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논의 단계에서 매번 흐지부지됐던 노령연금(Superannuation) 수급조건 강화에 대한 정부 발표가 지난 6일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온 가운데 연령, 신분, 인종 등에 따라 차이를 보였고 각 정당들도 미묘한 입장 차이를 나타내면서 오는 9월 총선에 변수로 대두되고 있다.
연금 수급연령 65→67세, 거주기간 10→20년으로
빌 잉글리시(Bill English) 총리는 6일 발표를 통해 노령연금 수급연령을 2037년 7월 1일부터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해 2040년까지 67세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잉글리시 총리는 또한 이민자들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거주 자격도 현행 10년에서 20년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령연금 연령 상향 조정 배경에 대해 뉴질랜드인들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데다 연금 지출로 인한 정부의 부담이 급격히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질랜드 정부가 노령연금으로 지출하는 돈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5% 정도에서 현행 연금 수급연령을 그대로 적용했을 때 2060년까지 재정부담이 GDP의 8.4%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는 노령연금 수급연령이 67세가 되면 매년 GDP의 0.6%인 40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총선 6개월 전에 발표된 이번 노령연금 변화는 65세를 고집했던 존 키(John Key) 전 총리아래서 8년 동안 재무장관으로 있으면서 나라 살림에 정통했던 잉글리시 총리가 변화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반대 여론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령연금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는 은퇴위원회(Retire¬ment Commission)는 작년 말에 수급연령을 2027년부터 2034년까지 8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67세로 조정하고 뉴질랜드 거주기간을 최소 10년에서 25년으로 크게 늘리는 방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국민당 정부는 실시 시기를 은퇴위원회의 제안보다 10년 뒤인 2037년으로 멀리 잡았고 실시 기간은 3년으로 단축했으며 거주기간 조건은 제안보다 5년 적은 20년으로 결정하여 대응책으로 충분하지 않고 베이비붐 세대를 보호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뉴질랜드의 베이비붐 세대는 보통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년부터 1964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1972년 7월 이후 출생한 모든 사람들에 영향
스티븐 조이스(Steven Joyce) 재무장관은 노령연금 수급연령은 2037년 7월부터 1년마다 6개월씩 단계적으로 조정되어 2040년 7월에 67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1972년 7월 1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부터 영향을 받게 되어 1974년 1월 1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67세가 되어야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키위세이버는 현행처럼 65세에 지급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번 노령연금 수급조건 변화로 2040년 7월 기준 12만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뉴질랜드 영주권자이거나 시민권자는 현행 10년 거주기간과, 그 가운데 5년은 50세 이후 거주의 조건을 갖추면 되지만 내년 관련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나서 뉴질랜드에 입국하는 이민자는 20년의 거주기간과, 그 가운데 5년은 50세 이후 거주 조건을 충족해야 노령연금을 수령할 자격이 주어진다.
노령연금 지급시 현행처럼 재산심사를 하지 않아 재산에 관계없이 평균 임금의 66% 수준을 받게 된다. 또한 수급연령이 67세로 상향 조정되면 수퍼골드 카드도 67세가 되어야 지급받게 된다.
총선 결과에 따라 시행되지 않을 수도
잉글리시 총리는 관련법은 내년에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고 밝혀 9월 총선에서 국민당이 패할 경우 이번 발표가 시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잉글리시 총리는“우리는 총선의 해에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번에 발표를 했다”며“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액트(Act)당과 마오리당, 통합미래당이 모두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어 국회 통과까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액트당의 젊은 대표 데이비드 세이모어(David Sey¬mour, 33세)는 이번 노령연금 변화가‘세대간 절도’라고 비난했다.
세이모어 대표는“45세 이하 사람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연금을 위해 많은 세금을 내다가 제때 연금도 못받게 될 것이다”며“노령연금 변화로 인한 부담이 세대간에 공평하게 나누어질 수 있도록 가능한 빨리 시작하고 긴 기간에 걸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오리당은 기대수명이 낮은 마오리와 태평양군도 사람들의 수급연령을 낮출 것을 요구하며 현 단계에서 국민당의 제안을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마오리당의 마라마 폭스(Marama Fox) 공동대표는 통합미래당이 주장하는 노령연금 방안이 뉴질랜드의 인구 구조에 적합하다고 지지했다.
통합미래당이 주장하는‘플렉시-수퍼(Flexi-Super)’ 방안은 사람들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되 일찍 시작하면 조금 주고 늦게 시작하면 많이 주는 방식이다.
통합미래당의 피터 던(Peter Dunne) 대표는“수급연령이 조정되기 시작하는 2037년까지 20년이나 남았고 남은 기간에 다시 어떻게 바뀌게 될지 보장할 수 없다”며 “또한 이민자 거주기간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외국인 혐오증에 대한 영합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동당은 2011년 및 2014년 총선에서 수급연령 상향 조정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2014년 총선 이후 앤드류 리틀(Andrew Little)이 대표로 선출되면서 이를 폐기하고 현행 65세를 지지하고 있다.
리틀 대표는“기대수명이 늘어날지 모르지만 평생 육체노동을 한 사람들은 일찍 몸을 못쓰게 된다”며 65세 유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리틀 대표는 하지만 이민자 거주 자격을 20년으로 늘린 정부의 계획에 대해서는 지지했다.
뉴질랜드 퍼스트(New Zealand First)당은 이 기간이 25년은 돼야 한다고 한 술 더 떴다.
녹색당도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현행 65세를 지지하고 있어 9월 총선에서 국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연정 파트너에 따라 발표한 내용 그대로 시행하지 못할 가능성도 꽤 높은 상황이다.
다양한 시민 반응
노령연금은 모든 뉴질랜드 국민에 영향을 주는 사안인 만큼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해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뉴질랜드 헤럴드지에 실린 몇 가지 반응을 소개하면 이안 레슬리(Ian Leslie, 59세)는“진작에 노령연금 수급연령을 조정했어야 했다. 키 전 총리의 정책 가운데 유일하게 반대했던 것이 수급연령 65세 유지였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번 정부 발표를 지지했다.
1972년 출생인 킴 스튜어트(Kim Stewart)는“우리 세대는 학생융자, 자녀 교육비, 치솟는 생활비와 집값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이번 노령연금 정책은 이전 세대들에게는 가만히 앉아 혜택을 주고 우리 세대에게는 다시 한번 불이익을 주고 있다”며 반대했다.
펠리시티 테 화타(Felicity Te Whata)는“마오리의 기대수명은 유러피언보다 8년 정도 짧은데 이것이 공평한 정책이냐”고 반문하며“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유러피언에 의한 제도적 인종차별주의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세계적으로 연금 수급연령은 캐나다가 뉴질랜드와 같은 65세이고 이웃 호주는 2016년부터 시작해 2023년까지 67세로 늘리고 미국도 2027년에 67세로 되며 영국은 2028년에 67세로 된 후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68세로 추가 조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