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몰려올 폭염 대비해야

올 여름, 몰려올 폭염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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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토), 크라이스트처치의 에이번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 지역에는 멀리 알래스카에서 1만 1,700km를 쉬지 않고 날아온 ‘뒷부리도요새(bar-tailed godwit)’가 처음으로 관찰됐다. 


도요새는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봄의 전령’인데, 하지만 도요새가 도착 전부터 크라이스트처치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는 이미 낮 기온이 20C를 넘어가는 초여름 같은 날씨를 보였다. 


현재 기상 전문가들은 올해 여름 극심한 더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세계적으로 기후에 의한 자연 재해가 빈발하는 속에 올해 여름 뉴질랜드에 닥쳐올지도 모를 폭염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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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CH 뉴 브라이턴 바닷가에서 열린 해변 경기 모습


전국에 이어진 강풍은 엘니뇨 발생의 뚜렷한 전조


지난 9월 17일(일) 밤에 북섬 호크스 베이와 와이라라파(Wairarapa) 사이에 위치한 케이프 턴어게인(Cape Turnagain) 관측소에서는 시속 246km에 달하는 돌풍이 불었는데, 이는 2008년부터 이곳에서 기록이 시작된 이후 4번째로 강한 바람이었다. 


특히 북섬 중남부와 남섬을 강타한 강풍으로 수십 편의 항공편이 결항한 것은 물론 시속 168km 강풍이 불었던 마운트 쿡 인근에서는 캠퍼밴이 전복하기도 했다. 


국도 통행이 막히고 웰링턴에서만 수천 가구에 전력이 끊겨 많은 가정이 곤란을 겪었으며 가로수가 뿌리채 뽑히는 등 재산상 피해도 발생했는데, 그런데 이처럼 사이클론이 오지도 않았는데 강풍이 하루도 아니고 며칠씩 연달아 불어닥친 배경에는 기후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국립수대기연구소(NIWA) 기상 전문가이자 기상 예보관인 트리스탄 메이어(Tristan Meyer)는, 이번 강풍은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엘니뇨(El Nino) 현상이 강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결국 예년보다 더 덥고 건조하며 바람이 자주 불게 될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전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웰링턴 주민은 아마도 이번 강풍을 맞아 실제로 체험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당시 웰링턴 중심부에서는 시속 136km 강풍이 불면서 2015년 이후 가장 강한 바람으로 기록됐다. 


마치 1급 열대성 저기압(사이클론)을 맞이한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며칠 동안 이어진 강한 바람은 뉴질랜드 부근에 형성된 강력한 전선에 의해 촉발됐다. 


메이어 예보관은 현재 수집한 자료로 볼 때 이러한 상황은 엘니뇨가 급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지표라고 설명하고, 앞으로 이번과 같은 강력한 서풍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강한 바람과 함께 동부의 기온이 올라가고 평소보다 건조하다는 징조가 나타났으며 이 역시 엘니뇨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면서, 오는 12월에는 무더운 날이 더 많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지난해에 웰링턴에서 최고 기온이 35C를 넘지 않았지만 올해는 넘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예상했다.


이미 22일(금) 호크스 베이의 와이로아(Wairoa)가 29.6C 최고 기온을 보이면서 북섬의 9월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하면서 기상학자들을 놀라게 했는데, 이전 기록은 1955년 9월에 헤이스팅스에서 측정된 27.7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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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1일(목) 측정된 최고 기온과 역대 최고 기온 기록 - NIWA


엘니뇨 공식 선언한 호주는 산불에 촉각

 

이웃 호주에서는 이미 9월 19일(화), 기상청이 호주에서 엘니뇨가 진행 중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화재와 폭염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호주에서 엘니뇨가 선언된 것은 슈퍼 엘니뇨가 발생했던 지난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당일 시드니 지역의 최고 기온은 아직 초봄인데도 불구하고 34.6C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1965년에 기록된 종전 최고 기록과 맞먹는 것으로 2015년 여름에는 40C를 여러 차례 넘기기도 했다. 


기상청은 극심한 가뭄으로 산불 위험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올 여름 기온이 역대 평균 최고 기온보다 높을 확률이 80%를 넘었으며 엘니뇨가 이어지면서 내년 2월 말까지 극심한 더위와 가뭄, 산불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이미 엘니뇨가 선언된 당일 뉴사우스웨일즈 소방 당국은 관내에서  65건의 화재가 발생해 700명 이상이 진화 작업에 투입됐다고 밝혔다. 산불이 잦은 호주 동부에서 역대 가장 건조한 기간 10 차례 중 9차례가 엘니뇨 기간 중에 나온 바 있다. 


이런 사정은 뉴질랜드도 다를 바 없어 이미 여러 곳에서 산불이 빈발해 소방 당국이 긴장하고 있는데, 마운트 쿡 인근의 트와이젤(Twizel) 북쪽에서는 20일(수) 저녁부터 대형 산불이 발생해 둘레가 17km에 달하는 165헥타르가 넘는 임야를 태웠다. 


강한 바람 속에 산불이 거세게 번지면서 인근 지역 소방대가 대거 출동했고 푸카키 다운스(Pukaki Downs)에 있는 주택 6채에서는 주민들이 대피했는데, 한편 당시 진화에 나섰던 8대의 헬리콥터가 강풍으로 한때 운행을 아예 못하는 난감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이처럼 산불을 끄기 위해 애를 먹는 가운데 같은 시기에 남섬 남부에서는 폭우가 내리면서 퀸스타운과 고어(Gore)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퀸스타운에는 21일(목) 오전 9시부터 24시간에 걸쳐 87mm의 강수량을 기록했으며 이는 24년 만에 최대 일일 강수량으로 기록됐는데, 이웃한 와나카(Wanaka)도 하루 98mm가 내리면서 17년 만에 기록을 세웠으며 이와 같은 강수량은 두 지역 모두 예년 같으면 한 달치 내릴 비가 하루 만에 쏟아졌다. 


이 바람에 수백 명이 밤새 대피했고 퀸스타운의 곤돌라가 있는 산사면 일부가 무너지고 묘지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도로가 진흙으로 덮이고 학교가 문을 닫은 가운데 고어와 마타우라(Mataura) 사이 국도 1호선을 비롯한 지역의 여러 도로가 통행이 차단됐고 주민들에게는 식수를 끓여 사용하라는 경보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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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와이젤의 산불 현장


일상생활 불편할 정도로 더운 날 많아진다    


이처럼 뉴질랜드에서도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날씨가 더욱 자주 나타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올해 여름에는 폭염을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NIWA의 한 기후변화 전문가는, 지구 온난화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극단적인 폭염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서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더워지는 날짜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는 폭염으로 연간 12명 이상 사망하며 기온이 오르면 그 숫자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따라 레스트홈에 머무는 노인과 아동보육센터 어린이 등  취약 대상에 대해서는 폭염 발생 시 행동 규정과 기준을 새롭게 정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와이카토 대학의 기후변화 전문가인 루크 해링턴(Luke Harrington) 박사는 국내 많은 도시에서 올해 가장 더운 날 기온이 이미 예년보다 0.5C 이상 올라갔으며, 오클랜드에서는 29C나 30C를 넘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링턴 박사와 데이브 프레임(Dave Frame)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오클랜드나 해밀턴처럼 온도 변화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가 더 높은 폭염 위험에 직면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더위를 겪는 기간이 더 길어지고 또한 밤사이에 기온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짧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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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1일 남섬 남부를 덮친 비구름대 위성 사진


따뜻한 계절 사망자 중 1~8%는 날씨와 연관 


해링턴 박사는 따뜻한 계절에는 사망자 중 1~8%의 사인이 날씨와 연관될 수 있다는 국제적인 연구 자료를 인용했는데, 뉴질랜드는 호주처럼 극심한 더위를 겪지는 않지만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와 열대 지방 같은 다양한 기후에서의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정상치보다 높게 치솟으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런 경우 더위에 대한 위험 정도는 시원한 나무가 많고 에어컨의 도움을 받는다든지 등등 생활 환경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한낮에 달리기 하러 나가지 말 것’과 같은 행동 요령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가정의(GP)이기도 한 더못 코피(Dermot Coffey) ‘뉴질랜드 기후 및 건강 위원회(NZ Climate and Health Council)’ 대표는, 심장 질환이나 기타 질병 보유자 중에서 종종 열사병 사망자가 나온다면서, 역학적으로 사인을 조사하면 얼마나 되는 사망자가 이 때문에 한계선에서 쓰러졌는지 알 수 있으며 만약 조치를 취했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 거라고 지적했다. 


그는 치명적인 홍수보다는 더위가 사망에 영향을 적게 미치기는 하지만 ‘열 스트레스’는 심장에 무리를 주고 신부전 위험을 증가시켜 실제 사망하기 훨씬 이전부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전했다. 


가장 위험해지는 대상은 노인과 어린이, 심장약이나 항우울제 같은 통상적인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인데, 이들 그룹은 예를 들어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하는 등의 대처를 제대로 못할 수 있다고 코피 박사는 지적했다. 


또한 정신 건강 질환자가 위험성이 훨씬 높으며 연구가 아직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초기 조사 결과 마오리와 태평양 제도 출신도 더위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하지만 우리는 더위에 준비할 수 있다면서 예를 들면 프랑스 파리에서는 폭염이 닥쳤을 때 취약 계층이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노크해주는 서비스에 등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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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시내의 분수대에서 더위를 식히는 관광객


전문가들 ‘최고 온도 기준’ 빨리 도입해야


현재 국내에서도 기상 당국(MetService)이 ‘폭염 경보(heat alerts)’를 시범적으로  시작했는데, 해링턴 박사는 현재 법적으로 ‘최저 온도(minimum temperatures)’는 규정돼 있지만 최고 온도는 정해져 있지 않다면서, 유아 및 노인 시설에 대한 ‘최고 폭염 기준(maximum heat standards)’을 도입하기를 희망했다. 


그는 취약 대상을 보호할 수 없는 건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뉴질랜드는 앞으로 국가 보건에 큰 영향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코피 박사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지금 온도에서도 폭염이 문제가 되며 특히 노인 돌봄에 대한 표준이 진작에 마련되어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노인복지시설 관리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한 주민은 소비자보호협회(Consumer NZ)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어머니가 때로는 너무 추운 환경에서 또 때로는 33C까지 올라가는 휴게실에 방치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보건부에 따르면 현재 노인 요양 시설의 ‘최고 온도 제한’은 없으며 창문과 적절한 난방과 환기가 필요하다는 규정만 있으며, 교육부는 아동 보육시설에 최고 온도 규정의 도입을 논의하는 실무 그룹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NASA는 올해가 지난 1880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면서 지난 1951~1980년 (북반구)여름보다 올해가 1.2C나 높았으며 남미와 일본 유럽과 미국에서 폭염이 발생하고 캐나다와 하와이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치명적인 산불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결국 북반구가 6~8월 여름이 지나면서 이번에는 남반구에 폭염이 닥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셈인데, 구조적으로 주택의 겨울 난방이 큰 문제인 뉴질랜드에서 이번에는 더위 대비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올해 7월 나온 자료를 보면 사상 가장 더웠던 것으로 기록됐던 지난해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이탈리아의 1만 8,000명을 비롯해 스페인 1만 1,300명 등 6만 1,700여 명에 달했으며 특히 고령층이 많은 가운데 여성이 남성보다 63%가 더 많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번에 뉴질랜드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당시에도 이미, 예상된 기후변화 속에서 각국 정부의 정부의 폭염 감시 및 경보 시스템 부재와 예방 계획 등 사전 준비가 부족했으며 개인 역시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준비는 물론 개인과 각 가정에서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기후 변화에 따른 생활 습관 및 대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시대가 됐다.


■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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