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가장 혹독한 계절인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특히 집값과 렌트비가 저소득층에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른 오클랜드에서는 올 겨울 길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사상 최고를 보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복지 선진국 뉴질랜드지만 주택난과 사회 양극화로 노숙 문제는 날로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생각보다 심각한 홈리스 문제
정부가 지난 2월 내놓은 ‘뉴질랜드 주택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공식 집계되지 않고 숨겨진 홈리스 인구가 예상외로 많고 작년 주거 지원을 신청한 노숙자의 80-90%는 신청자가 너무 많아 거절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노숙자 수는 앞으로 정부가 노숙자 대책을 본격적으로 실시함에 따라 더 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숙자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나 5년마다 실시되는 인구 센서스에서 살펴볼 수 있다.
2013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뉴질랜드인 100명 중 1명은 노숙에 가까울 정도의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는 2006년 센서스의 120명 중 1명, 2001년 센서스의 130명 중 1명에 비해 노숙 문제가 점점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클랜드 카운슬은 작년 7월 오클랜드의 노숙자 수가 2013년 인구 센서스보다 3,000명 많은 2만 3,409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미국 예일 대학은 작년에 길거리, 긴급 주택, 열악한 피난처 등에서 사는 뉴질랜드인들이 4만명을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국민 1인당 노숙 인구가 가장 많고 호주의 2배 수준이라는 낯뜨거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아 국영주택을 신청한 대기자 수는 작년 4사분기에 7,725명으로 이전 분기에 비해 5% 증가했다.
사업혁신고용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부족한 주택 수가 7만 1,000채이고 오클랜드는 4만 5,000채의 주택이 부족한 상황이다.
오클랜드 빈곤퇴치 행동본부의 알리스테어 러셀 (Alistair Russel) 본부장은 “우리는 매일 자동차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만나고 10-12명의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며 살 곳이 없는 사람들을 모텔에서 지내도록 돕고 있다”며 “홈리스는 끔찍하고 커다란 사회 문제이다”고 전했다.
러셀 본부장은 이어 “만성적인 주택 부족과 구입 불가능한 주택 가격으로 노숙 문제는 점점 악화되고 있고, 정부의 일관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모텔의 잊혀진 사람들
거주할 곳이 없어 국영주택을 신청한 사람들 가운데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정부 단체 주선으로 모텔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 2월 국영주택 입주 통지를 받은 토니-앤 에이체슨(Toni-Ann Aitcheson)도 9개월 동안 모텔에서 홀로 지내며 국영주택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유방암과 심장질환이 있는 그녀는 모텔에서 지내는 동안 각종 병마와 싸우면서 심신이 지쳤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우리는 모텔로 보내져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없이 스스로 보살펴야 한다”며 “사회에서 잊혀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속내를 밝혔다.
그녀는 국영주택에서 살게 되면서 모텔을 떠났지만 모텔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녀의 옆 방에는 역시 국영주택 자리를 기다리는 다섯 식구의 가족이 살았다는 것이다. 작년에 살던 집의 화재로 모텔에서 지내게 된 이 가족은 모텔로 온 이후 아이를 출산하면서 조용한 성격의 엄마는 좁은 모텔 방에서 3명의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모텔로 옮기면서 딸이 모텔에서 살 수 없어 친척 집으로 간 딸과 생이별한 엄마도 에이체슨이 모텔에서 만난 가슴 아픈 사연의 한 사람이다.
정부 노숙자 주거시설 마련에 1억달러 투입
노숙자 구제는 재신더 아던(Jacinda Ardern) 총리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이에 아던 총리와 필 트와이포드(Phil Twyford) 주택장관은 지난 4일 많은 노숙자들이 있는 오클랜드 망게레의 테 푸에 마라에(Te Puea Marae)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주거시설을 마련하는데 1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노숙자들을 모텔에서 지내게 하는 비용 800만 달러를 포함해 3,700만 달러는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1,500채의 단기 주거시설 마련에 사용되고 나머지 6,300만 달러는 가장 취약한 가족들을 위한 장기 대책에 투입된다.
이 장기의 주택 퍼스트 프로그램은 향후 4년 동안 1,450 취약 가족들을 임시 주거지에 보내는 것보다 바로 영구 거주 시설에 살도록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던 총리는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노숙자가 없어야 한다”며 “1억달러로 노숙 문제를 완전 해결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노숙자들이 영구적으로 머물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추가 예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와이포드 장관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고, 이번 겨울 주택공급을 급히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와이포드 장관은 뉴질랜드에서 국영주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1만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숙자 많은 오클랜드, 빈 집도 많아
정부는 약 4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집이 아닌 차, 텐트, 창고 등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노숙자의 절반 이상이 오클랜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클랜드는 잠 잘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3만채 이상의 집들이 사람이 살지 않고 빈 채로 있어 대조를 이룬다.
크라이스트처치 진보 네트워크의 존 민토(John Minto) 의장은 오클랜드에 3만3,000채의 빈 집들이 있으면서 정부가 노숙 가정의 모텔 거주 비용으로 수 백만달러를 사용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민토 의장은 2016년 6월 기준으로 오클랜드에 3만 3,000채의 빈집이 있고, 6.6%의 빈집 비율은 호주의 어떤 도시들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빈집에 세금을 부과하는 캐나다 밴쿠버처럼 오클랜드도 빈집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빈집세는 집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시기에 많은 ‘유령’집들을 렌트 시장에 내놓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트와이포드 장관은 정부는 현 단계에서 빈집세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트와이포드 장관은 또한 재개발 몇 달 전에 집을 비우도록 하고 있는 하우징 뉴질랜드(Housing NZ)의 정책에 대해서도 간섭할 뜻이 없음을 비추었다.
그는 “국영주택이 개조되는 동안 세입자를 옮기는 결정은 하우징 뉴질랜드의 운영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몬테 세실리아 하우징 트러스트(Monte Cecilia Housing Trust)의 버니 스미스(Bernie Smith) 회장은 하우징 뉴질랜드는 대체 건물을 지을 준비가 되기 전까지 국영주택을 철거하지 않아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