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범죄나 화재, 위급환자 발생 등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전화번호 ‘111’을 눌러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최근 이 ‘111’에 부담이 가중되면서 경찰이 앞장서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뉴스가 새해 벽두부터 전해졌다. 우리에게 어떤 전화번호보다 친숙하고 또 일상생활에 중요한 ‘111 비상전화’가 어떻게 탄생됐으며 또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개선이 논의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제 각각이었던 기관별 비상전화의 통합
근대에 들어서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가 널리 보급된 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국민들이 위급한 일을 당했을 때 국가를 비롯한 관련기관에 전화로 신고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로 현재 중장년이 된 교민들은 한국에서 살던 1960,70년대에 “화재신고는 119 간첩신고는 112”라고 하던 구호성 표어가 길거리나 전신주 등에 많이 보였던 광경을 기억할 수 있다.
1900년대 중반에 들어서 뉴질랜드에도 점차 각 가정에 유선전화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각 기관들이 각종 비상상황에서 긴급 전화신고를 받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각 기관들의 신고 전화번호가 제 각각이었다.
이에 따라 신고절차도 복잡하고 비효율적이었는데 더욱이 당시 전화는 모두 교환기가 아닌 교환원을 통해서 상대방과 연결하는 수동식이었거나, 아니면 자동식교환기가 설치됐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른바 기계식교환기가 고작이었다.
이와 같은 인력교환식이나 기계식교환기는 비상상황의 여부에 관계 없이 먼저 걸려온 전화를 먼저 처리하는 방식이었으며, 그러다 보니 순서를 무시해야 할 비상상황에 처했을 때 이에 대처하기 위한 별도 체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전화회선 사용이 빈번한 시간에는 비상전화라고 해도 연결이 늦어지기 일쑤였으며, 심지어는 아예 관련 기관과의 연결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종종 발생해 화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백화점 대형화재가 통합 비상전화 등장 계기
1940년대에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처음 시작됐는데, 특히 1947년에 발생했던 크라이스트처치의 ‘발렌타인(Ballantynes) 백화점’의 대형 화재는 이 같은 움직임을 활성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그 해 11월 18일 발생했던 화재는 사망자만 41명을 내 지금까지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큰 화재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당시 사망자들은 대부분 종업원들로 제대로 된 피난계획이나 화재경보조차 없었던 상태에서 대피 중 질식해 숨졌다.
오후 3시 30분경 발화된 화재는 당일 밤 8시경 대부분 진화됐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 이틀 뒤 국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엘리자베스 당시 영국 공주(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결혼축하연이 취소된 것은 물론 전국에 조기가 게양됐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국가, 사회적으로 큰 후유증을 남겼는데, 영업장 허가절차에 대한 적법성 여부와 진압방식 문제점 등 화재와 관련된 분야는 물론 산업안전을 포함한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 출신으로 화재 진압에 참여했던 한 소방관은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범용 비상전화 시스템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당시 영국에서 운용 중이던‘999 전화번호 시스템’도입 캠페인을 벌였다.
첫 ‘111’ 전화는 제재소에서 걸려온 구급차 요청
이러한 운동 등이 시발이 돼 1957년 중반, 당시의 체신부(Post and Telegraph Department) 주도 아래 경찰과 보건부, 소방서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꾸려졌으며, 그 결과 1958년 초에 현재까지 사용되는 ‘111 비상전화’ 번호가 탄생한다.
새 비상전화 번호는 1958년 9월에 북섬 소도시인 마스터톤(Masterton)의 전화교환기가 교체되면서 당시 마스터톤과 그 인근의 소읍인 카터톤(Carterton)을 대상으로 처음 운영되기 시작했다.
당시 설치된 교환기는 기계식으로 두 도시 내 가입자들은 자동 연결되지만 장거리 전화선 연결은 여전히 교환원을 통해야 했는데, 만약 누군가가 ‘111’을 돌리면(* 이 경우에는 다이얼 방식 전화기이다 보니 누른다기보다는 돌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사진 참조) 미리 배정된 3개의 전용 회선 중 하나에 연결된다.
이후 교환원 앞의 스위치 보드에 붉은색 램프가 반짝이고 보드 위에 있는 또 다른 램프도 작동할 뿐만 아니라 아예 교환대와 빌딩 복도에 설치된 2개의 벨까지 요란하게 울리게 된다.
그러면 교환원은 즉각 전화회선을 연결하고 관리자 역시 만약을 대비해 또 하나의 회선을 준비하는데, 이때 경찰서나 소방서, 혹은 병원으로 연결되는 또 다른 전용회선을 동시에 개방해 발생한 비상상황에 따라 연결을 준비한다.
해당 기관으로 전화가 연결되면 그곳에서도 전화국과 동일하게 비상등이 켜지고 벨도 울리는데, 스마트폰으로 비상전화가 연결되면 즉시 위치까지 파악되는 현 시대에 비해서는 거의 원시 수준이라고 불 수 밖에 없는 이런 시스템도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도였다.
다이얼을 돌려야만 연결되는 아날로그식 구식 전화기를 사용해본 경험이 없는 젊은 디지털 세대는 사실 이에 대해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많을 텐데,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구형 기계식 교환기나 전화의 원리 등을 설명하는 도표 등을 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쨌든 당시 이 시스템이 설치된 후 첫 번째 걸려온 ‘111 비상전화’는 응급환자가 발생한 제재소에서 구급차를 요청하는 전화였으며, 소방서에 대한 첫 화재신고는 카터톤에서 발생한 쓰레기 화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요즘도 비상사태가 아님에도 111을 이용하는 엉뚱한 사람들이 많은데, 당시에도 개통 첫날부터 111을 이용해 카터톤에 있는 한 호텔의 주소를 묻는 전화가 왔다는 에피소드도 함께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이후 마스터톤의 이 시스템은 점차 전국 다른 도시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1961년에 수도인 웰링톤에 처음 등장하고 1964년에 크라이스트처치, 그리고 1966년 더니든을 거쳐 1968년에는 오클랜드까지 퍼진 후 1980년 대에 뉴질랜드 전국으로 확대돼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비상전화의 번호가 ‘111’이 된 이유는?
한편 당시 국내 비상전화 번호를 모국이었던 영국의 ‘999’와는 달리 ‘111’로 결정하게 된 데는 한 가지 일화가 있는데, 그것은 양국의 전화 기계장치에서 이른바 송신방식인 ‘pulse dialing’이 정반대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당시 영국 설비는 번호 ‘1’을 돌리면 9차례 진동이 발생해 교환대나 전화국의 기계식교환장치 쪽으로 보내지고 번호 ‘2’는 8차례 등, 누르는 번호의 숫자가 높아질수록 보내는 진동의 횟수가 거꾸로 감소하도록 돼 가장 높은 숫자인 번호 ‘9’는 단 1차례 진동만 보내진다.
즉 비상번호인 ‘999’를 누른다면 모두 3차례라는 짧은 횟수의 진동만 발생해 교환대로 보내진다는 의미이며 이를 접수한 전화국에서는 즉각 이 전화가 비상전화임을 인지하고 필요한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당시 뉴질랜드 전화 시스템은 영국과는 정 반대로 번호 ‘1은’이 1차례, 그리고 번호 ‘2’는 2차례 등 누르는 번호 숫자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보내는 진동의 횟수가 많아지도록 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영국처럼 진동이 3번 전해지면 비상전화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999’가 아닌 ‘111’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국일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국제적으로 앞서가는 표준국가인 영국의 기준에 맞춰 번호를 ‘111’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새로운 Non-emergency 전화 도입 검토하는 경찰
‘111 비상전화’가 처음 도입된 지 50년이 넘은 지금 뉴질랜드 경찰은 과부하를 이유로 비 응급상황에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non-emergency’전화번호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현재 매일 8천여건, 연간 기준으로는 약 200만 건 이상의 111 전화가 접수되는데, 이 중 41%는 허위이거나 111과 관계 없는 전화들인데 이 중에는 어린 아이들이 잘못 눌렀거나 주머니 속에서 잘못 발신된 경우도 많다.
자료에 따르면 작년 1~10월까지 전국에서 접수된‘111’전화 중 60% 가량인 628,801건 이상이 경찰로 연결됐는데, 이는 2013년보다 17,000건 증가한 것으로 특히 3월과 10월이 다른 달에 비해 많았으며 토, 일요일의 오후 4시부터 밤 9시까지가 가장 빈번했다.
그러나 많은 ‘111’ 전화 중 다수가 응급상황이 아니거나 또는 아예 ‘111’을 이용하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로 드러나 실제 응급한 일의 처리를 방해하는 등 계속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실제로 선불요금 휴대전화에 충전된 요금이 없자 무료인 ‘111’을 걸어 택시를 요청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 전화회사에서 나중에 요금을 청구하며 허위신고인 경우에는 경찰에 고발까지도 한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111 접수 때 최대한 빨리 대응하려 노력하지만 지난 5년간 매년 건수가 증가해 점차 대응속도가 떨어지고 있다며,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외국에서도 비응급 상황 신고용 전화번호를 따로 운영하고 있는 만큼 뉴질랜드 역시 이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영국은 2010년 8월에 ‘의료용 비 응급전화(non-emergency medical assistance line)’로 ‘111’을 배정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이 관계자는, 스마트폰으로 111에 접속할 경우 GPS로 자동으로 위치가 파악되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등 또 다른 방안도 연구 중인데 이는 이미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말레이시아에서 운용 중이라면서, ‘111 비상전화’ 체계를 놓고 현재 소방서와 의료계 등 관련 기관들과 폭넓은 의견 교환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