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호빗’ 구하기

뉴질랜드의 ‘호빗’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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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빗’은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호빗’의 뉴질랜드 촬영을 위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총리까지 나서 미국의 거대 영화사와 협상을 벌였다. 결국 ‘호빗’구하기에는 성공했지만 돈을 위해 민주주의의 정신까지 팔았다는 비판도 면치 못했다. 뉴질랜드 사회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했던 ‘호빗’ 싸움을 정리했다

'호빗'은 ‘반지의 제왕’ 후속 영화

‘호빗(The Hobbit)’은 뉴질랜드가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피터 잭슨(Peter Jackson) 감독이 ‘반지의 제왕’ 후속편으로 만드는 2부작 영화이다.

'반지의 제왕' 작가 J.R.R. 톨킨(Tolkien)의 소설 '호빗'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 이전 시기를 다룬 작품으로 프로도의 삼촌인 빌보 배긴스가 용의 안내로 보물을 찾아 다니는 험난한 여정을 그린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인간, 요정, 마법사, 오크 등 여러 종족 중 하나인 호빗은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절대반지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이를 파괴해 세상을 구하는 임무를 해내는 난쟁이족이다.

당초 피터 잭슨은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영화 '판의 미로', '헬보이'를 만든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으나, 델 토로 감독이 스케줄 문제로 하차하면서 감독 자리를 맡게 되었다.

HD와 3D로 찍어 2012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 호빗은 제작비가 약 5억달러(미화)로 세계 영화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는 작품이 될 전망이다.

이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찍는데 든 2억8,100만달러의 거의 두 배에 육박하는 액수다.

호빗의 제작비가 이처럼 대폭 불어난 이유는 무엇보다 영화배급과 촬영 스튜디오 문제로 촬영이 수년간 지체된 때문이다.

크랭크인이 거듭 연기되면서 감독이 중간에 바뀐 데다 원작자 톨킨(1993년 작고)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과 뉴라인 시네마 간 반지의 제왕 수익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됐다.

배우노조의 보이콧이 싸움 발단

여기에 잭슨 감독이 배우노조와 계약문제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배우노조가 단체협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배우들에게 호빗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이에 잭슨 감독과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 측이 촬영지를 다른 나라로 옮길 수 있다고 맞서면서 갈등을 빚었다.

배우노조는 호빗 제작진이 배우들에게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일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잭슨 감독은 지난달 21일 "이제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워너브러더스 관계자들이 다음 주에 뉴질랜드를 방문해 촬영지를 다른 나라로 옮기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해 호빗의 뉴질랜드 제작은 물 건너 간 듯했다.

더구나 반지의 제왕을 뉴질랜드에서 제작할 당시 뉴질랜드달러의 대미환율은 50센트대 초반이었지만 현재 75센트까지 상승하면서 미국의 제작사가 뉴질랜드를 포기하지 않는가 하는 우려도 높아졌다.

이에 뉴질랜드 정부가 호빗 구하기에 발 벗고 나섰다.

호빗이 외국으로 갈 경우 뉴질랜드 영화산업은 물론이고 뉴질랜드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뉴질랜드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흥행 성공 이후 28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영화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일어섰다. 워너브러더스 경영진의 뉴질랜드 방문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웰링턴과 오클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해밀턴, 마타마타 등지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영화 속 중간계는 뉴질랜드에 속한다며, 호빗을 뉴질랜드에서 촬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빗 유치 위해 고용법 개정과 면세 혜택

뉴질랜드를 방문한 워너브러더스 경영진들과 이틀 간에 걸쳐 협상을 벌인 끝에 존 키(John Key) 총리는 지난달 27일 저녁 기자회견을 열고 “호빗이 당초 계획대로 뉴질랜드에서 피터 잭슨의 감독으로 촬영될 수 있도록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그 대가로 고용법을 즉시 개정하고 2,000만달러의 면세 혜택과 함께 1,340만달러 규모의 마케팅 비용을 약속했다.

협상은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고 키 총리는 첫 모임을 가진 뒤 합의 가능성을 50대 50으로 얘기했다.

이 협상에서 워너브러더스 측은 우선적으로 영화 제작에 방해가 되는 노동쟁의를 막는 법 개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요구가 일단락되자 협상은 금전적인 문제로 바뀌었다.

키 총리는 “고용법 개정이 워너브러더스사에 중요한 이슈였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호빗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했다”면서 “법 개정 없이 이 영화를 뉴질랜드에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영화계의 현실이다”며 이번 협상 결과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6억7,000만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알려진 호빗이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지게 됨에 따라 수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뉴질랜드의 관광산업과 해외 홍보에도 엄청난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호빗 협상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높아

호빗 뿐아니라 영화산업 전체에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이 고용법 개정안은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고용 지위를 확실하게 규정하여 계약업체에 고용된 사람이 나중에 피고용인의 지위로 법적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심의위원회의 검토도 없이 급하게 개정해야 했던 이 법안이 상정됐던 28일 밤 국회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노동당의 트레버 말라드(Trevor Mallard) 의원은 “외국 기업의 요구 때문에 나라의 법을 바꾼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이번 협상 결과는 외국 자본에 뉴질랜드의 주권을 팔아 먹은 것이다”며 정부 측을 비난했다.

녹색당의 러셀 노먼(Russel Norman) 공동대표도 “다국적 기업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뉴질랜드 국회가 법 개정을 위해 긴급 회의를 열고 있다”며 “이는 뉴질랜드인으로서 통탄할 일”이라고 말했다.

노동당과 녹색당은 모두 긴급 사안으로 고용법 개정을 추진하는 데 반대한다며 국민들도 자신들의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호빗 법’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고용법은 찬성 66표, 반대 50표로 29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호빗 딜’에 대한 시민들과 노동계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영화산업과 경제 전체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했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정부가 국가 정체성을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언제부터 미국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게 되었는가”, “일시 유행할 영화 한편에 이처럼 목을 매야 하는가” 등 비난의 목소리도 쏟아져 나왔다.

노조연맹(CTU)의 헬렌 켈리(Helen Kelly) 의장은 “호빗이 뉴질랜드에서 촬영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뉴질랜드가 지불하는 비용이 지나치다”면서 “특히 고용법 개정은 불필요하고 노동자 권리에 대한 또 다른 침해”라고 지적했다.

켈리 의장은 “호빗이 뉴질랜드에서 촬영하게 되어 기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불만이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초반 ‘프로도 효과’를 일으키며 뉴질랜드 관광산업과 경제를 부흥시킨 영화 반지의 제왕.

그 후속편인 호빗이 또 한 번 뉴질랜드 경제회복의 구세주가 될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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