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거의 끝나가던 지난 9월말, 국내 각 언론들에는 따뜻했던 지난 겨울과 예년보다 더 길 것으로 예보된 올해의 여름 날씨 때문에 각종 해충이 극성을 부릴 것이라는 기사들이 일제히 올라왔다.
특히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들을 키우는 가정에서는 ‘벼룩(fleas)’으로 인해 괴로움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가 보건 및 방역 전문가들로부터 전해졌다.
<은행 업무까지 지장을 주었던 벼룩 소동>
현지 언론에 전해진 보도들을 되돌아 보다 보면 금년 2월에 웰링턴 도심에서 작은 벼룩들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소동의 내용은 국내의 한 대형 은행이 입주해있는 시내 토리(Tory) 스트리트에 위치한 고층건물 중 일부 층에서 벼룩이 발견됐지만 방역이 제때 이뤄지지 못해 급기야는 노조까지 나서서 직원들의 건강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당시 회사 내부 이메일을 참조해 전해진 내용을 보면, 2월 12일(금)에 4층에 근무하는 몇몇 직원이 벼룩에 물린 후 은행 측에 문제 제기를 했지만 출장을 나오기로 했던 방역업체 전문가가 갑자기 아픈 바람에 방역 일정이 2주 뒤에나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노조에서는, 하루 종일 직장에서 발목을 물려가면서 근무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국내 최대이자 돈도 많다고 자부하는 대형 은행이라는 곳에서 이게 말이냐 되는 일이냐고 은행 측을 비난했다.
은행 측은 이에 대해 해당 사무실에 스프레이를 살포했으며 집에서도 이에 대처하도록 했다면서, 전체 근무직원 350명 중 5명 가량이 벼룩 소동에 영향을 받았고 문제가 제기되던 주말로 예정됐던 방역작업이 업체 측 사정으로 지연됐을 뿐이고 최대한 빨리 연기로 하는 방역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그 당시에도 예년보다 날씨가 따듯해 벼룩이나 바퀴벌레를 비롯한 해충들이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관련 소식과 함께 이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보건 전문가들의 의견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바 있었다.
소동이 일어났던 무렵 웰링턴 지역의 한 방역업체 관계자는, 자신이 11년 동안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예년에 비해 벼룩 퇴치 요청이 25%나 급증했으며 말벌집 제거를 비롯해 바퀴벌레 등 다른 해충들을 처리해 달라는 요청도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 여름 특히 벼룩들이 극성 부릴 듯>
그런데 문제는 지난 겨울이 예상보다 훨씬 따뜻하게 지나가는 바람에 이로 인해 올 봄과 여름에는 지난 가을이나 겨울보다 훨씬 더 해충들이 극성을 부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많은 수의 반려동물들을 즐겨 키우는 뉴질랜드 가정들의 성향을 감안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벼룩이 될 것으로 보인다.
9월 27일(화)에 보도된 신문기사에서 한 수의사는, 따뜻했던 지난 겨울과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 올 여름 기상예보로 인해 그야말로 벼룩에게는 최상의 활동 조건이 마련됐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벼룩이 억제되지 않은 채 만연하게 되면 당연히 반려동물들은 물론 함께 사는 사람들의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서, 특히 이들 반려동물들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은 기온이 더 올라가 벼룩이 본격적으로 극성을 부리기 전에 방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체 상태로 반려동물에 붙어 있는 벼룩은 전체 벼룩 숫자의 5%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알(eggs)이나 애벌레(larvae), 번데기(pupae) 형태로 집 안이나 정원 등 우리 주변 여기저기에 잠복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성체가 아직 안 된 벼룩들은 최대 6개월까지 고치(cocoons) 상태로 동면하면서 겨울을 지낼 수 있으며, 언제든지 기온이 올라 활동할 여건만 마련되면 즉시 성체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미성숙한 벼룩들은 통상 기온이 21℃ 정도에 이르면 성체가 돼 활동을 개시하는데, 만약 온도 30℃ 정도에 습도가 70% 정도라면 성체가 되는 시간 역시 12일 이하로 기온이 낮을 때보다 훨씬 짧아진다.
특히 벼룩 성체 중 암컷은 하루 최대 50개의 알을 낳아 만약 기온이 올라가 일단 벼룩이 퍼지기 시작하면 이들의 생존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개체 수가 증가, 동물은 물론 같이 기거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안 사는 곳이 없는 벼룩>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에 벼룩이 일단 고양이나 개 등 반려동물을 통해 집 밖에서 옮겨오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서도 이야기했듯 벼룩은 성체가 되기 전에 갖가지 형태로 집 안의 카펫은 물론 마루바닥의 작은 틈새, 심지어는 타일로 된 곳에서조차 알이나 번데기의 형태로 숨어 있을 수 있다.
이외에도 정원의 초목이나 정원 쓰레기가 놓여져 있는 곳은 물론 흔히 고양이나 개들이 뒤지고 다니는 데크 밑이나 현관 턱 밑에서도 발견되며, 이 같은 장소를 평상시 수시로 들락거리는 반려동물의 몸에 붙어 쉽게 집 안으로 유입된다.
반려동물의 몸에 붙었던 알이나 고치는 동물의 체온이나 집 안의 온기에 의해 동면 상태에서 깨어나 성체가 되면서 무섭게 퍼지기 시작해 사람이나 동물 모두에게 불면의 밤을 선물(?)하게 된다.
<어린 동물은 빈혈까지 초래돼>
주지하다시피 벼룩은 기생하는 숙주 동물의 피부에 주사하듯이 침을 쏘고 나서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하는 성분을 혈관에 주입한 후 피를 빨아먹는 대표적인 흡혈 기생곤충이다.
이 과정에서 벼룩이 생긴 반려동물은 당연히 ‘긁거나 물어뜯고 털을 계속 핥는(scratching, nibbling or grooming)’ 등 대응행동을 보이는데, 이 바람에 나중에는 피부까지 벗겨지거나 물린 상처가 덧나는 등 후유증이 초래된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인데 전문가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벼룩의 타액(saliva)으로 인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박테리아 감염, 나아가 촌충(flea tapeworm)을 전염시키는 경우도 흔할뿐더러 아주 어린 반려동물들은 빈혈(anaemia)이 심해져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벼룩 침입 예방 요령은?>
이 같은 벼룩의 침입을 예방하는 방법은 우선 벼룩을 옮겨 오는 반려동물의 관리로부터 시작한다.
개나 고양이가 잠자리로 사용하는 담요나 평상시 깔고 누워 있는 러그(rug) 등을 자주 청소하고 따뜻한 물로 세탁해야 하며, 가구와 차량 좌석 등 미성체 상태의 벼룩들이 숨어 있을 만한 곳에 대한 청소도 진공청소기를 이용해 자주 해야 된다.
또한 진공청소기를 이용한 집 안 청소에서는 카펫뿐만이 아니라 비록 바닥이 마루이거나 타일이라고 하더라도 똑같이 꼼꼼하게 청소해야 하며 진공청소기의 먼지 봉투 역시 취급에 주의해야 한다.
나아가 반려동물들이 데크 밑이나 현관 입구(porch) 밑 등 평소에 드나들기 좋아하는 축축하고 어두운 곳을 막는 것도 요령 중 하나이며, 정원에 방치된 정원 쓰레기나 물건들도 반려동물들이 흔히 잠자는 곳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가급적 제거해야 한다.
물론 방역이 안됐다고 여겨지는 길고양이 등 다른 동물들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 일 중 하나이다.
<급증하는 말벌도 주의해야>
한편 최근 보도를 보면 이번 여름에는 말벌(wasp)도 크게 개체 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으며, 이미 각 지역의 방역업체들에 따르면 말벌집을 제거해 달라는 요청이 예년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방역업체 관계자는 작년 여름에도 말벌이 증가했었지만 금년에는 이미 노스랜드에서 소형 자동차 만한 크기의 말벌집이 발견되는 등 전보다 상황이 더 심각할 듯 하다고 전했다.
그는 겨울이 추우면 벌집 하나에 통상 여왕벌 한 마리와 적은 수의 일벌들만 다음 봄까지 살아남는데 비해 날씨가 따듯하면 대부분 살아남아, 이 같은 상황 하에서는 여름철 4개월 동안 한 벌집에 개체 수가 최대 3만 마리에 이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3만 마리에 달하는 말벌이 영역 침범을 당한 후 극도로 흥분한 채 하늘을 휘저으면서 날아다닌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지겠냐며, 일반인들이 만약 말벌집을 발견하면 절대로 전문가의 도움 없이 이를 제거하려 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