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부터 오클랜드 공항에서는 학비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은 채 해외에 거주하던
한 뉴질랜드 여성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언론에 관련 소식들이 연달아 보도되면서 뉴질랜드 정부의 큰 숙제거리이자 해묵은 사회적 이슈이기도 한 이 문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사건을 전한 국내 언론 기사들을 비롯해 달린 댓글 등을 통한 일반인들을 반응을 종합해 소개하면서 이와 함께 유사한 이전 사례들도 되짚어 본다.
새해 벽두부터 불거진 학자금 대출 상환 이슈
지난 1월 10일(금) 오클랜드 국제공항에서 고국을 방문했다가 해외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가려고 출국 수속 중이던 한 뉴질랜드 여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사유는 ‘학비 대출금(student loan)’을 갚지 않았기 때문.
해당 여성은 2020년 새해 들어서 학비 대출금 채무와 관련해 공항에서 체포된 첫 번째 사례였다.
당일 ‘국세청(Inland Revenue, IRD)’을 대신해 체포에 나선 경찰이 여성이 체포됐다는 사실만 언론에 확인해준 가운데 국세청 관계자 역시 세무 관련 법률(Tax Administration Act)에 따라 더 이상의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여성의 이름은 물론 나이를 포함한 구체적인 신원 정보들과 함께 현재 거주 중인 국가나 밀린 대출금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등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일체 보도되지 않았다.
한편 이번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후 정부 관계자는, 이는 쓸 수 있는 다른 모든 방법들을 사용한 후 마지막으로 시행한 ‘궁극적인 최후 수단(absolute last resort)’이었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해당 여성은 상당액을 연체했거나 아예 처음부터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외국에 거주하면서 여러 차례 국세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응하지 않았던, 한 마디로 국세청 입장에서 볼 때는 이른바 ‘악성 채무자’로 분류했던 대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식은 당일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국내 언론에 널리 보도됐으며 이와 관련된 후속 기사들도 며칠에 걸쳐 잇달아 보도되면서 오래 전부터 사회적 정치척 이슈였던 문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또한 관련 기사들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고 체포 행위 자체에 대한 찬반 양론을 포함한 현행 학자금 대출 제도의 문제점들이 거론된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의 학위가 구직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면서 대학 공부의 무용론까지 제기하기도 했다.
4만불이 13만불로 늘어난 ‘푸나’ 사건
지금까지 학비 대출금 문제로 체포됐던 사례 중 세간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경우는 지난 2016년 초 발생했던 쿡 아일랜즈(Cook Islands) 출신의‘나토코토루 푸나(Ngatokotoru Puna, 당시 40세)’사건이다.
그해 1월 18일 오클랜드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던 푸나는 경찰에 체포돼 유치장에 구금됐는데, 그는 당시로부터 20년 전에 오클랜드 대학에서 ‘Bachelor of Arts’ 학위를 마치는 과정에서 모두 4만달러의 학자금을 빌렸다.
그러나 이후 대출금을 전혀 갚지 않은 상태에서 2004년부터는 쿡 아일랜즈의 라로통가(Rarotonga)로 이주해 살았는데, 그는 당시 쿡 아일랜즈 정부 총리였던 헨리 푸나(Henry Puna)의 조카로도 알려진 바 있다.
대출금은 연체이자까지 붙어 체포될 당시에는 총 13만 달러에 달했는데, 현지의 테레오라(Tereora) 칼리지 수학 교사인 그는 오클랜드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 후 출국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그는 처음에는 분실한 여권 대신 발급받은 임시여권 때문에 출국심사가 지체된 것으로 생각했지만 경찰관이 다가와 자신을 학비 대출금 때문에 체포한다고 했을 때 농담인 줄 알았다고 말했었다.
당시 7시간 동안 처음으로 유치장에 갇혔봤다던 그는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고 말했는데, 1월 22일에 마누카우 지방법원에 출두한 푸나는 부모로부터 급하게 빌린 5000달러를 지불하고 향후 변제 계획서를 국세청에 제출한 뒤에야 여권을 돌려받고 출국할 수 있었다.
▲ 나토코토루 푸나
연체자 체포 발표는 IRD의 ‘충격 요법’?
자녀가 5명인 푸나가 구금됐다는 소식은 라로통가에 있던 그의 가족들을 크게 놀라게 했는데, 그의 아내는 뉴질랜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잘못은 틀린 주소지로 날아왔던 뉴질랜드 국세청의 편지를 받아보지 못한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푸나 역시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의 실수는 학자금 대출을 상환해야 되는 수준에 연봉이 도달했던 5년 전에 국세청과 접촉하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주장했는데 사건 발생 당시 그의 연봉은 3만5000달러였다.
법정에서 그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국세청에 빚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이후 법정 밖에서는 자신이 시범 케이스로 걸린 것 같고 마치 범죄자처럼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푸나 사건 당시에도 스티븐 조이스(Steven Joyce) 고등교육부(Tertiary Education) 장관과 국세청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법정을 통해 알려진 것 외에는 특정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또한 그 당시 조이스 장관은, 학비 대출금은 차후에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하기 때문에 기존 대출자들은 상환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만약 재정적 문제로 상환이 어려우면 국세청과 논의할 수 있다면서 체포는 최후 수단일 뿐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4년 전 당시에 푸나의 체포와 법정 출두 소식이 보도되자 그 이튿날부터 국세청의 전화나 이메일에는 불이라도 난 것처럼 각종 문의가 쏟아졌었다.
연락했던 이들은 대출금을 계속 갚지 않으면 결혼이나 장례식, 또는 중요한 일로 뉴질랜드를 찾았다가 출국은커녕 감옥행을 당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내용들이 주였으며 특히 질문자 대부분이 호주 거주자였다.
앞서 언급한 금년 1월 10일 발생한 체포 사건은 4년 전 연초에 발생했던 푸나의 사례와 1월이라는 발생 시기는 물론 사건 전개 과정이 대단히 흡사하다.
또한 이와 관련해 언론을 대한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과 대처 방법 역시 엇비슷한 것으로 볼 때 당시 푸나가 운운했던 시범 케이스였다는 불만 제기는 일견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한편 이번 사건 역시 관련 소식을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기사들에 딸린 댓글들을 볼 때, 당연히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뤄 4년 전 푸나 사건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공항 체포까지 규정한 제도는 2014년 도입
이처럼 장기간 학비 대출금을 갚지 않은 채 외국에 체류하는 사람들을 고의적으로 빚 상환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해 형사 처벌까지 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은 국민당 정부 시절인 지난 2014년 3월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 법률에 따라 연체자가 뉴질랜드 여권을 발급받으려 할 때는 여권 발급 주무부서인 내무부(Department of Internal Affairs)와 국세청 간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또한 출입국 심사기관은 국세청이 통보한 인원에 대해 출국을 보류시키고 연락을 받은 경찰은 연체자를 체포해 구금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법원은 이들의 여권이나 항공권까지도 압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막상 법률이 도입되긴 했지만 실제로 물리력을 동원해 체포까지 이뤄진 것은 2년 정도가 지난 2016년 1월에 발생한 푸나 사건이 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나 사건으로 인해 당시 뉴질랜드에서는 고국에 오고 싶어도 감옥에 갈까 오지 못하는 이른바‘학비 대출금 난민(student loan refugees)’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바 있었다.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2016년에 3명, 2017년 한 명 그리고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2명씩 매년 2,3명 정도의 소수 인원만이 체포됐던 것으로 알려져 실제 체포에서 구금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미뤄볼 때 국세청에서는 일종의 경고성 충격 요법이자 언론 플레이의 일환으로, 특히 해외에 거주하는 뉴질랜드 국민들이 많이 귀국하는 연초의 휴가철을 노려 일부러 이와 같은 사례를 만들어 널리 알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푸나와 체포됐던 다른 이들이 대출금 상환을 약속대로 하는지 등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따로 알려지지 않아, 체포 사실 자체를 놓고 제도의 효율성까지 논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일이 해외 거주 연체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을 안긴 것만큼은 분명하다.
연체금 총 15억달러, 해외 거주자가 91%
이 같은 판단은 특히 체포된 이들로부터 당장 회수하는 금액이 전체 연체된 금액에 비해 그리 많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만약 국세청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연체자들을 잡고자 나선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을 체포할 수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상을 하게 되는 배경 중 하나는, 현재 너무도 많은 이들이 학비 대출금 상환을 연체하고 있다는 점인데 ‘Student Loan Scheme Annual Report 2019’에 따르면 2018/2019년도 학비 대출금 잔액은 총 160억달러에 달한다.
이 중 연체금은 2018년 기준으로 15억달러에 이르며 당해년도에 연체자 숫자 증가율도 2.7%에 달했는데, 특히 전체 연체금액 중 91%가 해외 거주자들의 연체금이며 그 대부분이 호주에 거주하는 뉴질랜드 시민들의 연체금이다.
이는 결국 한 두 사람을 체포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또한 다른 각도로 본다면 호주에 거주하는 연체자 문제만 해결해도 상당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뉴질랜드 국세청도 당연히 이 점을 의식, 지난 2016년 중반부터는 호주에 거주하는 뉴질랜드 국민이 세금을 낸 실적이 있으면서 대출금을 미상환한 경우 그 신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호주 세무 당국과 협력하고 있다.
국세청은 획득한 신상 정보를 이용해 당사자와 이메일, 전화나 편지 등으로 직접 접촉하거나 때로는 호주 현지의 채권 추심 업체까지 동원한다.
이에 따라 지난 2016/2017년에 국세청은 호주 세무 당국으로부터 받은 자료들 중 5000명 분량을 추심업체에 보내 그 해에 190명의 채무자들로부터 170만달러의 학비 대출금을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들 연체자들 중에는 해외로 나간 뒤에는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한 푼도 갚지 않고 버틴 경우도 많은데, 그러다보니 이자에 이자가 붙어 수십년이 지나면서 전체 채무액이 현재는 수십만 달러까지 누적된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오래 전 자료이기는 하지만 지난 2012년 자료를 보면 고액 체납자 Top 10의 평균 미상환액이 1인당 무려 29만 달러가 넘었으며 대부분이 해외 체류자였는데 지금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NZ 납세자 “내 돈 돌려줘!”
이처럼 국내에서 공부할 때는 학비를 대출받은 뒤 외국에서 살고 돈까지 벌면서 갚기는커녕 나몰라라 하는 연체자들을 향한 내국인들의 눈길이 결코 고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2016년 1월 푸나 사건 당시에 댓글을 달았던 한 독자는, 자신이 ‘뉴질랜드 납세자(NZ tax payer)’로서 딱 한마디만 한다면서 “내 돈 돌려줘(Pay back my money!)”라고 외쳤다.
이번 오클랜드 공항 사건 이후 등장한 여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한편 댓글 작성자들의 성향을 추정해 분석해보면 국내외 거주지에 따라, 또한 대출금이 남았거나 다 갚은 경우, 그리고 나이대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문제를 대하는 태도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한 외국 거주자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정규 일자리와 함께 파트타임도 병행했었다면서 당연히 갚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대체적인 여론이 이처럼 형성된 배경에는 현재 대출금 상환이 크게 무리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자리잡고 있다.
현재 학비 대출을 받은 뒤 국내 체류자로 인정받는 이들은 일단 이자를 물지 않는데, 일년 중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뉜 183일 중에서 최소한 32일만 머물면 국내 거주자로 인정된다.
이자는 매년 4월 1일자로 바뀌며 현재는 4%인데, 외국 거주자는 자신이 이전에 받았던 대출금의 규모별로 연체를 피할 수 있는 상환 최소액이 각각 다르게 책정된다.
대출금이 1000달러에서 1만5000달러 사이인 경우 매년 9월 30일과 3월 31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최소 500달러씩을 상환하면 되며 만약 대출금이 더 많았다면 지불해야 하는 최소금액도 늘어난다.
또한 대상자 상황에 따라 국세청도 상당히 유연하게 처리하는데, 이번 체포 사건 직후 국세청 대변인도 “외국 거주하는 대출자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다만 얼마씩이라도 상환하라는 것이고, 또 만약 재정적으로 어렵다면 언제든지 연락주면 직원들이 ‘다양한 구제 선택안(various relief options)’을 가지고 도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국세청 관계자는, “만약 7만5000명의 악성 채무자를 가진 은행이라면 어떻게 하겠냐?”라고 반문하면서, 현재 시행 중인 제도를 바꿀 의사가 없다고 밝혀 지금과 같은 운영 방식은 계속될 예정이다.
학위 효용성에 의문 던지는 이들 많아져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돼 등장한 눈여겨 볼 사항들 중 하나는, 연체자의 체포나 방식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 학위의 효용성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종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소식이 전해진 후 각 언론에 투고됐던 ‘개인 의견(opinion)’ 형식의 기사들을 통해 많이 제기됐으며 여기에는 댓글도 많이 달렸다.
특히 대학이나 그 이상 과정을 마치고 나서도 원했던 분야나 수준의 직장을 얻지 못했거나 또는 일을 하더라도 보수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 과연 빚을 내가면서까지 공부할 필요성이 있었느냐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
주로 젊은 층으로 보이는 이들의 주장은, 이미 오래 전에 21세기 정보화 사회로 진입한 현대 사회가 이전에는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서 기존 패러다임이 크게 바뀐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학 교육과 직업 사이의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엷어지면서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심화될 것인데, 이는 향후 청소년들의 진학 과정은 물론 교육기관들 나아가서는 국가의 교육 시스템 자체에도 영향을 미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더욱 더 개인 중심적으로 변하고 세대와 계층 간 갈등의 심화와 함께 사회적 다양성도 확대되는 지금 세상에서 이 같은 변화를 따라가자면, 상환과 연체 징수 방식을 포함한 기존의 학비 대출금 제도 역시 조만간 크게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