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물이나 나눠 주고 아무것도 안하는 교사들
뉴질랜드 교육 현실에 대한 이번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은 북섬 혹스베이 지역에 있는 네이피어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넬라 프리처드(Anela Pritchard, 15세)가 학교 수업시간에 말하기 과제로 발표한 발언이다.
학교 교사들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프리처드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올린 내용에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라고 봉급을 받는 것이지, 글씨가 쓰인 종이를 휙 던져주고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봉급을 받으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프리처드 학생의 주장대로라면 많은 교사들이 종종 유인물이나 나눠 주고 자습을 시키며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으로 이해된다.
프리처드는 “선생님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다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봉급이 오르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프리처드의 비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프리처드는 “우리가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잘못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선생님들이 잘 가르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됐을 때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우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생들이 수업에 빠지고 학교에 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건 선생님들이다. 왜냐하면 선생님들은 우리들이 어떤 과목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프리처드는 또 학생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정보들을 선생님들이 가르칠 뿐 아니라 학생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학생들이 장기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좌절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학생들은 실제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 비판’ 학생 징계 논란
이번 일이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은 프리처드 학생이 교사들을 비판했다고 해서 학교로부터 정학 처분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학생의 아버지인 앤드류 프리처드(Andrew Pritchard)에 따르면 학교 측은 그에게 당분간 딸을 집에서 데리고 있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
프리처드는 딸이 말하기 발표를 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뿐인데 처벌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딸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이 같은 사실을 반박했다.
프리처드에게 정학처분을 내린 건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학교장 마리 닉슨(Mary Nixon)은 “우리는 아넬라를 정학시키지 않았다”며 “학생의 부모와 만나 모든 일을 잘 해결했다”고 말했다.
그는 “발언에 교사의 태도를 논하는 내용이 들어가 시끄러워진 것”이라며 “아넬라의 등교를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지난달 30일 닉슨 교장과 학과장을 만난 프리처드 부녀는 사과를 기대했지만 실망감만 안고 돌아왔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부터 집에 머물던 프리처드는 남은 2학기 기간 학교에서의 눈총이 두려워 학교에 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처드는 “이제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나를 싫어하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털어 놓았다.
프리처드는 방학 기간 오빠가 살고 있는 호주 시드니로 가서, 그 곳에서 학교를 등록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의 예로는 지난 2013년 미국의 제프 블리스(Jeff Bliss)라는 고등학생이 역사 선생님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올렸으나 학교 측은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
교육 현실에 대한 수많은 의견
프리처드의 이번 비판에 대해 솔직하게 문제점들을 파악했다고 칭찬한 사람들이 있는 한편 교사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반응도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려진 프리처드의 글은 불과 하루 만에 ‘좋아요’ 7,000개 이상을 받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프리처드와 영어 수업을 같이 배운다는 한 학생은 “영어 선생님은 가장 친절하고 동정심 많은 분으로 내년에도 그 선생님한테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프리처드 자신도 “내가 발표했을 때 선생님이 슬픈 표정으로 교실에서 나가버렸지만 내 발표가 영어 선생님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아이론마오리(IronMaori) 공동창립자이자 혹스베이 지역건강위원회 위원인 헤더 스킵워스(Heather Skipworth)는 “프리처드 자신과 용기가 없어 그렇게 하지 못했을 많은 학생들을 대신하여 발표한 프리처드에 고맙게 생각한다. 프리처드가 모든 교사들이 형편없이 가르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교육제도는 많은 학생들을 실패시키고 있다. 이는 그들이 반항적이어서가 아니라 일률적인 교육이 모든 학생들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조한나 맥하디(Johanna McHardy)라는 교사는 교사들이 유인물을 나눠 주고 실제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부분을 인정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명했다.
교사들은 수업 뿐아니라 많은 행정적인 업무 처리로 매주 70시간이 넘는 격무에 시달려 녹초가 되고 보수도 비교적 낮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학생들이 지금 공부하는 내용이 장래 진로와 연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실제 직업에 도움을 주는 직접적인 교육을 지지하지만 정부로부터의 압력과 실적을 나타내야 하는 필요성이 장래 교육 진로에 별로 유용하지 않은 방향으로 선택하게끔 한다”고 덧붙였다.
17세 학생을 둔 탄 졸(Tan Joll)이라는 어머니는 “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자주 선생님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며 “어떤 과목은 1주일에 한 시간 ‘재미있는 수업’ 이라고 하여 학생들과 선생님이 앉아 랩톱 등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다른 활동은 금지된다”고 털어 놓았다.
‘부모들의 자리’라는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 대부분이 발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지만 화가 나서 남을 비난하는 듯한 어조 때문에 메시지가 왜곡됐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교직에 대한 만족감 크지 않아
교육부 헤키아 파라타(Hekia Parata) 장관은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있다”며“해당 학교가 정확한 사건 경위와 조치 등에 관해 검토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반응을 종합하면 현재 뉴질랜드 학교들에서는 실력있고 자격있는 교사들이 부족하고 과다한 업무 때문에 제대로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하는 실정인 것으로 보인다.
캔터베리대학 연구팀이 지난 4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큰 포부를 가지고 교직을 선택한 젊은 교사들이 9년 뒤에는 절반 정도가 많은 갈등을 느끼고 있으며 이미 이직을 했거나 이직을 원하는 사람도 4분의 1이나 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훈련기관과 교장들이 ‘장래가 대단히 촉망된다’고 평가한 57명의 3년차 교사들을 6년 동안 추적하면서 조사한 연구팀은 3분의 1 이상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교직에 대한 만족감이 크지 않았다며 쓸데없는 문서업무를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교사도 있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