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린 게 잘못, 아니면 개 주인의 책임?

물린 게 잘못, 아니면 개 주인의 책임?

0 개 3,991 서현

뉴질랜드인은 총인구와 맞먹는 460만 마리의 각종 반려동물을 키우며 그중 개체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물고기를 제외하면 고양이가 110만 마리로 으뜸인 가운데 2021년 기준으로 등록된 반려견만도 60만 마리에 가깝다.  


주변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교민들도 상당한데, 한편 이처럼 개를 많이 기르다 보니 사고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데 최근에는 두 살짜리 한 반려견의 목숨을 놓고 법정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놓고 개 주인들이나 애견가는 물론 동물보호 단체, 그리고 일반인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면서 관련된 보도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번 호에서는 작년 10월에 타우랑가에서 발생해 현재 다툼이 법정으로 번진 반려견 ‘초퍼(Chopper)’ 사건의 전말을 그동안 나온 보도와 재판 과정을 통해 전해진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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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창에 갇힌 ‘초퍼(Chopper)’


동물병원 주차장에서 벌어진 돌발 사건 


전체적으로 볼 때 ‘초퍼’ 사건은 부상자 부상 상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내용은 비교적 간단한데, 상담 차 동물병원을 찾았던 한 반려견이 수의사에게 부상을 입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놓고 법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건은 지난 2021년 10월 14일(목) 타우랑가 남부의 프레이저(Fraser) 스트리트에 위치한 동물병원인 ‘홀리스틱 베츠(Holistic Vets)’ 주차장에서 벌어졌다. 


당시 두 살짜리 수컷 로트와일러(rottweiler) 견종인 ‘초퍼’의 중성화 수술을 상담하고자 개 주인인 헬렌 티나 프레이저(Helen Tina Fraser)가 아들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이들을 보러 밖으로 나와 다가가던 수의사 리자 슈나이더(Liza Schneider)가 갑자기 달려든 초퍼에게 오른쪽 팔뚝을 심하게 물려 결국 수술과 함께 몇 달 동안 일도 못 하고 재활까지 필요한 큰 부상을 입었다. 


결국 이 문제를 놓고 반려동물의 통제를 담당하는 타우랑가 시청의 고소로 시청과 반려견 주인 사이에 법정 다툼이 벌어졌으며 문제를 일으킨 초퍼는 즉각 타우랑가 시청의 동물보호소로 압송돼 철창(pound)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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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리스틱 베츠와 주차장 전경


근육질로 뭉쳐진 맹견 ‘로트와일러’ 


우선 문제를 일으킨 ‘로트와일러’ 견종에 대해 알아보자면 이 견종은 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상당한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대형견이다. 


범상치 않은 인상도 그렇지만 특히 근육질로 뭉친 덩치를 보자면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게 만드는데 어깨높이가 56~69cm이고 체중은 수컷이 보통 50~60kg이지만 많게는 무려 80kg까지도 나가며 암컷은 35~48kg으로 큰 골격과 굵은 뼈대를 갖고 있는 데다가 몸 색깔도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더욱 강인해 보인다. 


20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견종으로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urttemberg)주의 ‘로트바일(Rottweil)’이라는 도시가 이름의 유래이며 로마 제국 시절 병사들이 가축 떼를 몰기 위해 기르던 ‘마스티프(mastiff)’ 견종에서 유래했다. 


원산지인 독일에서는 ‘로트바일러’로 불리며 영어권에서는 ‘로트와일러’라는 이름을 줄여서 흔히 ‘로티’나 ‘로트’로 부르기도 하는데, 겉보기와 달리 매우 영리해 훈련도 빠르게 마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에 로트바일이 독일 남부의 가축 거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가축을 보호하고 몰이에 쓰이는 사역견으로 만들고자 품종이 개량됐는데, 당시 가축 유통업자들이 귀중품이 담긴 지갑을 이들의 목에다 걸어놓고 지키게 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지금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도베르만(doberman)’과 함께 경비견 하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견종이며 현재는 목양견보다는 군견이나 경찰견으로 더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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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트와일러와 도베르만


해밀턴 신생아 사망 사건 범인도 같은 견종


특히 강아지 때 모습이 상당히 귀여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입양했다가 크게 낭패당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2020년 10월 북섬 해밀턴에서 태어난 지 겨우 하루 된 신생아가 가족이 키우던 반려견에 물려 죽은 참사도 두 살짜리 로트와일러가 저지른 일이었다. 


당시 남자 신생아는 엄마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공격을 받아 큰 상처를 입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몇 시간 뒤 사망해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으며 당시에도 특히 맹견 사육과 통제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어났다. 


로트와일러는 덩치가 웬만한 남자 성인과 맞먹고 근력은 더 강해 통제가 어려운데 더욱이 경비견으로 개량된 만큼 경계심이 강하며 침착한 성격이라 누가 접근한다고 마구 짖지도 않지만 가만히 보고 있다가 어느 선을 넘어 접근하는 순간 공격하는 본능을 가졌다. 


또한 영리하고 충성심도 강해 주인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대상은 주인 의사와 관계없이 공격하기도 하는데, 이런 이유로 경비 목적이 아닌 반려견으로 키우려면 주인은 대형견 사육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야 하며, 또한 어린 나이부터 다른 개 및 사람들에게 지속해 노출시켜 사회화를 철저히 시켜야 한다. 


하지만 사회화 및 훈련이 아무리 철저하게 되었더라도 로트와일러를 소형이나 중형견과 어울리게 하는 일은 삼가야 하는 등 한마디로 기르기가 절대 만만한 개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로트와일러가 ‘핏불테리어(pitbull terrier)’에 이어 인명사고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두 번째 견종이며, 이에 따라 인명사고 발생 시 즉각 사살하고 주인에게는 징역형을 포함한 형사 처벌까지 받게 한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동물보호법의 맹견 관리 규정에 따라 목줄과 입마개를 채우지 않고는 집 밖으로 나설 수 없으며, 뉴질랜드에서도 ‘아메리칸 핏불테리어’나 ‘브라질리언 필라(Brazilian Fila)’, 그리고 ‘일본 도사(Japanese Tosa)’처럼 ‘위협적인 개(Menacing dog)’로 구분돼 수입이 아예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보통은 ‘위험한 개(Dangerous dog)’로 간주해 입마개 착용 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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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의 반려견 등록 현황


주인보다는 물린 수의사 책임 강조한 법원


지난 6월 21일(화) 타우랑가 지방법원에서는 초퍼 사건 1심 재판이 열렸는데, 이날 재판에는 견주인 헬렌 프레이저가 ‘개 통제법(Dog Control Act 1996)’을 위반한 혐의로 타우랑가 시청에 의해 기소돼 피고인 신분으로 참석했다. 


당시 법원 앞에는 프레이저를 지지하는 약 25명이 재판 시작 전부터 몰려들었으며 그중 일부는 반려견을 데리고 왔고 이들의 차창에는 ‘초퍼에게 자유를(Free Chopper!)’이라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개 통제법’에는 반려견 등록과 말소, 그리고 동물 복지에 대한 내용과 함께 다른 사람이나 동물, 재산을 위험하게 만들거나 파손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하는 책임을 견주에게 지우고 있다. 


이날 재판에서는 초퍼의 수의사 공격 행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가 쟁점이었는데, 프레이저는 책임을 부인했으며 변호사 역시 마스크를 착용한 채 다가간 수의사에게 초퍼가 겁을 먹었고 전문가로서 사전에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그녀의 잘못이라면서 프레이저의 행동이 초퍼의 공격을 초래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에 시청 측 검사는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전 과정에 걸쳐 프레이저가 견주 입장에서 공격을 막기 위해 모든 합리적인 조치를 취했느냐가 관점이라면서 그녀에게 통제 책임이 있었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재판에는 피해자인 수의사 슈나이더와 함께 동물 간호사인 캐서린 핍스(Catherine Phipps)와 또 다른 견습 수의사 등이 출석해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재판에서 초퍼와의 이격 거리 및 달려들던 모습 등 당시 상황에 대해 양측 주장이 서로 엇갈렸는데, 판사는 프레이저가 세부적 상황을 과장할 이유가 없다면서 피고의 기억과 진술을 더 신뢰한다고 밝혔다. 


또한 수의사는 현장을 통제하고 유지할 적절한 조치를 할 위치에 있었고 또 그럴 기회도 있었으며 만약 조치했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결국 피고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1심 재판 결과에 따라 초퍼는 구금된 지 271일 만인 7월 12일(화)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동안 거의 매일 보호소를 찾아가 면회했던 프레이저의 아들은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 같으며 가족들이 기뻐했다면서 초퍼는 가족은 물론 지역사회에 큰 의미가 있으며 초퍼를 더 많이 사랑해줄 거라고 말했다. 


만약 이번에 법정에서 견주에게 책임이 돌아갔다면 프레이저는 최대 3년까지의 징역형이나 2만 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었으며 초퍼 역시 안락사를 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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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다친 수의사의 팔


서로 다른 기억을 주장한 당사자들


법정 증언을 갖고 사건 전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프레이저는 사전에 간호사와 약속하면서 초퍼가 모르는 이나 작은 개에게 덤벼들 것을 우려해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시 간호사는 초퍼를 차 안에 놓아두라고 말했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증언한 반면 프레이저는 이를 못 들었다는 입장이다. 


이후 수의사인 슈나이더가 주차장으로 나왔을 때 그녀는 초퍼가 차 안에 그대로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프레이저의 아들이 초퍼를 밖에서 붙잡고 있었다. 


일행이 짧은 인사를 나눈 직후 곧바로 초퍼는 달려들어 수의사의 팔뚝을 물었고 그녀는 입었던 패딩 재킷(puffer jacket)을 벗었지만 피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슈나이더는 초퍼가 달려들었을 당시 거리가 대부분 개와의 안전거리인 2m 정도였다고 말했는데, 결국 초퍼의 공격으로 수의사는 손으로 향하는 팔뼈인 척골(ulna)이 부러지고 4군데 찔린 상처와 함께 신경과 근육을 다쳐 3시간에 걸친 수술과 더불어 금속판과 6개나 되는 나사를 박아야 했다. 


22년 경력의 슈나이더는 이로 인해 처음 6주간은 오른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5개월 후에야 다시 수술을 집도할 수 있게 됐는데, 금속판과 나사 제거 수술을 다시 받아야 하고 여전히 통증이 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해당 병원을 2003년에 설립한 슈나이더는 야생동물 비영리기관인 ‘ARRC Wildlife Trust’ 설립자로 각종 상을 받은 저명한 수의사이며 병원 역시 종합수술도 가능한 수의사 5명 규모의 큰 동물병원이다. 


하지만 당시 사건에 대한 기억과 진술은 서로 다른데 프레이저는 수의사가 자기를 지나쳐 초퍼에게 다가갈 때 뒤돌아보니 이미 초퍼가 짓기 시작하며 달려들자 수의사가 뒷걸음질 쳤으며, 처음에는 재킷을 물어 찢어졌지만 수의사가 팔을 들자 이내 다시 달려들어 팔뚝을 물었다고 말했다. 


놀라 달려간 그녀는 손으로 초퍼의 주둥이를 잡아당겼다고 진술했는데, 그녀의 변호사는 당시 두 단계였던 초퍼의 움직임을 정확히 보았는지 여부를 프레이저에게 확인해 ‘그랬다’는 대답을 들었다. 


한편 슈나이더 역시 초퍼가 공격이나 화가 난 징후를 보이지는 않았고 만약 그랬다면 미리 알 수 있었을 거라면서도 당시 초퍼가 짖었으면 자신이 미리 피했을 거라고 말했다. 


또한 사건 후 초퍼에게 입마개를 채울 것을 고려했지만 많은 개가 입마개 착용을 아주 싫어하며 더 날뛰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초퍼를 다시 차에 태우려면 병원 입구로 이동해야 해 다른 동물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진술했다. 


한편 병원 매니저와 간호사도 비명에 창가로 가서 밖의 사고 장면을 목격했으며, 당시 슈나이더가 동맥을 다쳐 많은 피를 흘리면서 병원으로 들어왔고 상황이 끔찍했다고 말했다. 


또한 시청 측 검사는 프레이저에게 당시 상황을 얼버무리는 게 아니냐고 강하게 추궁했는데, 이에 대해 그녀는 자신은 거짓말하지 않고 있다면서 당시 차 안에 초퍼를 놓아두라는 말을 사전에 듣지 못했으며 주차장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만 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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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친 수의사인 리자 슈나이더


결국 법정에서 생사 판가름 나게 된 초퍼


이번 사건은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중인데 8월 중순 나온 후속 보도에 따르면 시청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열리게 됐다. 


시청 측은 1심 재판에서 판사가 개를 통제해야 하는 견주의 법적 책임보다는 피해자 행동에만 초점을 맞췄다면서 법률 적용을 잘못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러한 공격적 행동은 모든 반려견 주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항소를 택했다면서, 견주 기소 결정은 절대로 가볍게 내려지지 않으며 가장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만 조치를 하는데 그 심각성을 볼 때 기소는 적절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뉴질랜드 수의사협회(NZ Veterinary Association) 관계자도, 협회에는 동물 행동에 대해 고도로 훈련되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많이 있음에도 이런 점이 재판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프레이저의 아들인 라이언 타라휘티-브라운(Ryan Tarawhiti-Brown)은, 가족이 시청의 항소 결정으로 법률 비용은 물론 초퍼를 결국에는 잃게 될까 봐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서, 시청은 납세자의 돈을 소송이 아닌 다른 곳에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들은 법정에서 진실을 말했고 또한 판사는 그것을 봤으며 우리는 초퍼도 뺏기지 않고 그저 이전처럼 자신들의 삶을 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재 집으로 돌아온 초퍼는 완벽하게 적응했고 지금은 트레이너로부터 뒷다리 강화 치료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청의 항소로 이 문제는 최종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계속 사회적 이슈로 남게 됐는데, 작년 10월에 처음 문제가 터졌을 때도 동물보호 그룹을 중심으로 초퍼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 벌어진 바 있다. 


또한 올해 1월에는 ‘기브어리틀(givealittle)’을 통해 법률과 보호소 및 재활 비용을 위한 모금도 벌어져 1만 달러 가까운 돈이 모였고 재판 결과가 보도된 최근까지도 모금이 계속됐다. 


당시 초퍼를 지지하는 이들은 초퍼가 좁은 우리에서 플라스틱 침상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다치기도 했다면서, 구조견 보호소(rescue shelter)로 보내려 했지만 재판 때문에 유치장에 갇혀 정신적 학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 같은 상황에 따라 작년 10월부터 1년 가까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논쟁의 대상이 된 초퍼는 앞으로 고등법원에서 열릴 재판 결과에 따라 그 생사가 판가름 나게 됐다.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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