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보건부(Ministry of Health)에서는 작년 7월부터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사망자로부터의‘장기기증(donating organs)’ 비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 중이다.
세상을 하직하면서 낯선 이들에게‘새로운 삶’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남겨주고 떠난 이들, 그리고 이들로부터 희망을 전달받은 사례를 돌아보면서 국내의 장기기증 현실도 함께 살펴본다.
꽃처럼 아름답던 한 청년의 죽음
작년 2월 14일, 일요일 아침에 웰링턴의 큐바(Cuba) 스트리트에서는 한창 꽃처럼 아름다운 20대 나이의 한 청년이 갑자기 쓰러졌다.
당시 벽에 기대고 있다가 정신을 잃고 스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친구의 팔에 안겼던 청년의 이름은 마이클 보이스(Michael Boyes, 당시 25세).
빅토리아(Victoria)대학교에서 예술사(art history)를 공부한 그는 테 파파(Te Papa) 국립박물관에서 가이드로 일하기도 했고 무대에도 서는 등 평소 창의적인 것들을 무척 사랑했던, 그 나이대의 여느 젊은이들과 다름없는 꿈이 많은 청년이었다.
그러나 결국 정신을 잃은 채 웰링턴 병원으로 실려갔던 그는 이튿날 아침에 의사들로부터 뇌출혈로 인해 소생 가망성이 없다는 이른바‘뇌사(brain-dead)’ 판정을 받게 됐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부모와 누이들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슬픔을 억누르면서 당일 밤 중환자 대기실에서 철야하면서 노래와 기도로 그의 쾌유를 빌었다.
그러나 마이클은 상태가 점점 악화되면서 야속하게도 모두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 한 채 결국 스물 다섯이라는 짧은 생애를 마치고 돌아오지 못할 세상으로 떠났다.
낯선 이들의 인생 바꿔준 가족의 선택
뇌사 판정 후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황망함 속에서 그의 장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기증하기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누이 중 한 명은, 생전에 마이클이 장기기증에 대해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될 일이라고 말하면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전하고, 가족들로서는 그의 삶이 어디에선가 이어지길 원했다고 전했다.
부친 역시 기증을 결정한 후‘NZ장기기증협회(Organ Donation NZ)’를 통해 기증을 받는 이들에게 전달될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에서, 언젠가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만나보고 싶다면서, 아들의 일부분이 지구상 어디에선가 남겨져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며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애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결국 마이클은 뇌사 판정 하루 뒤 이른 아침에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했으며 이후 오클랜드에서 날아온 의료진에 의해 그의 장기들이 조심스럽게 적출됐다.
마이클은 양 눈과 간(liver), 2개의 콩팥(kidney)과 심장(heart), 폐(lungs) 등 모두 7개나 되는 장기를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이식을 기다리던 7명의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주었다.
이 중 콩팥 하나는 한 어린 소년에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60대 남성에게 이식됐으며, 폐는 30대 남성에게, 또한 심장은 한 중년 남성에게 공여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구 역시 다른 2명의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각각 이식돼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해줬으며 간은 호주에 사는 30대 남성에게 전해졌다.
폐 기증 받아 새 삶 찾은 여성
‘낭포성섬유증(cystic fibrosis)’이라는 불치병으로 죽음만 기다리던 알라나 테일러(Alana Taylor, 30)가 양쪽 폐의 이식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오클랜드 병원으로부터 전달받은 때는 지난 2015년 7월 29일.
크라이스트처치에 사는 그녀는 유아교육 전공 후 그 해 4월까지도 교사로 근무했으며 유럽 배낭여행을 2차례나 다녀올 정도로 건강했지만 발병 후 연말의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특히 코카서스인에게는 2천명에 1명일 정도로 흔한 이 선천성 질환은 인종학적으로 북서 유럽인이 잘 걸리고 생존 기대수명이 35세에 불과한데, 아프리칸은 1만 7천명 당 약 1명 정도이고 동양인은 거의 생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병하면 호흡과 소화기관의 점액이 비정상적으로 진하고 끈적끈적해질 뿐만 아니라 양도 많아지면서 환자들은 만성적 기침과 폐렴에 시달리다가 점진적으로 폐기능이 상실돼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마치 빨대로 숨쉬는 듯한 고통 속에 하루하루 간신히 연명하던 그녀는 결국 폐 이식만이 살 길인 절망적 상황에서 기증자만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6시간 대수술과 부작용 끝에 얻은 새 꿈
테일러는 오클랜드 병원에서 6시간에 걸친 큰 이식수술 후 12시간 만에 마취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처음 숨을 쉴 때 마치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고 말했는데, 그러나 수술 일주일 만에 콩팥이 말썽을 부려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져 호흡관을 삽입하고 투석기를 연결한 채 12시간을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나흘 후 일반병동으로 옮겨진 그녀는 이후에도 여러 번 고비가 있었지만 3개월 후에는 무사히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왔고, 수술 전 한쪽 귀퉁이만 살아 남아 기능이 18%까지 떨어졌던 폐는 83%까지 회복된 후 계속 호전됐다.
당시 수술은 기증자가 같은 혈액형에 신체 치수까지 맞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었는데, 수술을 마친 그녀는 한 마디로‘내 자체가 기적(miracle)’이라면서 침대 옆에 앞으로 할 일들을 밤마다 새롭게 적어 놓는다고 말했다.
점액으로 시커멓게 망가졌던 폐 일부를 비닐봉투에 담아 집에 보관한다는 그녀는, 자신이 온전한 새 삶을 얻었으며 카야킹도 하고 전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도 돌아보고 요리평론도 하겠다는 희망찬 꿈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부족한 장기기증, 대기 중 숨지는 환자들
이처럼 장기기증은 정상적 삶을 포기하거나 일찍 마감해야 하는 이들에게 새 인생을 안겨주는 진정으로 귀중한 행위인데, 그러나 뉴질랜드의 사망자 장기기증은 호주에 비해 절반, 그리고 스페인에 비해서는 1/3 정도로 선진국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게 현실이다.
실제 통계에 의하면 2013년 36명, 2014년에는 46명의 사망자들의 장기가 기증됐으며 재작년 53명을 거쳐 작년에는 61명이 되는 등 매년 소폭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반면 작년 12월 현재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가 541명에 달하는데, 이들 중 콩팥(신장)이나 췌장이 496명으로 가장 많고 간이 23명, 그리고 심장과 폐가 각각 14명과 8명으로 환자 중 많은 이들이 대기 중 사망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간과 콩팥 등 일부 장기는 생존한 사람들 간에도 이식이 가능한데, 지난 2015년 이뤄진 48건의 간이식 중 3건이 생존자로부터 간 일부를 이식받은 경우였다.
또한 콩팥의 경우에도 같은 해 이뤄진 수술 중 73건과 74건이 각각 사망자와 생존자로부터 이식을 받은 경우였으며, 이외 심장(12건)과 폐(23건), 췌장(3건) 이식은 모두 사망자들로부터의 이식이었다.
운전면허증을 서명을 통한 장기기증
현재 뉴질랜드 운전면허증에는 사후 장기기증 의사를 표시하는 난이 있으며 이곳에 서명한 이들은 350만 명의 전체 면허보유자 중 190만 명에 이르러 결코 적은 숫자도 아니며 다른 나라에 비해 작지도 않다.
이에 따라 운전면허증에 서명자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장기기증 문화를 변화, 활성화시키고 전체 기증자 숫자를 늘릴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의료계를 포함한 관련 단체의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법률에는 실제로 이들이 사망 시 가족들이 이를 번복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망자 의사에 반하는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작년 7월부터 진행돼 올해 중반에 발표될 예정인 장기기증 제도에 대한 재검토(리뷰)와 청원에는 가족에게 이같은 권리를 계속 부여할지 여부도 검토 대상에 들어 있다.
또한 현재는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달고 있는 뇌사 상태 환자만 장기기증이 이뤄질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전체 환자의 1%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장기기증이 인간으로서 다른 이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임은 분명하지만, 귀중한 생명이 달린 문제인 만큼 철저한 검증과 함께 사회적 합의 역시 선결되어야한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남섬지국장 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