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가계부채가 2,400억달러를 넘어섰다. 가처분소득에 비해 167% 많은 규모이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전보다 높은 가계부채가 뉴질랜드 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167%로 사상 최고
중앙은행에 따르면 1월말 현재 뉴질랜드 가계의 총부채 규모가 2,481억6,000만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이는 1년 전보다 8.7% 증가한 수준으로 뉴질랜드 국민 1인당 5만달러가 넘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은 주택대출과 렌트부동산대출 등 주택관련 대출로 9% 증가한 2,320억6,000만달러로 나타났다.
뉴질랜드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 1991년 3월 58%로 낮은 수준이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가계부채는 급격하게 늘어나 2002-2007년 연평균 14%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후 세계경제위기와 뉴질랜드 파이낸스 회사들의 연쇄 도산을 겪으면서 2008-2011년 가계부채 증가율은 연평균 4%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2012년 이후 장기 저금리와 부동산 붐으로 가계부채가 다시 급증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를 뉴질랜드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75%로 인하한 이후 지금까지 동결해 오고 있다.
중앙은행 그래미 휠러(Graeme Wheeler) 총재는 지난달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발표한 후“통화정책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부양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면서“수많은 불확실성, 특히 국제전망 면에서 불확실성이 남아있어 이에 따라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휠러 총재는 글로벌 리스크가 뉴질랜드 경제성장에 충격을 주고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 목표치인 1-3% 중간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억제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2012년 휠러 총재 취임 이후 물가상승률은 목표를 계속 밑돌았다.
가계부채 비율 세계 7위
뉴질랜드의 가계부채 규모는 세계적 기준으로도 위험한 수준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뉴질랜드의 작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4.4%로 조사 대상 43개국 중 스위스(128.2%), 호주(123.1%), 덴마크(120.7%), 네덜란드(111%), 노르웨이(101.1%), 캐나다(100.6%)에 이어 7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 경제 규모에 비해 가계부채가 너무 높다는 얘기다.
주요 경제 대국인 미국(79.4%)이나 유로존(58.7%), 일본(62.2%)은 물론 영국(87.6%)까지 앞질렀으며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91.6%)에 비해서도 높다.
1년 전 90.7%에 비해 3.7%포인트 상승, 이런 속도의 증가세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가계부채 규모가 GDP를 넘어서게 된다.
HSBC의 폴 블록함(Paul Bloxham) 이코노미스트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원인에 대해 주택 가격이 높아 주택이 가계재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주택에 투자하는 개인들이 많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미국 등에서는 투자 부동산은 보통 회사 소유로 돼있어 부동산으로 발생된 부채가 가계 부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이코노미스트 샤무빌 이큅(Shamubeel Eaqub)은“뉴질랜드 은행 체제는 모든 대출 가운데 모기지 대출이 가장 크게 늘어나는 것을 유도했다”며“많은 대출자들이 경제적 고통 없이 모기지 대출의 악순환에서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무능력향상위원회의 다이앤 맥스웰(Diane Maxwell) 위원장은“뉴질랜드인은 문화적으로 빚에 대해 매우 편안하다”며“부채 금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자를 얼마나 갚아야 하고 누가 갚아야 하는지이다”고 말했다.
재무능력위원회의 질적 연구 결과 뉴질랜드 성인의 21%인 73만5,000명 정도가 본인 명의로 된 자산이 거의 없고 높은 이자를 갚고 있는 위험한 부류로 분류됐다.
높은 가계부채, NZ 경제의 리스크
뉴질랜드경제연구소(NZIER) 크리스티나 렁(Christina Leung) 이코노미스트는 높은 가계부채가 경제의 주요한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렁 이코노미스트는“증가하는 가계부채로 인한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며“상승하는 추세의 금리와 가계소득 감소를 가져오는 고용시장의 침체 가능성이 그것이다”고 설명했다.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은 다음번 기준금리 행보는 인상이지만 연내 금리 인상이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올렸고 뉴질랜드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빨리 상승하고 있어 금리 인상 시기가 앞당겨질 여지는 남아 있다.
렁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인플레이션이 2% 중간치로 돌아가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미국이 제로금리 시대를 마감하고 2015년 12월과 2016년 12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후 3번째 인상이다.
연방준비제도는 올해 세차례 금리를 추가 인상하고 내년에도 세차례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방준비제도가 본격적인 금리인상 궤도에 올라서면서 미국의 기준금리 수준은 올해 말 1.4%, 내년 말 2.1%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상이 무서운 이유는 주택담보대출 등 시중금리가 함께 오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모기지금리 인상이 현실이 됐다.
2012년 11월 3.31% 수준에 불과했던 30년 고정 모기지금리가 최근 4%대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렁 이코노미스트는“금리가 인상되기 시작하면 많은 부채를 가진 가계들이 빚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며“이는 소비 감소와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경기침체를 불러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높은 가계부채는 경제성장 저해
높은 가계부채는 중장기적인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결제은행은 지난달‘가계부채의 장단기 실질효과’라는 연구보고서에서 1990년부터 2015년 1분기까지 23개 선진국과 31개 신흥국 등 54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소비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결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상승하면 1년 이내 단기간에는 해당국의 소비와 성장에 플러스 효과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년 이상의 중장기로 기간을 늘려 분석하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포인트 오르면 중장기적으로 성장률이 0.1%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의 마이너스 효과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60%를 넘어서면 더 커지고, 뉴질랜드와 같이 80%를 넘는 국가엔 마이너스 효과가 집중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계의 늘어난 빚이 단기적으로는 소비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이런 성장 저해 효과가 단기의 플러스 효과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것은 근시안적인 정책에 불과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제성장에 마이너스 효과를 낼 뿐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