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가 세계 갑부들의 새로운 피난처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Bloomberg)는 지난 3일 엄청난 부자들이 세계적인 불확실성을 피해 뉴질랜드로 떠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와 사업하기 좋은 나라로 선정되기도 한 뉴질랜드가 슈퍼리치들의 매력적인 이주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불안한 세계에 뉴질랜드가 가장 안전
블룸버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과 테러 우려가 커지면서 남태평양에 외따로 떨어진 뉴질랜드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그 동안 약점으로 작용한 뉴질랜드의 고립성이 오히려 전세계적인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은신처로서의 매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또한 정치 리스크에 휩쓸리는 국가보다 안전하다는 인식과 살기 좋은 환경, 투자자 유치를 위해 도입한 비자 등이 슈퍼리치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독일 출신의 인터넷 사업가 킴 닷컴(Kim Dotcom)은 최근 트위터에 자신이 2010년에 뉴질랜드 영주권을 따게 된 이유에 대해 “세계가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리가 핵무기 표적이 아니고 표적에서도 먼 뉴질랜드로 떠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닷컴은 한때 세계 최대 파일공유사이트로 이름을 날린 메가업로드의 창립자다.
지적재산권 침해, 돈세탁 등의 혐의로 미국의 송환 압력을 받고 있는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로도 유명한 인터넷 갑부다.
오클랜드에 있는 말콤 퍼시픽(Malcolm Pacific) 이민회사의 데이비드 쿠퍼(David Cooper) 고객 서비스 책임자는 “만일 세계 경제가 갑자기 악화돼 혼돈에 빠진다면 사람들은 최선의 장소를 찾을 것”이라며 “사람들은 뉴질랜드를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자이민제도도 세계 갑부들에겐 매력적
뉴질랜드 정부가 6년 전 시행한 투자이민제도도 세계 거부들을 끌어모으는 요인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투자자 플러스 이민은 3년 동안 1,000만달러를 뉴질랜드 자산이나 관련 펀드에 투자한 경우 최근 2년간 매년 44일 이상 뉴질랜드에 체류하기만 하면 영주권 자격을 얻는다.
영어를 못해도 되는 것은 물론 영주권 자격을 얻은 뒤 특정기간의 체류 의무도 없고 뉴질랜드 이외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세금신고를 할 필요도 없다.
지난 6년간 121명의 거부가 이 부문을 통해 영주권을 받았고 4년 동안 150만달러를 투자하는 일반 투자이민을 통해 800여명이 이민했다.
주로 부유한 고객들을 상대로 하는 오클랜드 소재 법률회사 벨 굴리(Bell Gully)의 윌리 서스맨(Willy Sussman)은 “투자이민제도는 ‘만약’을 위한 도피처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홍콩 헤지펀드 도릭 캐피털(Doric Capital) 설립자 마이클 녹(Michael Nock)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퀸스타운 부근에 2 헥타아르(ha) 규모의 별장을 샀다.
녹은 “헤지펀드하는 사람들은 모두 선택권을 사랑한다”며 “내가 뉴질랜드에 영구적으로 살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원했다”고 말했다.
빌 폴리(Bill Foley) 피델리티 내셔널 파이낸셜(Fidelity National Financial) 회장 역시 웰링턴 북부 와이라라파 지역에 고급 주택을 지어놨다.
줄리안 로버트슨(Julian Robertson) 타이거 매니지먼트(Tiger Management) 회장도 퀸스타운의 와카티푸 호반 근처에 있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비싼 골프장 2곳과 고급 산장을 소유하고 있다.
온라인 지급결제서비스 회사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Peter Thiel)은 오클랜드와 퀸스타운에 거주용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퀸스타운은 거부들의 인기있는 은신처가 되면서 지난달 기준 연간 집값 상승률이 오클랜드보다 두 배 이상 높은 29.8%를 보이며 97만4,564달러의 평균 집값을 기록했다.
이밖에 러시아 억만장자 알렉산더 아브라모프(Alexander Abramov)와 할리우드 감독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에 이르기까지 뉴질랜드 부동산을 매입하는 거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의 돈 많은 은퇴자들 사이에서도 뉴질랜드가 인기다.
중국 1위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잭 마(Jack Ma) 회장은 지난 4월 존 키(John Key) 총리와의 면담에서 “뉴질랜드에 집을 사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지인 40명 중 절반 이상이 뉴질랜드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불확실한 정치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관심 급증
뉴질랜드에 정착하는 거부가 늘어나는 이유는 세계 각지에서 정치 리스크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캐나다에 이어 뉴질랜드에도 미국인의 이민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개표가 진행된 지난 24시간 동안 미국에서 뉴질랜드 이민부 웹사이트에 접속한 사람 수는 5만6,300명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방문객인 2,300명의 25배 가까이 되는 수다.
또 7,000명이 넘는 미국인이 회원가입하면서 뉴질랜드 이민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월 평균 회원가입자 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트럼프의 당선에 놀라고 충격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이나 일, 공부, 투자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웹사이트 뉴질랜드나우(www.newzealandnow.govt.nz) 역시 같은 시간 동안 7만500명이 넘는 미국 접속자를 받았다.
뉴질랜드 정부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부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뉴질랜드나우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6만9,000명이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뉴질랜드 이민에 대한 관심은 미국 대선이 마무리 레이스를 펼치던 한 달 전부터 서서히 시작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비슷한 현상은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후에도 발생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은 영국인의 뉴질랜드 이민 수요를 자극했다.
뉴질랜드 이민부의 자료에 따르면 브렉시트가 결정된 다음날인 6월 24일, 998명이 뉴질랜드 이민부 웹사이트에 이민 문의를 등록해 전년 같은 날 109건의 9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부터 49일간 영국인 1만647명이 이민 문의를 등록해 전년 동기 4,599명의 약 4배를 기록했다.
가장 살기 좋고 사업하기 좋은 나라
뉴질랜드는 지난 2일 발표된 살기좋은 나라 지수에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Legatum) 연구소가 전세계 14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 발표한 ‘2016 레가툼 세계 번영 지수’에서 뉴질랜드가 지난해 4위에서 1위로 도약한 것이다.
뉴질랜드는 교육(15위), 보건(12위), 안전·안보(19위), 자연환경(13위)에서 10위권대에 올랐고 경제 질, 사회 자본 등의 부문에서는 최상위 순위를 받았다.
지난해까지 7년 연속을 정상을 지켰던 노르웨이는 2위로 밀렸다.
뉴질랜드를 동경하는 이들은 대체로 민주주의와 반부패, 평화, 만족감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반지의 제왕’, ‘호빗’ 등 할리우드 대작을 통해 많이 알려진 아름다운 풍광도 뉴질랜드의 매력으로 꼽힌다.
뉴질랜드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나라로 뽑혔다.
세계은행은 지난달 10년 동안 1위였던 싱가포르를 밀치고 뉴질랜드를 창업절차가 빠르게 진행된다며 1위에 선정했다.
세계은행은 뉴질랜드가 선진국 중 가장 빠르게 경제성장을 하고 있고, 강력한 법적 권한을 가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