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질랜드 중앙은행의 걱정은 물가보다 환율에 있다. 뉴질랜드 통화 가치의 강세가 요즘처럼 계속된다면 수출 주도의 경제 회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중앙은행은 뉴질랜드 달러화의 고공 행진이 이어질 경우 기준금리를 내릴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며 주택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뉴질랜드 달러화 내년에 90센트까지 오를 수도
글로벌 유동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통화 중 하나인 뉴질랜드 달러화는 지난해 11월 이후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과 고수익을 쫓는 캐리트레이드의 주요 대상이 되면서 강세를 보였다.
한국 원화에 대해서도 900원 선을 넘어서면서 한국인 유학생은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고 관광업도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키위 달러화의 강세가 내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라는 점이다.
ANZ 은행의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증가와 낮은 금리로 인해 내년에 미 달러 환율이 90센트대까지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뉴질랜드 달러화 환율이 90센트대로 오를 경우 지난 1985년 외환 거래 자유화 조치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오르게 된다.
지금까지 대미환율이 최고치를 기록했던 때는 지난해 8월로, 당시 88센트대를 넘었다.
ANZ 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캐머런 배그리(Cameron Bagrie)는 뉴질랜드 경제 1분기 평가 보고서에서 "우리의 공통된 견해는 뉴질랜드 달러의 미 달러 환율이 90센트까지 간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그리는 “이 전망은 미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어려움에 기인한다”며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와 낮은 금리가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뉴질랜드의 기준 금리가 2.5%로 비교적 높은 편인데 반해 미연방준비은행은 거의 0%로 기준금리를 묶어둔 바람에 뉴질랜드 달러화 강세를 부추긴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 “고환율 계속되면 기준금리 내릴 것”
중앙은행도 뉴질랜드 달러가 고평가돼 있고 각국의 경쟁적인 통화정책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알란 볼라드(Alan Bollard) 총재는 “뉴질랜드 달러 강세는 국내 요인보다는 주로 해외 압력에 따른 결과이다”면서 “따라서 우리가 이에 대해 내릴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대미환율이 최고 77.23센트를 기록했던 2007년 7월과 74.28센트를 보였던 2008년 2월에 중앙은행이 환율시장에 개입했으나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볼라드 총재는 지난달 현행 2.5%의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발언의 강도를 한층 높여 경제적 펀더멘탈의 개선 없이 뉴질랜드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경우 금리를 인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의 상품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 달러화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뉴질랜드의 수출 상품가격은 지난 1년 동안 뉴질랜드 달러 기준으로 18% 하락했다.
볼라드 총재의 이 같은 언급은 뉴질랜드 통화 가치가 수출 주도의 경제성장에 방해를 주는 수준이라는 우려와 함께 고환율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면 기준금리를 더욱 내릴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안정된 물가지수와 높은 실업률도 금리인하 전망 높여
비교적 안정된 물가지수와 높은 실업률도 저금리의 지속에 무게를 싣고 있다.
소비자 물가지수는 3월말 기준 연간 1.6%로 시장의 예상치인 1.7%보다 낮았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또한 빠르게 떨어지며 금리를 인하할 여력을 주고 있다.
여기에다 1사분기 실업률이 6.3%의 예상치보다 높은 6.7%로 나타나 실업률 고공 행진이 장기화될 경우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분석했다.
환율을 내리기 위한 볼라드 총재의 기준금리 인하 언급이 엄포에 그칠지 실행으로 이어질 지에 대해 시장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볼라드 총재가 올 9월 총재직을 사퇴하기 전에 기준금리를 변경할 확률을 40%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웨스트팩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도미니크 스테펜스(Dominick Stephens)는 고환율을 막기 위한 금리 인하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면서도 노르웨이의 예를 들며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은 집값이 상승하고 민간 부문 부채가 가용소득의 20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고환율에 대한 처방으로 금리를 두 차례 인하했다.
BNZ의 이코노미스트 크레그 에버트(Craig Ebert)는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자국 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힘쓸 때 뉴질랜드와 같은 작은 경제의 중앙은행이 너무 과감한 방법을 취하는 건 물살을 거슬러 노를 젓는 것과 같다”며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움직임을 비판했다.
최근 키위 달러의 하락도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압력을 덜어 주고 있다.
5월 들어 뉴질랜드 달러는 1월 이후 처음으로 미 달러당 80센트 아래로 하락했다.
유럽의 정치적 리스크와 미국의 고용 부진, 글로벌 유동성의 관망세 등이 하락의 빌미를 제공했다.
집값 상승 예상하는 부동산 에이전트들 ‘사상 최고’
현행 기준금리 2.5%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중앙은행은 지난해 3월 크라이스트처치 지진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 이후 지금까지 동결해 왔다.
시중 변동금리는 47년 이래 최저 수준이고 집값은 오클랜드를 중심으로 상승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내려갈 경우 주택시장의 활황세에 불을 지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웨스트팩의 스테펜스는 최근 오클랜드 집값 상승의 두 가지 요인으로 주택 건설 부족과 함께 낮은 이자율을 꼽았다.
BNZ-REINZ(뉴질랜드부동산협회)의 5월 주택시장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부동산 에이전트들이 하락을 예상하는 에이전트보다 64%나 많아 사상 최고로 조사됐다.
4월에는 이 조사에서 상승을 예상한 에이전트가 25% 더 많았고 지난해 5월에는 하락을 예상한 에이전트들이 7% 더 많았다.
최근 주택시장은 신규 주택 구입자와 부유한 바이어들의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현금이 넘쳐 나는 중국인 바이어들은 오클랜드의 미션베이와 같이 인기있는 지역에서 원하는 주택이라면 감정가보다 휠씬 높은 금액으로도 주택을 사들이고 있다는 것.
REINZ의 월간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주택 매매 건수는 5,676건으로 3월의 7,330건에 비해 22.6% 줄었으나 지난해 4월의 4,987건에 비해서는 13.8% 늘었다.
중간주택가격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3월의 37만달러에서 5,000달러 떨어진 36만5,000달러로 조사됐다.
볼라드 총재는 “사람들이 실거주 목적의 주택 구입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2002~ 2007년 사이 불었던 부동산 붐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