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국민당 정부는 연봉에 따라 기술이민과 워크비자를 규제하기로 발표했다. 정부는 이민 신청자들의 질적 향상을 가져오기 위해 이민 정책을 변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새로운 정책에 따라 이민자의 기술 수준이 향상될 지는 의문이다.
이민 규제 ‘양에서 질로’
지난해 10월 기술이민 점수를 140점에서 160점으로 높이고 영주권 승인 수를 향후 2년 동안 5,000명 줄여 승인 상한선을 8만5,000-9만5,000명 선으로 하향 조정한 이민 정책 변경이 이민자 수를 줄이는 규제였다면 지난달 19일 발표된 새로운 이민 정책은 이민자들의 질을 규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새로운 연봉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민 희망자들이 늘어나 뉴질랜드 유입 인구도 덩달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8월 14일부터 시행 예정인 새로운 이민 정책은 쉽게 말해 뉴질랜드 현지인들도 할 수 있는 저임금 단순직의 이민자는 받지 않겠다는 얘기다.
기술이민 신청시 두 단계의 연봉 기준이 도입돼 뉴질랜드에서 고용돼 있거나 오퍼를 받은 직업의 연봉이 뉴질랜드 중간소득인 4만8,859달러에 못 미칠 경우 고용 부문의 점수를 받지 못해 기술이민 신청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연봉이 중간소득의 1.5배인 7만3,299달러를 넘는 이민 신청자들은 호주·뉴질랜드표준직업분류(ANZSCO) 기술 레벨 1, 2, 3 직업이 아닐지라도 자동으로 기술 고용으로 분류돼 이민 신청이 가능하고 중간소득의 2배인 9만7,718달러의 연봉을 받는 신청자에게는 보너스 점수가 주어진다.
지난 3월 1일 현재 심사중인 600여건의 기술이민 신청 가운데 42.5%가 새로운 연봉 기준인 4만8,859달러를 넘고 14%가 7만5,000달러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이민과 관련된 다른 변화는 30대 연령, 박사 학위, 경력 등에 대한 점수 배정이 늘어나는 대신 뉴질랜드내 직계가족이 있는 경우 주어졌던 보너스 점수 등이 폐지된다.
마이클 우드하우스(Michael Woodhouse) 이민장관은 “새로운 이민 정책이 이민자 수를 축소하기보다는 이민자들의 질을 향상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봉 기준은 뉴질랜드 소득 자료를 근거로 매년 검토되고 이번 이민 변경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 달에 발표될 예정이다.
저임금 직업 종사자 이민 신청 불가
새로운 이민 조건에 따라 음식점, 카페 등 요식업에 종사하는 이민 신청자들은 연봉이 그만큼 높지 않아 직격탄을 받게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호스피탈리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봉은 3만9,624달러이고 소매 산업의 경우 4만3,284달러로 새로운 연봉 기준에 못미친다.
이와 관련, 퍼스트 리테일 그룹(First Retail Group)의 크리스 윌킨슨(Chris Wilkinson) 대표는“이민에 대한 정부의 포괄적 접근법이 부적절하고 관련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워크비자에도 기술이민 부문에 도입된 연봉 기준을 비슷하게 적용해 임금이 낮지만 부족 직업군으로 분류된 저기술직의 비자 기한이 3년으로 제한된다.
또한 저기술 워크비자로 분류된 사람들의 취학자녀 학비면제와 배우자에 대한 오픈 워크비자 발급 혜택이 폐지된다.
계절적직업비자의 경우 현행 12개월에서 노동 수요가 있는 기간으로 체류 기간이 단축된다.
우드하우스 장관은“영주권 취득을 목적으로 낮은 수준의 학위를 공부하려고 유학오는 학생들과 임시 노동자들의 배우자 및 자녀 등의 입국이 줄어 오클랜드 유입 인구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싱크 탱크 ‘뉴질랜드 이니셔티브(New Zealand Initiative)’의 올리버 하트위치(Oliver Hartwich) 이사는 이번 이민 정책 변화가 대체적으로 옳은 방향이지만 관광산업과 같이 저기술 이민자들이 기여하는 부문도 간과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하트위치 이사는 “뉴질랜드가 고기술 이민자들한테서만 혜택을 본다는 일반적인 생각은 잘못된 것이고 실제 우리 경제는 다양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며 정부가 이번에 남섬에 거주하는 약 4,000명의 장기 이주 노동자들에 일시적으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조치를 환영했다.
정부는 상호 혜택의 이유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줄이지 않고, 주요한 수출산업으로 성장한 유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학생비자 축소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민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부문의 입국자들이 키위들의 불만인 일자리 잠식의 주요한 원천인데도 이 부문을 규제하기보다 그렇지 않아도 감소 추세인 기술이민을 연봉으로 규제하는 방법으로는 이민자들의 전체 기
술 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동당 “이민자 수천명 줄일 것”
제 1야당인 노동당의 이민 정책은 집권 국민당보다 더욱 규제적이다.
노동당은 정부의 이번 이민 정책 변경이 어설프게 이민 문제를 고치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집권할 경우 이민자 수를 수천 명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당 앤드류 리틀(Andrew Little) 대표는 “이민은 진정으로 기술이 부족한 부문을 채워야 하지 지금처럼 완전자유 정책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노동당은 신규 이민자 수를 수천 명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리틀 대표는 이민자 수는 매년 기술부족 인력 정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정확한 이민자 축소 규모는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5년 오클랜드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중국인 구매자들을 지목해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켰던 리틀 대표는 연간 7만명이 넘는 기록적인 신규 이민자들이 대부분 오클랜드에 정착해 주택과 공공 서비스, 인프라가 큰 압박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민에 대해 검토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당은 곧 당의 이민 정책을 발표할 예정인데 워크비자 승인 수를 축소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빌 잉글리시(Bill English) 총리는 “10만호 신규주택 건설을 공약한 노동당이 이민자 수를 대거 줄이면 어디서 인력을 구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인구유입의 상당 부분이 이민갔다 돌아오는 뉴질랜드인인 요즘 급격한 이민자 축소는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호주 이민 규제로 키위들도 영향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이민 규제는 이웃 호주에서도 강화됐다.
호주 정부는 지난달 18일 외국인 임시 취업비자, 일명 ‘457비자’를 시행 20여년 만에 전격 폐지했다.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 호주 총리는 “호주인 노동자들이 호주의 일자리에서 우선순위를 가져야만 한다”면서“따라서 우리는 임시직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리 나라로 불러들이는 457비자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미 457비자를 취득해 호주에서 거주 중인 외국인은 소급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턴불 총리는 밝혔다.
457비자를 대체하게 될 2년과 4년짜리 임시 비자 2종이 있지만, 이 비자들은 엄격한 영어능력 시험 통과, 최소 2년의 실무 경력, 경찰 범죄기록 조회 의무화 등 훨씬 까다로워진 조건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호주 취업 이민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기존 457비자는 4년이라는 기한이 정해져 있긴 했지만 연장이 가능해 사실상 영주권 취득을 위한 준비단계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대체 비자는 영주권 취득으로 이어지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그동안 457비자를 신청할 수 있었던 직업군 651개 중 216개 직업군 종사자는 비자 발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호주의 이민 규제는 이웃인 뉴질랜드인들에도 바로 영향을 미쳐 2016년 2월 이후 호주에 입국한 뉴질랜드인이 시민권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영주권 취득 후 4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2001년에서 2016년 2월 사이 호주에 입국한 뉴질랜드인이 5년 연속 5만3,000호주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릴 경우 영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지고, 영주권 취득 1년 후 시민권 신청 자격을 주도록 양국간에 지난해 2월 합의했던 특별 시민권 취득 협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일부에서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호주인들은 학생융자 등 사회복지 혜택을 쉽게 받는 반면 호주에 거주하는 뉴질랜드인들에게 규제가 가해지는 상황을 비난하며 뉴질랜드도 호주인의 뉴질랜드 시민권 취득을 강화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