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2009년 이후 11년 동안 경기후퇴가 없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긴 기간이다. 불황을 모르고 달려온 뉴질랜드 ‘록스타’ 경제가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 하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뒤 전 세계로 확산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현재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8만3,652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858명이 목숨을 잃었다.
뉴질랜드에서도 지난달 28일 최근 이란을 방문한 60대가 처음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감염증이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며, 세계 경제와 공급망 훼손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애널리틱스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5%로 0.3%포인트 내렸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도 2.5%였던 전망치를 2.3%로 하향했다.
중국을 제1 교역국으로 하고 있는 뉴질랜드도 성장전망 하향 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자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지난달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를 고려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2.8%에서 2.0-2.5%로 낮췄다고 밝혔다.
아던 총리는 “상반기에 충격이 집중될 것” 이라면서 “하반기에는 상황이 정상화할 것” 이라고 예상했다.
그랜트 로버트슨(Grant Robertson) 재무장관은 지난달 국회 재정지출위원회에서 “아직 피해 규모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이르지만 뉴질랜드 경제가 2억5,000만 달러 이상의 피해를 보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밝혔다.
로버트슨 장관은 모든 경제적 피해는 올 1분기 안에 나타나고 그 이후는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며, 중국 관광객 감소와 대중국 수출 감소, 유학 산업 위축 등을 주요 악재로 꼽았다.
그는 또 “코로나19 감염증이 뉴질랜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관계 부처 특별 대책반을 세웠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높아져
중앙은행은 지난달 12일 코로나19의 경제 여파 우려에도 기준금리를 현행 1%로 동결하면서 코로나19의 영향이 상반기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중앙은행은 다만 “코로나19의 충격이 확대되고 지속될 수도 있다”며 “보다 많은 정보가 쌓여 필요하다면 통화정책의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은 또 “통화 및 재정 정책에 힘입어 하반기에는 경제 성장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올 초 경제 성장세는 완만한 모멘텀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ASB는 코로나19 사태가 뉴질랜드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0.6%포인트로 중앙은행의 0.3%포인트보다 높게 분석했다.
BNZ은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을 0.8%로 전망하며 코로나19와 가뭄으로 인한 여파가 더해지면서 경기후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ANZ은 경제성장률을 올 1사분기 0.3%와 2사분기 0.5%로 예상하면서, 이는 최상의 시나리오고 하방의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ANZ의 샤론 졸너(Sharon Zollner) 이코노미스트는“코로나19의 영향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그러나 그 영향이 짧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웨스트팩(Westpac)은 현재 뉴질랜드 경제는 가뭄과 코로나19 등 이중고로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8월 기준금리 인하 전망을 유지하지만, 중앙은행이 이달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웨스트팩은 1분기 경제는 0% 성장으로 둔화할 것이고 2020년 전체 성장률은 2.2%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 웨스트팩은 뉴질랜드 경제가 1분기에 0.8% 성장, 올해 전체로는 2.7%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제 컨설팅회사 인포메트릭스(Informetrics)의 가레스 키어넌(Gareth Kiernan)은 “코로나19로 뉴질랜드 경제가 1사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제에 대한 충격은 2사분기에도 미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관광업과 유학업 직격탄
코로나19 사태로 뉴질랜드 경제는 이미 관광업과 유학업, 대중국 수출업 등에서 충격을 받고 있다.
뉴질랜드는 지난달 2일 중국에서 오는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발표한 뒤 48시간마다 이 조치의 필요성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은 매년 40만명 이상이고, 그들이 뉴질랜드에서 쓰는 돈은 15억달러가 넘는다.
뉴질랜드 관광청(TNZ)의 스티븐 잉글랜드-홀(Stephen England-Hall) 회장은 향후 6개월 동안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인한 손실을 5억달러로 추정했다.
그는 “사람들이 여행을 자제하면서 많은 예약과 회의 등이 취소되고 있다”고 전했다.
뉴질랜드에서 20개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밀레니엄 앤드 콥소니 호텔 뉴질랜드(Millennium & Copthorne Hotels NZ)는 지난달 코로나19로 인한 예약 취소로 200-300만달러의 매출 손실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17일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관광업에 1,100만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많은 중국인 유학생들이 뉴질랜드 입국을 못하면서 유학업도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뉴질랜드 종합대학들 협회인 유니버서티 뉴질랜드(Universities NZ)는 올해 대학에 등록한 중국인 유학생 1만2,700명 가운데 6,500명 정도가 중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종합대학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1만1,000여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뉴질랜드로 입국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니버서티 뉴질랜드는 대학들이 중국인 유학생 등록 감소로 1억7,000만달러의 손실을 볼 수 있다며 중국인 유학생들을 여행 금지 조치에서 제외해 줄 것을 정부측에 요청했다.
중국 관련 산업 및 업체에 충격 불가피
코로나19 사태가 당초 예상과 달리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중국과 관련된 다른 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뉴질랜드 소고기와 양고기 가격은 지난해 최고가에 비해 절반 가까이 하락했고 대중국 주요 수출품인 전지분유 가격도 떨어졌다.
중국에 수출하는 목재 선적이 막히면서 1,000여명의 임업 종사자들이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 공급선을 두고 있는 업체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판매제품의 약 60%를 중국에서 공급받고 있는 웨어하우스 그룹(Warehouse Group)은 일부 제품이 1-3주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교역기업(NZTE)에 따르면 조사한 기업의 12%가 단추와 단열재 등 중국으로부터의 공급받는 제품에 우려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5억달러 규모의 상업용 건축 분야도 중국에서 수입하는 많은 건축자재를 사용하고 있어 코로나19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클랜드 소재 측량회사 라이더 레벳 벅날(Rider Levett Bucknall)의 크리스 하인스(Chris Haines) 이사는 “상업용 건축업계에 분명한 리스크가 있다”며 “중국 공장들의 가동 중지는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많은 건축자재의 공급에 차질을 주면서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연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뉴질랜드 업체들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사업 출장을 취소하거나 재택근무를 도입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뉴질랜드 업체들 모임인 NZBRIC가 170개 업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87%는 이번 분기에 최소 10%의 이익 감소를 전망한 가운데 31%는 40%의 대폭적인 이익 감소를 예상했다.
또 60%는 코로나19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6개월 정도 미칠 것으로 내다봤고 9%는 9개월 이상 지속될 것으로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