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뉴질랜드 임산부들

위기의 뉴질랜드 임산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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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언론들에는 출산과 관련된 기사들이 빈번하게 등장했는데, 대부분이 관련 의료시설이나 인력 부족으로 분만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나 위기를 겪었다는 내용들이었다.

 

실제로 뉴질랜드에서는 인구에 비해 국토가 넓고 또한 원격지가 많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임산부나 신생아가 위험에 처했을 때 신속한 대처가 문제가 되곤 한다. 

 

최근 남섬 지역에서 출산과 관련돼 전해진 일련의 뉴스들을 사례별로 소개하면서 이와 연관된 국내 의료 현장의 실상도 함께 알아본다.     

 

<따로따로 병원으로 옮겨진 산모와 신생아> 

 

지난 6월 초 어느 날의 밤 10시 30분경, 남섬 남부 내륙의 와나카(Wanaka)에 사는 임산부 셰린 스펜서 바워(Cherin Spencer-Bower, 35)가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초 그녀는 아기를 낳게 된다면 차로 한 시간가량 걸리는 도시인 알렉산드라(Alexandra)에 있는 ‘분만센터(birthing unit)’로 갈 예정이었는데 이전까지 한 번도 그 센터에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진통이 시작되자 우선 ‘조산사(midwife)’ 에게 연락부터 했는데, 그녀는 미처 센터로 향하기도 전에 자궁이 열리고 이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집에서 출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집에 당도한 조산사는 상황을 간파하고 즉시 출산 준비를 했는데, 당시 산모는 집 안의 모든 난방기기를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없는 추위에 떨었다.  

 

결국 이튿날 아침 6시 38분경에 무사히 딸이 태어났는데, 그런데 문제는 출산 과정에서 산모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는 사실이었다. 

 

상황이 극히 심각하다고 여긴 조산사는 즉시 구급용 헬리콥터를 요청했으며 산모는 헬기 편으로 곧바로 더니든 병원으로 후송됐다. 

 

하지만 경황 없는 상황에서 아기는 미처 엄마와 함께 헬기를 타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갓 태어난 아기는 아빠가 모는 차를 타고 바람 불고 얼음이 깔린 도로를 3시간 반이나 달려 오후 2시경에 엄마 곁에 당도할 수 있었다. 

 

당시 2리터나 되는 피를 흘렸던 산모는 다행히 병원에서 안정을 되찾았으며 아기 역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아기 엄마는, 나쁜 결과 없이 잘 마무리돼 정말 다행이지만 상황은 얼마든지 나쁜 방향으로 달라질 수도 있었다면서, 아기와 자신은 적절히 보호받을 수 있는 곳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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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조 헬리콥터를 둘러보는 시민들


<조산사 사무실 바닥에서 태어난 아기> 

 

실제로 바워의 출산에 앞서 그 한 주 전에 같은 지역에서는 지역 분만센터도 아닌 ‘조산사 사무실의 바닥(midwife’s office floor)’ 에서 한 산모가 출산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바 있다. 

 

와나카 인근 마을인 하웨아 플랫(Hawea Flat)에 사는 크리스티 제임스(Kristi James)는 당시 집에 머물 던 중 새벽 3시부터 3분 간격으로 진통이 찾아오자 조산사에게 급하게 연락했다.  

 

와나카의 사무실에서 산모의 상태를 확인한 조산사는 그녀에게 “지금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출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출산 준비를 시작했다. 

 

결국 제임스는 새벽 5시 32분에 무사히 아기를 낳았는데, 그러나 당시 여기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조산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으며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첫 아이를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었기 때문에 이번에 둘째를 가진 뒤에는 사전에 산부인과 의사와 조산사와 협의해 아이를 더니든 병원에서 낳을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출산예정일보다 4일이나 늦게 태어나면서 문제가 된 것인데, 그녀는 4.1kg이나 나가는 둘째를 출산한 후 잘못된 일 없이 아기가 태어나 너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모든 산모들과 아기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극히 위험한 지경에 처한다면서, 이들에게는 어떠한 합병증에도 대처할 수 있는 모든 장비가 갖춰진 ‘1차분만시설(primary birthing unit)’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길가 세워진 구급차에서 출산한 산모> 

 

한편 이보다 한 달 앞선 5월에도 사우스랜드(Southland)의 한 농촌에서는 길가에 정차한 앰뷸런스에서 신생아가 태어난 적도 있다. 

 

이 지방의 작은 마을들인 모스번(Mossburn)과 테 아나우(Te Anau) 사이의 농촌에 사는 아만다 맥카이버(Amanda McIvor)는, 당초 출산이 임박해지면 인버카길(Invercargill)에 있는 사우스랜드 병원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이들 커플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럼스덴 분만센터(Lumsden Maternity Centre)’가 주민들의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에 ‘1차분만센터(primary birthing unit)’ 에서 기능이 축소된 이른바 ‘maternity and child hub’로 바뀌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먼 곳까지 가야만 하던 상황이었다. 

 

산모는 5월 26일(일) 새벽 4시 30분경에 진통이 심해지자 일단 럼스덴 센터에서 조산사인 사라 스토크스(Sarah Stokes)를 만났다.  

 

산모의 상태를 살펴본 조산사는, 응급 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럼스덴에서는 대처가 불가능하고 그나마 산소호흡기가 구비된 구급차가 낳겠다고 판단하고 이를 호출했다. 

 

하지만 구급차가 럼스덴 마을 경계를 막 벗어나던 중 아이가 나오려 하자 조산사는 차를 길가에 세우도록 한 뒤 곧바로 아이를 받을 준비를 시작했다. 

 

결국  오전 6시 48분에 몸무게가 4.8kg이나 나가는 건강한 사내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

 

조산사 경력 6년차인 스토크스는 이전에도 인버카길 도착을 5분 정도 남겨둔 채 도로에서 아이를 받아낸 경험이 있었는데, 당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또다시 일어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 산모의 경우 다행히 피를 많이 흘리지는 않았지만 얼마든지 상황은 악화될 수 있었다면서, 럼스덴에 시설이 확충되지 않으면 이런 경우가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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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 존 앰뷸런스

<의료진도 응급장비도 없는 분만센터> 

 

이처럼 대도시가 아닌 특히 농어촌 등 작은 마을이나 산골 외딴 지역에 사는 산모들은 출산과 관련해 생명까지 위협받는 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래이다. 

 

앞서 언급된 제임스와 바워를 포함해 지난 6월 한 달 동안에 와나카와 그 인근 지역에서는 모두 26명의 임산부가 출산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이들 산모들이 출산이 임박해지면 향하고자 했던 해당 지역의 이른바‘분만센터’라는 곳들 역시 정식 병원에 비해 시설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헬기로 실려갔던 바워가 당초 향하려던 알렉산드라 센터도 분만실만 달랑 3개 있는 작은 규모로 의사는커녕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장비도 없었다.   

 

결국 분만실과 함께 조산사가 자연분만을 하는 임산부를 돌볼 수 있는 정도의 간소한 시설에 불과하며 국내 다른 지역 분만센터들 역시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다보니 분만센터에서 출산 중 응급 상황이 생겨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되기라도 한다면 산모나 아기들은 생명을 다투어야 하는 지경에 처하곤 하는 실정이다.  

 

와이타키(Waitaki) 지역구의 재키 딘(Jacqui Dean) 국회의원은 오타고와 사우스랜드의 임산부 의료서비스가 위기를 맞았다면서, 이번 경우들에서 산모나 아기들에게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정말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딘 의원은 와나카에 시설이 없어 이 지역의 산모들이 차로 3시간 반이나 걸리는 더니든의 거점 병원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은 충격이라고 꼬집었다. 

 

당시 길가에서 이뤄졌던 출산과 관련해 지역 보건위원회가 조사에 나선 가운데 재신다 아던 총리도 조사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이번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은 지역 언론에 한 달 동안에 10여 차례 이상 보도되면서 사회적 이슈로 재차 등장했다.  

 

이에 대해 사우스랜드 보건위원회 관계자는, 2개의‘치료실(clinic rooms)’과 ‘응급 치료공간(urgent treatment space)’, 그리고 원격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장비 및 일상적 또는 긴급히 처방할 수 있는 약품 등을 갖춘 90m2 규모의 ‘영구적인 임산부 시설(permanent maternal and child hub)’을 내년 초 와나카에 개설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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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럼스덴 주민들의 시위 광경 

 

<만성적인 조산사 부족 사태> 

 

한편 이 같은 사정에 더해 최일선 현장에서 산모와 신생아들을 일차적으로 돌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산사들의 인력 문제 역시 심각하며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앞서 조산사 사무실에서 출산을 했던 제임스는, 주변 지역에 사는 200여명의 여성들이 아기를 낳을 계획인데 조산사는 겨우 2명 뿐이라면서, 220여명의 신생아에 조산사가 달랑 2명이라면 그 수학적 계산이 어떻게 되냐며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또한 조산사 부족 사태는 지방뿐만 아니라 크라이스트처치와 같은 대도시 권역도 마찬가지인데, 6월 말 나온 한 보도에 따르면 캔터베리에서도 향후 10년 안에 당초 예상보다도 16명이나 되는 조산사가 추가로 줄어들면서 만성적인 조산사 부족 사태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캔터베리 보건위원회의 2016년 자료를 보면, 관할 지역 중 남쪽의 애시버턴(Ashburton)에서 북쪽의 카이코우라(Kaikoura) 지역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 설치된 8개의 1차분만센터(primary maternity units)에 모두 150여명의 조산사와 간호사들이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존 조산사들이 노령으로 점차 은퇴하는 가운데 열악한 처우 등의 문제로 신규 인력 유입은 정체를 보여 대도시 권역에서도 조산사 부족 사태가 야기된 지 오래이다. 

 

작년에도 오클랜드 여성병원을 비롯한 오클랜드와 와이카토 지역 의료기관들에서 조산사가 크게 부족해지자 보건부가 나서서 긴급하게 호주 출신 조산사들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한편 조산사들은 자신들이 학사(bachelor) 학위를 받는 대학 4년 과정과 동등한 3년 과정을 마쳐야 하는 전문가들인데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수 차례 시위와 파업에도 나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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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이스트처치 여성 병원 전경 

 

<어려운 문제 안고 있는 보건부와 의료계> 

 

이처럼 임산부 의료 서비스가 보건부나 의료계의 큰 숙제거리로 등장한 지는 이미 오래됐는데도 불구하고 해결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많은 예산을 들여 인력과 시설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지역별 수요에 맞게 효과적으로 적절히 배분해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르기 때문이다. 

 

즉 대도시들은 대도시대로, 또 농어촌 지역은 그 지역들대로 그에 걸맞는 인력을 배치하고 시설을 설치하는 게 말처럼 쉽게 이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조산사 확보 등 이와 관련된 캠페인을 벌이는 여러 사회단체들도 관계 당국이 겪는 정책 수립과 집행에서의 어려움과 함께 개선 노력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산모들이나 그 가족들로서는, 당장 위기가 닥치면 최악의 경우에는 산모 자신은 물론 아기의 생명까지 걸어야만 하는 절박한 현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다.      

 

때문에 이는 전통적으로 무상의료 체제를 유지해온 뉴질랜드 보건 당국이 기존의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인 이슈 중 하나임 역시 분명하다.   

 

가뜩이나 출산율도 낮아지는 지금 시대에 출산을 통해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것은 한 개인과 그 가정은 물론 국가와 사회에도 큰 축복이며, 나아가 신생아 탄생은 결국 우리가 가지는 미래 희망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처럼 숭고하고 위대한 과정에 있는 여성들을 안전하게 돌보는 것은 인간으로서 모두에게 주어진 고유한 의무이며, 그러기에 당연히 어린이 노약자와 함께 임산부는 항상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적 권리도 가진다.  

 

모쪼록 정부와 의료계가 지혜를 짜내, 출산을 앞둔 뉴질랜드의 산모들이 의료시설이나 체계,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일은 더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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