 있는 책을 만든다니, 언니와 나는 그저 횡재를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번 프로젝트 덕분에 AR과 VR이란 것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았지만, AR과 VR을 접목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던 일이다. 아무튼 큰애가 만드는 ‘유쾌한 도깨비’ 프로젝트는 제목 그대로 유쾌하고 재미있다.
유쾌한 도깨비 책은 총 6권으로 제작 되었다. 수제품으로 그림 작품에 맞는 수채화 종이를 사용하였으며 프린트 역시 무광으로 하면서 그림 작품 그대로의 색감과 질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다 한국의 고서적을 만드는 방법을 도용해 실을 꿰어 묶어서 만들었으니, 그 정성은 가히 말로 다 표현하기 힘이 든다.
전통과 현대의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는 ‘유쾌한 도깨비’ 책과 더불어 엽서도 함께 제작했다. 한 세트에 4장씩 총 3세트를 제작했는데, AR앱을 이용해 더욱 재미있고 신기한 도깨비들을 만나볼 수 있다.
큰애는 AR앱 일러스트를 이용한 ‘유쾌한 도깨비’ 단편 시리즈, 엽서를 발매중이다. (https://delightfuldokkaebi.com/)
지금은 AR 일러스트가 많지 않지만 추후에는 일러스트 모두에 AR이 도입될 예정이며, 2022년 5월에는 보다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오늘 나는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오늘 입고 전시장에 갈 원피스를 수선했으며, 내일 가르칠 꽃꽂이를 위해 나뭇가지와 꽃들을 잘라 왔다. 수반과 꽃병에 있는 꽃들을 새로운 꽃으로 바꾸어 놓고, 전시회에 참여하느라 왕가누이에 다녀왔다.
코비드 팬데믹 때문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이 되어 조촐한 전시회가 되었지만, 만드는 과정과 AR 앱으로 살아 움직이는 도깨비의 움직임을 찍은 비디오까지 곁들인 ‘유쾌한 도깨비’ 프로젝트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50명의 인원밖에 못 모이는 조촐한 전시회 오픈식이었지만, 앱으로 직접 AR 체험을 하는 사람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흐뭇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작품전시를 하는 사람들마다 초대 인원이 두 명으로 한정이 되어, 언니의 전시품을 보고 싶어 하는 막내를 위해 남편이 전시회 참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디자인 공부를 한 막내는 언니의 전시품들 앞에서 손님들에게 언니를 도와 작품을 설명하며 앱 보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훌륭한 안내원의 역할을 해냈다. 남편한테는 미안했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교수님들과 아티스트들은 이번 작품이 페밀리 작품이라는 데 크게 박수를 쳐주었다. 관람객들 중에 한 여인은 책을 사고 싶다고 하면서 책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지금 한글을 배우고 있다는 그녀는 한글로 된 ‘유쾌한 도깨비’에 홀딱 반해버린 것이다.
이렇듯 전시회 때 오직 한글로만 되어 있는 책을 당당하게 전시할 수 있었으며, 모르는 언어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흥미로워한 것은 한국의 기상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높아진 까닭일 것이다.
이 책을 만들면서 영어판을 만들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한글판인 지금 그대로를 준수하기로 했다. 아름다운 우리글에 대한 자부심이며,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다.
큰애가 언니와 나의 꿈을 이뤄주었다. 우리 자매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더 환상적인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 놓은 것이다.
큰애의 계획을 들으니, 앞으로 도깨비들이 여러모로 많은 활약을 할 것 같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작업도 할 예정이란다. 지금은 우리가 도깨비를 초대한 거라면 앞으로는 도깨비 세상에 우리가 초대 되어 들어가 함께 게임을 즐기면서 놀 수도 있다는 것이다.
UCOL Whanganui 학장이 큰애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VR 종사자들도 소개해주겠다고 하였다. 미래의 첨단을 걷는 디자이너로서 옛것도 소중하게 여기는 큰애가 고마웠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가는 세월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내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그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러 본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크로스오버는 꼭 필요한 거 같다. 젊은이들과 노인들과 서로 배려하고 도와가는 길이 우리가 살 길이다. 젊음과 지혜가 만나 ‘윈 앤 윈’의 삶을 살 수 있는 미래가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