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대형 산불이 발생,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등 큰 혼란이 이어졌다. 비록 열흘가량 뒤 진압되기는 했지만 불길이 삼림뿐만 아니라 주택가는 물론 새로 개장한 대규모 위락시설까지 덮쳐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최근 출입이 가능해져 피해를 눈으로 확인하고자 화재 현장을 돌아보았는데, 귀중한 나무들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 잎이 갈색으로 변한 안타까운 정경이 펼쳐진 가운데 워낙 국가적 큰 뉴스로 보도됐던 만큼 현장에서는 단체 여행객을 태우고 온 버스까지 목격됐다.
<이번 산불의 현장은 어떤 곳?>
대규모 산불이 난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 명칭은‘포트 힐스(Port Hills)’. 이곳은 평원에 자리잡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유일하게 남쪽 뱅크스 페닌슐라(Banks Peninsular) 방향으로 산지가 형성된 곳으로 해발 300~500m 정도의 산악지역이다.
시내에서 잡은 화재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도심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며, 한때 주민들이 대거 대피했던 캐시미어(Cashmere)는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에서 거리로 4~6km, 차로는 15분 내외면 간단히 도달할 수 있는 주택가이다.
중턱까지 자리잡은 일부 주택가를 제외한 거의 전역이 자연보존지역이거나 목장으로 활용돼 평소에는 많은 주민들이 가벼운 트레킹이나 소풍을 즐기는 곳이며, 정상 능선을 따라 관광용(Scenic) 포장도로인 서미트(Summit) 로드도 이어져 주말이면 달리기나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필자 역시 얼마 전까지 부근에 거주했었는데 인명사고까지 발생한 이번 화재를 겪으면서, 피해 규모는 차치하더라도 대도시 지역이 산불이라는 자연재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것이라던 기존 생각이 크게 잘못됐음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
실제로 주변에서 우리 교민들을 비롯한 많은 현지 주민들도 산불이 평화롭던 마을의 내 집 바로 안마당까지 이처럼 쉽게 접근하리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어떤 주민은 2009년 2월 발생, 하루에 무려 173명의 사망자를 냈던 호주의 대규모 산불 사태를 예로 들면서, 뉴질랜드 역시 주거지에 근접한 산이 많은 만큼 당연히 이 같은 유형의 화재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평소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산불은 어떻게 났고 또 번졌나?>
2월 13일(월) 저녁 홀스웰(Halswell)의 랜스다운(Lansdowne) 인근 어얼리 밸리(Early Valley) 로드 근처에서 첫 번째 화재가 신고됐는데, 이곳은 크라이스트처치가 아닌 셀윈(Selwyn) 지역 소방대 관할이었으며 주택 한 채가 불타기는 했지만 소방관들은 화재가 잘 진압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약 1시간 반 뒤에 이곳에서 정상 쪽으로 수 km 떨어진 말리스 힐(Marleys Hill) 인근에서 두 번째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곳은 크라이스트처치 소방대 관할이었는데 두 개의 불이 발화 첫날 밤 동안에 합쳐지면서 대재앙이 시작됐다.
특히 두 번째 화재 현장 능선에는 서미트 로드가 있으며 이와 만나는 다이어스 패스(Dyers Pass) 로드 고개 정상에는 지진 피해 수리 후 작년에 다시 문을 연 유적건물인‘사인 오브 키위(Sign of Kiwi)’도 있다.
또한 바로 그 옆 봉우리인 슈가로프(Sugarloaf)에는 방송/통신용 타워가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곡 아래 쪽으로는 작년 12월에 개장한‘크라이스트처치 어드벤처 파크(Adventure Parks)’의 체어 리프트를 비롯한 각종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당시 불이 대규모로 번진 데는 불길이 쉽게 잡힐 것으로 예단했던 소방당국의 잘못된 판단도 한몫했는데, 북서풍까지 강하게 불자 불길은 서미트 로드를 간단하게 뛰어넘어 남동쪽 해안가의 거버너스 베이(Governers Bay) 마을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밤중 급거 피난에 나섰던 주민들>
불길이 마을로 다가오자 수백여 명의 주민들은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긴급히 대피하기 시작했는데 이날 아침 주민들의 피난 행렬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행히 14일(화) 새벽부터 동풍으로 바뀌면서 해안 쪽으로 향하던 불길은 다시 내륙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그러나 이번에는 캐시미어와 그 부근 마을들에 비상이 걸렸으며 이곳 주민들 역시 15일과 16일에 걸쳐 피난 보따리를 싸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소화용 물주머니인 이른바‘몬순 바켓(monsoon buckets)’을 달고 급거 진화에 나섰던 헬리콥터 15대 중 한 대가 14일 낮에 추락해 조종사가 사망했다.
숨진 스티브 애스킨(Steve Askin)은 특수부대인‘SAS(Special Air Services)’출신으로 아프가니스탄 참전 당시 카불의 호텔 인질극 사건에서 부상을 무릅쓰고 동료와 인질들 구출에 공을 세워 제대 전인 2014년에‘Gallantry Stars’라는 2등급 무공훈장을 받은 인물이었다.
훈장을 받을 당시 보안상 익명으로만 알려졌던 그는 이번에 목숨을 잃으면서 실체가 알려졌으며, 평소에도 의협심과 용기가 남달랐던 그를 추모하는 발길이 추모 행사장에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사고로 잠시 헬기 운행이 중지되는 등 소방작업에 차질이 빗어졌는데, 불길이 지형상 접근이 어려운 곳까지 거세게 확대되자 소방관들은 일단 전면진압을 포기한 채 불도저를 동원해 차단선을 만드는 등 주택을 비롯한 시설물에 불길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14일 밤까지 630 헥타르였던 피해 면적은 15일 오전에는 1천 헥타르까지, 그리고 이튿날에는 그 두 배로 눈덩이처럼 커졌는데, 15일 낮에는 220kv 고압송전선이 파손되면서 8만9천 가구의 전기공급이 끊겼고 단전이 펌프장 가동에도 영향을 미쳐 소화수 공급도 차질을 빗었다.
특히 15일 낮 강풍으로 불꽃이 휘몰아치면서 지상 100m 높이까지 솟구치는‘파이어 토네이도(fire tornado)’가 목격됐으며 인공위성에서도 연기구름이 뚜렷이 촬영됐는데, 결국 당일 저녁 6시 30분을 기해 뒤늦게‘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가 선포됐다.
또한 캐시미어와 웨스트모어랜드(Westmorland) 등지 주민 1천 여명이 피난에 나섰는데, 잠을 자던 일부 주민들은 경찰 등 관계자들이 문을 두드려 대피시켰으며 이 바람에 반려동물들을 포함해 중요한 물건들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워슬리(Worsley) 로드의 한 주민은 집이 계곡 아래 쪽이어서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불길이 삽시간에 옮겨 붙으면서 잿더미로 변하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는데, 이는 우리 생각과는 다른 산불의 무서움이 어떤지를 보여준 실제 사례였다.
<자연이 도와준 산불 진화>
이번 산불 진화에는 인력보다는 자연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는데, 확대되던 산불은 17일(금) 오후부터 내린 비로 기세가 수그러들기 시작했으며, 당초 많지 않을 것으로 예보됐던 비는 19일까지 가늘지만 꾸준하게 이어졌다.
덕분에 불길은 잡혔지만 당시 열 카메라에 잡힌 이른바‘핫스팟(Hotspots)’의 온도는 300~400℃에 달해 재발화 가능성으로 소방관들은 계속 현장을 감시했는데, 이들 중에는 인버카길(Invercargill)이나 파머스톤 노스(Palmerston North)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최종 확인된 피해면적은 2,075 헥타르에 달했으며 주택 9채가 전소되고 2채가 파손됐는데, 인명피해는 조종사 사망 외 진화작업과 대피 중 경상을 입은 소방관과 어린이 등 총 3명이었다.
<발화 원인은 아직 오리무중>
당시 16일(목) 현장을 찾았던 빌 잉글리쉬 총리는 방화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소방 관계자들도 어얼리 밸리에서는‘전기적 문제(electrical fault)’로 최초 화재가 발생했다 하면서도 방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또한 경찰 역시 인명피해가 발생한 만큼 소방서와 함께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4월 초순 현재까지는 아직 별다른 발표가 없는 상황이다.
소방 관계자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 중이며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어떠한 목격자나 증인, 증거에 대해서도 밝힐 수 없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대규모 산불이 던져준 교훈>
이번 산불은 해당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다른 국민들에게도 많은 깨우침을 주었는데, 대표적인 것은 대도시 지역이라도 언제든지 이와 같은 재난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준 것이다.
특히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나 호주 산불피해를 정말로‘강 건너 불’로 치부했던 주민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됐는데, 이는 예상 못한 재해가 닥치자 허둥지둥했던 소방서를 포함한 민방위 당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비상사태 선포까지 48시간이나 걸려 소형 비행기에 비해 15배 이상 소화약품을 한번에 살포할 수 있는 공군C-130 허큘리스 대형 수송기가 비가 내리기 시작한 17일에나 현장에 도착하는 등 시청이나 중앙정부의 민방위부를 포함한 관계 부처의 뒤늦은 대처 역시 큰 질책을 받았다.
또 일부 주민들은 주택 구입시 산불도 고려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실제 산불이 나자마자 일부 보험사들은 현장 인근 주택들의 보험가입을 잠정 중단하면서 현장에서 수km 이상 떨어진 산 밑 지역까지 포함시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필자 역시 취재를 하면서, 소방 전문 헬기가 없어 단순히 몬순 버킷만 이용하거나 소형 고정익 비행기가 소량의 소화약품을 살포하는 것을 목격하고 대형 산불에 대한 뉴질랜드의 대처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관련 통계에 의하면, 지난 1992~2007년 사이 전국에서 산불 등 야외지역 화재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이 중 2/3가량이 북섬이었고 근래 들어 빈도가 점점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화재 현장을 둘러보자니, 국민 안전을 위한 체계적 방재 대비는 국가나 자치단체 몫인 게 분명하지만 겨울을 앞둔 요즘,‘불조심’은 결국 우리 스스로 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도 머리에 함께 떠올리게 된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