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을 줄여야 하는 뉴질랜드인들이 무려 22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뉴질랜드의 4대 사망 및 장애원인인 뇌졸증, 심장질환, 암, 치매를 일으키는 위험요소가 많은 비만이거나 과체중이다. 뉴질랜드 비만 문제가 흡연 문제보다 심각하여 보건체계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뉴질랜드 성인 66%가 과체중 또는 비만
뉴질랜드의 비만 인구는 지난 30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서 2013년 사이 과체중 또는 비만 성인 비율은 50%에서 66%로 껑충 뛰었고, 비만 남성의 경우 13%에서 28%로 두 배 이상 늘어나 세계 최고의 증가율을 보였다.
현재 뉴질랜드 성인의 비만 인구는 여성 51만명, 남성 45만명을 합해 96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같은 기간 과체중 또는 비만 아동 비율도 18%에서 29%로 늘었고, 2세에서 9세 사이 아동 9명중 1명이 비만으로 여겨지고 있다.
파시피카 아동의 50%, 마오리 아동의 40%가 과체중이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발표한 비만보고서에서 뉴질랜드의 비만 성인 비율은 31.3%로 미국(35.3%), 멕시코(32.4%)에 이어 세 번째로 비만율이 높은 나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 전까지 만해도 OECD회원국 국민 가운데 비만인 경우는 10명중 1명도 되지 않았지만, 현재는 회원국 성인의 18%가 비만으로 조사됐다.
특히 OECD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비만율과 회원국 가구의 식료품 지출비를 비교한 결과 경제침체가 비만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경기불황으로 채소와 과일 등 신선식품 지출을 줄이는 대신 값싼 고열량 가공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먹는 가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호주의 경우 2008~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때 재정적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만율이 20% 높았다.
이처럼 비만율이 상승하면서 당뇨, 심장병 등 비만과 관련된 만성질병을 해결하는데 들어가는 정부비용도 늘어날 것으로 우려됐다.
보고서는 “경제위기는 비만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회원국 정부들은 이 같은 추세를 멈추기 위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질랜드의사협회 “비만이 최대 위협”
뉴질랜드의사협회(NZMA)도 비만 관련 합병증이 뉴질랜드가 앞으로 10년에 걸쳐 직면하게 될 최대의 공중보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협회는 지난 9일 보고서를 통해 뉴질랜드가 계속 커지는 비만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히고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또한 옳지 않은 방법으로 어린이들을 겨냥하는 광고와 높은 열량이 들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섭취하게 되는 고농도 음료와 식품들이 주변에 널려있는 등 사람들이 현재 비만 유발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비만 문제에 대처하려면 확고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의사협회 회장은 “비만이 우리를 죽이고 있을 뿐 아니라 큰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며 “뉴질랜드인들의 건강 위협에 대해 정부는 입법 활동이나 정책 규제를 통해 종합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회는 비만 문제에 대처하려면 설탕음료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최저 가격제를 도입하고, 어린이를 겨냥한 식품 광고를 규제하며, 학교에서 즉석식품을 팔지 못하도록 하고, 학교 교과과정에 영양 교육을 포함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비만으로 인한 경제부담 연간 7억~8억달러
비만이 유행병처럼 확산되면서 국가적으로 심각한 경제 부담을 주고 있다.
뉴질랜드경제연구소(NZIER)는 비만과 과체중으로 인해 국가가 떠안게 된 부담은 의료 비용과 생산성 감소 등을 합해 연간 7억2,200만~8억4,900만달러로 분석했다.
또한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는 정부예산의 당뇨병 관련 지출이 2020년까지 매년 추가로 1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비만 방지를 위해 정부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4년간 4,000만달러의 예산을 투입하는 ‘건강한 가족(Healthy families)’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저소득 지역 478개 학교 9만명의 어린이들에 1,800만달러를 들여 과일을 제공하며, 비만자의 위절제수술을 돕기 위해 200만달러의 국가 예산을 배정하고, 어린이의 영양 공급을 위해서도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비만 방지 프로그램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현재의 비만 방지 프로그램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비만 인구가 위험 수준으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에 개인과 정부 차원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비만 퇴치 위한 설탕세 도입하자
그 가운데 하나가 정치적 논점이 되고 있는 설탕세(sugar tax) 도입이다.
오타고 대학의 닉 윌슨(Nick Wilson) 박사는 20%의 설탕세 도입을 제안했다.
세계적으로 담배세를 올려 걷힌 자금으로 암 연구나 금연활동에 사용하면서 효과를 봤던 것처럼 설탕세로 마련한 재원을 비만 방지나 영양 개선에 사용한다면 대중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윌슨 박사는 “설탕세 또는 어떠한 식품에 붙는 세금에 대해서도 식품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겠지만 청량음료에 세금을 도입한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뉴질랜드도 이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식품잡화협회는 설탕세가 결국 식품 가격만 올려 놓을 뿐이라며 반대했다.
캐더린 리치(Katherine Rich) 회장은 “담배세는 담뱃값을 비싸게 만들어 흡연율을 줄이게 했지만 담배세 형태를 식품에 적용할 경우 저소득층에 커다란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반박했다.
토니 라이알(Tony Ryall) 보건장관의 대변인은 “정부는 설탕세나 비만세 부과에 반대하고, 규제보다는 개인과 가정에 정보와 도움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설탕세 도입과 함께 채소 및 과일에 대한 세금 면제, 정크푸드의 광고 규제, 자전거 전용도로 확충 등도 비만 방지와 관련되어 거론되고 있는 전문가들의 처방이다.
비만을 일으키는 생물학적 원인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아직 명확하게 판명되지 않고 있다.
비만은 흔히 많이 먹기 때문에 생기는 비만한 사람 스스로의 잘못이라는 뿌리깊은 인식이 자리잡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비만이 단순한 식습관 조절의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유전적 요인과 감정 및 스트레스 등 복합적인 요인이 비만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더니든의 생화학자 토니 메리맨(Tony Merriman)은 유전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비만율이 높은 마오리와 퍼시픽 아일랜더의 유전자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동 비만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동과 이혼한 가정의 아동에게서 나타날 위험이 더욱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아동 비만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점에서 대책 마련이 더욱 시급한 실정이다.
비만 퇴치를 위한 특효약은 없지만 뉴질랜드가 지금 비만 확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뤄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