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8일(월) 오클랜드 공항에서는 출국 수속을 밟던 쿡 아일랜즈(Cook Islands) 출신의 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된 남성의 이름은 나토코토루 푸나(Ngatokotoru Puna, 40).
현재 쿡 아일랜즈 정부의 헨리 푸나(Henry Puna) 총리의 조카로도 알려진 그가 체포된 사유는 과거에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빌린 학생 대출금을 오랫동안 갚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3만 달러로 불어난 20년 전의 학비대출>
2004년부터 쿡 아일랜즈의 라로통가(Rarotonga)에서 거주 중인 그는 20년 전에 오클랜드 대학에서 ‘Bachelor of Arts’ 학위를 마치는 과정에 모두 4만 달러의 학자금을 빌린 후 이를 갚지 않아 지금은 상환해야 될 금액이 이자까지 더해져 총 13만 달러에 이른다.
현재 쿡 아일랜즈의 교육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그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고자 뉴질랜드에 입국했다가 날벼락을 맞았는데, 1월 22일(금) 마누카우 지방법원에 출두한 후 결국 부모로부터 5천 달러를 급하게 빌려 대출금을 일부 납부한 후에야 여권을 돌려 받고 출국할 수 있었다.
그가 이처럼 공항에서 불시에 체포된 것은 지난 2014년 3월에 도입된 새로운 법령에 따라 장기간 대출금을 갚지 않고 외국에 체류한 사람들을, 고의적으로 빚 상환을 거부한 사람으로 간주해 형사적인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한편 라로통가에 있는 푸나의 아내는 당시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뉴질랜드 세무 당국인 IRD가 계속 상환을 독촉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주소가 잘못됐기 때문에 자신들은 받아보지도 못했으며 그의 체포 소식에 가족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당사자인 푸나는 자신이 체포되던 그날은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면서, 처음에는 분실한 여권대신 발급 받았던 임시여권 때문에 출국심사가 지체된 것으로 생각했으며, 경찰관이 다가와 자신을 학생대출금 때문에 체포한다고 했을 때 그가 농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경찰서 유치장에서 7시간 동안이나 붙잡혀 있었으며 자신은 범죄자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다면서, 자신이 한 실수는 학자금 대출을 상환해야 되는 수준에 연봉이 도달했던 지난 5년 전에 IRD와 접촉하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항변했다.
자녀가 5명인 것으로 알려진 그는 현재 연봉이 3만 5천 달러인데, 법정에서 그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IRD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법정 밖에서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IRD에 시범 케이스로 걸린 것 같으며 마치 범죄자처럼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쿡 아일랜즈에 돌아간 뒤, 다른 사람들도 대출금 상환 의무에 유의해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공항 체포는 ‘학생대출금 난민’ 만든다?>
한편 당시 IRD와 고등교육부(Tertiary Education)의 스티븐 조이스(Steven Joyce) 장관은 개인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법정을 통해 알려진 것 이외의 특정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다만 대출금을 받은 사람들은 이 돈이 차후에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하는 만큼 상환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만약 재정적으로 상환이 어려우면 IRD와 의논할 수 있고 이번과 같은 체포는 최후 수단일 뿐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힌 바 있다.
2014년 3월에 도입된 법률에 따라 해외에 체류 중인 대출금 상환 연체자를 출국시키지 않고 체포할 수 있도록 되었지만 실제로 이번처럼 공항에서 체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사생활 보호라는 이유로 IRD와 고등교육부는 더 이상 자세한 언급은 회피했다.
개정된 법률은 대출금 연체자가 뉴질랜드 여권을 발급받으려고 할 때 여권발급 주무부서인 내무부(Department of Internal Affairs)와 IRD 간에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으며 또한 법원에서는 이들의 여권이나 항공권을 압류할 수도 있게 됐다.
이번에 푸나의 체포와 법정 출두 소식이 보도되자 그야말로 벌집이라도 쑤신 듯 이튿날부터 IRD의 전화나 이메일에는 불이라도 난 것처럼 각종 문의가 쏟아졌는데, 이들 질문의 대부분은 호주에 거주하는 키위들로부터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만약 대출금을 계속 갚지 않으면 결혼이나 장례식, 또는 중요한 일이라도 생겼을 때 뉴질랜드를 방문했다가 다시는 출국도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감옥에까지 갈 수도 있는 것이냐는 걱정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한편 뉴질랜드 학생연합(Student unions)의 한 관계자는 푸나의 소식을 접한 후 공항에서의 체포 정책을 비판하면서, 정부가 해외에 체류 중인 키위들을 일명 ‘학비 대출금 난민(student loan refugees)’으로 만드는 가혹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굳히기 들어간 IRD의 또 다른 강수>
1월에 대출금 미상환자를 공항에서 체포하면서 채무자 조이기에 나섰던 IRD가 마치 씨름이나 레슬링 경기에서 굳히기 기술이라도 사용하듯 이번에는 또 다른 카드를 내놓아 특히 호주에 거주하는 키위 채무자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5월 13일(금) 국내 언론 발표에 따르면, IRD와 호주 세무 당국이 뉴질랜드 국민으로서 호주에 거주하면서 세금을 낸 실적이 있는 학자금 대출금 미상환자의 신상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IRD가 앞서 언급된 국내 공항에서의 체포 작전 외에 앞으로는 호주 정부를 통해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호주 현지의 채권 추심업자들이나 호주 법정을 이용해 채무자들을 추가적으로 압박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국내와 호주 양 국가에서 전방위로 대출금 미상환자들의 목을 조이고 들어가겠다는 셈인데, 이번 조치를 통해 IRD는 추가적으로 연간 1억 달러의 상환금을 채무자들로부터 더 받아내겠다는 속셈이다.
실제로 지난 1월의 푸나 사건 이후 대출금 상환액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외국 거주 키위들의 상환이 전년도에 비해 30% 이상 늘어났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한편에서는 현직 학생들의 대출금 신청 증가율 자체가 예전보다 감소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해외 체류 채무자 대부분 호주 거주>
작년 말까지 통계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전체 학자금 대출은 150억 달러, 대출을 받은 인원은 72만 명에 이르는데, 이 중에 해외에 거주하는 키위들은 대략 전체의 15% 수준인 11만 600명 가량이며 금액은 32억 5천만 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전체 대출금 미상환의 90%가 해외 거주 키위들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이며 이들이 문제를 일으킨 대출금만도 10억 달러에 가깝다는 사실인데, 특히 현재 이들의 대부분은 호주에 거주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학자금 대출 미상환자 중 5천 명 이상이 인당 1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이 모두 해외 거주자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2012년 자료에 나타난 고액 체납자 Top 10의 대부분은 해외 거주자였고 이들의 평균 미상환액이 1인당 무려 29만 달러가 넘었다는 사실에 견주어 보면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악화됐을 가능성이 더 많다.
결국 위 상황을 요약하자면, 특히 해외 거주 연체자들의 심정은 빌린 돈으로 공부하고 현재 해외에서 돈도 벌고 있지만 뉴질랜드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데 뭣 때문에 먼저 알아서 돈을 갚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들 대부분이 호주에 있다는 점에다가 이들 중에는 일부 연체가 아닌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한 푼도 상환하지 않는 이들도 많아 채무 금액 역시 계속 늘어나는 실정은 IRD가 특히 호주 채무자들을 겨냥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입장 차이에 따른 첨예한 갈등>
▲ 기사와 함께 게재됐던 뉴질랜드 헤럴드지의 만평
이번 소식을 전한 국내 언론의 기사에는 많은 댓글들이 달렸는데,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의견을 보였지만 공적 자금인 만큼 상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으며 더 강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정부 정책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 국민당 정부가 지난 2013년에 미납자를 공항에서 체포할 수도 있게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에도 언론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이 동의를 나타냈으며 야당인 노동당도 반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반면 호주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는 이번 기사에 실린 인터뷰나 또는 댓글을 통해, 자신들이 휴가 등으로 고국에 들어가 쓰는 돈이 상당한데 이번 조치로 관광수입이 줄어드는 등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논지의 주장도 있었으며 또한 사생활 공개를 우려하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은 대출금은 납세자의 돈이었던 만큼 당연히 받아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며 인터뷰에 응했던 호주 거주 미상환자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아예 돌아오지도 말라고 비난하거나 그들의 반응을 비웃는 이들도 있었다.
그 중 한 독자는, 자신이 ‘뉴질랜드 납세자(NZ tax payer)’로서 딱 한 마디만 한다면서 “내 돈 돌려줘(Pay back my money!)” 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