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실시되고 있는 ‘내셔날 스탠다드(National Standards)’ 제도의 학교별 결과가 지난달 28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학교 관계자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전격 공개한 이번 자료에는 뉴질랜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읽기, 쓰기, 수학 실력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학교 관계자들의 반대 속에 정보공개
국민당 정부가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교육정책인 ‘내셔날 스탠다드’는 1학년~8학년 학생들에 읽기, 쓰기, 수학 과목의 표준화된 평가를 치르게 하고, 그 결과를 모아 정부가 세운 표준과 비교한 보고서를 1년에 2회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시행 당시 뉴질랜드 학생 5명중 1명은 읽기와 쓰기의 기본 능력도 갖추지 못한 채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교육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홍보했지만 일선 교사와 교장들은 학습속도가 느린 학생들과 하위권 학교들에 오명을 씌울 것이라며 반대했다.
반대가 심한 일부 학교는 아직도 교육부가 요구하는 ‘내셔날 스탠다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정부의 ‘내셔날 스탠다드’ 결과 공개 결정에 대해서도 교장과 교사들은 “실망스런 일”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전국의 초∙중학교 별로 공개된 이번 자료가 신뢰성이 없고 비교가 불가능하며 학생들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계도 잡히지 않은 이 제도의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도 했다.
부작용을 우려한 정부는 이번 정보공개에서 학교간 순위는 배제했다.
뉴질랜드교장협의회(NZPF)의 폴 드럼몬드(Paul Drummond) 회장은 “학교 내에서 자료가 유지되고 사용되는 것은 괜찮지만 학교마다 매우 적용이 다른 ‘내셔날 스탠다드’ 결과를 공개하고 비교하는 일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학교 측의 반대와는 달리 대다수의 사람들은 학교별 ‘내셔날 스탠다드’ 결과가 공개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헤럴드-디지폴(Herald-Digipoll)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0.3%가 정보공개에 찬성했다.
한때 ‘내셔날 스탠다드’의 운영실태가 엉망이라던 존 키(John Key) 총리도 “시험을 치르고, 평가하고, 보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학생들의 문제점을 개선하겠는가”라며 정보공개를 환영했다.
학생 3명중 1명은 ‘쓰기’ 실력 미달
이번에 공개된 ‘내셔날 스탠다드’ 자료를 살펴 보면 전국의 1학년~8학년 학생들 가운데 ‘읽기’ 과목에 표준 또는 표준 이상을 획득한 학생은 76%이고 ‘수학’의 경우 72%, ‘쓰기’는 68%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내셔날 스탠다드’에 미달하는 학생 비율이 읽기 24%, 수학 28%, 쓰기 32%로 많은 학생들이 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3명중 1명의 학생 꼴로 쓰기 실력이 표준에 못미치는 원인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읽기가 부족하고 휴대폰 문자와 속어 등의 과다한 사용을 지목하고 있다.
뉴질랜드 라이터스 컬리지(NZ Writers’ College)의 니콜라 메이어(Nichola Meyer) 교장은 “학생들이 보고 듣는 많은 언어가 은어이고, 이러한 은어는 철자가 아니라 발음되는 것에 기초하기 때문에 작문을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메이어 교장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도 부진한 쓰기 결과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비영어권 출신 학생들에 대한 문제는 ‘내셔날 스탠다드’ 시행 전부터 일선 교사들이 이 제도를 반대하는 한가지 이유였다.
어린이들이 점점 독서를 하지 않는 경향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메이어 교장은 “읽기와 쓰기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서 “어린이가 읽기와 쓰기를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정에 많은 책을 갖추는 한편 매주 도서관을 데려가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오클랜드 대학의 주디 파(Judy Parr) 교수도 “‘내셔날 스탠다드’ 쓰기 결과가 읽기와 낮은 연관성을 보여 주고 있으나 읽기가 어린이들의 쓰기 능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파 교수는 읽기가 어휘력을 늘리고 사고하는 능력과 지식의 추상적 구조를 키운다고 설명했다.
마오리∙섬나라출신∙가난한 지역 학생들 성적 부진
쓰기 과목의 표준 이상 성취율은 남학생이 61%로 여학생의 75%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마오리 및 태평양 섬나라 출신 학생들의 쓰기 실력은 더욱 부진해, 표준 이상의 성취율은 각각 58%와 54%에 그쳤다.
가난한 지역 학교 학생들이 부유한 지역 학교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구분되는 데실(decile) 1 학교 학생들의 표준 성취율은 읽기 56%, 수학 52%, 쓰기 50%로 50%대를 기록한 반면 높은 데실 학교 학생들은 세 과목에서 모두 80% 중반대를 나타내 확연한 격차를 보였다.
헤키아 파라타(Hekia Parata) 교육장관은 “‘내셔날 스탠다드’ 결과는 마오리와 파시피카(Pasifika) 학생들, 그리고 가난한 지역 출신 학생들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수학과 읽기, 쓰기에서 표준을 달성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개선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별 ‘내셔날 스탠다드’ 결과는 교육부의 ‘에듀케이션 카운츠(Education Counts)’ 웹사이트(www.educationcounts.govt.nz)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