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생활비와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 침체에 버티기 힘든 뉴질랜드인들이 더 나은 기회와 높은 수입, 삶의 질을 위해 뉴질랜드를 떠나고 있다.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이민 순유출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5만명 선을 넘어섰다.
매주 뉴질랜드로 귀국하는 키위보다 떠나는 뉴질랜드인들이 1,000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이웃 나라 호주로 떠났다. 고물가가 지속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태즈먼 해를 건너는 키위들의 행렬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와 경제 침체에 뉴질랜드 떠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말 기준 지난 1년 동안 12개월 이상 장기 거주 목적으로 뉴질랜드를 떠난 뉴질랜드 시민권자는 전년 대비 38% 급증한 7만8,200명이고, 반대로 장기 거주 목적으로 뉴질랜드에 돌아온 뉴질랜드 시민권자는 전년 대비 2% 감소한 2만5,800명으로, 그 차이는 약 5만2,500명을 기록했다.
이처럼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이민 순유출이 5만명 선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는 매주 입국하는 시민권자보다 떠나는 시민권자가 1,000명이나 더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12년 2월로 연간 4만4,000명의 이민 순유출을 나타냈다.
연간 7만8,200명의 이민 출국도 2021년 2월말 기준 연간 7만2,400명의 종전 최고치를 넘는 새로운 기록이다.
출국한 시민권자 7만8,200명 중 18~30세의 젊은층이 39.5%인 3만900명으로 주류를 이루었다.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이민 순유출은 3월말 기준 2002~2013년 연간 평균 2만6,800명을 기록했고 2014~2019년 6,800명을 나타냈다.
ASB의 마크 스미스(Mark Smith) 이코노미스트는 해외로 이주하는 많은 뉴질랜드인들은 기술이 있으면서 예상 수입이 있는 젊은이들일 것으로 추측했다.
스미스 이코노미스트는 “뉴질랜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요가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해외 경험의 관점에서도 해외 이주를 고려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최신 이민자 수치는 뉴질랜드 경제의 장기 침체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로 이주하는 많은 뉴질랜드인들은 호주와 영국으로 떠났을 것이다”며 “이들 나라의 경제도 비슷한 도전을 받고 있지만 뉴질랜드보다 약간 나은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일부는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이민 수요로 인한 것으로 진단했다.
뉴질랜드인의 두뇌 유출은 뉴질랜드 경제를 좀먹는 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경고이다.
스미스 이코노미스트는 “뉴질랜드의 생산성은 팬데믹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며 “여기에 많은 생산적인 인재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예상보다 일찍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은 지난달 22일 시장 전망대로 기준금리를 5.5%로 동결했다.
하지만 공식 예상 최고금리를 5.6%에서 5.65%로 0.05%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중앙은행은 성명을 통해 이번 회의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논의했다며 “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1∼3%를 상회하고 있으며, 국내 서비스 물가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HSBC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폴 블록샴(Paul Bloxham)은 “중앙은행이 예상보다 매파적이었다”며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이 위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앙은행 예측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내년 4분기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나오지만, 블록샴은 올해 말부터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다.
해외로 이주하는 뉴질랜드인 절반 이상은 호주행
통계청의 테심 아일랜드(Tehseem Island) 인구지표 매니저는 “이민 변화는 뉴질랜드와 세계 다른 나라들의 상대적인 경제 및 노동 시장, 이민 정책에 따라 발생한다”며 “최신 추정치에 따르면 해외로 이주하는 뉴질랜드인의 절반 이상은 호주로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작년 9월말 기준 1년 동안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온 이민자 수가 1만8,200명이고 반대인 경우가 4만2,200명으로 2만4,000명의 순유출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9월말 기준 1년 동안의 1만1,000명에 비해 두 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통계청은 또한 작년 9월말 기준 1년 동안 해외로 이주한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53%는 호주로 갔다고 설명했다.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주한 많은 키위들은 페이스북이나 틱톡 같은 소셜 미디어에 호주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대한 근황을 올린다.
그 가운데 제씨 캠벨(Jesse Campbell, 26세)은 호주에서의 삶의 질이 뉴질랜드에서보다 10배나 높다고 얘기한다.
생활비는 낮고 임금은 높으며 기회가 많고 날씨까지 좋다는 것이다.
그는 “뉴질랜드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며 “솔직히 현재 삶의 질은 호주가 뉴질랜드보다 낫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호주로 이주하는 이유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친 생활비와 임금 등 뉴질랜드에서 사람들이 생활하기 힘들다”고 푸념했다.
호주 멜버른으로 이주한 키야 아리아나(Kiyah Ariana)는 호주 이주가 그녀의 인생에서 힘든 결정이었지만 가치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파트너의 수입만으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전업주부로 지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키위 페이지 라트클리프(Paige Ratcliffe)는 호주로 이주하여 마침내 매일 신선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키위들의 엑소더스 막을 뾰족한 대책 없어
뉴질랜드인들의 호주행은 오래된 현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정부가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실정이다.
두 나라의 임금 격차나 주택 구입 가능도 등을 단기간에 좁힐 수는 없는 것이다.
양국 간의 이주 동향을 보면 항상 뉴질랜드에서 역조를 보인 가운데 2004~2013년 매년 평균 약 3만명을 나타냈고, 2014~2019년 약 3,000명으로 줄었으나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는 형편이다.
호주는 최근 경찰관, 간호사 등 자국내 인력이 부족한 직종에 뉴질랜드인을 대상으로 고임금 등을 제시하면서 적극적인 구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뉴질랜드간호사협회는 뉴질랜드 정부의 공공 인력 감축 시행과 맞물려 호주쪽의 적극적인 구인 공세로 많은 뉴질랜드 간호사들을 호주에게 잃게 될 것을 우려했다.
호주 정부는 일부 비자 규정을 강화해 이민자 유입을 규제하면서도 뉴질랜드 시민권자에게는 작년 7월부터 호주에서 4년 이상 거주할 경우 영주권자가 되지 않더라도 바로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당시 호주의 새로운 시민권 경로 시행이 키위들의 호주행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호주 시민권 취득이 제한을 받는 시기에도 키위들의 호주행은 지속됐고 시민권 완화가 결정적인 요소가 되진 않을 것이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호주 시민권 변화로 더 많은 이민을 초래할 것이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호주 이주의 장애물이 하나 더 제거된 상황에서 최근 경제력이 호주 쪽으로 기울면서 키위들의 호주행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 뉴질랜드와 호주간 분기별 경제성장률 비교
뉴질랜드의 경제성장률(GDP)은 최근 5개 분기 가운데 4개 분기에서 하락하며 경제 침체를 맞고 있다.
반면에 호주의 경제성장률은 작년 말까지 5개 분기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현행 기준금리는 뉴질랜드가 5.5%로 호주의 4.35%보다 높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그 동안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욱 높게 인상한 결과이다.
주택가격은 뉴질랜드가 호주보다 더욱 심한 등락을 경험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평균 집값은 2021년 하반기의 정점에 비해 아직 14% 정도 낮은 수준이지만 호주의 집값은 2022년 최고치에 다시 근접하고 있다.
실업률은 3월말 현재 뉴질랜드에서 4.3%이고 호주에서는 3.8%를 기록했다.
고용시장은 뉴질랜드가 더욱 빠르게 냉각되어 올 연말 실업률이 5.3%까지 오르고 호주에서는 4.5%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탈뉴질랜드 행렬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로 이주하는 뉴질랜드인 이상으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구직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경제 침체로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구인 광고는 30% 줄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높은 물가, 고금리,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뉴질랜드 국민들은 이제 높은 실업률과 함께 기대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임금인상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비시민권자 포함 전체 이민 출국도 사상 최고
뉴질랜드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를 합친 전체 연간 이민 출국도 역대 최고를 나타냈다.
3월말 기준 지난 1년 동안 12개월 이상 장기 거주 목적으로 뉴질랜드를 떠난 시민권자 7만8,200명과 비시민권자 4만9,600명을 합친 12만7,800명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비시민권자의 출국은 전년 대비 22% 늘었다.
스미스 이코노미스트는 3월말 현재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를 합쳐 11만1,100명의 연간 전체 순이민이 뉴질랜드 경제 침체와 이민정책 강화로 6만5,000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건축 분야와 신규 이민자들에 필요한 내구재를 판매하는 소매업체들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통계청은 이민자 입국은 작년 12월 연간 이민자 입국이 24만4,800명일때 정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3월말 기준 1년 동안 뉴질랜드에 입국한 시민권자는 2만5,800명이고 비시민권자는 21만3,200명으로 전체 입국자는 23만9,000명으로 조사됐다.
이로써 전체 순이민은 비시민권자의 순유입 16만3,600명에서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순유출 5만2,500명을 차감한 11만1,100명으로 나타났다.
뉴질랜드 비시민권자의 순유입 16만3,600명은 2023년 3월의 10만5,000명에서 55.8% 급증한 것이다.
이는 또한 코로나19 이전의 3월 평균 4만7,600명보다 휠씬 높은 수준이다.
입국한 이민자를 국적별로 보면 인도가 4만9,800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필리핀(3만1,900명), 중국(2만6,800명), 뉴질랜드(2만5,800명), 피지(1만700명), 남아프리카공화국(7,800명), 스리랑카(6,900명) 순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출국한 이민자는 중국이 8,100명으로 가장 많은 가운데 호주(5,000명), 영국(4,900명), 인도(4,800명), 미국(3,100명) 순이었다.
월별 기준으로 보면 지난 3월 이민자 입국은 2만800명으로 2023년 3월에 비해 17% 감소한 반면에 이민자 출국은 1만6,300명으로 작년 3월에 비해 98%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순이민은 4,500명으로 작년 3월 1만6,800명에 비해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