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에 밀려난 환경정책

경제정책에 밀려난 환경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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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 주도 연립정부가 집권하면서 가장 뚜렷하게 바뀐 정책 기조 가운데 하나가 환경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이전 노동당 정부가 추진했던 환경정책들을 접고 경제 살리기에 치중하고 있다. 작년 11월 국민당 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서 곧 회복될 것으로 기대됐던 경제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면서 정부는 더욱 경제정책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기업과 농민들은 반색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들과 야권은 반발하고 있다. 


가축 ‘트림세’ 도입 계획 철회


국민당 정부는 우선 내년부터 도입할 예정이었던 가축 ‘트림세’를 철회했다.


지난 2022년 10월 당시 노동당 정부는 2025년부터 가축의 트림 등 농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비용을 부과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메탄 배출량을 2017년 수준보다 10%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24~47%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세우기도 했다. 


농민들은 농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에 세금을 부과하려는 정부 정책에 크게 반발했다.


뉴질랜드는 세계 최대 낙농 수출국으로, 농축산업이 국가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가 전체 배출량의 절반 수준이나 된다. 


농축산업에서는 주로 메탄과 아산화질소를 배출한다.


메탄은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수십 배에 이르는 ‘최악의 온실가스’로 꼽힌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 등에 따르면 전 세계 가축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연간 약 71억 이산화탄소 환산 톤으로, 이는 지구 전체에서 한 해 동안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 수준이다.


가축에서 발생하는 메탄은 온실가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지만, 트림세 도입이 농민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국민당 정부는 지난 6월 성명을 통해 기후변화대응법을 개정, 배출권거래제에서 농축산 분야를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전 정부에서 도입하기로 한 농축산업 부문 온실가스 비용 부과 계획을 농민들의 반대로 철회키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정부는 4년간 4억달러를 투입, 농축산업 단체들과 생물성 메탄 생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토드 맥클레이(Todd McClay) 농업장관은 “메탄 백신 개발, 메탄 저배출 가축 사육 프로젝트, 메탄 및 아산화질소 억제제 연구 등을 가속할 것”이라며 “정부는 농축산업 생산이나 수출을 줄이지 않고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와 기술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 농업계는 환영한 반면 녹색당을 비롯한 야당과 환경 단체들은 반대했다.


대표적인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는 정부가 자연에 대해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농업계는 트림세의 경제적 영향과 실용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 왔으며, 이에 따라 정부가 정책을 재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논리에 밀린 환경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05년 수준의 50%까지 줄이고, 2050년까지 넷제로(탄소 중립)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하지만 뉴질랜드 경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높은 물가상승률과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환경정책 후퇴의 배경에는 낮은 경제 성장률이 있다.


뉴질랜드의 전 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마이너스(-0.4%)를 기록한 이후 4분기 제로 성장과 올해 1분기 0.1% 성장에 그친 후 2분기에 다시 마이너스(-0.2%)로 떨어졌다.


경제 둔화가 지속하자 작년 11월 출범한 보수 정권은 녹색정책을 사실상 뒤로 미루고 수출 활성화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8%에 달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수출을 늘려 위기 국면을 타개하겠다는 방침이다. 


수출은 뉴질랜드 경제의 약 4분의 1을 차지할만큼 중요한 수입원이다. 


셰인 존스(Shane Jones) 자원부 장관은 최근 “뉴질랜드의 경제 상황은 내가 기억하는 한 거의 최악”이라며 “이로 인해 광물 분야를 옹호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노동당 정부 시절 기후 변화에 대응하겠다며 영해에서 신규 석유•가스 탐사 허가권을 내주지 않기로 했지만, 새 정부는 이들 정책들을 뒤집었다.


정부는 해양 석유•가스 탐사를 허용하고 기업들이 쉽게 허가받을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정부는 연료 수출을 늘리면서 일반 소비자와 기업들을 위해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또한 향후 10년간 광물 수출액을 20억달러로 현재 대비 두 배 이상 늘리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또한 광산업체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현재의 복잡한 채굴 허가 절차를 우회할 수 있는 패스트 트랙 절차를 제안했다. 


뉴질랜드는 2022년 기준 연간 9억달러 규모의 석유를 수출했으며 석유 채굴을 통해 얻은 세수는 연 2억1,400만달러에 달한다.


정부는 특히 수출 촉진을 위해 생물 다양성 지원, 탄소 배출권 거래 촉진 등 농수산업 관련 기존 녹색정책을 유보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뉴질랜드 농수축산업은 전체 경제의 5%, 수출의 80%를 각각 차지하는 핵심 산업 중 하나다.


정부 의도대로 경제 활성화 될지는 미지수


지난 5월 국민당 주도 연립 정부가 처음으로 내놓은 2024/25 예산에는 기후 위기 대응 프로젝트 관련 예산이 삭감되거나, 이 부문에 대한 의미있는 신규 투자가 빠졌다.


환경 부문에 대한 유일한 신규 투자는 환경적인 이유로 거부됐던 프로젝트들을 다시 실시할 수 있도록 한 패스트 트랙 법안을 포함한 자원 관리 변경에 대한 2,300만달러였다.   


정부는 기후 변화 프로그램 삭감과 기후변화 위원회의 감축 등 환경 부문에 대한 각종 예산 삭감으로 연간 1억200만달러를 절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환경보호 부문에서는 연간 3,300만달러가 삭감됐다.


정부가 올해 예산에서 삭감한 기후 정책에는 지역 재생 에너지 계획, 기후변화 위원회, 환경 관련 자료를 연구하는 외부 및 내부 전문가들, 담수 정책, 자연림 조성, 재활용 관련 순환 경제 발전, 바이오 보안 등이 포함돼 있다.  


정부의 예산은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접근이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야당인 녹색당의 클로에 스와브릭(Chloe Swarbrick) 공동대표는 “정부가 기후 위기를 허용하고 기후에 대한 그들의 공격은 미래 세대에 걸쳐 파문처럼 번질 것이다”며 “현 정부는 겁쟁이들의 연립이다”고 비난했다.


스와브릭 공동대표는 “정부가 국민 모두의 웰빙 대신에 부유한 기부자들의 단기 관심에 귀를 기울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지난달 새로운 패스트 트랙 절차에 따라 신속 처리가 가능한 149개의 프로젝트 목록을 공개했다. 


149개 프로젝트 중 58개는 주택 및 토지 개발, 43개는 인프라, 22개는 재생 에너지, 11개는 광산, 8개는 채석, 7개는 양식 및 농업 프로젝트로 분류됐다.


목록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모든 프로젝트가 반드시 추진되는 것은 아니다.


야당인 노동당은 빠르게 진행되는 광산 프로젝트가 자연 환경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고 뉴질랜드의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훼손할 것이라며 정부의 패스트 트랙 프로젝트를 반대했다.


정부는 또한 지난달 하우라키 걸프(Hauraki Gulf) 보호 구역에 일부 상업용 어업을 허용하기로 해 환경단체 등과 마찰을 빚었다.


정부가 신규 석유•가스 탐사 금지를 철회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많은 양의 새로운 석유와 가스가 탐사될 지는 미지수다.


지난 9월 신규 석유•가스 탐사를 부활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던 날, 포호쿠라(Pohokura) 광구의 지분 26%를 소유한 토드 에너지(Todd Energy)는 가스 저장량 감소 등을 이유로 인력 감축을 발표한 것.


토드 에너지 측은 에너지 부문이 저장량 감소, 수 년 간의 새로운 매장 장소 미발견, 향후 노동당 정부에서 재금지 가능성 등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노동당 정부 시절 신규 석유•가스 탐사 허가권 금지를 추진했던 노동당의 메간 우즈(Megan Woods) 에너지 대변인은 “뉴질랜드는 2014년 이후 석유•가스 탐사 활동이 감소했다”며 “국민당 정부의 금지 철회가 에너지 위기를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녹색정책 후퇴에 환경단체들 반발


정부의 녹색정책 후퇴 조치에 환경단체와 야권 등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환경단체 ‘포레스트 앤 버드(Forest and Bird)’의 니콜라 토키(Nicola Toki) 대표는 “현 정부는 몇 푼의 빠른 돈을 위해 공동체를 파괴함으로써 미래 뉴질랜드인의 번영을 위험에 빠뜨리는 경제적 영향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레스트 앤 버드’ 측은 “기후위기의 한가운데서 기후 대응에 대한 투자를 외면할 수 없고, 그러한 일은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다”고 지적했다.


녹색당도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 대응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많은 기업도 이를 따라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영 항공사 에어 뉴질랜드는 지난 7월 2030년 기준 탄소 배출 목표를 철회하고 고가 친환경 연료 및 새 항공기 도입 시기도 늦춘다고 발표했다.


에어 뉴질랜드는 2030년 탄소배출량을 2019년보다 28.9% 감축하고, 절대 배출량도 16.3% 줄일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에어 뉴질랜드는 그러나 파리협정에 따른 2050년까지 탄소배출 순제로 목표는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녹색당은 성명을 통해 “정부의 기후 변화에 대한 낮은 야망이 더 많은 기업들로 하여금 에어 뉴질랜드의 선례를 따르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사이먼 와츠(Simon Watts) 환경부 장관은 “정부는 기후 변화 목표 달성을 위해 헌신하겠지만 그 방법은 직전 정부와 다를 것”이라며 “이번 정부는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와 수출을 촉진하는 부문을 폐쇄하지 않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발표된 뉴질랜드 정부 기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뉴질랜드는 2030년과 2035년 국내 배출량 감축 목표와 메탄 배출량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와츠 장관은 정부가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2035년 NDC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더 많은 나무 심기, 재생 에너지 공급 확대, 배출량 감축을 위한 첨단 기술 투자 등을 포함하는 기후 변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타고 대학의 기후변화 연구 네트워크 공동 책임자 사라 월튼(Sara Walton)은 “뉴질랜드가 기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국제적 평판과 산업 경쟁력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공급망 측면에서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들이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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