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에 ‘아시아뉴질랜드재단(Asia NZ Foundation)’은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 지역으로부터 뉴질랜드로 유입된 이민자들의 시대별 변화 추세와 그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뉴질랜드가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민족과 국가 출신들이 모여 사는 모자이크국가로 변화 중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는데, 자료에 나타난 각종 수치들을 근거로 변화하는 뉴질랜드의 이민자 사회 현황과 앞으로의 추세를 가늠해본다.
<아시안 이민 증가는 점수제 이민법 도입이 계기>
남반구 외딴 지역에 위치한 뉴질랜드로의 이민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은 지난 1987년 11월에 뉴질랜드 정부가 이민법 개정을 통해 아시아 지역을 포함한 각 나라에 공식적으로 이민문호를 연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이전까지 뉴질랜드로의 이민은 식민 종주국이었던 영국이나 또는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에서 오는 백인 이민자들과 함께 통가를 비롯한 남태평양 제도 국가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백인 계통만 이민이 가능했던 이른바 ‘백호주의’를 시행하던 이웃 호주와 마찬가지로 뉴질랜드 역시 유색인종들에게는 이민 문호가 막혀 있었는데 이 빗장을 푼 것은 당시 계속되던 경제침체가 동기가 됐다.
1973년 이후부터 침체가 이어졌던 뉴질랜드 경제는 급기야 1987년 10월에 미국 주식시장을 강타한 이른바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로 인하여 외환보유고가 바닥 나고 극심한 인플레 속에 외채까지 급증하는 등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뉴질랜드 정부는 난국을 타개하고자 경제에 초점을 맞춰 투자이민 제도를 중심으로 유색인종들에게도 이민 문호를 개방하는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그 이후 1991년에 이른바 ‘점수제 이민(points system)’이 도입된 이후부터는 아시아 지역, 그 중에서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이민 행렬이 본격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연령과 전공을 포함한 학력과 직업경력, 보유재산 등 이민 신청자의 신상을 다각도로 평가한 후 점수화해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이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골격은 유지된 채 이어지고 있다.
점수제 도입으로 그때까지 유럽 위주였던 이민 송출국가가 훨씬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많은 이민자를 배출해온 영국이나 남태평양 제도 국가들 역시 이후에도 지금까지 계속 상당한 이민자를 배출하고 있다.
이처럼 아시아 지역으로부터의 이민자가 어느 시점부터 증가했는지는 아래 2개 도표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는데, 도표 1은 1987년부터 2013년까지 26년 동안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 타이완, 홍콩 등 동아시아의 5개 국가 출신들이 영주권 승인을 받은 숫자이다.
또한 도표 2는 같은 기간 동안에 인도와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필리핀, 태국 등 이른바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로 불리는 5개 국가 출신들의 영주권 승인 현황이다.
<이민자 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
한편 이처럼 점수제 이민으로 동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으로부터의 이민자가 크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뉴질랜드 국내 상황은 물론 각 나라가 처한 정치 및 경제 상황 등 갖가지 제반 여건에 따라 그 수가 달라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민자 수가 변화된 대표적인 경우는 홍콩과 타이완이다. 1997년에 영국 식민지를 벗어나 중국으로 정식 반환된 홍콩의 경우,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 홍콩인들이 협정이 조인되고 반환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자 1991년을 정점으로 1990년부터 1995년 사이에 매년 3천 여명씩이나 뉴질랜드로 삶의 터전을 옮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타이완 역시 중국 본토와의 양안 관계가 악화되고 국내 정정도 극히 불안했던 1995년을 전후로 이민자가 급등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홍콩과 타이완 출신 이민자 그룹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정체 상태에서 그리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자는 1987년에 도입된 초기의 투자이민법 하에서는 그리 큰 증가를 보이지 않다가 점수제 이민이 본격화된 1991년 이후부터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1992년 한 해 동안에 모두 1,916건의 영주권을 발급 받았다.
이후 1993년에 2,682건을 기록한 한국인의 뉴질랜드 영주권 취득자 수는 다음해인 1994년에는 연간 4,167건으로 정점에 도달했는데, 그러나 이후 1997년을 계기로 크게 줄어들었으며 이 배경에는 당시 한국에 들이닥쳤던 IMF 사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후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연간 2천명 안팎을 유지하던 한국인의 영주권 취득은 이후 강화된 영어시험 등의 영향을 받아 더 크게 줄어든 후 아직까지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중국 본토로부터의 이민자는 1995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하다가 2000년 무렵에 잠시 주춤했지만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연간 6천에서 8천명 선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중국 본토로부터의 이민자 수 증가는 중국의 대외개방이 본격화되고 이후 유학을 나왔던 젊은 세대들이 학업을 마친 후에도 뉴질랜드에 눌러 앉으면서 영주권 취득도 덩달아 증가한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2000년대 들어서 급증한 인도와 필리핀 이민자들>
이처럼 동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이민법이 바뀐 초기부터 증가 추세를 보인 반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출신은 특히 2000년대 이후부터 급증세를 보였는데, 이들 지역으로부터의 이민 행렬을 선도하는 것은 인도와 필리핀 출신이다.
도표 2를 보면 인도는 1990년대 중반과 후반에도 영주권 취득자가 연간 3천명 대를 오르내렸는데 이후 2003년에는 거의 만 여명에 가까운 급증세를 보였다가 이후부터는 4~5천명 선을 유지하면서 현재도 중요한 이민 송출국가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최근까지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준 국가는 필리핀인데 2007년까지 연간 2천명 선을 못 넘던 필리핀 출신 이민자는 2008년에 처음으로 연간 4천명 수준을 넘어선 이후 2013년 현재까지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 근래 들어 가장 폭발적으로 인구가 급증하는 소수민족 커뮤니티가 되었다.
인도와 필리핀 출신 이민자들의 영주권 취득이 특히 2000년대 들어 크게 증가한 배경에는, 이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어 뉴질랜드에서 언어 사용면에서 여타 다른 국가 출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도 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경향은 나중에 설명할 취업비자 현황에서도 나타나며 이로 인해 2013년 이후까지도 그 같은 추세가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이번 보고서가 아닌 뉴질랜드 정부의 각종 이민 통계자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교민 감소한 한국과 타이완, 홍콩 커뮤니티>
한편 이번 보고서에는 지난 2006년과 2013년의 센서스 자료를 토대로 뉴질랜드 국내 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40개 주요 출신 국가별 인구를 비교한 자료도 함께 첨부됐다.
이 자료를 보게 되면 2006년에 총 28,806명으로 집계됐던 한국(계) 교민은 2013년에 26,604명으로 오히려 2,202명이나 줄어들면서 7.6%의 교민 숫자가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표에 나타난 40개 국가 중 타이완(10,764명 → 8,988명 Δ16.5%)과 홍콩(7,868명 → 7,059명 Δ8.2%)과 더불어 근래 들어 교민의 숫자가 줄어든 아시아의 3개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자료에서도 인도가 2006년과 2013년 사이에 24,000명에 달하는 자국 출신 교민을 늘려 증가 절대인원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그 뒤를 22,000명을 늘린 필리핀이 잇고 있는데, 그 기간 동안 양국의 교민 증가율은 인도가 55%, 그리고 필리핀은 무려 144%를 기록했다.
중국 본토로부터는 이 기간 동안 11,000명의 이민자가 더 유입돼 14.1%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이에 따라 2013년 센서스 기준으로 중국 본토 출신은 모두 89,121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피지 출신 교민의 숫자도 15,000명이 증가해 국내에 거주하는 피지 출신은 총 52,755명에 달했는데, 보고서에서는 이 중 많은 숫자가 인도 본토 출신이 아닌 피지에서 태어난 이른바 ‘피지언이’라는 인도계가 이민을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남섬지국장 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