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관이 사이가 멀어진 아내와 그녀의 연인에게 총을 쏴 아내를 살해하고 남자에게는 중상을 입히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져 한 도시의 지역사회 전체가 술렁거리고 있다.
▲ 교통경찰로 활동 중이던 맥린
조용했던 현충일 밤에 터져 나온 총성
뉴질랜드가 참전한 각 전쟁에서 숨진 군인들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각종 추모행사가 이른 새벽부터 벌어진 뉴질랜드의‘현충일(ANZAC Day)’이었던 지난 4월 25일(화) 밤 8시 무렵.
남섬 최남단에 자리 잡은 인구 5만 가량으로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인 인버카길(Invercargill) 시내 중심에서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뉴필드(Newfield)의 오테푸니(Otepuni) 애비뉴에 위치한 산업지구의 한 공장 구내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을 쏜 사람은 인버카길 경찰서 소속의 현직 경찰관인 벤 맥린(Ben McLean, 47) 순경(constable)이었으며, 맞은 이는 아내인 베리티 앤 맥린(Verity Ann McLean, 40)과 그녀의 연인으로 알려진 40대 후반 나이의 개리 윌리엄 더간(Garry William Duggan).
이들 커플은 6주 전부터 이곳에서 동거해왔는데, 사건은 8시 19분에 더간이 비상센터에 전화해 알려졌으며 경찰과 앰뷸런스가 도착했을 당시 베리티는 이미 숨진 채 소파에 누워있었고 더간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범인인 맥린 순경은 현장에서 달아났다가 사건을 저지른 지 40분 정도가 지난 후 자기가 근무하던 인버카길 경찰서로 들어가 자수했다.
범행 당시 총을 뺏으려던 더간과의 격투로 얼굴과 팔에 부상을 입은 그는 사우스랜드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날 밤부터 병원에서 한때는 동료였던 다른 경찰관들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부상이 그리 심하지 않았던 그는 사흘 뒤인 4월 28일(금) 저녁에 인버카길 교도소로 이송됐으며,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5월 18일(목)까지 수감되도록 조치됐다.
한편 여러 군데 총상을 입은 더간에 대해 병원 측은 증세가 위중하기는 하지만 안정된 상태라고 전해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비번 중 범행 저지른 경찰관
사건이 나자 인버카길 경찰은 즉각 부근을 봉쇄하는 한편 범인 추적에 나섰으며, 이 소식은 당일 저녁부터 국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그동안 국내 각지에서 별로 드물지 않게 발생해오던 총기사고의 하나로 치부되던 사건이 지역사회는 물론 전국에 충격을 던지면서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이튿날 정오 무렵부터.
사건 하루 뒤에도 인근의 봉쇄가 풀리지 않고 현장감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날 정오 무렵부터 일부 언론에서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범인이 현직 경찰관이라는 소문을 전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날 저녁에 서던 디스트릭(Southern District) 경찰청의 폴 바샴(Paul Basham) 경찰청장(Superintendent, 총경)은 범인이 현직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확인했다.
바샴 청장은, 당시 맥린은 비번이었으며 범행에 사용된 총기가 경찰이 지급한 총기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총기가 어떤 종류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라이플(rifle)이라고 표현해 최소한 권총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특히 부상당한 더간이 여러 곳에 총상을 당했다고 한 것으로 미뤄볼 때 사냥용 산탄총 종류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해당 총기는 현장에서 당일 수거됐다.
한편 사건 현장은‘펜싱 어라운드(Fencing Around)’와 ‘셔틀워스 일렉트리컬(Shuttleworth Electrical)’이라는 두 업체가 함께 입주해 있는 공장 건물 구내의 뒤편에 있던 방이다.
이곳은 사람이 거주할 수는 있지만 본격적인 주택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 커플에게 집을 빌려줬던 주인은 이들이 이곳의 입주기업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사건 전부터 두 사람을 알고 있던 사이이기는 하지만 경찰 수사에 협조해야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사건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전한 바 있다.
▲ 총격 사건의 현장
다친 남성은 범인과 가까웠던 동료
이번 사건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고 개인 사생활이기 때문에 각 언론에서도 단정적 보도는 삼가고 있지만 정황상으로 명백히 맥린 부부와 더간 등 3 사람이 관련된 삼각관계로부터 시작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범인인 맥린 경관은 2007년 12월 포리루아(Porirua) 경찰학교를 졸업한 후 몇 주 뒤 인버카길 경찰서에 배치된 후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줄곧 이곳에서만 근무해왔다.
주로 도로교통 및 교통안전 분야에서 근무했는데, 경찰이 되기 전에는 인버카길 시청에서‘지리정보시스템(Geographic Information Systems, GIS)’분석가로, 그리고 한때는 사우스랜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한 적도 있다.
또한 그는 인버카길 인근 티와이 포인트(Tiwai Point)에 자리잡은 이 지역 최대 공장인 스멜터(Smelter) 알루미늄 제련소에서도 근무하면서 당시에 해당 지역의 소방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 총상을 입은 더간은 트럭기사로 현재도 스멜터에 소속된 직원인데, 맥린의 제련소 근무 당시에도 함께 일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이미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맥린 부부는 더간과 그의 아내인 레이첼(Rachel)과도 알고 지냈으며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둘은 한때는 함께 사업 구상도 했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죽은 베리티는 인버카길 출신으로 쌍둥이였는데, 사우스랜드의 다른 도시에 사는 그녀의 자매는 큰 충격을 받은 가운데 가족들이 현재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들 쌍둥이 자매의 부친은 1970년대 올블랙스 멤버로 호주, 피지와의 럭비 경기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로버트 존 바버(Robert John Barber)이며, 엄마인 카트리나(Katrina)는 간호사 출신으로 이들 부부 역시 사건 현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내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맥린 경관 역시 이 지역 출신으로 그는 티스버리(Tisbury) 인근에 두 채의 반 전원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그 중 한 채는 여전히 부부 주소지로 등재된 가운데 그 집 바로 옆에는 현재 그의 모친이 거주 중이다.
▲ 총격 사건의 현장
겉과 속이 달랐던 가정의 비극
맥린 경관과 숨진 베리티 사이에는 20세 미만의 고등학생으로만 공개된 3명의 자녀들이 있으며 이들 자녀들은 현재 모두 버든(Verdon) 칼리지에 재학 중이다.
예상치 못했던 큰 사건 후 이들 사건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큰 충격 속에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맥린 부부의 가정을‘모범적 가정(role model family)’으로 여겼으며, 남편이나 아내나 모두 주변인들에게는 행복한 삶을 꾸며가는 여느 가정과 별반 다름 없는 인생들을 살고 있던 사람들로 비쳐졌다.
그러나 평소 주변 평가와는 달리 이미 꽤 오래 전부터 두 가정은 문제가 됐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건이 벌어진 후 더간의 아내인 레이첼이 언론에 밝힌 내용이 이를 시사하고 있다.
그녀는 한 마디로“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보아온 것들이 전부가 아니다”고 말했으며, 맥린의 모친 역시 이들 사이에는 오래된 일들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주변인들이 모르는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음을 암시했다.
한편 레이첼은 더간과 베리티가 동거를 시작한 뒤인 지난 4월 중순에 자신의 페이스북 프로필 가족사진에서 더간을 뺀 채 아이들과 자신만 남겨놓기도 했다.
충격 속에 빠진 지역사회
사건 당사자들이 지역의 오랜 토박이들이다 보니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주민들이 없을 정도로 좁은 인버카길 지역사회는 이번 사건으로 주민들이 충격을 받은 가운데 다양한 반응들이 전해지고 있다.
23년 동안 재직 중인 팀 새드볼트(Tim Shadbolt) 인버카길 시장도,“이 지역사회에 비극적인, 정말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놀란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인버카길은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자랑스러운 도시이며 주민들도 서로 긴밀히 연결돼 이번 사건으로 영향을 받을 이들이 아주 많다면서, 자신이 재임해오는 동안 이 같은 일은 처음이며 충격이 크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한편 맥린의 자녀들이 재학 중인 학교 교장도, 우리 모두가 너무도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을 접했다면서, 특히 죽은 베리티 유가족에게 조의와 기도를 전한다고 말하고 등교할 학생들에게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전국의 경찰관들도 충격을 받았지만 특히 맥린의 동료들은 정신적 충격이 훨씬 심한데, 이를 확인하듯 바샴 경찰청장은 사건 당사자들의 가족들은 물론 맥린의 동료 경찰관들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비극적이고 당황스런 사건이기는 하지만 이는 일회성 사건이라면서, 동료였다고 하더라도 절대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사건을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거듭해 강조했다.
수사에는 30여명이 투입됐으며 그중에는 더니든, 캔터베리 경찰 소속 수사관들도 포함됐는데, 이는 현지 경찰로만 수사 시 발생할 잡음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경찰 수뇌부의 조치로 보인다.
또한 이번 사건은‘독립경찰조사위원회(Independent Police Conduct Authority)’에도 통보돼 정식으로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남섬지국장 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