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든 대학들이 개강하면서 본격적인 2017학년도를 보내고 있다. 뉴질랜드 교육제도는 고등학교까지 무료로 모든 학생들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무료’교육에 들어가는 ‘많은’비용
뉴질랜드는 고등학교까지 무상 공교육을 내세우고 있지만 각종 기부금과 수업료, 교복 및 교재 구입비 등 뉴질랜드의 공교육은 결코 무료라고 볼 수 없는 실정이다.
ASG(Australian Scholarships Group)라는 교육전문 지원단체가 최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이 공립 고등학교 졸업까지 예상되는 교육비가 3만8,362달러로 나타났다.
10년 전인 2007년에 태어난 아이들의 3만3,274달러에 비해 15.3% 늘어난 것이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교육비가 평균 물가상승률보다 두 배나 높게 올랐다는 의미이다.
준공립학교의 교육비는 10년 동안 8만1,765달러에서 10만9,354달러로 33.7% 늘었고 사립학교의 경우 23만3,678달러에서 34만5,996달러로 48.1% 급증했다.
ASG의 존 벨레그리니스(John Velegrinis) 대표는“교육비와 소비자물가지수 간의 차이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며“저소득 가정은 늘어나는 교육비 때문에 지속적인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벨레그리니스 대표는“뉴질랜드에서 무료 교육은 없다”며“수업료를 부과하지 않는 공립학교라도 학부모는 교복과 교재, 컴퓨터, 교외 활동 비용 등 각종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등 개인용 컴퓨터를 요구하는 학교들이 늘면서 학부모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 제품들은 대개 케이스와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수 백 달러의 목돈이 들어간다.
이러한 개인용 컴퓨터를 마련하지 않거나 유급 교외 활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자녀가 따돌림이라도 당할까봐 학부모들은 경제적 부담이 크더라도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노동당의 크리스 힙킨스(Chris Hipkins) 교육 대변인은 정부의 교육 지출이 교육비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힙킨스 대변인은“학교가 정부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 재원을 찾아야 하고 결국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학부모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2015년까지 10년 동안 정부의 교육 지출이 38% 늘어나 학생 한 명당 7,333달러로 증가했다고 반박했다.
늘어나는 교육비로 빈부간 교육 격차 심화
늘어나는 교육비는 교육에서도 빈부간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학자 존 브래드독(John Braddock)은 지난 1989년 데이비드 랭(David Lange) 총리 시절 실시된‘내일의 학교’교육 개혁 이후 사회적 불평등이 학교 체제로 옮겨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일의 학교’교육 개혁은 일선 학교에 많은 자율권을 주었으나 결과적으로 사회 경제적 위치에 따른 학교간 경쟁을 유발시켰다는 것이다.
이 교육 개혁 이후 중산층 백인 가정은 학군내 학교를 거부하고 더 높은 등급의 학교에 자녀들을 입학시키는 소위‘교육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데실(decile) 1-4 학교들의 유러피언 학생 비율은 1996년 45%에서 2014년 26%로 줄어든 반면에 마오리 학생은 35%에서 42%로 늘고, 파시피카 학생도 14%에서 22%로 증가했다.
이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의 학업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현재도 그 격차는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가난한 가정 하위 25% 학생들은 상위 25% 학생들에 비해 수학에서 낮은 성적을 보일 확률이 6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아일랜드, 이스라엘, 폴란드에 이어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나쁜 결과였다.
15세 학생들이 2012년 치뤘던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 시험결과를 분석한 이 보고서는 또한 조기교육이 부족했거나 편부모 가정 출신 학생들의 성적이 저조한 사실을 밝혀 냈다.
보고서는 낮은 학업 결과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위험 요소로 사회 경제적 지위를 꼽았다.
약육강식의 교육 환경
뉴질랜드 학교들간에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부유한 지역의 학교들은 학생들이 몰리며 많은 기부금 수입을 얻고 있는 한편 가난한 지역 학교들은 학생수가 줄면서 교사도 감원되고 빈 교실이 늘며 비관적인 기운이 팽배하다.
가장 높은 등급인 데실 10 학교들의 규모는 이제 데실 1 학교들보다 평균 2.5배 크다.
지난 15년 동안 오클랜드의 소위 일류 학교들의 학생수는 두 배로 늘어난 반면에 낮은 등급 학교들은 절반이 줄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4년 공립 및 준공립학교 기부금의 절반 이상은 데실 9 및 10 학교들이 차지했다.
데실 1 학교들은 학생당 약 56달러의 기부금을 받은 반면 데실 10 학교들은 324달러의 기부금을 받아 학교 운영에 쓰여졌다.
데실 1인 파파쿠라 고등학교의 존 로스(John Rohs) 교장은“지난해 부임했을 때 통학 범위내 사는 많은 학생들이 높은 데실 학교들에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사실을 알고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사실을 믿어 주지 않는 지역사회를 원망했다”며“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지역사회가 아니라 계획없는 교육 정책을 펼치고 있는 정부 차원에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로스 교장은 이어“정부 차원에서 누구도 지난 20년간 파파쿠라 지역의 교육 성과가 어떻게 돼야 한다는 숙고를 하지 않은 것 같다”며“어떤 학교는 학생수가 늘고 어떤 학교는 줄도록 허용하는 임시 방편의 정책이 있을 뿐이고 약육강식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학교간의 관계가 우호적일지라도 몇 년에 걸친 경쟁과 가치관을 극복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계층간 격차 벌려주는 고교 NCEA 제도
지난 2002년 처음 도입된 고등학교 학력평가제도인 NCEA는 그동안 더욱 많은 학생들이 고교를 졸업하는 등 나름대로 순기능도 있었지만 계층간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즉 유러피언, 아시안, 높은 데실 학교의 학생일수록 과학, 영어, 수학 등 아카데믹 과목들을 공부하고 마오리, 파시피카, 낮은 데실 학교의 학생들은 대학 입학 신청시 인정되지 않는 호스피탈리피(hospitality), 소매, 건축 등 기술 중심의 직업 과목에 더욱 많이 등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고교에서 NCEA 레벨 3를 수료해도 이들 학생들 간에 다른 과정을 거쳐 왔다는 것이다.교육 전문가들은 뉴질랜드 교육의 문제점들이 개선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교육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변화 가운데 하나가 데실 제도의 폐지와 새로운 학교 지원금 배정 방법이다.
지난 1995년 공립학교 지원금 배정 방식으로 도입된 데실 제도는 의도는 좋았지만 시행 과정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학교들에 족쇄와도 같은 등급을 부여하면서 낮은 데실 학교들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매시 대학의 존 클라크(John Clark) 교육연구소장은“정부가 교육 체제에 의미있는 변화를 주려면 학생들이 학교에서 불평등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들, 즉 고용, 세제, 복지, 건강 등의 비교육적인 정책에도 아울러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