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키(John Key) 총리는 이에 영향을 받는 뉴질랜드인이 약 1,000명일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호주변호사연맹의 그레그 반스(Greg Barns) 회장은 지난 10년간 호주의 교도소에 수감된 뉴질랜드인들이 5,000명에 이르고, 그들 상당수가 추방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추방된 키위들 대부분 뉴질랜드 무연고
문제는 이들 추방자들의 대부분은 국적만 뉴질랜드이고 평생을 호주에서 살았기 때문에 뉴질랜드에는 아무 연고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뉴질랜드는 태어난 곳이기는 하지만 생활기반이 없는 낯선 타국이나 마찬가지이다.
지난 9월 호주의 한 교도소에 격리 수감되어 추방을 기다리던 주니어 토가투키(Junior Togatuki)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6세 때 무장강도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된 토가투키는 4세 때 호주로 이주한 이후 뉴질랜드를 한번도 찾은 적이 없어 국적만 뉴질랜드일뿐 성장배경과 가족을 비롯한 삶의 모든 근거가 호주에 있었다.
그는 죽기 한 달 전에 형기가 끝났으나 비자가 취소되면서 수감시설에 격리된 상태였다.
추방을 걱정한 그는 뉴질랜드로 추방되면 삶의 희망을 잃게 된다면서 호주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호주 이민부 장관에 보내기도 했다.
아동학대 혐의로 현재 시드니 빌라우드(Villawood) 강제수용소에서 추방을 기다리고 있는 베티 콜트(Betty Colt, 가명)의 사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강제 추방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콜트는 1970년대 부모를 따라 호주에 건너가서 지금까지 호주에서 살았다.
이와 관련, 키 총리는 “콜트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났지만 호주에서 대부분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호주 체제의 산물이다”며 “따라서 그녀는 호주에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키 총리는 이어 “뉴질랜드도 심각한 범죄자를 추방하지만 얼마가 지난 후에 기본적으로 뉴질랜더라고 얘기한다”며 “법을 준수하고 순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당의 앤드류 리틀(Andrew Little) 대표는 콜트가 추방된다면 호주의 강화된 이민법으로 인해 뉴질랜드가 맞닥뜨린 전형적인 문제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리틀 대표는 “국민당 정부가 호주의 이민법 개정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까지 한 것이 없다”며 정부를 비난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 9월 호주와 정보공유협정을 체결하여 추방자의 정보를 추방되기 6개월 전에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교정부는 호주에서 추방된 뉴질랜드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10만달러의 일시자금을 배정, 지난 3개월 동안 32명의 추방자들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는 지난 9월 호주에서 추방된 56세의 전신마비 남성도 포함돼 있다.
36년간 호주에서 살아온 이 남성은 수중에 단돈 200달러만 가진 채 오클랜드 공항에 버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뉴질랜드 외교정책 ‘유약’ 비판
국민당과 연정을 이루고 있는 정당들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액트(Act)당의 데이비드 세이모어(David Seymour) 대표는 “안작(Anzac) 동료 국가의 분별없는 처사에 크게 놀랐다”고 털어 놓았다.
미래통합당 대표이자 내무부 장관인 피터 던(Peter Dunne)도 뉴질랜드의 대응이 굴종적이고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던 대표는 “최근 몇 년 동안 뉴질랜드의 외교정책이 유약해졌고 무역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도덕적인 부분이 해이해졌다. 간단히 말해 뉴질랜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너무 저자세를 갖게 됐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이어 “조용한 말로 머리만 끄덕이는 것이 외교정잭을 수행하는 최선이 아니다”며“이제 종속적인 외교정책을 버려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마오리당의 마라마 폭스(Marama Fox) 공동대표는 “안작 정신은 어디로 갔냐”면서 “양국은 매년 안작데이를 기념하지만 호주에 사는 뉴질랜더는 2류 시민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폭스 공동대표는 키위가 호주에서 받는 처우처럼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호주인에 적용하는 법률을 도입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주내 키위들의 처우 개선 가능성 희박
범법자를 구금하고 뉴질랜드로 추방하는 것보다 더욱 나쁜 호주의 처우는 호주에서 자란 키위들이 호주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한 확실한 길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양국간의 특별한 관계가 많은 뉴질랜더의 호주 시민권 취득 경로를 막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뉴질랜드인들은 호주에서도 실업수당과 장애수당 등 사회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호주 시민권을 취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2월 호주가 사회보장 법률을 개정하면서 호주에 입국하는 모든 뉴질랜드 시민권자는 영주권자가 아닌 ‘비보호’ 특별범주 비자상의 임시 거주자로 분류되어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 시민권 취득이 어려워졌다.
이를 기점으로 호주에 있는 뉴질랜드인들은 기존에 호주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부류와 기한없이 살고, 일하며, 세금을 내지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보호 비자 소유자로 갈렸다.
여기에다 지난해 11월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이런 구분이 더욱 넓어지게 된 것이다.
키 총리는 “호주의 정책은 뉴질랜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며 “약 1,000명의 뉴질랜더가 결국 추방될 가능성이 있지만 양국간의 관계에 부담이 되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접근은 이전 헬렌 클라크(Helen Clark) 정부 시절에도 취해 왔으나 호주내 뉴질랜더의 인권 개선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지난달 키 총리와 회담을 가진 턴불 총리는 뉴질랜더의 추방 기준 완화에 대한 요청을 거부했다.
호주 당국이 앞으로 뉴질랜드의 요청을 수용해 법을 개정할 개연성은 현재로선 희박해 보인다.
범죄자들을 추방할 수는 있지만 호주가 하는 것처럼 집단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뉴질랜드 언론의 대체적인 논조이다.
추방은 공공정책이나 공공안전에 근거해야 하고 케이스에 따라 결정해야 하지 범죄 경력만으로 자동적으로 집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1983년 양국간에 체결된 자유무역협정(CER)에 따라 물자 및 인적 교류가 자유로워야 할 두 나라 사이에선 더욱 안된다는 이유다.
지난 1일 럭비 월드컵 결승에서 호주를 상대로 뉴질랜드 올 블랙스 대표팀이 전해온 승전보가 답답한 뉴질랜드인들의 마음에 그나마 위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