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트림세’ 부과에 뿔난 농민들

가축 ‘트림세’ 부과에 뿔난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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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전체 인구보다 많은 약 2,600만마리의 양과 1,000만마리의 소를 키우는 축산 선진국이다. 그런데 정부가 오는 2025년부터 가축의 트림 등 농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비용을 부과하기로 발표해 농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세계 최초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소위 이 ‘트림세’는 비단 농민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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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축의 트림에도 세금을 매긴다?


정부가 지난달 11일 발표한 가축 ‘트림세’는 소나 양 등 가축 사육에서 발생하는 메탄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방귀세, 분뇨세 등으로도 불린다.


뉴질랜드는 세계 최대 낙농 수출국으로, 농축산업이 국가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가 전체 배출량의 절반 수준이나 된다. 


농축산업에서는 주로 메탄과 아산화질소를 배출한다.


이에 정부는 정부와 농축산업 단체 등이 농축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공동 구성한 ‘헤 와카 에카 노아(He Waka Eke Noa, 우리 모두 함께 있다는 마오리족 속담) 일차산업 기후변화 대응 파트너십’의 제안을 수용해 오는 2025년부터 소와 양의 트림에서 발생하는 메탄 등 온실가스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기로 발표했다.


자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세계 최초로 도입되는 이 제도는 뉴질랜드가 전 세계적으로 농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주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우리 농축산 수출품의 경쟁력 강화와 브랜드 제고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던 총리는 “이는 뉴질랜드가 저탄소라는 미래로 전환하기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며 “세계 어떤 나라도 아직 농업에 대한 탄소 배출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선구자로서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녹색당 대표이자 기후변화부 장관인 제임스 쇼(James Shaw)는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메탄의 양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농업을 위한 효과적인 배출가스 가격책정 시스템이 이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 제도와 쓰레기 매립을 통해 2030년까지 메탄 배출량을 2017년 수준보다 10% 줄이고, 2050년까지 24~47%를 감축할 계획이다.


이 제도에는 농축산업 온실가스 저감을 돕는 기술 등의 연구개발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부과되는 추가 부담금과 공인된 온실가스 저감기술의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인센티브도 포함돼 있다.


또한 2050년까지 조림 등으로 온실가스 제로 순배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탄소중립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2003년에 한번 무산됐던 트림세 도입 계획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6대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이다.


이중 메탄가스는 주로 화석연료 생산 및 소비, 매립지, 대규모 목장에서 사육되는 가축의 트림 등을 통해 방출된다. 


소의 트림에서 나오는 메탄과 소변에서 나오는 아산화질소는 지구 온난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 등에 따르면 전 세계 가축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연간 약 71억 이산화탄소 환산 톤으로, 이는 지구 전체에서 한 해 동안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달한다.


특히 소를 비롯한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인간 활동과 관련된 전체 메탄가스 배출량의 37%에 달한다. 


메탄은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수십 배에 이르는 ‘최악의 온실가스’로 꼽힌다.


그러나 가축 사육 등 농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은 그 동안 전체 뉴질랜드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에서 제외돼 정부의 지구온난화 예방 의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돼왔다.


소의 수가 인구의 2배, 양은 5배가 넘는 뉴질랜드에서는 사실 트림세 도입이 예전부터 논의돼 왔다. 


노동당 정부는 이미 지난 2003년 이번 정책안과 유사한 가축에 대한 트림세 도입을 계획했으나 농민단체 등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농민들은 이 제안을 맹비난했고, 정치적 반대파는 이를 ‘방귀세’라고 비판했다. 


노동당 정부는 결국 그 제안을 포기했다.


정부는 그 동안 면제해주던 축산농가에도 세금을 부과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실현하겠다는 취지로 가장 먼저 트림세 카드를 뽑아들었다.


풍부한 토지와 지형을 살려 세계 최대의 축산·낙농대국으로 평가받는 뉴질랜드는 소나 양의 트림, 방귀 속 메탄가스가 환경에 지대한 악영향을 준다.


이는 뉴질랜드뿐 아니라 세계 각국도 마찬가지다.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와 미국 환경보호단체가 2020년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온난화를 촉진하는 메탄가스의 연간 배출량은 소가 120㎏으로 1위, 양이 8㎏으로 2위다. 


돼지는 1.5㎏, 사람은 0.12㎏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소 한 마리가 연간 사람 한 명보다 1,000배나 많은 메탄가스를 뿜어내는 셈이다.


이를 전체 가축 수로 환산하면 더욱 어마어마하다. 


뉴질랜드에서는 한해 소들이 120만t, 양이 20만8,000t의 메탄가스를 만들어낸다.


축산업계는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소나 양 등 가축에 먹이면 방귀와 트림이 줄어드는 방안을 몇 가지 내놓은 바 있다. 


그 중 하나가 해조류다. 


뉴질랜드만큼이나 소나 양을 많이 방목하는 호주에서는 2019년 이 같은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해조류가 소나 양의 기존 여물에 비해 영양이 풍부하고 방귀 발생도 적어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다만 채취 문제 등으로 가격이 비싼 점은 숙제로 꼽혔다.



  농민과 환경단체 모두 정부 계획 비판


정부의 트림세 발표는 농민은 물론 환경단체들로부터도 강한 비판을 받았다.


농민들은 너무 급격한 변화라고 지적하고 환경단체들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지난달 20일 전국적으로 트랙터를 몰며 농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에 세금을 부과하려는 정부 정책에 항의했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정부의 계획이 농축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인 국민당은 장기 계획을 찬성하지만 농축산업 부문의 지지를 잃을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농축산업계와 더욱 긴밀히 공조할 것을 주문했다.


우파성향인 액트(ACT)당은 정부의 이번 방안이 오히려 축산부문을 다른 국가로 이전시켜 전 세계 탄소배출량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농민연합은 정부 계획은 뉴질랜드 전체 경제의 내장을 도려내자는 계획으로, 축산농가들이 대거 소나 양 사육을 포기하고 조림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민연합의 앤드류 호가드(Andrew Hoggard) 전국회장은 “농민연합은 정부의 축산농가 세금 부과 계획에 깊이 우려한다”며 “정부 정책이 뉴질랜드의 소규모 농가를 거덜낼 것”이라고 경계했다.


호가드 회장은 농민들이 식량 생산을 줄이지 않으면서 배출 감소를 줄이기 위한 계획에 대해 2년 이상 정부와 협력하려고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비프 앤드 램 뉴질랜드’(Beef and Lamb NZ)의 앤드류 모리슨(Andrew Morrison) 회장은 “소와 양을 사육하는 농가들은 그들의 농장에 탄소를 흡수하는 140만 헥타아르의 자연림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혜택은 없고 세금만 부과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우리는 농민과 지역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불균형한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계획은 세금이 정부측이 아닌 농업 부문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는 농업계의 요청과 다르다.


농민들은 자신 농장의 배출량을 모니터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걷힌 세금은 기술, 조사, 그리고 인센티브 지급 등으로 농민들에 재활용되도록 하는 것이 근본 취지라는 주장이다. 


아던 총리는 기후변화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조사와 확인 작업을 하면서 과세 기준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비용 부담


ANZ의 농경제 이코노미스트 수잔 킬스비(Susan Kilsby)는 이번 법안이 1980년대 농업 보조금 폐지 이후 가장 큰 규제 변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킬스비는 “소와 양 사육 농가의 수익성이 일반적으로 낮고 메탄 배출이 높다”며 “음식을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수출량을 충분히 유지하면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의 계획이 시행되면 낙농과 양, 소 관련 생산이 확실히 감소할 것이고 채소와 곡식 생산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웨스트팩(Westpac)의 농경제 이코노미스트 네이단 페니(Nathan Penny)는 “정부의 제안은 예상됐던 내용이지만 소와 양 사육보다 조림에 투자가 지나치게 쏠릴 소지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쉽게 뉴질랜드 조림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페니는 “소와 양 사육 농가들이 낙농업에 비해 비효율적 식품 생산업자이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 세금의 예봉을 견뎌내야 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정부의 세금 부과는 소비자들이 부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트림세가 시행되면 소와 양 사육 농가의 수익이 2030년까지 18~24% 줄고 낙농업은 6~7%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아던 총리는 소나 양 사육 농가에 대한 불균형적인 영향을 인정하고 정부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연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정부 제안이 뉴질랜드 농축산물의 브랜드 제고 효과를 가져올 실용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노력으로 만들어진 친환경적인 농산물은 고부가 가치가 더해져 뉴질랜드 농민들에게 이점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민들은 새로운 제안 계획에 따라 2025년부터 배출량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해야 하며 가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농업계의 우려에 대해 정부는 농민들에게 되도록 비용을 전가하지 않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농민들이 양과 소의 트림을 줄이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세수는 새로운 기술과 연구, 그리고 인센티브 지급을 통해 농업 부문에 재투자될 것이라고 밝혔다. 


데미엔 오코너(Damien O’Conner) 농업 장관은 “탄소배출량 감소에 동참하는 농민들에게 보상이 따른다면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동시에 농가의 생산성•수익성 향상을 위해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코너 장관은 “농민들은 이미 정기적인 가뭄과 홍수로 기후변화의 영향을 경험하고 있다”며 “농업이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는 것은 환경과 우리 경제 모두에 좋다”고 강조했다.


해당 제안은 이달까지 협의가 진행되며, 의회 통과 등 발효되기까지 각종 절차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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