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나라이자 세계적인 인권 국가로 알려진 뉴질랜드에서 이주 근로자에 대한 착취가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발표된 ‘뉴질랜드에서의 근로자 착취: 걱정스러운 광경’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무임금 또는 저임금, 과다한 작업시간, 신체적 학대, 인격 모독적 대우, 이동 제한, 여권 압수, 고용계약 거부, 휴가급여 부정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 착취 행위가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만연한 것으로 드러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 근로자 착취, 산업 전반에 ‘만연’
이번 보고서는 ‘인신매매조사연합’이 주관하여 3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관련 조사 가운데 처음으로 증거를 기초로 한 조사라는데 의미가 있다.
보고서는 농업, 서비스업, 유학업 등 뉴질랜드의 주요한 산업 분야에서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보고되지 않은 이슈였던 이주 근로자 착취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조사를 진행한 오클랜드대 크리스티나 스트링거(Christina Stringer) 박사는 100여 명의 이주 근로자들이 착취와 인신매매의 피해를 겪은 것으로 밝혔다고 전했다.
이들은 키위 고용주들로부터 위협과 학대의 대상이 되었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화장실 가는 것조차 제약을 받았다.
또한 여권을 압수당했고 이동에 제한을 받았으며 하루 18시간 작업을 하고 열악한 숙소에서 집단생활을 했다.
일부 이주 근로자들은 고용주들로부터 성관계를 요구받았다고 밝혔으며 뉴질랜드 당국에 알려도 적법한 고용계약이 없다는 이유로 도움을 거절당했다고 털어놨다.
인터뷰에 응한 한 이민자는 “악덕 고용주를 고발하려고 IRD와 이민부에 접촉했으나 아무런 후속 대응이 없었다”며 탄식했다.
두 명의 응답자는 키위 사장들의 먹이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응답자는 고용주들이 비자 때문에 자신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6개월 동안 쉬는 날 없이 매일 12시간 일하고 시급 5달러를 받았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한 농장 노동자는 작업 지역을 벗어나지 말라는 지시를 어기고 종교 행사에 참가했다가 그 벌로 이틀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필리핀에서 온 간호사들은 공항 계류장에 감금된 채 2년 동안 일한다는 고용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기도 했다.
한 응답자는 취업 알선 계약업자로부터 대항하면 뉴질랜드에서 아무도 자신의 시체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인신매매조사연합’의 피터 미해레(Peter Mihaere) 대변인은 “이번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는 것은 마치 사자 굴에 들어가서 사자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이번 조사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수량화하고 설명하기 힘들었던 문제를 파헤친 것이다”고 밝혔다.
미해레 대변인은 이어 “실증적인 이번 조사는 뉴질랜드에서 노동 착취를 경험한 많은 이민자들의 얘기에 신빙성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 노동자들이 밝힌 키위 고용주들의 횡포는 이면 고용 관행부터 신체적, 성적 학대에 이르기까지 심각했다.
보고서는 일부 응답자들은 취업 알선 수수료로 2만달러를 지불하고 뉴질랜드에 와서 약속보다 휠씬 낮은 임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많은 이주 노동자들은 키위 고용주나 감독관, 동료들로부터 언어 또는 신체적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고 욕을 먹기도 했으며 화장실에 가는 것도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힘없는 이주 노동자들은 참고 견뎌야 했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제한됐다.
또한 일부는 그 일이 나중에 영주권을 따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많은 젊은 이주자들이 관련 산업에서 일하는 오클랜드 남부를 인신매매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자에 대한 노동 착취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7대 산업과 착취 형태는 다음과 같다.
건설업
크라이스트처치 재건 사업 이후 건설업에 외국인 인력이 크게 유입되면서 이들에 대한 착취 또한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건설업 분야에는 특히 필리핀 출신 이주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높은 취업 알선 비용을 지불하고 많은 인원의 열악한 숙소에서 생활했다.
요식업
요식업은 가장 많은 임시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분야이다. 시간당 15.25달러인 법정 최저임금에 휠씬 못미치는 4달러를 지급하거나 부채 상환을 위해 노예처럼 일을 시키는 사례도 드러났다.
원예업
계절적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뉴질랜드의 원예업자들은 항상 생산단가 감소 압박을 받고 있어 자연스럽게 이주 노동자를 착취하게 된다. 뉴질랜드의 첫 번째 인신매매 사건도 키위 과수원에서 착취당한 이주 노동자들에게서 발생했다. 파로즈 알리(Faroz Ali)는 15명의 피지 출신 노동자들을 뉴질랜드로 데리고 와서 임금을 압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했으며 불평하면 추방시킬 것이라고 협박하는 등 인신매매 혐의가 적용되어 작년 12월에 9년 6개월의 징역과 피해자들에 대한 총 2만8,167달러의 배상금 지급을 선고 받았다. 보고서에는 알리 사건은 뉴질랜드에서 일어나는 이주자 착취의 빙산의 일각으로 표현했다.
낙농업
뉴질랜드 낙농업도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에 워크비자를 받는데 최고 1만2,000달러의 알선 수수료가 들어가고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제대로 먹지 못한 일부 노동자는 옥수수로 배를 채우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업
외국 전세선에서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 행위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 상환을 위해 노예처럼 일을 시키거나 여권을 압수하기도 했다. 신체적, 정신적, 심지어 성적 학대와 지나치게 긴 작업 시간 등이 뉴질랜드 어업 분야에서 나타난 이주 노동자 착취 행위였다.
유학업
뉴질랜드에서 네 번째로 큰 수출산업으로 성장한 유학업에서도 유학생에 대한 착취가 벌어지고 있다. 유학생들을 착취하는 사람들은 주로 사기 유학업체들과 악덕 사업주들이었다.
윤락업
많은 해외 여성들이 음식점이나 미용실 등에서 일할 약속을 받고 뉴질랜드에 왔으나 도착하자마자 윤락업소에서 일할 것을 강요받는다. 한 젊은 여성이 3,000달러에 위장 경찰관에 팔리는 사례도 있었다.
노동 착취 방지 대책
미해레 대변인은 “우리는 더욱 심도 깊은 조사를 하여 이주 근로자들을 착취하고 노예처럼 취급하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주 근로자들의 착취와 인신매매가 우려할 수준이라며 정부의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면서 11개 대응책을 제시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대응책에는 일선 공무원들이 노동 착취 피해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트레이닝을 의무적으로 받는 것이 포함됐다.
또한 관련 조사에 대한 예산을 늘리고 특별 인신매매 전담반을 설치할 것도 들어 있다.
노동 착취가 발생하기 쉬운 산업에 대한 점검을 활발하게 하고 이주 근로자들이 뉴질랜드에 도착하면서 국가에 대한 소개식을 받게 하는 것도 대응책의 하나이다.
보고서는 “이주 근로자들의 착취가 발견된 산업 분야는 뉴질랜드 경제에 큰 부분을 기여한다. 따라서 이민자들의 노동 착취는 뉴질랜드의 국제적인 명성에 커다란 해를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