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그야말로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
본격적으로 여름을 보내는 중인 뉴질랜드 역시 무더위가 몰려온 데다가 건조한 날씨까지 이어져 전국 곳곳에서 화재가 빈발해 소방 당국과 지자체에 경보령이 내려졌다.
이런 가운데 이번 주에 ‘국립수대기연구소’는 지난 한 해가 뉴질랜드에서 기상 관측이 본격 시작된 이래 두 번째로 연간 평균기온이 높았던 해로 기록됐다고 발표했다.
지구 온난화로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이제는 거의 일상처럼 변한 가운데 이런 상황은 진정되지 않고 앞으로도 더욱더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한 해 인류에게 갖가지 시련을 안겨주었던 지구촌과 뉴질랜드의 기상 현황을 소개한다.
▲ 2022년 7월에 나사가 공개한 지구 각 지역의 기온 지도
<지난 10만년 이래 가장 더웠던 지구>
1월 9일 유럽연합(EU) 산하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국(Copernicus Climate Change Service, C3S)’은 2023년이 아마도 과거 10만 년 이래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지난해 6월 이후 전 세계에서, 매달 전년도 같은 달에 비해 더 온도가 높아지는 등 기후와 관련된 각종 기록이 거듭 깨지면서 연간 기준으로도 지구 기온이 새로운 기록을 세울 것으로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었다.
C3S의 전문가는, 기후 측면에서 지난해는 그동안 온도가 높았던 다른 해와 비교해서도 독보적일 정도로 매우 예외적인 한 해였다고 설명했는데, 지난해 지구 표면적의 86% 지역에서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다.
지난해가 일반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1850년 이래 가장 더운 해였다고 확인한 이 전문가는, 나무의 나이테와 빙하 기포와 같은 곳에서 얻은 ‘고기후 데이터(paleoclimatic data)’와 대조했을 때 지난 10만 년 이래 ‘가장 더운 해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very likely the warmest year)’고 덧붙였다.
지난해 지구 기온은 인간이 공업을 발전시키고 화석 연료를 소비해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대량으로 배출하기 시작한 산업화가 일어나기 이전이었던 1850~1900년보다 1.48C 더 올라갔다.
지난 2015년 세계 각국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심각한 재앙을 피하고자 지구 평균기온이 1.5C 이상 넘어서지 않도록 한다는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을 맺은 바 있다.
전 세계는 그동안 이러한 목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하지만 C3S는 지난해는 거의 절반가량의 기간에 평균기온이 이 수준을 초과하는 한마디로 ‘끔찍한 선례(a dire precedent)’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뉴캐슬대학의 한 기후 변화 과학자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정말 긴급하게(extremely urgently)’ 행동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면서, 하지만 실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정치계의 의지는 기상이변과 온난화 변화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산업화(1850~1900년) 이전’ 대비 1940년부터 2023년까지의 기온 상승 폭
<사상 최고치에 도달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실제로 각국 정부와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석탄, 석유, 가스 소비로 인한 전 세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지난해에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는데, C3S는 지난해 대기 중 CO2 농도가 419ppm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는 산업화 이전보다 일일 평균기온이 1C 이상 더 높았던 첫해이기도 했으며, 11월 중 이틀 동안은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2C나 더 높게 기록됐는데, 전문가는 지난해가 지금까지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됐던 지난 2016년보다 0.17C 온도가 더 높았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야기한 기후 변화와 함께 특히 2023년에는 동부 태평양 수역의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서 전체적인 지구 기온을 상승시키는 이른바 엘니뇨 현상도 기온 상승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과학자들은 지난해의 극심한 더위가 지구 온난화 형상이 가속한다는 신호인지, 아니면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한 해였는지를 이해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함께 더 많은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는 이처럼 기온이 많이 오르면서 중국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치명적인 폭염을 불러왔으며, 한바탕 심한 폭우가 쏟아진 사막 국가 리비아에서는 댐이 무너지면서 도시 일부가 바다로 쓸려가 주민 수만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산불 시즌을 기록하고 지구 곳곳에서 산불로 엄청난 피해가 나는 등 지구 생태계에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재앙이 속출했다.
이와 같은 기후 변화로 미국에서만 10억 달러가 넘는 경제적 피해를 초래한 기상 재해가 최소한 25건이나 발생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콩,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밀 경작이 가뭄으로 큰 피해를 보는 등 세계 곳곳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인 피해도 잇달아 터졌다.
‘World Weather Attribution’에서 글로벌 연구 협력을 이끄는 한 기후 과학자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지구 온도의 변화도 인간과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단 10분의 1C의 변화도 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1991~2020년 평균기온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2023년 지구 온도(빨간색은 평균보다 높고 파란색은 낮은 지역이다)
<NZ 기록상 가장 더웠던 해는 직전 3년간>
전 세계가 이처럼 더웠던 가운데 올해 들어 1월 10일에는 ‘뉴질랜드 국립수대기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Water and Atmospheric Research, NIWA)’가, 한 세기도 더 전인 1909년부터 시작한 ‘7개 관측소 시리즈(seven station series)’를 기준으로 볼 때 지난해 뉴질랜드 역시 기록상 두 번째로 더운 해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연구소에서 매년 초에 공개하는 ‘연례 기후 요약 보고서(annual climate summary)’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평균기온(average temperature)’은 13.61C로 2022년의 13.76C보다 조금 낮기는 했지만 2021년의 13.56C보다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NIWA 관계자는, 이를 통해 뉴질랜드에서 지금까지 기록상 가장 평균기온이 높았던 3년이 모두 직전 3년 동안에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국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관찰된 분명한 온난화 추세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 현상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5월과 9월에는 모두 1991~2020년의 장기간의 평균기온보다 각각 1.1C와 2.0C가 더 높아지면서 역대 가장 높은 월간 평균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문가는 이처럼 뉴질랜드에서 예외적인 한 해의 날씨가 만들어진 데는 다양한 기후 요인들이 함께 작동했다면서, 요인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급격한 온도 변화를 일으키는 ‘엘니뇨(El Nino)’로 전환되는 ‘라니냐(La Nina)’ 현상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해 1월 남섬에서 나타났던 덥고 건조한 날씨를 비롯해 지난해 12개월 중 8개월 동안이나 평균 이상으로 높았던 기온이, 이처럼 연간 기준으로 할 때 평균기온이 역대 두 번째로 높아지는 데 영향을 크게 미쳤다.
한편 지역 중에서도 크라이스트처치와 스튜어트섬은 지난해가 기록상 가장 더운 한 해를 보인 지역이었으며 타우포와 네이피어는 두 번째로 따뜻한 해로 기록됐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기온이 평년의 연간 평균기온보다 ‘높았거나(+0.51C~+1.20C)’나 또는 ‘훨씬 더 높았다(+1.2C 이상)’.
다만 노스랜드와 오클랜드, 베이 오브 플렌티와 기스번, 혹스베이와 동부 와이라라파 그리고 말버러와 캔터베리 고원 지대와 오타고 등 일부 작은 지역에서만 예년 평균과 ‘비슷하거나 낮았던(+/-0.50C)’ 기온을 기록했다.
이처럼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은 현상은 지난 12월의 월 평균기온이 1991~2020년의 장기 평균기온보다 1.1C 높은 16.9C를 기록하면서 연말까지 줄곧 이어졌는데, 12월에는 해안가인 웰링턴과 말버러사운드, 사우스랜드 일부 지역에서만 예년과 비슷한 기온을 보였다.
지난 12월 최고기온은 20일 남섬 핸머 포레스트(Hanmer Forest)의 33.7C였으며 최저기온은 1일 남섬 남부의 마나포우리(Manapouri)에서 관찰된 -0.6C였는데, NIWA는 지난 12월은 관측 사상 13번째로 더웠던 12월이라고 확인했다.
▲ 2023년 연간 강수량과 최대 풍속 및 일일 최고와 최저 기온 기록
<집중호우로 몸살 앓은 한 해>
한편 지난해 강수량은 특히 노스랜드와 오클랜드, 코로만델과 기스번 및 혹스베이 일부 지역에서는 평년의 149% 이상으로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상당한 호우 피해가 발생했다.
1월 말 오클랜드 기념일 홍수 당시 일부 지역에서는 단 6시간 만에 200mm가 넘는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도 했으며, 그로부터 2주 후에는 사이클론 ‘가브리엘(Gabrielle)’이 북섬 전역을 덮쳐 뉴질랜드 사상 세 번째로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되면서 또 다시 큰 피해를 안겼다.
당시 혹스베이 북부의 에스크(Esk)강 인근 기상관측소에서는 채 24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무려 0.5m 이상의 비가 쏟아진 것으로 측정됐으며 이로 인해 해당 지역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상기 지역 내의 여러 곳을 포함해 와이라라파 동부와 타라루아 동부, 베이 오브 플렌티 등의 많은 지역에서는 평년의 120~149%에 달하는 강수량이 기록됐다.
비가 잦았던 이들 지역 외 나머지는 평년의 80~119%에 이르는 강수량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반면 북섬 중앙의 고원지대(Central Plateau)와 남섬의 웨스트 코스트, 사우스 캔터베리와 오타고 동부는 강수량이 평년의 50~79%에 불과해 2월 중순 무렵 오타고 동부를 포함해 일부에서는 심한 가뭄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해에는 곳곳에서 집중호우로 여러 차례 홍수가 나면서 엄청난 피해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2023년은 기상 관측상으로는 사상 21번째로 습했던 해로 기록됐다.
이는 결국 이전보다 비가 연중 고르게 나눠 내리지 않고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졌거나 또는 오랫동안 내리지 않았다는 상황을 시사하는데, 이에 대해 NIWA 전문가는 지난 한 해는 잇달아 발생한 일련의 집중호우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2월 사이클론 가브리엘 내습 당시 침수된 혹스베이의 마을 전경
한편 일조량은 잠정 집계에 따르면 테카포 호수가 위치한 섬 내륙의 매켄지 분지(Mackenzie Basin)가 연간 2,653시간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일조량 순위 1위에 올랐으며, 전통적으로 1위나 또는 상위권이었던 넬슨은 지난해에는 매켄지보다 18시간이 적어 2위가 됐다.
3위는 2,529시간의 태즈먼의 애플비(Appleby) 지역, 그리고 오타고 내륙의 크롬웰(Cromwell)과 남섬 북부 블레넘이 각각 2,531시간과 2,492시간으로 4위와 5위에 오르면서 남섬 지역이 연간 일조량 1위에서 5위를 모두 석권했다.
반면 북섬 지역에서는 지난 2년간 전국 1위를 지켰던 타라나키의 뉴플리머스가 2,449시간으로 전국적으로는 6위이자 북섬에서는 가장 많은 일조량을 기록한 곳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