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수가 사상 최대로 늘면서 이민 규제에 대해 검토해온 뉴질랜드 정부가 마침내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지난달 7일 에리카 스탠포드(Erica Stanford) 이민장관은 이민자들을 착취로부터 보호하는데 도움을 주고 지속 불가능한 이민자 유입에 대응하기 위해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AEWV, Accredited Employer Worker Visa)’를 변경하여 이날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번 이민 정책 변경에는 저기술 직종을 신청하는 이민자들의 영어 조건 도입을 포함한다. 발표 당일 즉각 시행하는 이민부의 행태는 변경 직전 예상되는 비자 신청 쇄도를 의식한 것일 수 있으나 개별 비자 신청자들의 사정을 무시한 전례를 답습한 것으로 평가된다.
발표 당일 즉각 시행
스탠포드 장관은 이날 이번 이민 정책 변경은 기술 인력이 부족한 부문에 여전히 숙련 이민자를 끌어들이면서 국내 노동력을 먼저 이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스탠포드 장관은 발표한 성명서에서 “이민 정책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우리 정부가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계획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이어 “정부는 중.고교 교사처럼 인력이 부족한 부문에 이민자를 끌어들이거나 유지하는데 주력하는 동시에 기술 인력 부족이 없는 부문에는 뉴질랜드인들이 먼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탠포드 장관은 “지난해 2만명이 실업수당을 신청했고 5만2,000명의 저기술 이민자들이 들어왔다”며 “경제가 침체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실업수당을 신청하게 됨에 따라 키위들을 먼저 취업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영어 조건 도입에 대해서는 이민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고 고용주에 대한 우려를 더욱 빨리 제기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스탠포드 장관은 “이번 워크비자 변경은 순이민 수준을 제어하고,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 대응하며 최상의 숙련 인력을 받아들이고 유학산업을 재활성화시키는 이민 시스템을 만드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의 시작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크비자 변경을 즉시 발효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새로운 이민 정책이 지속 가능하고 리스크를 더욱 잘 관리하며 자체적으로 수익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변경된 많은 부분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팬데믹 이전의 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젠 베스트윅(Jenn Bestwick)이 이끈 독립적인 검토 결과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 실시 과정에서 이민자 착취 등 중대한 문제들이 발견됐다는 설명이다.
스탠포드 장관은 경제 상황에 따라 내년이라도 이민 정책이 완화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민 정책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재측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민 시스템의 본질이다.”
낮은 기술 수준의 이민 신청자들에 더욱 타격
이번에 강화된 워크비자 변경은 이민 근로자가 뉴질랜드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과 최저 영어 조건, 경력 및 학력 조건, 그리고 고용주가 뉴질랜드인을 먼저 채용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더욱 높은 수준의 증거 등을 포함한다.
이번 변경에 따라 ‘호주.뉴질랜드 표준직업분류(ANZSCO)’의 1,2,3에 해당하는 의사나 목수 등을 포함한 관리직, 전문직, 기술직 등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4, 5에 해당하는 육체 노동자, 비서, 판매 보조, 청소원 등을 포함한 개인 서비스직, 총무직 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ANZSCO의 4, 5 직업의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를 4월 7일 이후 신청하는 사람들은 영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장 많이 응시하는 IELTS 영어시험의 경우 전체 점수가 4점 이상이어야 하고 피어슨 영어시험(PTE)의 경우 29점 이상이어야 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아일랜드 시민권자들은 이들 국가에서 5년 이상 일했거나 공부했을 경우 영어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다.
또한 레벨 7 자격을 이들 국가나 호주 또는 뉴질랜드에서 2년 이상 공부했거나 레벨 8의 자격을 앞의 국가들에서 1년 이상 공부했을 경우 영어 조건이 면제된다.
ANZSCO 1, 2, 3 직업, 그린 리스트 직업, 교통 부문 워크 투 레지던스 리스트 직업, 중간임금 1.5배 이상의 보수를 받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민 근로자는 최장 5년까지 뉴질랜드에서 일할 수 있다.
ANZSCO 4, 5 직업을 가진 이민 근로자도 첫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를 2023년 6월 21일에서 2024년 4월 6일 사이에 신청했고 시간당 중간임금 29.66달러 이상 보수를 받을 경우에 5년까지 뉴질랜드에서 일할 수 있다.
ANZSCO 4, 5 직업을 가진 이민 근로자로서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를 2023년 6월 21일 전에 신청했을 경우에 이제 뉴질랜드에 최장 3년까지 일할 수 있다.
최근까지 발급된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는 11만3,000여건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2022년에 발급된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 소지 이민 근로자는 비자가 만료되는 2025년부터 뉴질랜드를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모든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 신청자들은 뉴질랜드에서 제공받은 직업을 수행하기에 적당한 자격이나 경험을 갖추고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여기에는 3년의 관련 직업 경력이나 뉴질랜드 학력 레벨 4 이상에 해당하는 관련 자격을 포함한다.
그린 리스트의 직업이나 중간임금 2배 이상의 직업 등에서는 예외가 적용된다.
고용주들은 ANZSCO 4, 5 직업 구인을 ‘워크 앤 인컴(WINZ)’에 의뢰하고 전국적인 구인 광고를 21일 이상 해야 한다.
또한 그 직업에 대한 마땅한 뉴질랜드인을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민부에 만족시켜줘야 한다.
4월 7일 이후 새로운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는 고용주가 이민 근로자를 주당 최소 30시간 고용하는 조건으로 발급된다.
최소 30시간 고용 조건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이민부는 고용주의 자격인증을 취소할 수 있다.
자격인증 고용주는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 소지 이민 근로자가 사직했을 때 이민부에 통지해야 한다.
자격인증 고용주에 대한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 즉시 벌금, 이민 근로자 모집 정지 등의 새로운 벌칙이 부과된다.
스탠포드 장관은 이번 이민 정책 변경으로 더욱 많은 사업체들이 규정을 위반하여 자격인증을 잃을 것으로 내다봤다.
버스 및 트럭 운전사에 대한 ‘워크 투 레지던스 비자’도 이들 직업에 대한 부족 문제가 해소되면서 신규 신청자들에게 폐지된다.
이들 직업에 ‘워크 투 레지던스 비자’가 도입된 이후 거의 1,000명의 버스 운전사와 3,000명의 트럭 운전사가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 경기 침체 등에 따라 ‘건설 및 인프라 부문 협정’에 첨가될 예정이었던 도로 교통 통제자, 라인 마커 등 7개의 직업들은 첨가되지 않는다.
또 프랜차이즈 인증 부문도 폐지된다.
4월 7일 이전에 이민부에 접수된 신청건은 이번 변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의도치 않은 결과 가져올 수도
‘고용주.제조자 협회(EMA)’는 정부의 워크비자 정책 변경이 고용주들에게 우려를 주고 중요한 자리의 인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EMA의 알란 맥도널드(Alan McDonald) 수석은 경제 침체로 실업률이 오르는 상황에서 많은 사업체들은 여전히 경험있는 기술 인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뉴질랜드는 여전히 트럭 운전사, 헬스 케어 근로자, 건설 인력 등이 부족하고, 계획됐던 그린 리스트 첨가가 폐기된 11개 직업 가운데 용접공, 설비 기술자, 선반공 등도 고용주들이 훈련시킬 마땅한 국내 인력을 찾기까지 단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이다.
맥도널드 수석은 “우리는 적격의 근로자를 끌어들여 착취받지 않는 것을 지지하지만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동기를 갖춘 근로자들의 뉴질랜드 이민을 어렵게 만들게 함으로써 그들은 다른 곳으로 갈 것이고 뉴질랜드 비즈니스에 손실을 주고 경제 재건 기회를 놓치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뉴질랜드 인구가 급격히 노령화되고 있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많은 젊은이들을 호주에 뺏기고 있는 실정에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는 것으로 부당하게 범주를 매겨진 직업들에 근로자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직업들은 우리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직업들이 필요하다”며 “이번 이민 정책 변경은 안정되고 장기적인 이민 정책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해 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민 정책을 계속해서 변경하는 것은 뉴질랜드 이민을 고려중인 기술 이민자들에게 정이 가지 않게 만들고 규정을 지키려는 고용주들에게도 혼동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높은 순이민은 팬데믹으로 국경을 폐쇄한 기간 동안 들어올 수 없었던 이민자들이 한꺼번에 입국하면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며 정부도 이민자 수가 앞으로 2년 안에 장기 평균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당의 필 트와이포드(Phil Twyford) 이민 대변인은 “정부의 이번 이민 정책 변경은 소폭이었다”고 평가하며 “뉴질랜드가 현재 당면한 기술 부족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가 이민부에 7.5%의 인력 감축을 요구하면서 이민 정책 변경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녹색당은 팬데믹 이후 국경이 재개방되면서 이전 노동당 정부가 도입한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는 실패했고 국민당 연립정부가 새로운 이민 정책을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녹색당의 리카르도 메덴데즈 마치(Ricardo Menendez March) 이민 대변인은 정부의 이민 정책 변경은 실패한 시스템에 새로운 코트를 입힌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격인증 고용주 워크비자’는 고용주에게 이민 근로자를 통제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며 “이민자 착취가 발생할 수 없도록 처음부터 이민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당과 녹색당은 이민자 착취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민 근로자를 첫 고용주 외에 다른 고용주들에게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스탠포드 장관은 “그것은 보다 넓은 이민 정책 검토에 해당한다”며 “당장은 이민자 착취와 지속 불가능한 이민자 수 때문에 이민 정책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순이민 사상 최고
이번 워크비자 변경은 순이민이 사상 최대로 늘어남에 따라 단행됐다.
순이민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면서 인프라에 부담을 주고 렌트비가 급등하며 뉴질랜드인의 실업률이 증가하고 이민자 착취 등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 2월말 기준 한해 동안 뉴질랜드에 입국한 비시민권자 수는 22만6,000명이고, 출국한 비시민권자는 4만7,400명으로 비시민권자의 순이민은 17만8,600명으로 기록됐다.
전입 이민자에서 전출 이민자를 뺀 순이민자 수가 매일 평균 489명이 늘어난 것으로 계산된다.
이는 2002~2019년 팬데믹 이전의 2월말 기준 연간 평균 비시권자 순이민 4만7,600명을 휠씬 넘는 수치이다.
입국 이민자는 2023년 2월에 비해 80% 늘었고 출국 이민자는 13% 증가했다.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이민 순유출 4만7,700명을 차감한 연간 순이민은 13만900명으로 조사됐다.
입국한 이민자를 국적별로 보면 인도가 5만800명으로 단연 많았고 필리핀(3만5,000명), 중국(2만9,000명), 뉴질랜드(2만7,200명), 피지(1만1,100명), 남아프리카공화국(8,200명) 순이었다.
연간 출국 이민자는 뉴질랜드가 7만4,900명으로 주류를 이룬 가운데 중국(7,600명), 인도(5,100명), 호주(4,800명), 영국(4,600명), 미국(2,900) 등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