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사는 한국 교민들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후임으로 헬렌 클라크(Helen Clark) 전 뉴질랜드 총리가 선출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1999년부터 9년 동안 강한 지도력으로 뉴질랜드를 이끌었던 클라크 전 총리가 유엔을 개혁하고 반 사무총장의 한국에 이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의 국제적인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총리 시절 보여 줬던 강력한 지도력과 유엔의 개혁을 외치고 나온 소신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예견된 유엔 사무총장 도전 실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6차 비공개 예비투표(straw poll)를 하고 안토니오 구테헤스(Antonio Guterres) 전 포르투갈 총리를 반 사무총장을 이을 제9대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합의했다.
클라크 전 총리의 사무총장 도전 실패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녀는 앞서 5번의 예비투표에서 5위 이상 올라간 적이 없었고 구테헤스는 연승해 일찌감치 대세론을 탔다.
지지표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자 클라크 전 총리는 한때 후보 사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뉴질랜드 정부 차원의 후원을 받았던 클라크 전 총리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경선에 참여했다.
닮은 프로필 다른 투표결과
사무총장은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 평화에 대한 위협 방지 및 제거, 국제분쟁ㆍ사태의 조정 및 해결을 목적으로 193개 회원국이 모인 유엔의 최상위 수석행정가다.
‘세속교황’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영예롭고 막중한 자리지만 의외로 사무총장 선출 절차는 명확히 규정돼있지 않다.
사무국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 유엔 헌장 제15장 제97조에서 ‘사무총장은 안보리의 권고로 총회가 임명한다’고 명시한 것이 전부다.
다만 트리그베 리에(Trygve Lie) 초대 사무총장부터 제8대 반 사무총장까지 거치면서 정립된 관례가 있을 뿐이다.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는 사무총장의 5년 임기ㆍ연임 가능도 관례일 뿐 규정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다.
이번 10명의 후보 가운데 반 사무총장을 배출했던 아시아와 직전의 코피 아난(Kofi Annan) 전 사무총장을 배출한 아프리카 후보가 1명도 없었던 것 역시 사무총장의 대륙별 순환 및 안배라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안보리에서 권고한 후보가 총회에서 뒤집어진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는 역사가 보여주듯이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입김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제9대 사무총장 선출은 쟁쟁한 후보들과 함께 절차도 이전에 비해 한층 더 복잡해졌다.
유엔이 지난해 창립 70주년을 맞아 총회의 역할과 권위회복을 결의한데 따라 총회의장과 안보리의장이 회원국들에게 차기 사무총장 후보 제안을 요청하면서 후보자들의 정견발표와 공개면접 등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예비투표에서는 각 후보에 대해 ‘권장’(encourage), ‘비권장’(discourage), ‘의견 없음’(no opinion)으로 지지 여부를 나타냈고, 6차 예비투표에서 처음으로 상임이사국이 색깔이 다른 빨간색 투표용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들의 찬반 의견이 드러날 수 있었다.
구테헤스는 15개 상임·비상임이사국으로부터 찬성을 나타내는 ‘권장’ 13표와 ‘의견 없음’ 2표를 받았다.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4개국은 구테헤스에 대해 ‘권장’, 한 나라는 ‘의견 없음’을 행사했다.
구테헤스는 1995-2002년 포르투갈 총리를 지냈고, 2005-2015년 유엔 난민기구 최고대표로 활동해 ‘난민 문제 전문가’로 통한다.
구테헤스와 현재 유엔개발기구(UNDP) 총재인 클라크는 매우 비슷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다.
두 명 모두 자국의 총리를 역임했고 유엔 기구의 최고대표를 거쳤다.
프로필만 보아서는 비슷한 지지를 받아야 할 두 명의 후보가 예비투표에서 격차를 나타낸 것에 대해 8일자 뉴질랜드헤럴드지는 구테헤스는 모두의 존경을 받았고 다수의 사랑을 받았으며 동유럽에서 멀지 않은 포르투갈 출신인 반면 클라크는 모두의 존경을 받았지만 소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으로 비유했다.
거부권 행사한 3개 상임이사국은?
제9대 유엔 사무총장은 동유럽 출신이어야 한다는 관례는 유엔에서 ‘서구 유럽 및 기타’에 속하는 뉴질랜드 출신의 클라크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반면에 제9대 사무총장은 처음으로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된 점은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지난 4월 뉴질랜드 정부는 클라크 총재를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지명한다고 선언한 존 키(John Key) 총리와 머레이 맥컬리(Murray McCully) 외교장관은 도전할 가치는 있지만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말해 왔다.
결과적으로 최종 승자가 동유럽 출신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후보가 된 이상 클라크 총재의 실패 요인을 따져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클라크 총재는 5번의 예비투표에서 6위, 7위, 7위, 8위, 공동 7위를 각각 기록했다.
그리고 5일 치뤄진 6차 예비투표에서 ‘권장’ 6표와 ‘비권장’ 8표, ‘의견 없음’ 1표를 받아 클라크 총재로서는 가장 높은 5위에 랭크됐다.
특히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들로부터 3표의 반대표를 받았다.
투표는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나라들이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동유럽이나 유럽 출신 사무총장을 선호하는 러시아와 프랑스가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의 반대 입김 작용
제3의 거부권은 미국에서 나왔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관련 키 총리는 “러시아가 구테헤스를 밀어 주기로 미국, 영국과 딜을 가졌을 것으로 의심되는데,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굳이 클라크 총재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필요는 없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클라크가 노동당 초선의원이었던 지난 1984년 당시 노동당의 데이비드 랭(David Lange) 총리가 자국을 방문하는 미 군함에 대해 핵무기 적재 여부를 밝히도록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자국 기항을 금지한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클라크 자신도 총리 시절 미국의 대 이라크 노선을 강력히 지지하는 영국과 호주와 달리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 소신의 길을 걸었다.
뉴질랜드와 미국은 지난 7월 30여 년 만에 미 군함의 뉴질랜드 방문을 허용키로 합의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여 우방 관계를 발전시켰지만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대국도 없는 국제 외교의 냉혹한 현실, 특히 냉전 시대에 결정된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입김을 이번에 제대로 맛보았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당시 클라크 총리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았던 키 총리는 “5개 상임이사국들은 클라크 총재가 개혁적인 인물로서 순순히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클라크 전 총리는 다른 어떤 뉴질랜드 총리보다도 총리가 되기 위해 사생활을 포기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오랜 결혼생활에도 불구하고 슬하에 자녀가 없는 사실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유엔 서열 3위의 UNDP 총재를 연임하고 있는 클라크가 내년 4월 임기가 끝나고 어떤 선택을 할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