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 주도 새 연립정부가 지난해 10월 총선 캠페인에서 공약하고 실제로 집권 후 마련한 ‘100일 계획’ 중 하나로 발표했던 새로운 갱단 관련 법률안에 대한 주민 의견 접수가 4월 5일 마감됐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갱단법 개정안(Gangs Legislation Amendment Bill)’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으며, 이를 도입하면 뉴질랜드의 고질적인 사회 문제인 갱단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 등 이와 관련된 내용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 NZ 경찰이 공개한 갱단 표식(patch)
<뉴질랜드의 갱단 현황>
신문이나 TV 등 뉴질랜드의 각종 언론 보도에서는 하루라도 갱단과 관련된 뉴스가 등장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이들이 저지르는 사건들이 매일 전해진다.
갱단 문제는 정치권을 포함한 국민들 사이에서도 민감하고 또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지 이미 오래이며 이에 따르는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 역시 만만치 않게 발생한다.
크고 작은 마약이나 폭력, 총기 사건 등이 등장할 때마다 그 뒤에는 어김없이 갱단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은 자기들끼리의 세력권 다툼뿐만 아니라 때로는 선량한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범죄 행위로 지탄을 받고는 한다.
현재 뉴질랜드에서 갱단 단원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경찰을 포함한 정부와 정당, 갱단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 등에서 내놓은 수치가 있는데, 하지만 공개하는 측에서도 이는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중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 경찰의 자료를 보면, 지난 2017년 4월에 4,915명이 갱단의 단원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지만 2023년 4월에는 그 수가 8,875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경찰 산하에는 ‘Gang Harm Insights Centre’가 있고 이곳에서는 ‘전국 갱단 리스트(National Gang List, NGL)’를 작성하는데, 아래 첨부한 해당 자료(표)를 보면 지난 2016년 2월 현재 4,361명이었던 갱단 단원이 2022년 4월에는 7.722명으로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NGL에는 ‘정식 단원(Patched)’과 ‘예비 단원(Prospect)’을 따로 집계하는데, 첨부된 그래프를 보면 예비 단원은 2020년과 2021년에 1,000명을 넘어섰다가 2022년에는 800명 수준으로 줄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식 단원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임을 그래프가 보여주고 있다.
보통 뉴질랜드 갱단은 1950년대 처음 등장했다고 보는데 ‘몽그렐 몹(Mongrel Mob)’과 ‘헬스 엔젤스(Hells Angels)’ 지역 지부(local chapter)가 1960년대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회도서관의 2022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갱단 단원이 증가했다가 2010년 무렵까지 감소했는데, 정치인들이 문제에 대처하고자 법률 제정과 지원 등 당근과 채찍 정책을 함께 썼지만 학계 전문가들은 결국은 시대적인 조류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 갱단 정식 단원과 예비 단원의 증감 현황(표)
<개정 법률안에 담기는 내용은?>
국민당은 지난해 선거 캠페인 중 갱단 단원이 급증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집권하면 갱단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으로 갱단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갱단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던 만큼 당시 집권 중이던 노동당 역시 갱단 피해를 줄이고 지역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실제로 2023년 의회는 범죄, 운송, 수색 및 감시, 그리고 돈세탁 및 테러 자금 조달 방지 조항을 개정해 경찰에게 범죄 및 갱단 관련 활동을 막을 수 있는 추가 권한을 부여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개정안이 등장하자 일부에서는 이것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개정 법률의 합법성과 함께 시행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지난 3월 7일 처음 발표된 ‘Gangs Legislation Amendment Bill’에 대해 폴 골드스미스(Paul Goldsmith) 사법 장관은 개정안은 폭력 범죄와 갱단 단원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라면서, 경찰이 제 역할을 하고 지역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추가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개정 법안에는 4가지가 목표가 담겨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기존 정부 건물에서의 ‘갱단 표식(patch, 패치)’ 금지에 더해 법원이나 학교 병원 등 공공건물에서도 이를 금지하도록 강화하는 안이다.
두 번째는 공공장소에서 모이는 갱단 단원의 집합을 중지시키고 특정한 이들을 일정 지역에서 떠나도록 요구하며, 또한 7일 동안 공공장소에서 모임을 금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게 부여한다.
셋째, 경찰이 특별히 지정된 갱단 범죄자들이 3년간 서로 만나거나 연락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며, 마지막 네 번째는 갱단 단원은 범죄 선고 시 형량을 가중하도록 관련 법률인 ‘Sentencing Act 2002’을 개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당 경찰 담당인 진니 앤더슨(Ginny Andersen) 의원도 이 법안이 이후 법사위원회에서 계속 논의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녹색당과 마오리(Te Pati Maori)당은 법안 개정에 반대하고 있는데, 타마타 폴(Tamatha Paul) 녹색당 의원은 개정안이 사회에서 돌보지 않은 사람을 더욱 소외시키고 과격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라위리 와이티티(Rawiri Waititi) 마오리당 공동대표도 개정 법안이 특히 마오리에게 불균형한 영향을 미치며 이는 자원 낭비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총리실 수석 과학 고문의 2023년 보고서에도 갱단 피해를 빠르게 줄일 방법은 없다고 지적하면서, 세대를 통해 전해진 트라우마나 가정 폭력, 주택이나 불평등 문제처럼 사회적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게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 총기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
<법률적 저항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갱단>
한편 주디스 콜린스(Judith Collins) 법무부 장관은 보고서에는 개정안에 담긴 패치 금지가 ‘뉴질랜드 권리장전(NZ Bill of Rights Act 1990)’에 따른 ‘표현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 조항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며 분산 통고 권한도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와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내놔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이에 대해 골드스미스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만약 법안이 권리 장전을 위반한다고 판명돼도 개정안을 중단시킬 수 없다면서,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는 갱단에 맞서 두려움을 갖지 않고 법을 준수하는 사업체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또한 국회는 이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경찰협회(Police Association)의 크리스 카힐(Chris Cahill) 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갱단 측이 이번 개정안에 대해 법정에서 법률적 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몽그렐 몹으로부터 개정안의 합법성을 조사하도록 요청받은 형사 전문 변호사 아라마 나가포(Arama Ngapo)는 인터뷰에서, 정부가 ‘이동의 자유, 평화로운 만남의 자유, 표현의 자유, 차별로부터의 자유’를 위반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번 갱단 법률 개정안은 앞으로도 합법과 불법의 테두리를 놓고 벌어지는 법률적 논쟁을 제쳐 놓더라도, 해묵은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과 그 효율성, 그리고 사회적인 다른 문제와의 상관관계 등을 놓고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출신 민족과 소득, 재산에 따른 계층과 직업 등 다양한 그룹별로 제각각 의견이 표출되면서 상당한 갈등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갱단으로부터 압류한 총기류
<갱단 단속 정책은 1972년부터 시작>
갱단 문제를 법률로 규제하기 시작했던 계기는 1972년 너만 커크(Norman Kirk) 당시 노동당 대표가 그해 노동당이 이겼던 선거 캠페인에서 이를 지적한 것이 시초이다.
1970년대에는 거리 갱단이 모터사이클 클럽과 유사한 조직을 만들기 시작한 가운데 1987년에 몽그렐 몹 단원들이 오클랜드 망게레의 한 공원에서 젊은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후 관련 법률이 개정되면서 전자 장치와 같은 감시 권한이 확대되었다.
국민당과 노동당 등 주요 당이 모두 갱단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고 나섰지만 관련 연구 보고서에서는,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 시행된 갱단을 목표로 한 법률은 대부분 효과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착 갱단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법률은 아니었지만 범죄 수익을 회수하는 ‘Proceeds of Crimes Act in 1991’는 갱단 활동을 억제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법률은 지난 2009년 폐지되고 그 대신 ‘Criminal Proceeds (Recovery) Act 2009’으로 대체돼 유죄가 선고되지 않더라도 범죄 이득을 몰수할 수 있도록 했으며 지금도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는 중이다.
한편 2009년에 황가누이 시의회는 패치를 포함해 공공장소에서 갱단 상징물을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1년 후, 헬스 엔젤스 갱단이 금지 조례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요구한 결과 법원에서는 법률이 어떤 공공장소에서 적용되는지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다고 조례를 무효로 판명하고 유효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이후 2013년에 국회는 정부 건물에서 이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 내용이 포함된 ‘Criminal Activity Intervention Legislation Act’을 통과시켜 그해 4월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 압류한 갱단의 고가 오토바이 6대가 파쇄되는 모습
<호주와 뉴질랜드 갱단은 특성이 다르다?>
한편 이번 개정안을 추진 중인 국민당은 이웃 나라인 호주의 여러 주 중에서 서호주와 퀸즈랜드주에서 시행 중인 강력한 반 갱단 법을 사례로 거론했는데, 퀸즈랜드는 2013년 강력한 오토바이 갱단 법을 도입한 바 있다.
그리고 서호주주역시 2021년 만들어진 법에 따라 갱단 단원이 해산 명령에 저항하고 갱단 상징을 공공장소에 드러내거나 이를 위반할 경우 체포되거나 벌금이 부과되는데, 당시 얼굴의 특정 문신도 갱단 상징으로 간주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당시 해당 법률은 갱단 측의 시위를 부르고 경찰의 체포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한편 퀸즈랜드 한 대학의 법률 전문가는, 뉴질랜드 갱단은 호주 바이크 갱단과는 달라 법률 변경이 뉴질랜드에서는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뉴질랜드 측 언론의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특히 국제적인 갱단 사례를 볼 때 젊을 때는 한때 단원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직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지만 갱단에 속한 마오리가 많은 뉴질랜드는 가족은 물론 지역 공동체와 연결돼 성인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여기에 이들은 식민지를 겪었던 원주민의 역사 인식까지 더해져 다른 나라의 갱단과는 크게 구분되는 특성이 있다.
또한 각종 금지 행위가 표면적으로는 폭력과 갱단 활동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이는 갱단의 불법 활동을 더 지하로 깊게 숨어들게 하고 더욱 과격하게 만들 가능성도 상존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소득 및 빈부 격차와 교육, 가정 환경, 주거 환경, 불평등 등 복지 정책을 비롯한 각종 사회 제도의 개혁을 통해 갱단 문제도 접근해야 하며 정치권에서 나오는 주장처럼 엄한 처벌과 단속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부분 일반 국민들 심정은, 갱단 단원이 늘어나면서 마약이나 총기, 폭력 사건 등도 갈수록 증가하는 마당에 전문가들 말처럼 교과서적 해결책을 바라고 있다가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번 개정안을 놓고 국회에서 진행될 논의와는 별개로 국민들도 당분간 이 문제에 더 관심을 보이면서 법률 개정의 향방과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를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