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은퇴위원회(Retirement Commission)는 법적으로 3년마다 은퇴 소득 정책에 대한 개선방안을 국회에 제출할 의무가 있다. 작년 말에 제출한 최근 보고서에서 은퇴위원회는 노령연금(Superannuation)에 대한 대폭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이민자의 수급조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눈에 띈다.
은퇴위원회, 노령연금 대폭적인 변화 촉구
이번에 은퇴위원회가 제안한 내용은 연금수급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7세로 상향조정하고 뉴질랜드 거주기간을 최소 10년에서 25년으로 크게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노령연금 펀드에 대한 납부를 재개하고 비자격 배우자에 대한 옵션을 철폐해 65세 이하이거나 거주기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65세 이상의 배우자를 통해 노령연금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해외 연금에 대한 직접 차감 방식을 바꾸고 보조 수당을 검토하여 적용하는 것도 은퇴위원회의 주문에 포함돼 있다.
최소 거주기간 조건 10년에서 25년으로
특히 뉴질랜드 최소 거주기간을 현행 10년에서 25년으로 대폭 늘리는 방안은 이민자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대로 시행될 경우 단순하게 적용해서 이민자가 적어도 40세에 뉴질랜드에 와서 계속 살아야 65세에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현행 노령연금을 받기 위한 조건은 ■ 만 65세 이상 ■ 뉴질랜드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 ■ 신청일 기준 뉴질랜드 거주 ■ 20세 이후 뉴질랜드에서 거주기간이 10년 이상이어야 하며, 그 가운데 5년은 50세 이후에 거주해야 한다.
은퇴위원회의 다이앤 맥스웰(Diane Maxwell) 위원장은 노령연금을 받기 위한 뉴질랜드의 현행 거주조건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극단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즉 OECD 회원국들의 평균 거주기간 조건은 26년인데 비해 뉴질랜드는 최소 10년만 거주하면 된다는 것이다.
맥스웰 위원장은 “노령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20세 이후 25년 동안 ‘보통 거주인’으로 뉴질랜드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연금을 받기 전에 어려운 시기를 맞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복지 혜택을 주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은퇴위원회는 그러나 해외에 살고 있는 뉴질랜드인들에 대한 적용 방법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은퇴위원회는 권고한 내용들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시행에 앞서 세부사항을 보완해야 하지만 신규 이민자에게 즉각 적용하고, 현재 뉴질랜드에 살면서 앞으로 해외에 나가 일할 계획이거나 이미 해외에 살고 있는 뉴질랜드인에게는 단계적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10년의 최소 거주기간 조건은 대부분의 이민자가 영국 출신이었던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들의 영국 연금은 뉴질랜드 노령연금에서 차감될 수 있었고 납세자들은 뉴질랜드와 본국에서 연금 비용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이민자들이 국가적인 연금제도가 없는 중국 등과 같은 국가 출신으로 뉴질랜드 노령연금을 남용한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제기되면서 은퇴위원회가 거주기간 강화를 권고하게 된 것이다.
뉴질랜드 퍼스트당 거주기간 강화 법안 제출
노령층에 지지 기반을 두고 있는 뉴질랜드 퍼스트(New Zealand First)당은 거주기간 조건을 늘리는 것은 당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윈스턴 피터스(Winston Peters) 대표는 “뉴질랜드에 거주한지 10년 밖에 안되는 이민자들이 노령연금 혜택을 누린다는 사실을 걱정해야 한다”며 “55세에 이민와서 10년간 직접적인 세금은 내지 않다가 65세가 되면 연금을 전액 받는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퍼스트당은 이미 지난해 10월 데니스 오루크(Denis O’Rourke)의원이 노령연금 수급자격의 최소 거주기간을 10년에서 25년으로 변경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오루크 의원은 “뉴질랜드 노령연금은 재산 심사없이 65세에 전액 받는데 10년의 거주기간은 세계적 기준으로도 매우 짧은 기간이다”며 “평균 기대수명을 감안하면 노령연금은 개인당 20년 동안 46만달러가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오루크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25년의 거주기간 조건이 이민자뿐 아니라 해외에서 살다가 귀국하는 뉴질랜드인에게도 적용되어 60만명으로 추산되는 호주 거주 키위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행 뉴질랜드와 호주는 사회보장협정이 체결돼 호주에 거주하는 기간은 노령연금 목적상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기간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65세에 호주에서 은퇴하여 돌아오는 뉴질랜드인은 바로 노령연금 수급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오루크 의원은 “법안대로 된다면 65세에 노령연금을 받기 위해 뉴질랜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이라고 말했다.
정부측 “급진적인 변화는 없을 것”
연금수급연령을 67세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은퇴위원회는 이전에도 같은 방안을 제기했으나 이번에는 2027년부터 2034년까지 8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67세로 조정한다는 점이 다르다.
거주기간 조건 강화에 대해 지지하는 뉴질랜드 퍼스트당은 수급연령 상향조정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맥스웰 위원장은 “사람들이 더욱 오래 살고 오랜 기간 노령연금을 받는 상황을 알면서도 아무 대책을 취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더욱 고통스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맥스웰이 역시 위원장으로 있는 재무능력위원회에 따르면 노령인구 증가와 평균수명 연장으로 노령연금 비용이 110억달러에서 20년 안에 360억달러로 3배 이상 급증할 전망이다.
맥스웰 위원장은 또 “지금 노령연금에 변화를 준다면 사람들이 장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령연금에 대해 존 키(John Key) 전 총리는 65세를 고집하면서 변화가 없을 것으로 얘기했지만 보수적인 빌 잉글리시(Bill English) 총리가 들어서면서 변경 가능성이 이전에 비해서는 높아진 상황이다.
정부측은 은퇴위원회의 권고 사항들을 검토하겠지만 급진적인 변화는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스티븐 조이스(Steven Joyce) 재무장관은 “노령연금은 비교적 감당할 수준에 있다”며 “현행 노령연금 체제에서 큰 변화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노령연금 비용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4.9%에서 2060년에는 7.9%로 증가할 것으로 재무부는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OECD 회원국 평균 9%보다 낮다는 것이다.
오클랜드 대학 은퇴정책연구소의 수잔 세인트 존(Susan St John) 소장은 “은퇴위원회의 많은 제안들은 커다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 이전에 이미 은퇴했거나 노령연금 자격이 되지 않지만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