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9일(목) 국내외 각 언론들에는 뉴질랜드인들은 물론 지구촌 주민들의 이목을 끄는 충격적인 사진과 영상들이 일제히 실렸다.
그것은 남섬 최북단 ‘페어웰 스핏(Farewell Spit)’해변에 좌초한 수백 마리 돌고래 무리 모습이었는데, 많은 수가 죽은 가운데 여러 사람들이 이들을 바다로 되돌려 보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장면들도 함께 실렸다.
페어웰 스핏은 어떤 곳?
뉴질랜드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남섬 최북단 육지의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삐죽하게 튀어나온 가느다란 반도 모양의 지형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이곳이 이번에 고래들이 집단으로 좌초한 ‘페어웰 스핏’이다.
▲ 초입 전망대에서 바라본 페어웰 스핏
‘스핏’이라는 지형은‘모래톱’을 의미하는데 섬나라인 뉴질랜드는 전국 각지에 이 같은 지명을 가진 곳이 많으며 페어웰 스핏은 이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으로 생긴 모양을 보자면 영락없이 키위새의 머리와 부리가 연상된다.
▲ 키위새 부리를 닮은 페어웰 스핏
이곳은 1642년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 발견해 ‘Sand Duining Hoeck’라고 명명했으며, 이후 1770년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 역시 그의 첫 번째 세계 항해 당시 호주로 떠나기 직전 이곳에 들린 바 있다.
당시 이곳을 폭이 넓은 반도로 인식했던 그는 반도 끝을 ‘Cape Farewell’로 이름 붙이고 지도에 올렸는데, 나중에 부근에 정착하기 시작한 유럽인들은 ‘Cape Farewell Spit’으로 부르다 결국 단어가 더 짧아지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굳어졌다.
마오리어로‘투후로아(Tuhuroa)’라고 불리는 이곳은 모래톱이 시작되는 서쪽 끝 작은 정착촌인 푸퐁가(Puponga)에서 동쪽으로 26km나 길게 뻗어 있어 같은 유형의 모래톱으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길다.
모래톱이 끝나는 지점으로부터 동쪽으로 6km 정도는 바다 밑으로 모래톱이 계속 이어지며 이곳에서는 조류로 인해 모래가 쌓이면서 전체 모래톱의 길이가 계속 커지고 있다.
한편 타스만 해를 향해 열려 있는 모래톱 북쪽 사면은 평균 풍속이 시속 25km에 달하는 바람과 파도에 전면이 깎이면서 그리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가파른 절벽이 형성돼 있다.
모래톱은 주로 후기 백악기(Cretaceous)에 형성된 금빛이 나는 모래인 이른바 ‘석영 사암(quartz sandstone)’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석류석이나 휘석, 자철광 등의 광물들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
선박 좌초 사고도 잦았던 곳
한편 인근 해역에서는 1877년‘퀸 비(Queen Bee)호’좌초를 비롯해 탐험시대 당시부터 선박 좌초 사고가 잦아 1870년대에 동쪽 끝 모래톱의 해발 30m 되는 언덕 위에 목재로 만들어진 등대가 세워졌다.
그러나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과 날리는 모래에 쉽게 파손되곤 해 1897년에 뉴질랜드에서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철 격자(steel latticework)로 제작된 높이 27m짜리 등대가 다시 건립됐다.
지금은 최초 등대와 관련된 건물들이 역사적 유적으로 관리되는 가운데 새로 들어선 등대가 운영 중인데, 1966년에는 등대까지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선이 모래톱 지하로 매설됐으며 1984년에 등대 관리직원이 철수하고 현재는 완전히 자동화된 상태이다.
현재 페어웰 스핏은 ‘조류 및 야생보호구역(a sea bird and wild life reserve)’으로 지정돼 자연보존부(DOC)의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으며, 사전에 계획된 인원에 한해 지정된 지역으로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통제되고 있다.
이곳은 인구 밀집지역으로부터는 거리가 꽤 먼데도 불구하고 평소에도 상당히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데, 필자 역시 몇 년 전 이곳을 찾아 모래톱이 끝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감상한 적 있다.
모래톱 남쪽 개펄에서 발생하는 고래 좌초
이 모래톱 남쪽의 골든 베이(Golden Bay) 쪽으로는 썰물 때면 최대 7km 해변 바깥까지 바닥이 드러나면서 총면적이 80k㎡에 달하는 광활한 개펄이 형성되는데, 이곳은 풍부한 먹이들을 찾아 많은 바닷새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종종 고래들이 집단 좌초하는 지역도 이곳이며 이번에 수 많은 돌고래들이 좌초한 곳 역시 마찬가지인데, 지난 1840년 이래 뉴질랜드에서 알려진 좌초된 고래의 수는 1,700여 마리에 이른다.
이들 중 공식적으로 기록이 확인되는 것은 680마리 정도인데, 현재까지는 한 세기 전인 지난 1918년에 채텀(Chatham) 아일랜드에서 목격된 1천여 마리의 좌초가 가장 규모가 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페어웰 스핏에서는 2012년 11월 일단의 파일럿(pilot) 돌고래들이 좌초해 그 중 11마리가 죽었으며 2014년 1월에도 역시 50마리의 파일럿 돌고래를 포함한 고래들이 집단으로 좌초해 구조 노력에도 불구하고 좌초를 반복하다가 여러 마리가 죽거나 안락사 조치됐다.
2015년 2월에도 좌초된 고래가 발견되는 등 이 같은 일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벌어져 그때마다 언론에 보도됐는데, 그러나 이번 같은 대규모 좌초는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번 좌초는 규모가 원체 커 발견 즉시 한국은 물론 영국과 미국 등 전 세계 언론에도 신속하게 보도됐으며 유튜브 등에도 영상으로 올려져 지구촌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또한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한편 원인을 놓고 설왕설래했는데, 아직까지도 과학자들은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고래의 집단 좌초 현상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 해변에 좌초한 파일럿 돌고래 무리
고래 좌초 규모로는 NZ사상 3번째
이번 고래 좌초는 뉴질랜드 사상 3번째 큰 규모였는데 모래톱의 남쪽 해변에서 좌초된 고래들이 대규모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2월 9일(목) 저녁부터였다.
이튿날인 10일(금) 새벽에 고래들을 확인하던 DOC 직원들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숫자의 파일럿 고래들이 해안 2km에 걸쳐 널려있었기 때문.
최초 집계에서는 총 416마리로 확인됐는데, 이 중에서 70%에 가까운 280여 마리가 이미 밤사이에 죽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나머지 고래들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였다.
결국 DOC 직원과 인근 마을 주민을 비롯해 관광객 등 500여명이 나서서 고래들을 구하려고 사투를 벌였으며, 결국 이날 낮 11시경 만조 때에 살아 있는 고래들 중 100여 마리를 바다로 되돌려 보내는 데 일단 성공했다.
나머지도 80여 마리도 이튿날 바다로 돌려보냈는데, 그러나 상태가 극히 안 좋았던 20여 마리는 결국 안락사를 시킬 수 밖에 없었다.
▲ 양동이와 천을 이용해 구조작업 중인 사람들
구조 작업 중 문제는 어렵게 돌려보낸 고래들이 밤중에 다시 좌초할 수도 있다는 점인데, 위험한 야간에는 구조작업이 불가능한 만큼 DOC 직원들은 인근에서 밤을 지새면서 고래들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다행히 이틀 작업 끝에 고래들은 대부분 바다의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이후에도 인근 지역에서 몇 차례 고래들이 좌초했지만 이를 보고 구조에 나선 주민들에 의해 역시 바다 로 되돌려 보내졌다.
DOC 관계자 점검 결과 구조작업이 모두 끝난 후인 13일 (월) 오후에 모래톱 인근 해역에서는 200여 마리의 파일롯 돌고래 떼가 무리 지어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죽은 고래 사체에는 접근하지 말아야
한편 13일(월)에도 골든 베이 남쪽 타우파타 포인트(Taupata Point)에서 좌초된 돌고래 7,8 마리가 발견돼 자전거로 지나가던 독일 관광객을 포함한 한 가족이 나서서 바다로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자연보존부 관계자는 구조에 동참해준 이들에게 고마움 을 표시하고 이 같은 일이 있으면 즉시 DOC로 신고해주기 를 당부했으며, 직원들이 이에 대비해 골든 베이 연안을 순 찰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또한 관계자는, 죽은 고래들이 바다로 쓸려갔다가 다시 해 변으로 밀려 올라올 수 있다면서, 만약 주민들이 해변에서 고래 사체를 발견하는 경우에는 위생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절대로 접근하거나 만지지 않도록 당부했다.
그는 당연히 냄새도 심하며 직원들도 고래 사체를 처리할 때는 위생복을 입고 안면 보호와 장갑을 착용한다면서, 주 민들이 특히 개를 동반할 경우 죽은 고래 고기를 개가 먹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즉시 DOC에 고래 사체의 위치를 신고해 줄 것도 함께 당부했다.
한편 이번에 죽은 고래들은 13일 중장비가 동원돼 일반인 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모래 언덕의 특정 장소로 모두 옮겨 져 매장 처리됐는데, 사체가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수 개월 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관계자는 이번 고래 구조작업에 들어간 전체 비용이 얼마나 됐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남섬지국장 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