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유입되는 이민자 숫자가 신기록을 이어가는 가운데 금년 9월 23일에 실시될 총선을 앞두고 정가는 물론 뉴질랜드 사회 전체에서 이민 정책이 중요한 선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국민당 정부는 이민자 유입을 억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새 이민 정책을 지난 4월 18일 발표했으며 이달 들어 새 정책의 세부 내용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뉴질랜드로 자국민들을 이민시키던 국가들의 위상도 변화될 것으로 보여지는데, 영주권을 포함해 취업, 학생 비자 등 지난 한해 동안 유입된 이민자들의 숫자와 출신 국가 등 전반적인 현황을 더듬어 본다.
취업 비자 발급 대부분 비 아시안
지난 4월말에 발표된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발급된 취업 비자(work visas)는 모두 41,576건에 달했는데 이는 2004년의 16,787건에 비해서는 2.5배 정도 늘어난 수치이다.
이러한 취업 비자를 발급받았던 이들 중 영국 출신이 전체 비자 발급 건수 중 16.6%나 점유하면서 국가별 순위에서 1위에 올랐으며, 그 뒤를 8.8%의 독일 출신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 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미국이 취업비자 발급 부문에서 상위 5개국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우리 교민들을 비롯해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권 국가들이 취업비자 부분에서는 주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통계자료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영국 출신은 지난 2004년에 발급된 취업비자 16,787건 중에 6,585건을 차지했으며 2010년에는 전체 19,581건 중 4,449건, 그리고 2016년에는 41,576건 중 6,892건으로 취업비자 부문에서는 계속해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2004년에 2,383건으로 이 부분에서 2위였던 일본은 2010년까지만 해도 연간 1,007건을 기록하면서 상위 5위 국가에 턱걸이를 했으나 이후에는 아예 5위권 안에서는 이름이 사라졌다.
이에 반해 독일은 2004년 755건이었으나 2010년에 1,539건으로 이 부문 2위에 오르더니 작년에도 3,604건을 기록하면서 여전히 취업비자 출신국 중에서 영국에 이어 두 번째 자리를 유지 중이다.
또한 이웃 호주도 2010년에 1,404건으로 이 부문 3위에 오른 후 6년이 흐른 작년에도 3,363건으로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미국 출신들도 2004년 1,010건(3위), 2010년에는 1,245건(4위), 그리고 작년에 연간 2,021건을 기록하면서 5위에 올라 꾸준히 상위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은 작년에 연간 2,150건의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4위에 오르면서 5위권 안에 새롭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취업비자 분야의 점유율도 2004년의 2.5%에서 작년에는 5.5%로 올라갔다.
한 이민 전문가는 이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들이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은 몇 년 전부터 앞서 들어왔던 그곳 출신 이민자들이 뉴질랜드 현지 사회에 본격적으로 정착하면서 나타난 후발효과로 분석했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분석해보면 최근 들어 발급건수가 감소한 일본을 제외한다면, 일단 영어가 모국어이거나 독일 출신처럼 동양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쉽게 언어를 익힐 수 있는 국가 출신들이 뉴질랜드의 취업비자 시장에서는 상위에 올라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아시안은 취업 비자보다 영주권 선호
한편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말까지 장기 거주를 목적으로 입국한 이민자는 연간 128,816명을 기록했으며 여기에는 뉴질랜드 국민으로서 해외에서 살다 귀국했거나 또는 취업 비자 없이 일하는 게 가능한 호주 출신도 일부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장기거주 입국자 중 2월말까지 연간 취업비자 발급 건수는 43,025건으로 전체 입국자의 33%가 넘었으며 ‘영주비자(residence visas)’는 16,833건, 그리고 ‘학생비자’발급은 6,338건이었고 기타는 694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중국과 인도 출신은 영주비자 부문에서는 최상위에 올랐지만 앞서 나타난 자료처럼 취업비자 부분에서는 5개의 주요 송출국 중에 끼지 못했으며,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어난 필리핀 출신 역시 상황은 엇비슷하다.
필리핀 출신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은 지난 2004년에는 71건에 점유율 0.4%로 미미했지만 작년에는 1,871건으로 점유율도 4.5%까지 상승했는데, 특히 이들은 보건(health)과 농업(farming), 그중에서도 낙농업(dairying) 분야의 노동력 공급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중국 출신에 대해서는 2004년에는 312건으로 그리 크지 않았으며 작년에도 전체적인 이민자 숫자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인 1,697건의 취업비자가 발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번 자료를 분석한 대학의 한 전문가는, 아시아 국가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전문기술을 가진 취업비자(skilled work visa)’에 직접 접근하기보다는 ‘유학 후 취업’등 옵션이 붙은‘임시 취업이나 학생비자(temporary work and study visa)’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영주권에 접근하는 경향이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같은 경향은 지난 수년 간 인도 출신들이 대규모로 학생비자로 입국했던 현상에서도 엿보이는데, 이로 인해 공부보다는 영주권 취득이나 취업이 목적이었던 학생들에 대한 부실한 학사관리가 문제가 된 사건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고 이민이나 교육 당국의 단속도 심해지자 지난 2월까지 인도 출신에 대한 연간 학생비자 발급건수는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38%나 급감하기도 했다.
인구 증가에 큰 영향 미친 취업 비자
지난 2월말까지 장기 거주를 목적으로 한 입국자와 반대로 같은 이유로 출국한 사람을 차감한 이른바 ‘순이민자’ 숫자는 연간 71,333명을 기록했는데, 2월말까지 6개월 연속해서 월별 순이민자 숫자가 6천 명을 넘어선 바 있다.
3월에도 월간 순이민자가 6,100명을 기록하는 등 이런 추세는 최근까지 계속되며 국내의 전체적인 인구증가율을 높이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추세가 그대로 이어질 경우 현재 477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뉴질랜드 총인구가 오는 2019년에는 5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3월말에 ASB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내년 하반기에도 연간 순이민자가 7만명 후반 선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여기에는 한창 때에 비해서는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뉴질랜드 시민들이 호주에서부터 돌아오고 있는 현상도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호주의 각 기업체에서 일하던 일부 고급 기술자들을 포함해 중간과 상위 관리자들도 귀국에 합류하는 실정이며, 호주 경제 침체로 워킹 홀리데이를 비롯한 호주 국적자들의 뉴질랜드 행도 이전보다 크게 늘어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출생으로 인한 자연적 증가보다는 이민자 유입이 국내 인구 증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입증된 가운데 그중에서도 특히 연간 4만 건을 넘은 취업비자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이 새삼 주목을 받게 된 상황이다.
아시안 빈자리 메울 유럽계 이민자
한편 특히 취업 비자를 포함해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이민자가 많아진 데는 근래 영국이 유로를 벗어나기로 한 이른바 ‘브렉시트(Brexit)’와 함께 미국의 경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진다.
한 전문가는, 비록 초기 현상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이들 유럽계 이민자들이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의 빈 자리를 메우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는데, 특히 이번에 바뀐 새 이민정책이 이 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도 높다.
이번에 바뀐 이민정책의 근간은 한마디로 이민자 숫자보다는 질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담겨 있는데, 그러나 농업 및 보건, 관광 등 특히 그동안 낮은 임금으로 외국 노동력을 많이 활용해왔던 일선의 산업 현장에서는 새 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변경된 제도의 성공이나 실패 여부를 논외로 하더라도 이로 인해 그동안 취업비자로 거주하던 교민들을 비롯해 주로 식당 등 접객업소나 유통 등 낮은 수준의 기술, 또는 평균임금 수준으로 일하던 이민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한편 이 같은 현상은 이웃 호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뉴질랜드의 새 이민정책 발표 하루 전에 호주 역시 고급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자국민의 취업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20년간 운영해온 임시취업비자, 이른바 ‘457 비자’를 전격 폐지해 현지의 교민사회를 비롯한 현지 이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같은 추세에서 노동당을 비롯한 뉴질랜드 야당들도 취업 비자 감축 등 이민자 숫자를 줄이기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금년 총선에서는 이민 문제가 뜨거운 핵심으로 등장하면서 어느 쪽이 집권하던 특히 아시아권 이민자들에게는 뉴질랜드로의 이민길이 한층 험난해지게 됐다.
남섬지국장 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