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초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뉴질랜드 공군(RNZAF)이 노후화된 ‘해상초계기(maritime patrol aircraft)’와 ‘수송기(transporters)’를 일본제 군용기들로 교체하기 위해 구매 협상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무기수출 지원에 총력 기울이는 일본 정부>
당시 보도에는 양국이 수천억 엔에 달하는 ‘P-1 해상초계기’와 ‘C-2 수송기’ 구매를 놓고 논의 중이며, 이와 관련해 뉴질랜드 정부가 작년 9월 정보 제공을 요청해 금년 상반기에 가격 및 제조와 관리, 수리에 대한 자료를 제출할 것이며 올 여름(북반구) 무렵에 뉴질랜드 정부가 이를 결정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이들 비행기를 제작하는 가와사키(Kawasaki)중공업 담당자가 보도되기 전 주에 웰링턴을 방문해 논의를 시작했는데, 이는 2014년 일본의 무기수출 금지가 해제된 이후 일본의 전후 최대 무기수출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더불어 일본은 뉴질랜드와 방위장비와 기술 이전 협정을 체결하는 협상에도 착수할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는데, 실제로 이는 뉴질랜드 정부가 작년 11월에 향후 20년간의 국방계획이 담긴 20억 달러 예산의 ‘국방백서(Defence White Paper)’의 계획을 발표한 뒤 등장한 무기 구입과 관련된 큰 뉴스였다.
당시 제리 브라운리(Jerry Brownlee) 국방부 장관은 10억 달러 예산으로 10년 내 현재 뉴질랜드 공군의 ‘P-3 오라이온(Orions) 초계기’와 ‘C-130 허큘리스(Hercules) 수송기’, 그리고 B757 여객기를 교체하겠다고 밝혀 이번 일본 언론의 보도는 양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일본은 자위대 관리 말을 인용해, 해상초계기 분야에서는 미국 보잉(Boeing)사의 ‘P-8A 포세이돈(Poseidon)’, 그리고 수송기는 유럽 에어버스(Airbus)사와 경합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언급한 바 있다.
<일본의 희망으로 끝날 가능성도>
그러나 보도 며칠 뒤 뉴질랜드 정부는 이를 부인했는데, 국방부 대변인은 작년 이뤄진 최초의 정보 제공 요청에 여러 나라 군수업체들이 반응했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협상도 개시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금년 안에는 군용기 교체에 대한 정부의 어떤 결정도 없고 2018년 중반에야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이며, 이와 관련해 그동안 일본 정부나 가와사키중공업 관계자의 방문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 따라 일본 언론의 이번 발표 역시 작년 4월에 호주를 상대로 벌어졌던 디젤 잠수함 판매 협상에서 일본이 실패했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집단적 자위권이 헌법으로 금지됐던 일본 정부는 2012년 말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들어선 후 해외무기시장에 진출하고자 2014년 4월에 이른바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마련해 종전까지 무기와 관련 기술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던 ‘무기수출 3원칙’을 폐기했다.
새로 등장한 ‘3원칙’은 △분쟁 당사국과 유엔 결의에 위반하는 경우엔 수출하지 않으며 △평화 공헌과 일본 안보에 기여하는 경우에 한해 수출, △상대국이 무기를 목적 이외로 사용하거나 제3국에 이전할 땐 적정한 관리가 확보되는 경우로 한정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는 이후 무기수출에 발벗고 나섰는데, 작년 4월에 콜린스(Collins)급 잠수함 대체에 나선 호주가 일본 소류급 잠수함 구입에 거의 다다른 것처럼 보도됐지만 결국 프랑스 DCNS사의 ‘쇼트핀 바라쿠다(Shortfin Barracuda)’로 낙찰되기도 했다.
12척이나 됐던 당시 거래 규모는 500억 호주 달러에 달했는데, 일본은 당시 호주 토니 애벗(Tony Abbott) 총리와 아베 총리 간 밀월 관계에 안심했다가 호주가 맬컴 턴불(Malcolm Turnbull) 총리로 바뀐 뒤 프랑스의 막판 공세로 쓴 맛을 봤다.
특히 당시 프랑스가 호주 조선소에서 제작하겠다는 등 경제적 파급 효과까지 고려했던 점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국가 경제와 함께 유권자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제안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데다가 무기수출 경험이 적었던 일본의 미숙함 또한 패인의 하나로 지목된 바 있다.
<현재 NZ 공군의 군용기 상황은?>
많은 독자들이 알다시피 뉴질랜드 내에서 이른바 전투기라는 기종은 공군박물관을 포함한 몇몇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뿐 현재 뉴질랜드 공군에는 전투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예 없다.
이는 지난 2001년에 헬렌 클락 총리의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당시 보유 중이던 17기의 ‘A-4 스카이호크(Skyhawk)’ 전투기를 모두 퇴역시킨 후 당시 남아있던 2개 전투비행중대(No1, No 75 squadrons) 자체를 해산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보다 앞선 1999년 당시 집권 중이던 국민당 정부는 낡은 스카이호크 대신 최신형인 ‘F-16 A/B Fighting Falcon’ 28기를 미국으로부터 구입하려 했지만 정권이 바뀌며 무산됐으며, 그 때 이탈리아제 훈련기이자 경공격기인 ‘아에마치 MB-339(Aermacchi MB-339) 비행중대’도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해산된 스카이호크 조종사들 역시 호주와 영국 공군으로 자리를 옮겨 갔으며, 노동당 정부는 2005년에 스카이호크 기체를 미국 비행훈련회사인 ‘Tactical Air Systems’에 1억 5천 500만 달러에 팔려고 했지만 미국 정부가 승인해주지 않는 바람에 무산된 바 있다.
이는 당시 핵무기를 적재한 미국 군함의 뉴질랜드 기항 거부 등 당시 노동당 정부가 행한 정책들로 인해 이전에 누구보다도 가까웠던 양국의 동맹관계가 껄끄럽게 변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던 결과였다.
<흰 붕대 두르고 ‘미라’로 변신했던 전투기들>
결국 이로 인해 해당 전투기들은 언제 다시 하늘을 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돼 남섬 블레넘(Blenheim)의 ‘우드번(Woodbourne) 공군기지’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한때 이 전투기들은 자신들이 머물던 격납고에서 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수송기의 전체 기체를 손보는 이른바 ‘오버홀(overhaul)’ 작업이 벌어지자 그동안 야외 주기장으로 쫓겨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했다.
당시 비바람에 의한 기체 부식을 방지하려고 마치 이집트 고대‘미라’처럼 비행기 기체 전체에 흰색의 라텍스 보호막을 두른 기괴한 모습이 마침 인근을 여행하던 필자의 눈에 목격되기도 했었다.
결국 이 전투기들 중 8기는 국민당으로 정권이 바뀐 후 미국과 관계 개선이 이뤄지자 협상의 물꼬가 터져 2011년에 정식으로 제이디 홀딩스(JDI Holdings)사와 계약이 성사돼 미국으로 옮겨졌다.
당시 대금으로 790만 달러를 받긴 했지만 당초 원했던 가격이 아닌 것은 물론 그동안 보관비 등을 감안하면 엄청난 손해를 본 셈이 됐는데, 그나마 나머지 9기는 판매가 불가능해 8기는 전국의 박물관으로, 그리고 1대는 호주 박물관에 영구 임대된 상황이다.
<보유 기체 대부분이 비행기 세계의 할아버지들>
1937년 창설돼 올 2월로 80주년을 맞이하는 뉴질랜드 공군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한 때는 전투기를 포함한 비행기가 1천여기에 이르는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냉전시대가 끝나고 다른 나라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안보 환경에서 공군 전력은 갈수록 축소돼 현재 뉴질랜드 공군이 운용 중인 50여기의 항공기들은 초계기와 수송기, 그리고 헬리콥터 등이 거의 전부이다.
이외 훈련기와 여객기 등이 몇 남아 있지만 주력은 적 침입을 막는 용도가 아닌 해상초계와 순찰, 재난에 대비한 구조작전 등에 투입되는 초계기와 수송기, 그리고 헬리콥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중에는 지난 1960년대 제작돼 도입되기 시작해 이미 기체 수령이 무려 50년이 넘어서면서 비행기 세계에서는 할아버지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도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일본과 협상이 논의된다고 알려진 초계기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현재 공군이 운용 중인 P-3B에서 P-3K에 이르는 미국 록히드(Lockheed)사의 ‘오라이언 해상초계기’들은 1966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제일 나중에 들여온 것이 1985년이었다.
현재 총 6기가 운용 중인데 비록 기내 장비는 지속적으로 개량됐다고 하지만 비행시간이 계속 누적돼 기체 자체의 노후화가 심한 상태이며 일부라도 작전에서 이탈하면 지장이 많은 형편이다.
<지구 해수면 1/12을 관할하는 NZ 공군>
참고로 도서국가인 뉴질랜드는 국토의 크기에 비해 해상구조 등의 분야에서 맡은 수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데, 담당 수역 크기는 멀리 남극에서부터 적도에까지 이르러 지구 전체 해양면적의 1/12에 달할 정도이다.
또한 이들 해역에는 태풍과 지진 등 각종 재난 발생시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부족해 뉴질랜드로부터 긴급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도서국가들이 존재해 뉴질랜드 공군에서는 특히 해상초계기와 장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수송기들의 역할이 여타 나라 공군들에 비해 훨씬 크다는 특징이 있다.
당연히 이 분야에서 공백이 발생한다면 관련 작전에 차질이 빗어지며, 이뿐만 아니라 해상초계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남태평양 해역에서의 대잠수함 작전은 뉴질랜드 자체의 안보뿐만 아니라 연합작전을 펼치는 호주를 비롯한 미국과 영국 등 동맹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50년 넘게 비행 중인 C-130 수송기>
이 같은 형편은 수송기도 마찬가지인데 현재 공군은 미국 록히드의 ‘C-130J 허큘리스’ 수송기 5기를 비롯해 2기의 ‘보잉 B757-200’, 그리고 4기의 ‘비치 킹(Beech King)’ 여객기를 보유 중인데 특히 수송기의 경우가 문제가 심각하다.
C-130 허큘리스 수송기는 반세기도 더 전인 1965년에 최초 3대가 도입됐는데 이는 당시 록히드가 생산했던 동형 모델 중 첫 번째 생산라인에서 출고된 것들이었으며 이후 1969년에 2대가 추가로 도입됐다.
이들 역시 노후화가 심해 1990년대 후반 정부는 이웃 호주가 신형 모델을 도입하려 할 때 함께 구입을 고려했지만 1999년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계획을 철회하고 대신 캐나다 회사와 계약해 기체 보강작업을 완료했다.
이 작업으로 C-130 수송기들은 오는 2025년까지 하늘을 날게 됐는데 실제로 그때가 된다면 이는 같은 모델의 비행기로는 최장기 비행기록을 수립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뉴질랜드로서는 일본제가 아니더라도 군용기 교체가 시급한 실정으로 향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이는데, 최종 결정에는 호주의 잠수함 사례처럼 가격은 물론 경제와 정치, 군사적 측면까지 두루 고려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