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전염병의 싸움, 최후의 승자는

인간과 전염병의 싸움, 최후의 승자는

0 개 7,471 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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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라노 두오모 광장을 지키는 무장 군인들

 

‘코로나 19’바이러스로 뉴질랜드는 물론 지구촌 전체가 그야말로 

초대형 재난을 맞아 시련을 겪고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언론에는 ‘코로나 19’와 관련된 정보와 뉴스들로 넘쳐나고 TV를 통해서는 사망자가 폭증하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상들이 여과 없이 방영되고 있다.  

 

작디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필자 역시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 상황만 지켜보는데, 마음 한 켠에서는 기자로서 “이럴 때 독자들에게 뭐라도 알려야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무감도 고개를 든다.    

 

하지만 의학적 전문 지식도 없고 또한 매일 ‘코로나 19’와 관련된 통계와 상황이 급변하는 와중에 한참이나 뒤처진 소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런 저런 이유로 이번 호에서는 뉴스는 아니지만, 그동안 인류가 겪어온 각종 전염병들과의 싸움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 사건을 정리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 두 전염병이 어떻게 인류를 위협했으며 또한 인간이 이를 극복한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이번에도 인류가 다시 한번 역병과의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는 희망을 독자들과 함께 품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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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각 지역의 흑사병 유입 시기를 보여주는 지도 

 

[전염병의 대명사 ‘흑사병’]  


14세기부터 지구촌을 초토화시킨 흑사병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던 ‘전염병’ 하면 누구든지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흑사병(페스트, Peste)’이다.  

 

중세 시대인 1347년에 일단의 상선들이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의 메시나 항구에 도착했는데, 당시 선원들은 이상한 전염병에 걸려 있었으며 당도한 지 얼마 안 돼 모두 사망했다. 

 

이것이 유럽에 흑사병이 처음 전파된 계기라고 전해지는데, 1347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당시 지중해 무역의 중심 도시였던 북부 이탈리아의 제노바와 베니스까지 흑사병이 퍼졌다. 

 

이탈리아 전국으로 확산된 흑사병은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가면서 1348년 프랑스, 에스파냐, 포르투갈, 잉글랜드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고 1349년과 그 이듬해에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까지 확산됐다. 

 

1349년 노르웨이에 상륙한 흑사병은 곧 북해의 중심 항구였던 베르겐으로 번졌고 1351년에는 러시아에도 출현한 뒤 결국 유럽 전역으로 퍼졌으며, 이때의 대유행으로 유럽 인구의 30~60%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 견해로는 흑사병 유행 이전에 4억500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세계 인구가 14세기를 거치면서 3억5000만~3억7500만명 정도로 1억명가량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런던 대흑사병(1665~1666년), 베니스 대흑사병(1679년) 등 17세기까지 유럽에서는 100여 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흑사병 유행이 이어졌으며 18세기와 19세기에도 산발적인 유행이 멈춰지지 않았다.  

 

유럽 뿐만 아니라 14세기에 몽골이 지배하던 중국에서도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당시 중국 인구의 30%가 사망했다는 설도 있는데,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하기 전인 1330년대에 중국 허베이성에서 흑사병이 기승을 부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인류를 여러 차례 위협했던 흑사병 


한편 14세기보다 훨씬 전인 571년 동로마 제국에서 시작돼 200년 가까이 창궐했던 전염병 역시 최근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같은 균에 의한 흑사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당시 이집트 곡물 수송선이 동로마 지역으로 전염병을 날랐던 것으로 보는데, 한창 기세가 등등할 때는 동로마 제국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루에 5000명씩이나 사망했다. 

 

당시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역시 전염됐다가 간신히 살아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학자들은 이 시기를 ‘1차 대 역병’, 일명 ‘유스티니아누스 대 역병’으로 그리고 14세기 것은 ‘2차 대 역병(Second Plague Pandemic)’ 으로 지칭한다. 

 

한편 당시 병에 희생당한 게르만인 유골을 분석한 결과 1차 대 역병의 전파 경로는 이집트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통한 민족 이동도 그 원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4세기 시칠리아에 선단이 당도하던 때보다 이른 1095년부터 시작돼 1291년까지 여러 차례 이어졌던 십자군의 성지 원정을 통해 유럽으로 퍼지기 시작했다는 학설도 있다. 

 

이처럼 흑사병은 그 전파 경로와 창궐 시기, 그리고 사망자 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 과정에서 인류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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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트균을 분리한 알렉산더 예르생

쥐와 벼룩, 때로는 사람이 옮기는 흑사병 

 

흑사병은 바이러스가 아닌 박테리아의 일종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가 원인균으로 이에 감염된 쥐의 혈액을 먹은 벼룩이 사람의 피를 빨면서 병도 함께 옮긴다. 

 

‘흑사병’을 지칭하는 ‘페스트(Pest)’는 전염병을 뜻하는 라틴어인 ‘페스티스(Pestis)’ 에서 왔으며 영어로는 ‘플레이그(plague)’ 라고 하는데, 영어나 라틴어 모두 처음에는 전염병을 의미하던 단어들이 흑사병의 파괴력이 워낙 거대해 이를 지칭하기도 하는 고유명사도 됐다. 

 

이처럼 전염병의 대명사가 된 흑사병은 발병 자체는 페스트균에 의한 것이지만 주요한 2개 유형인 ‘가래톳 페스트(일명 선페스트 혹은 림프절 페스트)’와 ‘폐렴형 페스트’는 그 감염 경로가 다르다. 

 

림프절 페스트는 균을 가진 쥐(설치류)와 쥐에 기생한 벼룩에게 물려 감염되는 반면 폐렴성 흑사병은 감염 환자의 기침이나 체액 혹은 감염 동물의 분뇨나 가래 등이 공기 중에 퍼져 감염되는 특성이 있다.

 

이런 보균동물들이 사는 지방에는 풍토병으로 존재하는데, 한편 남아메리카 중부와 북부, 아프리카 중부, 이란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2000년 이후에도 10년 동안 유행한 기록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0~2015년에 전 세계에서 감염사례 3248건이 보고되고 584명이 사망했는데, 작년 11월에도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소수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전해진 바 있다. 

 

한편 페스트균은 당시 중국에서 발생한 페스트를 연구하던 파스퇴르 연구소 출신의 프랑스 세균학자인 알렉산더 예르생(Alexandre Yersin)이 1894년에 홍콩에서 발견해 분리했다. 

 

페스트에 감염되면 일반적 증세는 갑자기 오한과 40℃ 내외 고열, 그리고 현기증과 구토 증상이 나타나며 의식이 혼탁해지는데 균 잠복기는 2~5일이다. 

 

순환기계가 강하게 침해당하고 증상이 점차 진행되면서 혈소 침전으로 검게 변색된 피부에 괴저가 발생하는데, 각종 전염병 중 가장 짧은 시간에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생제 투여로 치료하며 병 자체는 단순하지만 초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적이므로 정확한 조기 진단이 대단히 중요한데, 지금은 페스트 자체는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일단 발생하면 방심할 수 없는 위험한 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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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대전 당시 환자들을 이송하는 의무대원들 


[현대 인류를 공포에 떨게 만든 ‘스페인 독감’] 

 

20세기 처음 나타난 최초의 팬데믹 질병 


페스트가 지금은 그리 흔한 전염병이 아니다보니 역사 책에서나 등장하는 유물처럼 느껴지는데 반해 ‘스페인 독감’은, 매년 인플루엔자가 유행할 무렵이나 이번처럼 신종 전염병이라도 등장하면 단골로 언급되는 역사적 전염병이다. 

 

‘스패니시 인플루엔자(Spanish influenza)’ 라는 이름처럼 흔히 이 역병이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들 있지만 최초 발생지는 미국 시카고 인근이다. 

 

지난 20세기를 통털어 가장 널리 퍼지고 또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전염병인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 대전(1914.7~1918.11) 종반인 1918년부터 종전 후인 1919년까지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에 의해 유행했던 독감을 말한다. 

 

이는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해진 조류 독감의 한 종류로 1918년에 시카고 인근의 농장에서 오리와 같은 조류가 인간의 몸에 바이러스를 옮기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바이러스는 출전을 위해 5만8000명이나 되는 군인들이 훈련 대기 중이던 캔자스주 퍽스턴 기지에서 1918년 3월 4일에 첫 환자가 발생했으며, 바이러스 변종이 나타나면서 3주 만에 1100명이 감염되고 38명이나 사망하는 위력을 떨쳤다. 

 

당시 한 장교가 이전 독감들과는 크게 다르다고 워싱턴에 보고했지만 묵살됐는데, 이후 군인들은 동부 항구로 이동해 같은 3월에 수송선 25척으로 유럽의 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배 안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독감은 전선까지 급속히 퍼지면서 최초 발생 40일 만에 엄청난 수의 군인들을 부상이 아닌 독감으로 병원에 실려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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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와 교회, 극장의 폐쇄 소식을 전하는 당시의 신문 

 

마스크와 사회적 격리의 중요성 간파한 의사들 

 

당시 야전병원에서 일했던 한 수녀는, 부상자와 함께 엄청난 환자가 몰려들었으며 독감 환자들은 얼굴과 귀, 입술이 파랗게 변하며 피를 토하다가 들어온 지 단 며칠 만에 죽어나갔다고 기록했다.  

 

영국군 30만명이 감염됐으며 이 중 10%가 사망할 정도였는데, 당시 증상이 없거나 약한 상태에서 본토로 휴가를 갔던 군인들이 영국 전역에 바이러스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해 6월에 맨체스터에서 첫 환자가 발생하는 등 독감 유행이 시작된 지 단 100일 만에 미국과 서유럽에서 1억3000만명이 감염되고 20만명이 사망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그런 가운데 당시에도 런던의 한 의사는, 의료진들에게 마스크를 반드시 쓰고 사용한 후에는 버리게 하는 등 당시에도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맨체스터의 공공보건을 총괄하던 의사인 제임스 니븐 역시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학교와 주일학교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시민들을 계몽하고자 수 만장의 전단을 뿌리고 공공장소에는 예방을 위한 수 백장의 벽보를 붙였다. 

 

오늘날 같으면 당연한 조치들이었지만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당시에 이 같은 파격적인 조치는 관료들을 비롯한 사회로부터 상당한 저항을 초래했다. 

 

그러나 니븐은 이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기록으로 남기면서도 이를 밀어붙였으며, 의사이면서도 동시에 수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환자 발생지역의 통계 등을 활용해 효율적인 방역 작업으로 수 많은 사람들을 살려낸 것으로 역사에 큰 이름을 남겼다.

 

미국 독감이 스페인 독감으로 바뀐 사연 


한편 여름 내내 영국과 프랑스, 독일로 번지던 독감은 드디어 스페인까지 퍼졌는데 초기 감염자들 중 한 명은 국왕인 알폰소 13세였다.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은 신문들이 자유롭게 새로운 유형의 독감에 대해서 보도했으며 마드리드에 있던 특파원들은 이번 독감에 ‘스페인 독감’ 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발원지를 따지면 미국 독감이라고 해야할 역사적인 독감이 엉뚱한 이름을 갖게 됐는데, 이 상황은 이번 ‘코로나 19’에 대해 중국과 미국이 이름이나 발생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인 일을 상기시킨다. 

 

당시 한창 전쟁 중이던 영국이나 프랑스 등은 군대와 국민 사기를 이유로 새로운 독감에 대한 논의조차 금기시하고 언론 검열을 당연시하던 상황이었다. 

 

맹위를 떨치던 독감은 그해 8월부터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해 독감의 공포에서 벗어난 군인들이 전장에 다시 투입되면서 전쟁은 연합국 측이 유리한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영국 맨체스터에서도 한여름인 8월 초부터 독감 확산이 누그러지는 등 유럽 각국에서도 점차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했는데, 최초 발병 180일째인 그해 9월까지 미국과 유럽에서는 1억5000만명 감염에 사망자가 25만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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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기지에서 일과를 마친 미군들이 가글을 하는 모습 

 

다시 등장한 더욱 지독한 변종 바이러스 


그러나 진정될 듯 보였던 사태는 이후 더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출발은 미국 내 군기지였으며 전보다 더욱 치명적이고 감염력도 훨씬 강한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한 가운데 그해 9월 29일에 또다시 대규모 병력 수송작전이 재개됐다.  

 

그중 9000명의 병력을 태운 5만4000톤급 여객선을 개조한 수송선 리바이어던호를 지휘했던 한 미군 장교가 남긴 기록을 보면 당시 부두에서 승선을 기다리던 군인들이 픽픽 쓰러지기도 했다. 

 

결국 출항 첫날부터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정원보다 50%가량을 더 태운 당시 수송선들 내부는 바이러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활동 공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결국 리바이어던호에서만 백명 가까운 군인들이 프랑스 땅도 밟지 못한 채 단 8일 간의 짧은 항해 중 사망했으며 2000명은 중태에 빠졌다. 

 

리바이어던호의 사례 역시 이번에 일본에서 대량으로 코로나 19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서 한마디로 ‘바이러스 배양실’이 돼버렸던 크루즈선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생각나게 한다.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하면서 미국에서 처음 역병이 발생한 이후 210일가량이 지난 그해 10월까지 사망자만도 140만명으로 급증하면서 독감은 드디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편 당시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았던 윌리엄 웰츠 박사는 원인을 밝히고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폐렴을 일으키는 파이퍼균을 의심했지만 그보다 1000배나 작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변형된 더욱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발병 240일이 된 1918년 11월까지 전 세계에서 최대 6000만명을 사망하게 만들면서 호주를 제외한 전 대륙으로 퍼졌다.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에서도 총독부 통계를 보면, 조선인 1,678만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만명(44%)이 감염돼 13만9000명 이상(전체 감염자의 1.87%, 전체인구의 0.83%)이 ‘무오년 독감’이라고 불린 스페인 독감에 희생됐으며 특히 홍성과 서산 등 충청남도에서 피해가 컸다.  

 

또한 백범일지(돌베게 간) 상권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상해에 온 후 서반아(스페인) 감기로 20일 동안 치료한 것뿐이다’라는 귀절이 있어 김구 선생 역시 같은 독감으로 고생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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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전파했던 나아아가라호  

 

검역의 중요성 일깨워 준 미국령 사모아 총독 


1918년 11월 11일 드디어 전쟁이 끝났는데, 그러나 바이러스는 들뜬 기분으로 길거리나 광장으로 일제히 몰려든 사람들이 포옹과 키스를 하며 전쟁이 끝났음을 축하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무섭게 확산됐다. 

 

뉴질랜드 역시 종전 직전인 1918년 10월 12일에 당시 태평양을 오가던 정기 여객선인 나이아가라호가 오클랜드에 입항하면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유입됐다. 

 

이로 인해 그해 12월까지 단 2개월 만에 무려 9000여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는데, 특히 마오리 2500여명이 사망하면서 백인들보다 더 높은 비율로 희생됐다.   

 

결국 스페인 독감은 첫 환자 발병 500일째인 1919년 7월까지 전 세계에서 추정 사망자 숫자를 최소 5000만명에서 최대 1억명까지 치솟게 만든 뒤 차츰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는 이미 전염될 사람은 모두 전염됐던 상태에서 면역성을 갖고 살아남았기 때문인데, 역설적으로 바이러스가 가장 강력한 적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면서 세력을 잃은 셈이 됐다. 

 

스페인 독감에 의한 사망자 숫자는 책마다 제각각 다른데, 이는 지금처럼 국제적인 협력이 잘 이뤄지던 시대도 아니거니와 전선에서 사망한 군인들이 미처 집계조차 되지 못했거나 폐렴 등 합병증에 의한 사망 등을 어느 정도 감안하는가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에서도 중국 우한과 같은 곳에서는 미처 확진도 받기 전에 사망한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라는 추정도 지난 100년 전 스페인 독감 당시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한편 당시 사례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발견되는데, 남태평양의 미국령 사모아에서는 사망자가 없었으며 이는 당시 총독인 존 마틴 포이어가 라디오로 전 세계의 사망자 빈발 소식을 듣고 곧바로 해외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시켰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당시 영국 정부의 지시 하에 서사모아에 주둔하던 뉴질랜드군의 로버트 로간 군정장관은 1918년 11월, 오클랜드에서 출발한 탈룬호의 탑승객들을 제대로 된 검역 절차 없이 상륙시켰다. 

 

그 결과 당시 사모아에서는 이들이 상륙한 지 단 6주 만에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8000명 이상이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는 참극이 초래되면서 지금도 사모아인들에게 악몽처럼 여겨지는 흑역사를 남겼다. 

 

뉴질랜드 정부는 사건 발생 100주년을 맞이한 지난 2018년에 사모아 간호사들의 훈련 센터 건립에 200만달러를 지원하고, 당시 희생자들의 묘지를 사모아 정부와 함께 정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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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뉴질랜드의 치료소 모습 

이와 같은 검역의 중요성은 앞서 언급한 흑사병에서도 볼 수 있는데, 14세기 당시에 흑사병이 대규모로 퍼졌던 베니스에서는 자기네 배를 포함해 동방에서 오는 선박들은 무조건 앞바다의 석호 안에서 40일간 격리를 시켰다. 

 

이로 인해 현재도 공항이나 항만에서 검역을 지칭하는 단어인 ‘quarantine’은 이탈리아로 40을 뜻하는 ‘quaranta’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당시에도 일정 기간 동안 격리해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전염병 확산 방지에 기여한다는 것을 인식했음을 잘 보여준다.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에서 보듯 바이러스나 병원균과의 싸움은 인류가 지구상에서 존재해오는 동안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는 영원한 투쟁이자 서로 간의 끈질긴 생존 싸움이다. 

 

이번 사태 역시 바이러스가 새로운 무기를 들고 인간에게 도전장을 던진 셈인데, 우리 모두가 숭고한 인류애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빛나는 지혜로 서로를 보듬고 지켜나가 다시 한번 승리하는 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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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계에 찬 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더보기

일자리 없어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주 근로자들

댓글 0 | 조회 6,773 | 2024.08.14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을 품고 뉴질랜드… 더보기

장난감 만들던 형제 “NZ 최고 부자로 등장”

댓글 0 | 조회 5,221 | 2024.08.14
20년이나 넘도록 ‘뉴질랜드 최고 부… 더보기

뉴질랜드에서 폭력이 증가하는 배경

댓글 0 | 조회 6,986 | 2024.07.24
뉴질랜드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램 레… 더보기

호주로 향하는 수많은 키위들, 도대체 그 이유는?

댓글 0 | 조회 7,136 | 2024.07.23
지난주 통계국은 2023년 한 해 동… 더보기

어렵게 마련한 첫 집인데 … 매입가보다 떨어진 집값

댓글 0 | 조회 9,377 | 2024.07.10
큰 맘 먹고 첫 주택을 장만한 많은 … 더보기

온라인 도박으로 $16,000 날린 11살 어린이

댓글 0 | 조회 4,597 | 2024.07.09
인터넷으로 온 세상이 연결되고 스마트… 더보기

예의바른 전화가 이틀 연속 내게… 왜?

댓글 0 | 조회 3,766 | 2024.06.26
최근 뉴질랜드 주재 한국대사관은 웹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