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늘고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사람들 일상생활도 점점 바빠지면서 뉴질랜드 국민들이 사랑하는 반려동물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전통적 반려동물이었던 개와 고양이 숫자가 줄면서 새나 도마뱀 같은 파충류처럼 작고 다루기 쉬운 동물들이 이들을 대체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반려견과 함께 셋집 찾아 헤매는 남성
오클랜드에 사는 한 남성은 최근 자신이 거주할 새로운 렌트집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다.
이유는 그가 기르는 한 마리의 셰퍼드 때문인데, 얼마 전까지 자기 소유의 집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편하게 살던 그가 요즘은 개 기르는 것을 허락해줄 셋집 주인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 반려견은 해당 남성이 4년 전 입양했으며 이후 그는 전 부인과 헤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감정적 문제로 인해 자기 집에서 살기가 꺼려진 그는 다른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고 나왔지만 그때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임시로 노스랜드에 있는 자기 부모의 농장에 개를 맡길 수 밖에 없었는데 이미 그들에게는 가축들과 함께 4마리의 개들이 있는 상황이다.
그는 가족과 다름없는 반려견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오클랜드에서 현재 파트
너의 부모 집에 임시로 얹혀 사는 그가 개를 데려오려면 집을 사거나 개를 허용해주는 셋집을 얻는 수 밖에 없다.
이 사례는 가족의 일원으로 입양했던 반려견이 주인의 삶에 피치 못할 변화가 생겼을 경우, 둘 모두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데는 생각해야 될 점이 많다는 점도 함께 일깨워준다.
점점 줄어드는 개와 고양이
키위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별난데, 특히 그중에서도 개와 고양이는 전통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반려동물이며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당당하게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각 가정에 자리잡고 있다.
2015년 7월 나온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뉴질랜드인들 중 절반 이상인 58%가 집에서 최소한 한 마리 이상 개나 고양이를 키우며 이 중 15%가량인 33만명이 이들을 먹이는 일뿐만 아니라 매달 정기적으로 돌봄 서비스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자료에 의하면 북섬 주민의 경우 2/3가량이 한 마리 이상 반려동물을 가졌으며, 이들 중 52%가 고양이를, 그리고 37%가 개를 한 마리씩 기르고 있으며 둘 모두를 가진 사람도 22%나 됐다.
남섬 지역 역시 이들에 대한 애정이 깊은데, 개 소유자의 전국 평균이 31%인 것에 비해 남섬의 비율은 36%였으며 고양이 역시 전국 평균 45%에 비해 높은 47%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관련 통계를 보면 개와 고양이 숫자 모두 감소 추세인데, 지난 2012년에 69만 6000 마리였던 반려견은 금년에는 68만 마리로 5년 사이에 2.3%인 1만 6000 마리가 감소했다.
또한 5년 전 140만 마리 이상으로 추정돼 개보다 숫자가 훨씬 많은 집고양이의 경우에도 같은 기간 동안에 20만 마리나 준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같은 개와 고양이의 감소 추세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반려동물 변화에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사람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전통적인 반려동물이었던 개와 고양이가 줄어드는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맨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은, 요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급속도로 바뀌어 그야말로 너무 바쁘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뉴질랜드에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일요일이나 휴일이면 밥 먹을 식당을 찾아 다녀야 했고, 평일이라도 저녁 5,6시만 되면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아 시내 거리가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늦은 밤 시간은 물론 일요일에도 영업하는 가게나 식당이 즐비한 시대가 됐으며, 나아가 점포들끼리는 단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손님을 유치하고자 다퉈야 하는 등 전에 비해서는 훨씬 치열한 삶의 현장이 하루하루 펼쳐지고 있다.
자연히 사람들의 일상이 바빠진 가운데 누릴 수 있는 여유시간도 부족해지면서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들을 돌볼 시간적 여유도 함께 사라진 것이 오늘날 뉴질랜드인들의 삶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개 고양이는 대부분 가정을 이루고 기르기 시작하는데, 현재 사회적 경제적 여건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평생 미혼인 사람들이 늘어난 점과 함께 과거에 비해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가 더 잦아졌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집값 폭등과 하락한 자기집 보유율
여기에 더해 부동산 가격 폭등도 또 하나 원인으로 작용했는데, 특히 오클랜드와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의 집값 폭등은 집 없는 서민들이나 생애 최초로 집을 마련하러 나서는 젊은이들에게 큰 좌절도 안겨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들에게 개나 고양이를 키워보겠다는 생각을 엄두조차 못 갖게 만들었다.
즉 자가주택 보유율이 떨어지는 현실이 개와 고양이 숫자 감소에도 영향을 준 셈인데, 임대주택을 전전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입양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사정이 생겨 이사라도 한번 하고자 하면 앞서 이야기한 오클랜드 남성 사례처럼 개를 허용하는 집주인을 다시 찾는 게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주인 입장에서도 특히 개나 고양이가 커튼을 잡아 당기거나 계단 모서리를 물어 뜯고 카펫을 망가트리고 마당을 파헤쳐 놓는 등 재산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임대주택 수요도 많은 판에 굳이 이를 허용해줄 필요성을 못 느낀다.
한편 내 집이라고 하더라도 과거보다 각 주택의 평균 부지가 훨씬 작아졌으며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도심에서는 아파트나 타운하우스 같은 연립형 주택이 대폭 늘어나 비록 정원이 있더라도 개를 키우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 생각돼 집주인이라도 입양을 망설이는 경우도 많다.
실제 앞서 인용한 2015년 7월 자료에서도 북섬 지역 중 오클랜드와 웰링턴의 경우 한 마리 이상의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절반 이하로 여타 지역에 비해 한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에 대한 세대 간 인식 변화
전문가들이 꼽은 또 다른 요인으로는 뉴질랜드의 총인구는 늘어났지만 동시에 노령화 역시 더욱 심해졌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지금에 비해 보다 넓은 면적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공간적으로는 풍족한 시대에 대형견과 고양이들을 때론 몇 마리씩이나 키우며 살았던 노인 세대가 더욱 노령화되거나 혹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추세와 맞물려 있다.
여기에 더해 젊은 세대는 과거 세대와는 달리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 주변에 얼마든지 혼자 즐길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보니 반려동물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점 역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즉 개나 고양이를 지극히 사랑하던 노인층이 점차 퇴장하면서 새로운 세대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지만, 이 새롭게 등장한 세대는 개와 고양이에 대한 생각 자체도 달라졌지만 물리적 환경 변화 역시 이들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는 개와 고양이, 그중에서도 반려견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으며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 역시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개의 경우 매년 내는 등록비도 있지만 특히 문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 드는 치료비가 사람에 필적하는 경우도 많으며, 흔히 주변에서 그보다 더 많은 치료비가 들었다는 이야기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변화하는 반려동물 기르기
이런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여전히 개를 입양하지만 요즘은 이들 역시‘래브라도 리트리버(Labrador Retriever)’나 포스트‘보더 콜리(Border Collie)’처럼 그동안 전통적으로 선호됐던 대형견이 아닌 돌보기가 좀 더 수월한 소형견들을 찾는 경향이 대세이다.
나아가 많은 뉴질랜드인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새로운 반려동물들을 찾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새(조류)와 파충류로 알려졌다.
실제로 반려동물 전문점들을 가보면 여전히 개와 고양이가 주류이긴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앵무새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새를 포함해 토끼나 기니 피그, 각종 도마뱀과 거북이, 금붕어와 열대어 등 이전에 많이 접하지 않았던 다른 동물들이 많아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이 같은 추세 속에 전문가들은, 앞으로 개나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들도 둘 중 하나만 기르거나 전체적인 마릿수를 줄일 것이며, 혹은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이들에 비해 할 일이 적은 애완동물들로 바꾸는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