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리터당 2달러 중반선까지 올라섰다. 연립정부를 이끄는 노동당은 정유사들이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며 기름값 급등의 주범으로 정유사들을 지목한 반면 야당인 국민당은 정부가 기름에 너무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며 정부 여당을 비난했다. 기름값은 이제 서민들의 일상 생활을 위협하는 당면 문제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뉴질랜드 휘발유값 세계 평균보다 40% 이상 높아
요즘 휘발유값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현재 시세로 2.60달러인 1985년을 제외하고 사상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레이트 배리어 아일랜드(Great Barrier Island)와 채텀 아일랜드(Chatham Islands) 등 일부 섬 지역에서는 이미 지난 5월 무연휘발유(옥탄가 91) 가격이 리터당 3달러를 넘어서며 유가 3달러 시대를 예고했다.
세계 150여 개국의 연료비를 매주 조사하는 GlobalPetrol Prices.com의 지난달 22일자 발표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53달러로 세계 평균 1.79달러에 비해 41.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73달러를 기록한 이웃 호주보다 46.2%나 비싸고, 2.28달러의 한국보다도 11% 높은 가격이다.
이 자료를 보면 최근 국가 파산상태에 이른 베네수엘라는 휘발유값이 물보다 싼 1센트에 불과했다.
홍콩이 3.35달러로 휘발유값이 가장 높았고, 노르웨이 3.09 달러, 바베이도스 2.98달러, 아이슬랜드 2.95달러, 네덜란드 2.91달러 순이었다.
하지만 소득에서 휘발유값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뉴질랜드가 이들 나라보다 휠씬 높았다.
블룸버그가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리터당 휘발 유값이 2.32달러인 뉴질랜드는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6%로, 휘발유값이 3.41달러로 가장 높은 홍콩의 소득 대비 휘발유값 지출 비중인 0.49%의 다섯 배를 넘었다.
소득 대비 휘발유값 지출 비중이 뉴질랜드보다 높은 나라는 브라질(2.80%), 사우디아라비아(2.87%), 그리스(2.95%), 캐나다(3.01%), 남아프리카공화국(3.64%), 멕시코(3.94%) 등에 불과했다.
이처럼 뉴질랜드의 소득 대비 휘발유값 지출이 높은 것은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많이 이용하는 등의 이유로 1인당 연간 기름 소비량이 672리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는 높은 휘발유값이 서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국제유가 상승, 환율 하락, 유류세 인상 등으로 기름값 급등
기름값은 통계청이 조사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구성 비중은 4%에 불과하지만 지난 3사분기 인플레이션 0.9% 의 30%와 연간 인플레이션 1.9%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지난 1년 동안 가파르게 올랐다.
사업혁신고용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뉴질랜드로 기름을 수입하는 비용은 리터당 30센트 감소했지만 소매 휘발유값은 42센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로 국제유가 상승에 기인한 것으로 1년전 배럴당 50 미국달러 중반이었던 국제유가는 최근 80미국달러를 넘어서다가 주춤하고 있다.
브렌트유는 지난달 3일 배럴당 86.29미국달러까지 치솟아 2014년 10월 29일(87.12미국달러)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여기에다 뉴질랜드달러화는 올해 들어 미국달러화에 대해 9.8% 평가절하됐다. 뉴질랜드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같은 금액으로 수입하는 기름량이 적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유가 상승의 요인이 된다.
또한 7월 1일부터 오클랜드 지역에서 GST 포함 리터당 11.5 센트의 지역 유류세가 도입된데 이어 9월 30일부터 전국적으로 유류 물품세가 3.5센트 인상되면서 기름값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정부 여당과 정유사들간 책임 공방
재신더 아던(Jacinda Ardern) 총리는 지난달 8일 기름값 급등에 대해 소비자들이 바가지 쓰고 있다며 정유사들에 책임을 떠넘겼다.
아던 총리는 공정 거래를 조사하는 상업위원회에 정유사들의 가격 담합 등 유류 시장을 조사할 수 있는 더욱 많은 권한을 주는 입법을 조속히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정유사들은 오클랜드 지역 유류세 도입과 유류 물품세 인상이 기름값 상승의 원인이라며 반박했다.
국민당 사이먼 브릿지스(Simon Bridges) 대표는 정부가 55억달러의 재정 흑자를 보이고 있는데도 유류세를 인상했다며 이를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오클랜드 지역 유류세가 신설된 이후 일부 지역 카운슬들도 징수가 용이하고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 유류세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자 아던 총리는 자신의 임기 중에 추가의 지역 유류세 승인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사업혁신고용부에 따르면 휘발유 소비자 가격이 리터당 2.459달러인 경우 정유사에 오기까지의 비용이 약 38.3%인 0.943달러이고 각종 세금이 47.9%인 1.177달러이며 나머지 13.8%인 0.339달러가 정유사들의 간접비용과 이익으로 분석됐다.
각종 세금에는 전국육상교통기금을 위한 물품세와 ACC 부담금, 지역 유류세, GST, 배출권거래제 등이 포함돼 있다. 뉴질랜드의 휘발유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0%가량인 한국보다는 낮지만 일본(41.57%)이나 캐나다(31.21%)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다.
국제유가 수요둔화로 하락 전망
기름값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오르면서 생활고가 가중된 시민들은 지난달 26일 전국의 모든 주유소들을 찾지 말자는 휘발유 불매 운동을 진행했다.
4만여 명의 운전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휘발유 불매 운동의 주최 측은 앞으로도 정유사들에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름값 상승으로 큰 타격을 받은 운송회사들도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15일 RNB 트랜스포트가 주최한 시위에는 약 200대의 트럭이 오클랜드 실버데일에서 도심까지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는 운행을 했다.
운송업계는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거의 모든 상품이 트럭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기름값 인상은 모든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자동차협회는 휘발유값을 절약하기 위해 많은 운전자들이 자가용 운행을 줄이면서 배터리가 방전되어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운전자들에게 반가운 소식도 있다. 웨스트팩이 지난달 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가 3달러 시대는 가까운 장래에 오지 않을 듯하다. 웨스트팩은 10월초 이후 하락세인 유가가 내년에는 더욱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주된 이유는 현재 정점에 이른 세계 경제가 내년에 위축되면서 기름 수요가 둔화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과 유럽의 경제는 둔화하기 시작했고 호조를 보이는 미국 경제도 언제까지나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땅 속에서 생성된 원유가 지표면 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유기물을 함유한 암석을 뜻하는 셰일층에 갇혀 있는 오일인 셰일오일이 국제 유가 상승을 억제할 것이란 관측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저금리로 대규모 투자를 한 미국은 셰일오일 증산에 힘입어 이미 세계 1위 산유국이 됐다.
웨스트팩은 마지막으로 뉴질랜드달러화가 안정을 찾아 수입 유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웨스트팩이 내년 유가 하락을 전망했지만 2019년과 2020년에 예정된 유류 물품세 추가 인상과 불안정한 중동 정세, 그리고 북반구 나라들에서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방에 따른 기름 수요 증가 등으로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