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나요?

의사는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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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의사를 포함한 의료진 부족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주니어 의사는 물론 간호사와 구급요원, 그리고 보건 행정 직원까지 시위에 나서고 있다.  


환자는 물론 이를 돌봐야 하는 가족도 진료 차질은 물론 생명이 달린 시급한 수술까지 미뤄지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보건 당국에 대한 원성도 높다. 


최근 벌어진 몇몇 사건에서는 일선 병원의 의료 시스템의 붕괴 조짐까지 엿보이는데, 이와 같은 사태의 원인과 함께 현재 보건 당국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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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하게 병원에 달려왔건만 의사는 어디에?


<전문의 공석률 30% 넘은 기즈번 병원 > 


지난 9월 1일 국내 언론은, 북섬 동해안 ‘기즈번(Gisborne) 병원’의 의사 부족 사태가 극히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기즈번 병원이 속한 ‘타이 라휘티(Tai Rawhiti) 보건 지역’의 전문의(senior medical officer) 공석률은 30%를 넘어 전국 최고인데 일부 진료 분야는 단 한 명의 의사만 남았다.  


실제로 현재 방사선과 전문의는 하프 타임 근무자 한 명뿐이고 마취과 의사는 필요 인원의 ⅓ 수준에 불과해 결국 수술실 운영도 영향을 받아 어떤 주에는 수술실 사용이 처리 능력의 절반 수준인 15회 정도만 운영하는 실정이다.


한 마취과 의사는 올해 들어서만 원래 근무 일수보다 두 배에 달하는 50일이나 당직 근무를 해야만 했다. 


소아과에서도 의사 한 명이 은퇴하고 다른 한 명이 장기 병가를 내는 바람에 남은 의료진에게 부담이 가중된 상황으로, 이에 따라 어린이 환자의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졌으며 남은 소수의 의료진이 24시간 대기 근무를 소화하는 실정이다. 


특히 타이 라휘티 보건 지역은 국내에서 마오리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높은 빈곤율과 함께 인구 1인당 외상 발생률도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지역의 의료 수요는 넘치는 반면 의료진 부족으로 제때 적절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에 이르자 이 지역의 전문의 30여 명이 서신을 통해, 일부 분야는 필요 인력의 10~12%만으로 운영하는 실정이라면서 보건 당국에 상황의 심각성을 전하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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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랜드의 ‘다가빌 병원’


<심장마비 환자 발생했지만 의사 없어 결국…> 


한편 이보다 한 달여 전인 7월 말에 노스랜드의 ‘다가빌(Dargaville) 병원’에서는 심장마비를 일으킨 환자가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의사가 한 명도 없어 간호사가 40km 떨어진 의사와 비디오 링크를 통해 대처해야만 했다. 


노스랜드 주도인 황가레이에서 남서쪽으로 55km 떨어지고 인구 5,000명이 조금 넘는 다가빌에 위치한 이 병원은, 일반 병상 12개와 4개의 산부인과 병상을 갖추고 있으며 웹사이트를 보면 24시간 응급 서비스도 한다고 안내한다. 


하지만 환자는 결국 사망했으며 보건 당국이 환자의 사망이 다가빌 병원의 인력 부족 때문은 아니었다고 밝히고 나섰지만 이후 크리스토퍼 럭슨 총리가 각료 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책을 요구받으면서 해명에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또한 당시 크리스 힙킨스 노동당 대표는 충격적이라면서, 의료 현장에 충분한 인력을 배치해야 하지만 적절한 자금 지원이 없으면 어렵다고 지적하고 현 정부의 예산 삭감 정책을 꼬집었다.    


이어 웰링턴의 위성도시이자 5만 명이 사는 포리루아(Porirua)의 ‘케네푸르(Kenepuru) 커뮤니티 병원’도 시간 외 치료는 민간 원격진료 회사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또 전해졌다.      


사건 발생 후 다가빌 병원 간호사들은 야간에는 의사도 없이 원격 진료에 의존하면서 언제 환자가 들이닥칠지 몰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매일매일 두려움 속에 일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 간호사는 의사가 없는 시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 다가빌 병원에서는 밤에 환자가 전혀 없을 수도 있지만 다양한 상태의 환자 20명이 몰려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며 원격 진료가 도움은 되지만 실제로 환자를 현장에서 평가하는 의사가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면서, 간호사에 대한 추가 교육이나 지원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의사가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주간에도 의사가 없는 경우가 있는데 노스랜드 지역의 시골 병원들은 이미 올해 7월부터 대부분의 야간 근무 시간에 간호사가 원격 진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증 환자는 모두 황가레이 병원으로 보내고 있었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별다른 개선책이 나오지 않자 지난 8월 29일에는 ‘뉴질랜드 간호사협회(NZNO)’가 나서서 전국적으로 한 시간 동안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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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0일 시간제 파업에 나선 더니든 병원 간호사들


<미봉책으로는 감당 못 하게 된 의료 문제> 


이와 같은 심각한 상황은 비단 기즈번이나 다가빌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동안 타우포와 로토루아, 퀸스타운, 화카타네, 웨스트 코스트 등 전국 곳곳의 병원에서 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바 있다.  


오클랜드나 웰링턴, 크라이스트처치 등 대도시 지역 병원도 상황은 비슷한데, 특히 농어촌처럼 원격지 작은 병원의 사정이 더욱 안 좋으며 이는 어제오늘 생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오랜 기간에 걸쳐 적절한 인원의 의사를 확보하지 못한 채 병원이 운영돼 왔으며, 특히 최근 들어 정부의 의사 채용 제한과 예산 삭감으로 문제가 더욱 악화했다. 


더욱이 여기에는 팬데믹 이후에는 그 이전에 해외에서 뉴질랜드로 유입되던 주니어 의사의 수가 급감한 것도 또 하나의 문제로 작용했다.  



과거에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교육을 받은 주니어 의사들이 뉴질랜드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면서 경험을 쌓기도 했으나 이러한 형태의 의사 유입마저 거의 끊기면서 특히 시골 지역에서는 의사 확보가 더욱 어려워진 실정이다. 


특히 현재 정신과와 피부과, 산부인과, 영상의학, 방사선과 및 중환자실 전문의 등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충분하고 적절하게 의사를 배치하지 못하는 작은 병원들은 자구책으로 ‘텔레헬스(telehealth)’의 원격 진료에만 의존해 야간 진료를 하는 상황이다. 


기즈번 병원의 상황이 전해진 뒤 셰인 레티 보건부 장관은 해당 병원에 국제 인재 채용팀을 배치해 신속하게 채용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이 지역 병원에서 의료진이 필요할 때 다른 병원으로부터 전문 인력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미봉책으로는 부족하다는 비판도 곧바로 나왔는데 ‘Association of Salaried Medical Specialists’ 관계자는 외부 지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지역 주민은 현지에 살면서 일하는 의료진으로부터 진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역 병원이 외부에서 오는 의료진의 임시 근무에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도 비효율적인 예산 사용이라고 지적하면서, 의료진에게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관계자는, 인구도 늘었고 급성 환자도 많아졌지만 30년도 더 전인 1990년에 특정 서비스에 10명의 의사가 적정하다고 내렸던 판단을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검토해 보지 않는 등 서비스 규모를 조정하려는 당국의 의지도 없었다는 점도 함께 꼬집었다. 


cca9b87985757966cf04db6c34c8c14c_1725921286_7952.png ▲ 국내 의사 인력 구성과 변동 상황(2017~2023) 


<통계상 의사 숫자는 큰 변동 없어> 


‘Medical Council of NZ’가 발표한 ‘2023년 의사 인력 조사(NZ Medical Workforce in 2023)’에 따르면 등록 기준으로 현재 면허를 내고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의 숫자는 2017년의 1만 5,819명에서 2023년에는 1만 9,350명으로 6년 동안 매년 증가했다. 


또한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숫자도 같은 기간에 327.9명에서 372.2명으로 늘었으며, 여성 의사의 비율이 늘고 의사의 평균 연령도 조금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다른 나라에서 의대를 졸업해 의사 1차 면허를 취득하고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이른바 ‘국제 의대 졸업생(international medical graduate, IMG)’의 비율은 40%에서 41.4%로 약간 늘어났다. 


이들이 1년 후 남은 비율은 2017년의 65.7%에서 코비드-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에는 81.2%까지 올라갔다가 이듬해 77.5%로 내려왔는데, 이후 2023년에는 이 부문은 따로 집계가 안 됐다. 



이에 대해 ‘Association of Salaried Medical Specialists’ 관계자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실습 차 오던 많은 수의 주니어 의사가 있었고 국내 의료 시스템의 모든 분야는 어느 정도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팬데믹 이후 그 숫자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통계는 협회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한 것으로 실제 현장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숫자만 놓고 볼 때는 2017년과 의사의 숫자 등이 현저하게 달라진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GP 예약이 너무 어렵다거나 수술을 포함한 방사선 치료 등 진단과 치료가 제때 이뤄지지 못한다는 국민 불만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고, 의사는 물론 간호사와 조산사, 구급요원과 의료 관련 행정 인력의 급여와 인력 부족에 대한 불만 역시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의료 환경이 달라지고 또 의료 수요가 폭발했지만 대도시 및 중소 도시, 그리고 농어촌 등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지역별로 의료 인력이 효율적으로 배치되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원인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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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CH 병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주니어 의사들


<호주에 뺏기는 인력 막는 등 장기적인 국가 전략 세워야> 


의료계는 현재의 인력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 개선책으로 우선 의사 교육의 확대를 요구하는데, 특히 국내 의대 첫해 입학 정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오타고와 오클랜드대학교는 2025년부터 25명의 추가 입학생을 받아 정원이 모두 614명이 될 예정이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와이카토대학에 국내 세 번째의 의대 설립도 추진 중이지만 ‘NZ Resident Doctors’ Association’ 관계자는 의대 입학생이 졸업하는 데만 6년이 걸린다면서 추가로 300명의 정원 확대가 당장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니어 의사들이 호주로 떠나지 않도록 경쟁력 있는 근무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인력 양성에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 주니어 의사들이 실습을 마친 후 국내에 머물지 않고 호주로 떠나는데, 이에 따라 농촌이나 외곽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를 위한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의료 인력은 물론 경찰관이나 기술자, 교사 등 다양한 다른 분야에서도 뉴질랜드는 높은 급여를 미끼로 유혹하는 호주 정부나 민간 기관, 기업체로 인해 힘들여 양성한 인력을 빼앗겨 온 것은 누구나 아는 역사적인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국내의 의사 부족 문제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며 그 피해는 결국 모든 국민이 고스란히 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의료 인력 수급 계획과 더불어 현장 의료진의 부담을 줄여주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ACC와 같은 무상 의료 시스템도 늘어난 평균 수명과 고령화한 인구 구성, 그리고 치료에 들어가는 첨단 장비와 고가 의약품이 대거 증가한 현실 등을 감안해 획기적으로 뜯어고치는 등 한정된 예산과 인력, 시설과 장비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혁명적인 개혁도 반드시, 그리고 시급히 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는 의료 분야에만 한정하지 말아야 하며, 이는 뉴질랜드라는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뚜렷한 목표와 구체적인 실천 로드맵을 마련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말고 밀고 나가야 할 국가 중대사이다. 


■ 남섬지국장 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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