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20일(토) 치러지는 뉴질랜드 총선이 투표일이 점점 다가올수록 결과에 대한 섣부른 예측을 불허하면서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40%를 넘어선 국민당의 견고한 지지도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지난 8월에 발간된 니키 헤이거(Nicky Hager)의 책 ‘Dirty Politics’를 통해 폭로되기 시작한 국민당 내의 갖가지 추문이 결국 주디스 콜린스 법무부 장관의 낙마까지 불러오면서 국민당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맞이한 셈이 됐다.
반면 야권은 이 같은 호재 속에서도 데이비드 컨리프 대표가 이끄는 제1 야당인 노동당이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20%의 낮은 지지율을 헤매는 가운데 신생 정당인 인터넷-마나당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또한 녹색당 역시 전통적인 지지세력을 이용해 기존 당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윈스톤 피터스의 뉴질랜드 제일당이 국내 선거제도의 특징인 MMP 제도를 이용, 다시 한번 국내 정치계에서 폭풍의 눈으로 등장하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9월 4일(목) 현재 언론이나 조사기관들이 실시한 각 정당들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변화무쌍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따라 이번 호에서는 현행 선거제도 및 국회를 구성하는 방법과 함께 선거 결과 자체보다는 그 뒤에 이어질 정국의 흐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군소 정당 권리를 최대한 보장>
주지하다시피 뉴질랜드 국회는 대한민국 국회와 마찬가지로 상하 양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단원제 국회이다. 영국은 물론 같은 영연방 국가로서 인구가 그래도 어느 정도 되는 호주와 캐나다는 현재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내각제 정부를 갖고 있는 뉴질랜드의 국회의원 임기는 3년이고 이번 선거의 의석은 지역구 71명과 비례대표 성격의 전국구(Listed MP) 49석 등 총 120석으로 구성되지만 이 숫자는 선거 결과에 따라 변동되기도 하며 지역구 중 7석은 마오리 지역구에서 마오리계 유권자들만의 투표로 선출된다.
특히 뉴질랜드 선거제도는 흔히 ‘독일식’으로 불리는 이른바 ‘혼합비례대표제(Mixed Member Proportional, MMP)’로서 이 제도는 어느 한 정당의 독주가 원천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져 대부분의 경우 제 1당은 연립내각을 구성해야만 집권할 수 있으며 현 정부 역시 국민당 주도 아래 마오리당과 연합미래당, ACT당이 연합해 있다.
이 제도 하에서 각 당은 전국의 각 지역구에도 후보들을 출마시키지만 이들을 포함해 전국구 후보까지 들어 있는 후보자 명부를 사전에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번 선거의 국민당 후보자 명부를 보면 존 키 현 총리는 오클랜드의 헬렌스빌 지역구 후보이자 동시에 국민당 전국구 비례대표 순위 1위에 올라 있다.
노동당의 데이비드 컨리프 대표 역시 뉴린 지역구 후보이자 자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올라가 있으며, 국민당 소속의 한국계 의원인 멜리사 리 의원 역시 오클랜드 마운트 앨버트 지역구의 후보이자 비례대표 31번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는 지역구에서 떨어져도 순위가 앞서면 의원이 될 수 있는 셈인데, 이번 선거에는 모두 16개 정당에서 554명에 달하는 후보자가 나왔으며 이 중 440명의 후보자는 각 당이 제출한 전국구 후보자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고 483명이 지역구 후보로도 출전하는데, 이들 후보자들 중 71명은 전국구로만, 그리고 114명은 지역구에만 이름이 올라 있다.
이에 따라 각 후보자들은 자신이 당내 명부에서 몇 번째 순위에 오르는가가 당선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며 결국 이 순위는 해당되는 정당의 당내 서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셈인데, 만약 회기 도중 사퇴 등으로 국회의원 자리가 비게 되면 이 순서에 따라 의석이 보충된다.
이에 따라 각 유권자들은 투표 시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 중 한 명을 선택(지역구 투표)해야 하며 이때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정당투표’도 동시에 해야 하는데, 유권자에 따라서는 후보자는 A당 출신을 지지하면서도 정당은 B당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이 같은 경우가 자주 나오는데 역대 선거를 보면 특히 여당의 압승이 확실할 경우 제 1야당의 지지자들이 지역구 후보자는 제 1야당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정당별 투표에서는 여당을 견제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야당 편에 선 소수 정당들에게 표를 던지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구 1명 당선 또는 지지율 5%가 관건>
한편 선거 결과가 나오게 되면 정당지지도의 점유율 대로 국회의원을 배정하는데 우선 각 지역구에서 1위를 한 후보들만 가지고 그 수를 채워 나가고 나머지를 명부 순위대로 각 당에 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정당이 정당 투표에서 30% 지지율을 얻었다면 정원 120명의 30%는 36명이므로 이 정당은 총 36석의 의석을 확보한다. 이 중 만약 25명이 지역구에서 1위를 해 당선됐다면 나머지 11 자리는 당에서 제출했던 전국구 명부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일단 제외한 후 나머지 순서에 따라 선출된다.
단 이때 아주, 대단히 중요한 전제조건이 하나 있는데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던 각 정당 중 정당지지도가 최소한 5%를 넘거나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단 1명이라도 나와야만 의석 배분이라는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MMP 제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제도로 인해 녹색당은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단 한 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0%가 넘는 정당지지율로 인해 지난 국회에서 무려 13석이나 되는 의석을 확보했었다.
반면 매 선거 때마다 지지율 5% 주변을 오르내리는 뉴질랜드 제일당은 지난 2008년 총선에서는 윈스톤 피터스 대표가 타우랑가 지역구에서 국민당의 사이먼 브리지스 후보에게 1만표 차이로 대패하고 정당지지율 역시 4.2%를 기록하면서 원내 진입에 실패해 이후 3년 동안 원외정당으로서의 서러움을 톡톡히 맛본 바 있다.
반면 당시 국민당의 후원을 받은 ACT 당은 3.72%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5석을 배정 받는 돌풍을 일으켜 국민당 집권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지지율이 5% 미만이지만 지역구 당선자가 나왔을 경우 당시 제일당처럼 이것도 저것도 이루지 못한 정당의 의석까지 빼앗아 차지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는 주요 정당이 특정 지역구에서 자당 후보를 아예 내지 않는 방법 등으로 군소 정당 후보를 도와 당선시킨 뒤 이를 연립정부의 일원으로 만드는 선거 전략의 한가지 방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편 여기에 7개의 마오리 지역구가 따로 있다는 점도 또 하나의 변수가 되는데 비록 의석 수는 7개에 불과하지만 선거에서 승리해 제 1당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연합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7석이라는 숫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의석이다.
지난 국회에서 마오리 지역구는 노동당이 2석, 마오리당이 4석, 그리고 마오리당 출신인 호네 하리위라의 마나당이 1석 등 3개 정당이 7석을 나눠 가졌으며 이 중 마오리당이 현재 국민당 정부와 연합해 있는 상태이다.
한편 의석을 배분할 때 배정 받을 수 있는 인원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많을 경우 그 인원을 별도로 인정하는데, 지난 2008년 선거 때 마오리당이 2.24% 밖에 정당 지지를 못 받았지만 지역구 당선자가 5명이나 돼 국회의원 의석이 2명 더 늘어나 122석이 된 바 있으며 이 후에도 이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때로는 꼬리가 몸통 흔드는 결과 초래>
지난 2010년 8월에 실시된 호주 총선은 당시 여당이었던 노동당과 야당인 자유국민 연합이 박빙의 승부를 펼쳐, 이른바 ‘Hung parliament’라는 기현상이 벌어지면서 정부 구성이 늦어지는 등 국정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호주 사상 첫 여성 총리였던 줄리어 길러드가 이끌던 노동당이 72석, 그리고 토니 애벗 자유당 대표가 이끄는 자유국민 야당 연합이 73석을 차지해 어느 정파도 하원 정원(150석)의 과반수인 76석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노동당 지지를 선언한 1석의 녹색당 외 무소속 당선자 4명의 마음에 따라 정권 향방이 가려지는 한마디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고 당연히 무소속 당선자들의 주가는 치솟을 대로 치솟았다.
결국 4명의 무소속 의원을 잡은 길러드 총리의 노동당이 소수 정권으로 집권하기는 했으나 노동당 이념과는 거리가 있던 무소속 의원들의 요구까지 수용해야 했었는데, 당시 노동당은 무소속 의원들이 야당 측에 의해 총리 불신임안이 상정되면 이에 찬성하지 않으며 또한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킨다는 조건 하에 이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MMP 제도 하의 뉴질랜드는 역대 선거 후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자주 벌어지는데, 특히 여야의 균형이 팽팽할수록 군소 정당들의 입지가 크게 넓어져 때로는 이들이 앞서 호주 선거에서처럼 꼬리가 몸통을 뒤흔들어대는 이른바 ‘Wag the dog’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국내 정가에서 이러한 ‘꼬리 흔들기’ 명수는 누가 뭐라 해도 제일당의 윈스톤 피터스를 따라갈 정치가가 없다. 자신도 원래 국민당 출신이자 이념적으로 우익 정당이라고 볼 수 있는 제일당을 이끌면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좌파인 노동당과의 연합도 서슴지 않는 행보를 보여왔는데, 지난 2000년대 후반 노동당 정권 때에도 이에 연합하면서 외교부 장관직을 요구해 각료회의 구성원이 아닌 외무장관이라는 희한한 결과가 빗기도 했다.
현재의 마오리당 역시 이념이나 정치색으로는 좌익으로서 노동당 경향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국민당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는데 현재는 국민당의 세가 워낙 강한 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인터넷-마나당인데,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는데다가 마나당 호네 하라위라의 마오리 지역구 당선이 유력할 것으로 보여 정당지지율이 몇 %에 오르느냐에 따라 정계에 미치는 충격파의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터넷당을 창당하고 후원하는 인터넷 재벌인 킴 돗컴의 경우, 현재 자신과 법적 싸움을 벌이는 국민당 정부와는 감정적으로 동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만약 인터넷-마나 연합이 상당수 의석을 확보한 후 노동당 지지에 나설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노동당과 녹색당, 인터넷-마나당과 뉴질랜드 제일당, 여기에 마오리당까지 합세하는 노동당 주도의 새로운 연립 내각이 발족할 가능성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변수가 하나 더 있는데 콜린 크레이그(Colin Craig)가 이끄는 신생 우익 정당인 보수당(Conservation Party)의 역할이다. 8월 초까지 1~2%에 머물던 보수당의 정당지지도는 최근 실시된 일부 조사에서는 5% 문턱 진입을 앞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에 따라 보수당의 활약이 국민당 재집권에 또 하나의 중요 변수로 떠오르는 형국이다.
<투표는 유권자 등록부터>
유권자 등록이 된 사람만이 선거 당일 투표할 수 있는데 유권자 등록은 9월 19일(금)까지 할 수 있으며 선거 당일에는 안 되고 등록은 다음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 만 18세 이상
- 뉴질랜드 시민권 혹은 영주권 보유
- 뉴질랜드를 떠나지 않고 1년 이상 거주
유권자 등록이 되어있다면 선거 당일 아침 9시에서 오후 7시 사이 편한 시간에 집 근처 가까운 투표소에 들려 투표하면 된다. 이 때 만약 EasyVote 카드나 Electoral Commission Chief Electoral Officer의 편지를 투표소에서 제출하면 좀 더 신속하게 투표할 수 있다.
한편 당일 근무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선거법에 의거 오후 3시가 되기 전에 투표하고 올 시간을 고용주에게 요청할 수 있으며 이는 정상 근무시간으로 인정되고 고용주는 이를 반대할 수 없으며 위반 시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각 투표소의 위치는 선거일 1주일 전쯤 배포되는 유권자 안내문에도 잘 나와 있으며 선거관리위원회의 웹사이트 (www.elections.org.nz)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과는 보통 당일 자정 이전에는 나오지만 간혹 부재자 투표가 완료되어야만 그 결과가 명확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지난 2005년 녹색당은 막판 부재자 투표에서의 극적 반전으로 정당지지율 5.07%를 기록하면서 가까스로 원내에 잔류할 수 있었던 사례도 있다.
<남섬지국장 서 현>