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 산불 사태가 해를 넘기며 계속돼 이웃 나라 호주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연일 전해지는 산불 소식과 함께 코알라를 비롯해 산불로 희생된 야생동물들의 참혹한 모습을 지켜보며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
끝을 가늠할 수 없도록 번지는 중인 이번 산불 사태의 원인과 경과 등 관련 내용들을 각종 자료들과 함께 국내외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해 소개한다.
지구상 가장 건조한 곳은 남극
관련 자료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은 남극 대륙 안에 있는 일명 ‘마른 계곡들(Dry Valleys)’ 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4800k2 넓이의 이곳은 극지이므로 당연히 눈과 얼음에 덮여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눈은 물론 얼음도 물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으며 흙과 암석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사막 지형이다.
이곳은 200만년 동안 비나 눈이 내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화성과 환경이 가장 흡사해 미국의 화성 탐사선인 바이킹의 착륙 실험도 이곳에서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인간이 실제로 거주하는 곳 중에서 가장 건조한 곳은 남태평양에 인접한 칠레의 ‘아타카마(Atacama) 사막’이다.
이 곳 북쪽의 도시인 ‘아리카(Arica)’ 에서는 연평균 강수량이 약 0.76mm에 불과해 연중 비가 거의 안 온다고 할 수 있는데 공식적으로도 인간 거주지 중 가장 건조한 장소로 올라 있다.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타카마 사막 내부에서는 유사 이래 비가 내린 흔적을 아예 발견할 수 없었던 지역도 있다.
물론 미국 서부의 ‘모하비(Mojave) 사막’과 함께 사막하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리게 되는 지구상 최대 크기 사막인 아프리카의 ‘사하라(Sahara)’ 역시 뜨겁고 건조한 지역들 중 하나이다.
▲ 남극의 ‘마른 계곡들’ 중 한 곳인 ‘Bull Pass’ 전경
손꼽히는 건조 지역, 호주 내륙
하지만 기후 통계 자료를 보면 호주 대륙, 그중에서도 내륙 지방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거주하는 곳 중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들 중 한 곳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손꼽혀 왔다.
일명 ‘아웃백(Outback)’ 으로 불리는 호주 내륙은 사막과 황무지로 이뤄져 여름이면 종종 붉은 모래 폭풍이 발생해 주변 마을들을 덮치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언론에 단골로 등장하곤 한다.
실제로 사하라 사막 주변 인간 거주지의 연평균 강수량이 200mm 내외인데 비해 호주 내륙 한가운데 자리잡은 도시인 앨리스 스프링스(Alice Springs)도 연 강수량이 280mm에 불과하다.
한편 이들 건조 지역들은 지구가 갈수록 뜨거워지면서 더욱 건조하고 또한 더욱 뜨거운 지역들로 급변하는 중인데, 호주 대륙 역시 예외 없이 온도가 매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반면 강수량은 줄어들고 있었다.
최근 나온 호주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호주는 연평균 기온이 지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평균과 비교해 1.5C나 높아지면서 수십년 만에 가장 더운 한 해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고온 현상은 금년 들어서도 이어지는 중인데, 지난 1월 4일 수도 캔버라는 한낮 최고기온이 44C로 역대 최고였던 1968년의 42.2C 기록을 갈아치웠다.
같은 날 시드니 서부의 팬리스 지역은 섭씨 48.9C를 기록하면서 이 역시 광역 시드니 지역에서 기온을 측정하기 시작한 1938년 이후 가장 높았다.
매일 세계 기후 정보를 전하는 ‘월드 웨더 투데이’ 자료에 따르면, 이날 지구상에서 가장 기온이 높았던 지역으로 팬리스가 올랐으며, 2위 나란데라 공항 등 10위까지 모두 호주가 차지해 호주가 초고온 현상에 시달리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나게 했다.
▲ 하늘에서 본 앨리스 스프링스 모습
인도양판 엘니뇨, ‘인도양 쌍극자’ 현상
과학자들은 이처럼 호주 대륙이 뜨거워진 데는 이른바 ‘인도양 쌍극자(indian ocean dipole, IOD)’ 현상이 심화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한다.
이 현상은 태평양에서 자주 발생해 우리에게 낯익은 ‘엘니뇨(El Nino)’ 현상의 인도양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빗대 ‘인도니요’ 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는 엘니뇨와 마찬가지로 인도양의 동쪽과 서쪽 해역의 해수면 온도 격차가 평소보다 크게 차이가 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작년 11월에 실제로 이 현상이 발생한 바 있다.
쌍극자 현상이 심화돼 서부 인도양의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는 반면에 동부에서 수온이 내려가면 아프리카 동부 지역 국가들에는 홍수가, 반면 호주에는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게 된다.
호주에서 산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작년 10월 무렵에 아프리카 동부의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소말리아 등에서는 많은 비가 내려 수백명이 사망하고 300만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한 바 있다.
문제는 앞으로 지구 온난화가 갈수록 심화돼 여름철 기온이 더욱 올라가면서 엘니뇨처럼 인도양 쌍극자 현상 역시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로 인한 이상 현상도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한편 과학자들은 이외에도 남극 대륙 상공의 성층권에서 갑작스럽게 온도가 올라가는 바람에 고온 건조한 바람이 호주 내륙에서 해안 쪽에서 계속 분 것도 이번 산불을 일으키고 더 크게 키우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벌써 스위스 면적 2배 태워버린 산불
사실 지금까지 산불은 호주에서는 매년 여름이 될 무렵이면 여러 곳에서 발생하기 시작하던 거의 연례 행사와 다름이 없었던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금년에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규모 산불이 곳곳에서 발생해 급속도로 퍼졌는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호주를 둘러싼 기후가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봄에 들어서던 작년 9월부터 이미 호주는 이상 고온을 보였는데, 이후 가뭄으로 초목들이 바싹 마른 상황에서 강풍까지 더해지자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한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이번 시즌의 산불은 예년보다 빠른 작년 9월 초부터 뉴사우스웨일즈주의 노스 코스트(North Coast)와 미드 노스 코스트(Mid North Coast), 헌터 리전(Hunter Region) 등지에서 처음 불붙기 시작했다.
이후 뉴사우스웨일즈는 물론 빅토리아주와 수도인 캔버라 인근 등 전국 각 지역으로 번지면서 12월에는 결국 뉴사우스웨일즈에서 ‘국가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가 가장 먼저 선포됐다.
지난 1월 8일까지 알려진 피해 지역은 최대 8만km2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국내외 언론들마다 제각각 달리 보도해 정확한 피해 규모는 제대로 확인조차 어려운 상태이다.
8만km2는 한국(남한) 면적의 80%에 해당하며 스위스(4만1000km2) 국토 전체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광대한 넓이이다.
또한 당일까지 인명 피해는 24명이고 주택을 포함한 건물 피해가 2500여 곳이라는 보도 역시 나왔지만 하루가 지나면 또 다시 대폭 늘어나 수정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한편 여기에 더해 200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방화나 각종 실화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새해 벽두부터 사람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 1월 초 현재 산불 발생 지역
멸종 위기에까지 처한 동물들
여기에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이자 국가적으로 관광 수입에 크게 기여하는 코알라를 비롯해 캥거루 등 야생동물들이 대거 희생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시드니대학의 크리스 딕먼(Chris Dickman) 교수는, 1월 5일에 동물 5억 마리가량이 산불로 인한 직간접적 영향으로 죽었을 것으로 추정했다가 3일 뒤에는 숫자를 10억 마리로 수정하면서 이는 보수적으로 추정한 수치라고 전했다.
더구나 이러한 희생 동물 숫자에는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나 곤충 등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산불이 휩쓸고 간 지역은 한마디로 초목은 물론 생태계가 아예 뿌리채 뽑힌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귀여운 외모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코알라의 경우 굼뜬 행동으로 인해 나무에서 제때 내려오지도 못하고 타죽었을 것이라는 보도와 함께 구조되거나 죽은 코알라의 사진과 영상들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이외에도 주머니 여우 등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수많은 토종 동물들이 희생되면서 뉴사우스웨일즈에서만 8000마리가 희생됐을 거라는 코알라를 포함해 일부 동물들은 개체 수가 급감하는 바람에 기능적 멸종 위험에 처한 실정이다.
또한 과학자들은 불이 꺼지고 동물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생태계가 완전히 훼손돼 극단적으로 어려운 생존 환경에 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는 코알라는 비록 살아남더라도 먹이가 없어져 결국 굶주림 끝에 죽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아 이래저래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구조된 코알라에게 물을 먹이는 소방관
핏빛 하늘과 태평양도 건넌 산불 연기
이번 산불은 그동안 일반인들이 불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각종 지식을 뛰어넘는 막강한 위력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하늘을 온통 시뻘겋게 변화시킨 광경은 보는 이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호주 여기저기에서 하늘이 핏빛으로 물든 가운데 1월 초에는 뉴질랜드 각지에서도 하늘이 주황색으로 변하는 이변이 발생해 호주 산불이 바다 건너 남의 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결국 산불 연기는 태평양도 건너면서 칠레까지 도달해 수도 산티아고의 하늘을 희뿌옇게 만들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또한 화재 현장에서는 보기 드문 ‘화염 토네이도(firenado)’ 까지 자주 발생해 수십m 높이로 불꽃이 치솟는 광경이 목격됐는데, 화염 토네이도는 ‘파이어 데블(fire devil)’ 이라고도 불리며 화산 분화구나 대량의 폭탄 투하 시 나타나는 현상으로 중심부는 온도가 1000C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대형 산불은 공기를 상승시켜 뇌우를 동반하는 ‘산불 적란운(pyrocumulonimbus)’을 만들어 이른바 ‘화재 폭풍(fire storm)’을 일으켰는데, 비는 내리지 않으면서 여기에서 발생한 마른 번개가 불을 먼 지역까지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번개로 불이 붙은 숲은 다시 화염 토네이도를 만들면서 공기를 상승시켜 산불적란운을 만드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게 현재 호주 산불의 실정이다.
▲ 산불 현장의 화염 토네이도와 상공에 나타난 ‘산불 적란운’
대규모 재난에 등장한 잘못된 정보들
한편 역사에 기록될 큰 재앙이 벌어지자 언론들이 앞다투어 이를 보도하는 가운데 잘못된 정보들이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괴담 수준으로 퍼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자 지난 1월 7일 영국 BBC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잘못된 정보나 영상들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면서 그 몇몇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호주 전역의 산불 발생 지역을 3D로 만든 지도 형식의 사진 한 장이었는데, 얼핏 보면 마치 현재 호주 전체가 시뻘건 불에 집어삼켜진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그러나 이는 호주 사진작가인 앤서니 허시(Anthony Hearsey)가 ‘NASA’의 화재 관측 위성 데이터를 통해 12월 5일부터 1월 5일까지 한 달간 산불이 발생했던 지역들을 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접하고 가수 리한나(Rihanna)를 비롯한 유명 연예인 등 소셜 미디어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영상을 퍼나르면서 문제가 커졌다.
또한 호주 지도를 유럽이나 미국 지도 위에 겹쳐 놓으면서 산불 발생 지역이 얼마나 넓은지 비교한 사진들도 실제는 축척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BBC는 지적했다.
▲ 착각을 불러온 앤서니 허시의 3D 사진
기후 전문가들은 ‘산불은 한 마디로 지구 온난화의 상징’ 이라고 잘라말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 산불 역시 자연재해라기보다는 인류 스스로가 초래한 인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산불 뿐만 아니라 초강력 태풍의 빈번한 등장이나 집중 호우, 빙하 유실, 해수면 상승 등의 현상을 지켜보면서 현재 지구가 숨을 헐떡이고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마다 국익을 앞세운 다툼으로 인해 인류 생존과 직결된 기후 변화 문제에 제때 대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가까운 시일 내 해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쪼록 이번 산불 사태를 통해 각국의 정치인들은 물론 지구촌 구성원 하나하나가 미래 세대를 걱정하면서 각성하는 한편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 한편으로는 다음 주 이 칼럼을 독자들이 접하기 전에 비라도 흠뻑 내려 산불이 꺼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으면 하는 마음 역시 간절하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