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면 한국에서 뉴질랜드를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남북극 바다를 누비는 한국의 쇄빙연구선 ‘아라온(Araon)호’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호에서는 남섬, 특히 크라이스트처치 교민들에게는 몇 번의 선박 개방 행사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름이지만 다른 지역 교민들에게는 조금 낯선‘아라온호’의 이모저모를 사진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번 소개는 지난 3월 4일(토) 오후 크라이스트처치 외곽 리틀턴(Lyttelton) 항구에 정박하던 아라온호의‘방선 행사(선박 오픈 데이)’현장에서 극지연구소 및 선박 관계자들의 협조로 이뤄졌다.
▲ 이날 개방행사에는 교민, 현지인 등 500여명이 참가
얼음 바다도 두렵지 않은 해상연구기지, 아라온
흔히 추운 바다에서 얼음을 깨면서 항해하는 배를‘쇄빙선(Icebreaker)’이라고 부르는데, 아라온을 소개하는 책자나 웹사이트에는 아라온을 단순한 쇄빙선이 아닌‘쇄빙연구선’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런 명칭에는 이 배를 건조하고 운영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나타내고 있는데, 실제로 선박 내부에는 지구물리, 해양, 생물, 기상연구실 등과 이를 지원하는 각종 장비들이 설비돼 아라온은 한마디로 바다 위를 떠다니는 과학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아라온은 연구를 수행하는 전문가들이 상주하는 만큼 배 안에는 또한 이들이 편안히 머물며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주거를 비롯해 식당, 도서관, 휴게실 등 생활에 필요한 각종 편의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실제 이 배를 움직이는 선원은 총 26명인데 반해 이번 여름에 배에 올라 연구 중인 연구원들은 56명이며, 이들은 국적도 다양해 한국을 비롯 뉴질랜드와 미국 등 모두 12개 국가에서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라온은 매년 남반구가 여름이 되면 리틀턴에 정기적으로 들리며, 필요한 물품 등을 선적한 후 이를 남극 대륙에 세워진 장보고 과학기지와 킹 조지 섬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에 보급하며 관련 연구 활동도 병행한다.
▲ 3년 째 근무 중인 김광헌 선장, 아라온호는‘STX 마린 서비스’에서 위탁 관리하고 있다
전 세계 바다 누비라는 뜻 지닌 한국의 첫 쇄빙선
아라온호 명칭에서‘아라’는 바다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며‘온’역시‘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라는 동요에 나오는 것처럼‘모두’를 의미하는 우리말로, 얼음이 깔린 남,북극해를 망라해 전 세계 바다를 힘차게 누비고 다니라는 원대한 뜻을 가지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orea Institute of Ocean Science & Technology, KIOST)’산하‘극지연구소(Korea Polar Re¬search Institute, KOPRI)’소속인 아라온은 지난 2004년부터 기본 설계에 들어간 후 2006년 한진중공업에서 건조를 시작해 2009년 11월 완성됐으며 7507톤의 만재톤수에 크기는 길이 109.5m에 폭 19m이다.
최대속력 19노트에 경제항해속력은 12노트, 항속거리는 3만7천km(약 2만 해리)이며 70일간 항해를 지속할 수 있는데, 총 29개 컨테이너(TEU)를 적재할 수 있는 아라온호는 건조 이후 곧바로 시작된 장보고 과학기지 건설에도 크게 기여했다.
건조에는 1천80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는데 쇄빙선인 만큼 특히 얼음과 직접 맞부딪히는 선체 앞 부분의 철판 두께가 40mm이며 일반선박의 건조에 쓰이는 철판보다 1.5배 강한 고강도 특수강재로 만들어져 있다.
아라온은 단독 운항뿐만 아니라 때로는 얼음을 깨 다른 선박의 항로를 열어주는 임무도 수행하기 때문에 일반 선박에 비해 선수나 선미 폭이 넓고 선수에 돌출부가 없으며, 5천 KW급 엔진을 2기 장책, 비슷한 크기의 일반 선박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도 세고 발전기 역시 3400KW급이 4기나 장착돼 있다.
실제로 아라온은 2011년 성탄절에는 러시아 원양어선‘스파르타호’를 구조했으며, 2015년 12월에도 역시 유빙에 갇혀 기울어지면서 침몰 위기에 처한 한국 원양어선 선스타호에 접근해 선원 39명과 선박을 구해낸 적이 있다.
또한 아라온의 주 프로펠러는 다른 선박과 달리 360 전 방향으로 회전이 가능해 배의 움직임을 앞뒤뿐만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선수 부분에도 또 다른 프로펠러가 좌우에 설치되어 있다.
▲ 각종 계측장비들
이 같은 능력으로 아라온은 두께 1m 얼음판까지 깨트리며 3노트 속도로 운항할 수 있으며, 때로는 선체 앞부분을 최대 5m 높이로 얼음판 위에 올린 뒤 선박 자체 무게로 얼음을 깨기도 하는데, 이때 만약 선체가 얼음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면 앞서 설명한 대로 전후 좌우로 선박을 흔들어 주변의 얼음을 깬 후 탈출하게 된다.
여기에 영하 30℃와 영상 50℃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혹심한 추위가 몰아치는 극지는 물론 항해 도중에 들려야 하는 적도 지방과 같은 곳에서도 원활하게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쇄빙선 보유국은 미국, 러시아, 노르웨이, 호주 등 몇 개 나라 정도인데, 현재 전 세계에는 40여 척의 쇄빙선이 있지만 대부분 북극에서 석유를 비롯한 자원 개발이나 연구 활동, 항로 개척에 투입돼 있으며 10여 척만이 남극해에서 활동 중이다.
아라온은 쇄빙선 규모로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이들 쇄빙선 들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만들어져 선박 자체는 물론 연구 시설 등 관련 부대시설이 우수한 선박으로 알려져 있다.
▲ 항해를 지휘하는 브리지
철 따라 지구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아라온
아라온은 작년 10월 26일에 모항인 인천항을 떠나 태평양 을 종단, 11월 14일에 호주 타스마니아(Tasmania)의 호바트 (Hobat)에 도착해 장보고 기지에 보급할 극지 전용 기름을 적재한 후 4일 뒤에 장보고 기지에 도착했었다.
이후 12월 중순에 리틀턴에 입항했던 아라온은 장보고 기 지와 리틀턴 사이를 3차례 왕복하면서 보급 활동과 함께 남 극해에서의 각종 연구 활동을 지원했으며, 3월 6일 리틀턴 을 떠나 남미 대륙 밑 킹 조지 섬의 세종과학기지에 보급품 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이후 다시 고국을 향해 태평양을 종단, 5월 31일경 광양항 에 도착하는데, 1개월간 정비와 선원 휴식을 거친 후 북극해 가 여름이 되는 7~8월에는 알래스카를 거쳐 북극해로 진입 해 연구를 진행한다.
9월부터 시작되는 정비를 마치는 아라온은 또다시 10월 말 경 남극을 향해 장도에 오르는데, 한편 한국 정부는 아라온 호에 이어 좀 더 큰 규모의 쇄빙연구선을 건조할 계획이나 현재 관련 예산의 배정이 늦어지면서 일정에 다소 차질이 있는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